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장. 라이벌
“꼬맹이가 그렇게 나올 줄이야.”
혼자 맥주를 들이키며 태식은 고개를 저었다. 준재가 그렇게 지우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갈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되게 겁쟁이인 것처럼 말을 하더니. 꼬맹이 내가 생각을 한 것보다 꽤나 남자인 모양이야.”
신기했다. 그리고 지우에 대해서 자신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떠오르니 답답하기도 했다.
“꼬맹이. 그리고 장지우 씨.”
처음에는 그냥 장난처럼 식당을 도운 거였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런 장난 같은 마음이 아니었다. 지우가 행복한 것이 좋았고. 지우가 웃을 수 있기를 바라는 중이었다. 물론 자신 덕분에.
“도대체 그 꼬맹이는 장지우 씨 옆에서 뭘 하자는 거야. 그리고 나는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속이 답답했다. 뭘 해야 할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있었다.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지우에게 다가가려고 했지만 더 이상 그럴 수 없다는 거였다.
“좋아하는 거구나.”
장지우라는 사람을 좋아하는 거였다. 태식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가슴에 손을 가져갔다. 심장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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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괜찮아요?”
“응.”
지우는 소매로 얼굴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준재에게 참 못 보일 꼴을 자주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면 안 되는 건데.”
“왜요?”
“부끄럽잖아.”
“하나도 안 그래요.”
준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뭐라도 마실래요?”
“아니.”
지우는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이렇게 준재가 곁에 있어주니 마음이 놓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뭐라고 하셔요?”
“다시는 보지 않을 거래.”
“다시는요?”
“응.”
“말도 안 돼.”
“아니야.”
준재가 자신이 흥분하자 지우는 그의 옷깃을 잡고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당연한 거였다. 자신의 아버지라는 그 사내는 더 이상 자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아니, 애초에 평생 아무런 연이 없던 사람이니까. 자신에게 이 정도 신경을 쓴 것도 신기한 일이었다. 지우는 그렇게 이해하기로 했다.
“자신의 가족이 있다고 하잖아. 그런 사람에게 나 혼자만의 어떤 입장을 강요할 수 없는 거잖아.”
“하지만 사장님도 그 분의 딸이잖아요. 그러면 적어도 사장님을 지켜야만. 그래야만 하는 거잖아요.”
“아니. 안 그래.”
지우는 숨을 한 번 들이켜고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이미 아버지가 있어.”
“네?”
“엄마.”
“큰 사장님이요?”
“응.”
지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유정은 자신에게 엄마이고 아버지였다. 자신에게 모든 것을 다 해준 사람이었다.
“그렇게 좋은 사람이 있는데 내가 아버지라는 존재를 이제 와서 찾는다는 것도 너무나도 우스운 일이지만.”
“하지만.”
“아.”
지우는 손뼉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봉투.”
“봉투요?”
준재가 봉투를 들어서 지우에게 건넸지만 지우는 그것을 받지 않고 싱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네 거야.”
“뭔데요?”
“봐.”
준재는 봉투를 살짝 열었다. 안에는 5만 원 권이 한 가득 들어있었다. 준재가 놀란 눈으로 지우를 쳐다봤다.
“이게 무슨?”
“죄책감인가 봐.”
“죄책감이요?”
“응.”
“그럼?”
“맞아.”
준재는 한숨을 토해냈다. 이러라고 지우와 그녀의 아버지를 만나게 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결과는 결국 이런 거였다.
“죄송해요.”
“내가 부탁을 한 거잖아.”
“그래도요.”
“괜찮아.”
지우는 숨을 한 번 내뱉고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시원해.”
지우는 입을 꾹 다물면서 미소를 지어보였다.
“한 번은 이래야 완전히 미련이 사라질 수 있을 거 같으니까. 이제 미련이 사라졌어. 정말로 끝이야.”
“다행이에요.”
“다행이지.”
지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자신에게 없는 것에 대해서 미련 같은 것을 두지 않을 수 있었다.
“이제 퇴근해. 괜히 나 때문에. 가방이 여기에 있어서 가지도 못하고. 나 신경은 쓰지 않아도 돼.”
“원종이 아저씨 오면요.”
“아. 오늘 못 온다고 연락 왔어.”
준재의 눈에 걱정이 묻어나자 지우는 짐짓 엄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고개를 저었지만 준재도 고집이 센 편이었다.
“그럼 같이 있을게요.”
“꼬맹이.”
“에이. 사장님까지 그러면 안 되는 거죠.”
“왜?”
“제가 사장님을 좋아하니까요.”
갑자기 들어온 준재의 고백에 지우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야. 아무리 고백을 해도 깜박이는 좀 키고 들어와야지. 그러게 갑자기 확 들어오면 어쩌라는 거니?”
“설레라고요.”
“어?”
“영화 보러 갈래요?”
“영화?”
“못 봤잖아요.”
지우는 입을 내밀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지 못했던 영화. 그거 보는 거 그다지 나쁜 일은 아닐 거 같았다.
“그럼 지우개는?”
“지우개요?”
지우개는 자기 말을 하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식당에 들어와서 몸을 둥글게 말고 꼬리로 가볍게 바닥을 쳤다.
“나 다녀오라고?”
지우개는 작게 짖었다.
“아마 산책을 다녀와서 피곤한 모양이에요.”
“그러게.”
지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볼까?”
“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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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재는요?”
“식당?”
“네?”
퇴근한 형진이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 지나치게 열심히 한다니까.”
“내가 그 꼬맹이보다 부족한 게 뭐라고 생각해?”
“네?”
태식의 물음에 형진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저씨?”
“아니 솔직히 생각을 해봐. 내가 나이도 지우 씨랑 더 어울리는 거 같고. 그리고 직업도 더 괜찮고. 이런 집도 있는데 말이야. 도대체 장지우 씨는 왜 내가 아니라 그 꼬맹이에게 더 호감을 느끼는 거야?”
“저도 잘 모르겠네요.”
형진은 어색하게 웃음을 지어보이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태식은 한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해가 안 간단 말이야.”
태식은 남은 맥주를 모두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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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진짜 오랜만에 본다.”
“혼자라도 보시지.”
“나 그런 거 못 하거든.”
지우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서 주위를 둘러봤다. 좋았다.
“이걸 왜 안 왔나 몰라.”
“사장님.”
“그만.”
준재의 목소리가 낮아지자 지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렇게 무거운 말을 하자고 한 얘기가 아니었는데. 나 이런 분위기 너무 싫어. 영화 보러 온 거잖아.”
“그래요.”
준재는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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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진짜 재밌지?”
“네? 네.”
영화는 눈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뭐. 재밌었어요.”
지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봤다. 마음이 편안했다. 이런 여유를 왜 그 동안 갖지 않은 건지 알 수 없었다.
“나에게서 식당을 뺄 수 있을까?”
지우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준재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이제 그만 둬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그러니까.”
지우는 팔짱을 끼고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 시간. 누구나 느끼는 이런 편안함을 자기도 느끼고 싶었다.
“나는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걸 너무 바쁘게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이게 정말 나랑 관련이 있는 걸까. 뭐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렇죠.”
“그만.”
지우는 박수를 치고 어색하게 웃었다.
“이건 지금 할 말은 아니니까.”
“네.”
준재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우는 한숨을 한 번 더 토해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너무 우스운 거였으니까. 그리고 준재는 자신에게 너무나도 고마운 사람이었으니까.
“우리 밥도 먹고 갈까?”
“좋아요.”
준재는 여느 아이처럼 밝은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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