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장. 달이 뜨는 밤 2
“고얀 것들.”
총리의 입술이 비틀어졌다.
“제 놈들이 누구 덕에 지금 원내 1당의 자리에 앉아있는데. 다 내가 이 내가 해서 그렇게 된 것인데.”
“그렇지요.”
최고위원 중 그의 편인 의원의 말에 총리는 넥타이를 풀었다. 하나 같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이었다.
“호남에서 내가 그 난리를 치지 않았으면 될 수 있다고 보는가? 정치도 뭐도 모르는 인간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어떻게 하려고 했느냐고. 다 내가 만든 것인데. 어찌 다들 이럴 수가 있어.”
“일단 기다리시지요.”
“무얼 기다린단 말이야?”
총리의 눈이 기이하게 움직였다.
“그런 것은 한 번 궤도를 타버리면 돌릴 수가 없는 것인데. 궤도를 채 타기 전에 뒤집어야지.”
“허나. 그러다가 우리가 역풍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일단 사람들은 국민을 구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국민?”
총리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번졌다.
“그걸 국민이라고 생각하나?”
“그럼 무엇입니까?”
“돈벌레지.”
“총리님.”
“안 그런가?”
총리의 입가는 더욱 심술맞게 비틀어졌다. 총리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그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못하는 것들이. 나를 보고 호민련이라느니. 목포의 더러운 놈이라느니. 그런 말들을 지껄이는 것을 보면 아주 기분이 나쁘단 말이야.”
“일단 참으셔야 합니다.”
“그렇겠지.”
총리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더러운 야당 놈들이 온갖 것들을 하더라도 내가 영남 놈들하고 손을 잡아서 지켜낸 정권이야.”
“알고 있습니다.”
“이대로 무너질 수 없네. 분명히 돈을 쓰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흔들리게 될 거야. 그 기회를 잡게.”
총리의 말에 의원은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일 따름이었다. 총리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고얀 것들. 결국에는 다 내 발 밑으로 올 것을. 내 뜻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것들이 그런단 말이야.”
“다르게 봤어요.”
“뭐가요?”
“새도 잡고.”
“아. 그거요.”
지아의 칭찬에 윤태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거 별 거 아니에요. 그리고 강지아 씨도 봤잖아요. 나 혼자서 잡은 게 아니라 시우가 도움을 준 거.”
“라시우 군이 돕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윤태 씨가 제대로 하지 않았더라면 안 되었던 거잖아요.”
“오. 인정하는 거예요?”
“어느 정도는요?”
지아의 명랑한 대답에 윤태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매일 잡아야겠어.”
“뭐라는 거예요? 내일은 혹시 그쪽에 가서 암컷이나 알이 있는지. 한 번 더 확인을 해야겠어요.”
“왜요?”
“오늘 잡은 것이 수놈 같거든요. 혹시나 암컷이라면 알을 우리가 먹을 수 있고. 닭하고 되게 비슷하지 않았어요?”
“음 비슷했죠.”
윤태는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어떤 새라고 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닭과 비슷했다.
“닭이 없는 곳은 없거든요.”
“그래요?”
“네. 생긴 모습이 다 달라서 그러지. 지구의 모든 곳에 닭은 다 있어요. 그러니까 그 새도 닭일 수도 있어요.”
“날잖아요.”
“닭은 원래 날아요.”
지아의 지적에 윤태는 입을 쿡 다물었다. 지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심호흡을 한 번 했다.
“다들 좋아해줘서 다행이지. 만일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거기에 간 것이 문제가 될 뻔 했어요.”
“문제는 무슨 문제요.”
“싫어할 수도 있죠.”
“에이. 설마요.”
“설마가 아니죠.”
지아는 단호히 말하며 입을 내밀었다.
“사람들이 점점 더 불안해하고 있다는 거. 그거 이윤태 씨는 지금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거죠?”
“불안해 하고 있다고요?”
“네. 많이들 그래요.”
지아의 말에 윤태는 돌아서 텐트들을 쳐다봤다.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그리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겉으로 티가 나지는 않겠죠.”
지아는 발로 모래를 가볍게 문지르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다들 마음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몰라요.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건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고. 점점 더 상황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가는 거니까요.”
“잠깐.”
윤태는 미간을 모으더니 입을 쭉 내밀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인상을 찌푸리고 지아를 쳐다봤다.
“뭐예요?”
“뭐가요?”
“또 그런 이야기.”
“아니. 그게 아니라.”
지아는 혀를 살짝 내밀었다.
“그게 현실이라고요.”
“지금은 꿈이라고 생각해요.”
“꿈은 무슨.”
“진짜로요.”
윤태의 말에 지아는 그를 쳐다봤다. 윤태는 씩 웃더니 그대로 허리를 숙였다. 짧은 입맞춤. 달콤했다.
“우리 조금 더 낭만적일 필요가 있어요.”
“뭐. 그것도 나쁘지 않네요.”
“뭐야?”
지아의 반응에 윤태는 입을 쭉 내밀었다.
“여자가 그러면 남자는 되게 서운하거든요.”
“그런 말 좀 안 하면 안 되는 건가요?”
“뭐가요?”
“남자가 어떻고. 여자가 어떻고. 그 말이요.”
지아의 말에 윤태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그런 말ㅇ르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지아의 말을 듣다 당황한 그였다.
“그러니까.”
“뭐라고 하는 건 아니에요. 보통 한국의 남자들이 다 그렇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 다만 조금 더 현명하게 행동을 해줘도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러죠. 그리고 그런 식으로 성별에 사로잡혀서 말하는 거. 그거 되게 우습지 않아요? 그거 뭔가 나 선입견에 꽉 막힌 사람이야. 하는 거 같아.”
“나 혈액형도 믿는데요?”
“뭐라고요?”
지아가 뜨악한 표정을 짓자 윤태는 웃음을 터뜨렸다. 윤태의 웃음에 지아는 그제야 그가 농을 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그의 옆구리를 세게 쳤다.
“하여간 나빠.”
“미안해요.”
윤태는 손을 모으고 씩 웃었다.
“아무튼 고칠게요.”
“미안해요.”
지아는 아랫입술을 물고 고개를 저었다. 이 놈의 성질머리를 고쳐야 한다고 믿으면서도 고칠 수 없었다.
“나도 내가 되게 우스운 것은 알고 있어요. 이런 말을 할 이유도 없다는 거 알고 있는데. 그런 데도.”
“그 모습까지도 좋아해요.”
지아가 놀란 눈으로 윤태를 쳐다봤다.
“좋아합니다.”
지아는 어색하게 웃었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이런 곳에서의 사랑이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생존을 넘어서 이 사람이라면 괜찮을 거라는. 어떤 막연한 기대 같은 것이 생겨났다.
“너무 안 먹는 거 아니에요?”
“괜찮아요.”
“괜찮기는.”
시인은 기쁨에게 과일을 건네며 고개를 저었다.
“앉아도 되죠?”
“네? 네.”
기쁨이 당황한 사이 시인은 그녀의 곁에 앉았다.
“미안해요.”
“라시인 씨가 왜요?”
“뭔가 제대로 위로르 해주지 못한 거 같아서요.”
“아니 뭐.”
시인의 말에 기쁨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건 누가 위로를 해야 하는 일도 아니었고 그냥 벌어진 일이었다.
“일부러 그런 사람도 아무도 없고 어쩔 수 없이 이런 일이 벌어진 건데 누가 막 사과하고 그럴 일은 아니죠.”
“그래도요. 우리는 모두 하나의 공동체였는데. 그 안에서 사람이 사라졌는데 너무 다들 조용해.”
“그래도 시체라도 있었으니까요.”
기쁨의 말에 시인은 입을 꾹 다물었다.
“이런 말 하는 거 자체가 불쾌하죠?”
“조금은요? 그러면서도 좋아요.”
기쁨은 혀를 내밀고 어색하게 웃었다.
“요즘 들어서 오빠가 점점 기억이 안 나거든요. 그러다가 아. 내가 여기에 혼자 온 게 아니구나. 그걸 또 깨닫고.”
“그런 순간들이 있구나.”
“아무래도 누구나 그렇겠죠.”
“그렇죠.”
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멀리 다정하게 데이트를 하는 지아와 윤태의 모습을 보니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그래도 강지아 씨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저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가 이 섬에 나간다면 저 사람이 4할은 한 거 같아. 그리고 나머지 4할은 구지웅 씨가 했고.”
“그렇죠. 그 두 사람이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진작 다 죽었을 거예요. 그리고 나에게 먼저 나서준 것도 저 사람이고.”
“그렇죠.”
둘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묵묵히 바다를 쳐다봤다. 바다는 고요하면서도 또 다른 말을 건네는 느낌이었다.
“이 모든 걸 다 소설로 쓰고 싶었어요.”
“쓸 수 있을 거예요.”
“그럴까요?”
세연의 말에 윤한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아랫입술을 웃었다.
“그거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할 수 있을 거예요.”
세연의 확신에 찬 어조에 윤한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밝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고맙기는요.”
세연은 혀를 내밀고 장난스럽게 웃었다.
“당연한 거죠.”
“당연하다. 뭐가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뭐야.”
세연의 간단한 말에 윤한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면서도 기분이 좋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누군가를 이렇게 믿어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고마운 거였다.
“고맙습니다.”
“대신 책은 내가 가장 먼저 볼 거예요.”
“네. 당연하죠.”
윤한은 손을 내밀었다. 세연은 미소를 짓다가 그 손을 잡았다. 윤한은 손에 힘을 주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꼭 나가요.”
세연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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