☆ 소설 창고/지우개 식당[완]

[로맨스 소설] 지우개 식당 [47장. 아버지 2]

권정선재 2017. 3. 30. 00:02

47. 아버지 2

오늘 유난히 더 바쁜 거 같아.”

그러게요.”

 

준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손님들은 쉬지 않고 식당을 채웠다. 기분은 좋았지만 몸이 힘든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사람을 하나 더 써야 하나?”

일단 감당할 수 있는 건 하기로 했잖아요.”

그렇지.”

그럼 해야죠.”

 

씩 웃고 밖으로 나가는 준재를 보며 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때보면 준재가 자신보다 어른스러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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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록 아니야?”

그러게요.”

 

다섯 시 사십칠 분. 처음이었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모든 재료가 다 나가서 식당에 손님이 없는 것은.

 

매일 이렇게만 되면 좋겠다.”

그러게 말입니다.”

 

태식은 마지막 남은 테이블을 정리하고 나서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진짜 정신이 없었네요.”

그러게요. 카레도 다 나가고. 오늘은 우리가 먹을 밥도 없을 거 같은데요? 뭐 시켜야 할 거 같아.”

치킨?”

치킨 좋지.”

 

지우는 손가락을 튕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시선이 자신의 배로 향하고 고개를 저었다.

 

나는 패스.”

왜요?”

저녁을 좀 굶어야겠어.”

? 왜요?”

 

 

태식은 옆에서 불쑥 얼굴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장지우 씨 너무 매력적이라니까?”

내가 뭐 그쪽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다이어트를 하는 줄 알아요?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거거든요.”

.”

 

태식은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조금 더 완벽하고 싶다고요. 뭐 지금도 이렇게 잘 나가는 사람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대단하세요.”

고마워.”

 

준재의 칭찬에 지우는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태식은 두 사람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직 나한테 기회 있는 거 맞죠?”

무슨 기회요?”

아저씨.”

?”

 

준재가 미간을 찌푸리자 태식은 입을 쭉 내밀었다.

 

너만 장지우 씨를 좋아하는 거 아니다.”

왜 또 그래요.”

 

지우는 얼굴이 잔뜩 붉어진 채로 태식을 노려봤다. 태식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이런 말도 못 하는 겁니까?”

하면 안 돼요.”

치사하네.”

치사해요.”

 

그때 문이 열리고 사내가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저희 영업이 끝이 났어요.”

사장님.”

?”

 

순간 준재가 자신의 옷깃을 잡고 나서야 지우는 지금 식당에 들어온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다 팔린 겁니다. 너무 장사가 안 되어서 손님이 없는 게 아니라요.”

알고 있네.”

 

준재의 변명에 지우의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우의 아버지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서 얘기를 나누고 싶은데.”

저희 지우개 산책시키고 올게요.”

그래.”

 

지우는 태식과 준재에게 짧게 고개를 숙였다.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지우는 두 사람이 나가고 어색하게 웃었다.

 

뭐라도 드실래요? ?”

물이면 됐다.”

 

지우는 심호흡을 하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머리가 핑 돌았다. 하지만 자신이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아니 그냥 누구인지 알고 싶은 사람이었다. 당당하게 마주해야만 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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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갑자기 올 줄이야.”

그러게요.”

 

지우개가 땅을 파는 것을 보며 준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찾아올 거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말 이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갑자기 찾아올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으니까.

 

특이한 사람이야.”

뭐가요?”

아니 그런 식으로 아버지가 오면 화를 내거나 그럴 수 있는데 그렇게 덤덤한 것을 보면 말이야.”

하나도 안 덤덤했어요.”

?”

 

준재의 목소리가 낮아지자 태식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고 그렇게.”

아저씨는 사장님을 좋아하지 않네요.”

꼬맹이.”

사장님 눈 되게 많이 흔들렸어요. 정말 힘들어 하는 거. 그게 보였어요. 그런데 아저씨가 보기에는 그게 아무렇지도 않아 보인 거라면. 그거 문제가 있는 거예요. 사장님 아무런 상태였으니까.”

너무 그러지 마라.”

지우개.”

 

준재가 부르자 지우개는 곧바로 그에게 다가왔다. 준재는 지우개의 목덜미를 열심히 문질러진 후 가볍게 머리를 두드렸다.

 

화장실 갈까?”

 

지우개는 자신의 목줄을 입으로 물었다. 준재는 그것을 받아들고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지우개 착하네.”

꼬맹이.”

지우개 화장실 다녀올 동안 아저씨는 사장님 얼굴을 다시 생각을 해보세요. 그게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인 건지. 가자 지우개.”

 

준재가 멀어지고 나서 태식은 혀로 입술을 축였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가슴이 답답했다.

 

표정이 안 좋았다고?”

 

꼬맹이의 말을 들으니 또 그런 것 같기도 했다. 태식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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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은 잘 되는가 보구나.”

.”

 

지우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자신의 앞에 있는 사내는 아버지라는 증거도 없는 그냥 중년의 사내였다.

 

나를 원망하지?”

아니요.”

그래.”

 

다시 침묵이 흘렀다.

 

네 어머니가 이미 너를 낳고 나서 나에게 말을 했다. 그때는 이미 나는 결혼을 해버린 후였어.”

.”

그래서 네 엄마에게 돌아갈 수가 없었다. 너를 키우기 위해서 필요한 돈을 준다고 해도 거절을 하더군. 혼자서 너를 키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면 뭐가 달라질 거라고 믿은 모양이지.”

 

아버지의 이런 말에 지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아버지가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고 하는 말을 믿어도 되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면서도 동시에 뭐가 달라지는 걸까? 하는 궁금증이 들기도 했다.

 

물어볼 말은 없냐?”

.”

 

지우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물어볼 말이 왜 없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왜 여태 오지 않았던 건지. 그리고 그 빌어먹을 계약서는 도대체 무엇인지. 물어보고 싶은 말은 목 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그걸 다 말해버릴 수는 없었다. 그나마 만남이 완벽하게 망가지게 될 테니까.

 

돈이 필요하면 줄 수 있다.”

 

아니요.”

 

지우는 그 어느 순간보다 빠르게 대답했다.

 

식당 장사 너무 잘 되고 있어요. 지금 이 시간에 완벽하게 다 팔린 거 보시면 아실 거 같은데요.”

그렇다고 해서 이런 작은 식당을 운영해서 뭐가 나오겠어. 그리고 사람을 둘이나 쓰는데 말이다.”

그렇게 사람을 써야 할 정도로 잘 된다는 거겠죠.”

 

지우의 말에 아버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물을 모두 마신 후 숨을 크게 내쉬었다.

 

등록금은 내줄 수 있다.”

?”

어차피 이 식당이 사라지는 건 아니야. 네가 공부를 하고 싶다면 그 정도는 해줄 수가 있어.”

계약서에 제가 아. 아무튼 그런 걸 요구하면 안 된다는 말이 적혀 있는 것을 제가 기억하는데요?”

 

아버지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런 말은 해보지 않았으니까. 이런 지우의 복잡한 심경과 다르게 아버지는 뿌듯한 표정이었다.

 

그걸 기억하고 있구나.”

당연하죠.”

영특하구나.”

 

영특이라는 단어를 이 나이에 들을 줄이야.

 

그 정도는 나에게 그다지 큰돈이 아니야. 그리고 여태 내가 너를 키우는데 돈 한 푼을 주지 않았으니 그 정도를 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야. 네가 바란다면 나는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다.”

아니요.”

 

지우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 식의 도움은 싫었다. 그것은 스스로를 부정하는 기분이었다.

 

엄마의 식당을 지키면서 잘 버티고 있어요. 그런 제안 감사하지만 굳이 그 제안 받고 싶지 않아요.”

미워하는 게야?”

그럴 게 있을까요?”

 

지우는 엷은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저 지금 아. 아무튼 그쪽을 처음 뵙는 거예요.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어요. 아버지라는 생각도 없고.”

그렇군.”

 

사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시게요?”

내가 더 있을 이유가 있나?”

식사 하세요.”

 

지우의 말에 사내는 멈칫했다.

 

식사라.”

엄마가 한 거랑 똑같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비슷하게. 그래도 그거랑 비슷하게 노력을 할게요.”

 

사내는 시계를 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집에 가서 밥을 먹는 게 나을 거 같군.”

가족이 있으시군요.”

당연하지.”

당연한 거군요.”

 

당연한 거. 그래. 자신의 가족이 아닌 다른 가족을 선택했다고 했으니까. 그게 당연한 거였다. 그렇지만 서운함을 감출 수는 없었다. 그게 당연한 거라고 하지만 그게 당연할 수는 없는 거였다.

 

그럼 싸드릴게요.”

아니.”

하지만.”

의심을 할 게야.”

 

지우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라도 남편이 갑자기 밖에서 반찬을 가지고 오면 이상하게 느낄 거였다.

 

마음은 받지.”

.”

 

지우는 어색하게 웃었다. 뺨이 금방이라도 경련이 나서 망가질 것 같았다. 하지만 참아야 했다.

 

다시 볼 일은 없을 걸세.”

.”

 

지우는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보지 않는 거. 그게 차라리 자신에게도 나을 수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 돈은. 쓰기 싫으면 그 녀석에게라도 주지. 그래도 그 녀석이 우리 두 사람을 이 정도라도 만나게 해준 거니까.”

알겠습니다.”

 

지우는 흰 봉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준재를 위해서, 그리고 이 사내의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받아야 할 거 같았다.

 

그럼 안녕히 가세요.”

 

사내는 더 이상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식당을 나갔다.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그런 존재는 없는 거였다. 지우는 그대로 자리에 무너졌다. 아무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문이 열리고 준재가 들어왔다.

 

사장님.”

도대체 왜.”

 

지우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도대체 왜 저 사람을 나에게 알려준 거야. 도대체 왜 나에게 아버지라는. 아버지라는 존재가 있다고 말을 한 거야.”

사장님.”

 

준재는 지우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어깨를 두드리고 심호흡을 했다. 지우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묻었다.

 

정말 싫어. 도대체 왜 나에게는 저런 사람이 있는 거야. 나를 전혀 사랑도 하지 않는 저런 사람이 왜 있는 거야.”

사장님.”

정말 싫어.”

 

지우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리고 하염없이 울었다. 식당으로 들어서려던 태식은 멈칫하고 돌아섰다. 준재는 지우의 어깨를 계속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