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장.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 2
“형이 생선을 만졌다고?”
“뭐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이야?”
“당연하지.”
자기 위해서 텐트로 들어온 윤태는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내가 그렇게 형에게 얕은 물이라도 들어오라고 할 때는 들어오지도 않던 양반이 생선을 씻기까지 하고?”
“그냥 설렁설렁 헹궜어.”
“아무튼.”
“나도 해야지.”
“뭐야?”
윤태가 눈을 가늘게 뜨자 서준은 그를 노려봤다.
“뭐가?”
“그 여자랑 뭐가 있는 거야?”
“뭐가 있기는.”
서준은 곧바로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여기에 와서 남편을 잃은 사람이야. 내가 아무리 생각이 없다고 한들 그 사람에게 뭐라고 할까?”
“아니. 그거야 아무도 모르는 거지.”
“뭐가?”
“아니 뭐.”
“됐다.”
윤태의 말이 길어질 것 같자 서준은 단호히 검지를 들었다. 윤태도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만 하지.”
“아무튼 안쓰럽잖아.”
“그렇지.”
“신혼 여행을 가던 도중에 남편을 잃은 사람에게 그런 마음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거고.”
“알았습니다.”
서준의 변명이 이어지자 윤태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나저나 우리가 이 섬에서 나가게 될까?”
“왜 갑자기 그런 말을?”
“아니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서.”
“나가지. 무조건.”
“네가 어떻게 알아?”
“나는 알아.”
윤태가 확신에 차서 말을 하자 서준은 코웃음을 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면서도 약간은 기분이 좋아지는 그였다. 무조건 섬에서 나갈 수 있다고 하면 그걸로 다일 것 같았다.
“섬이라는 공간이 사람을 미치게 하는 거 같아.”
“그래?”
“응. 어디에 유배를 온 거 같다고 할까?”
“그렇기는 하지.”
윤태는 아랫입술을 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쉬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어떤 선택지가 없다는 것은 그들에게 유배나 다름이 없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었다. 그건 너무나도 괴로웠다.
“그렇다고 해도 어쩔 수는 없는 거잖아. 이 섬에서 우리가 마음대로 나갈 수는 없는 거니까.”
“아무리 그래도 이상하지 않아?”
“뭐가?”
“아니. 우리가 이 섬에 떨어진 게 비행기인데. 어떻게 하늘을 지나가는 비행기 하나가 없고 바다에 지나가는 배가 하나 없어.”
“그럴 수도 있지.”
“뭐가 그럴 수도 있어?”
윤태의 심드렁한 대답에 서준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건 너무나도 이상했다.
“이런 섬이 있을 수도 있어?”
“있지.”
“너 너무 쉽게 대답을 하는 거 아니야? 어떻게 아무도 모르는 섬이 있을 수 있어? 그거 너무 무섭잖아.”
“형은 다 알아?”
“어?”
“우리도 다 몰라.”
윤태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서준의 말처럼 아무 변화도 없다는 것은 두려웠지만 거기에만 포착이 된 채로 매몰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들은 앞을 향해서 나아가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있는 것이 중요한 거지. 다른 것은 하나 중요하지 않아. 우리는 살아나갈 거야.”
“그래. 좋겠다.”
“뭐가?”
“희망차서.”
서준의 대답에 윤태는 쿡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 이내 인상을 찌푸리며 서준의 어깨를 주먹으로 쳤다.
“왜 때려?”
“형 때문에.”
“뭐가?”
“내일 강지아 씨에게 춤을 보여줘야 하잖아. 아니 얘 아무 것도 못 한다. 그렇게 한 마디를 하면 될 것을. 왜 그런 말을 해서. 나 그런 거 하나도 안 좋아하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지나가냐?”
“뭐가?”
서준은 윤태에게 마은 팔을 문지르며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미 그러고 있는데 내가 뭐라고 해?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 막 뭐 그렇게 말을 해야 하는 거야?”
“당연하지.”
“됐다.”
서준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너희 연애에 왜 나를 끼어 들여?”
“형은 원래 엄청 끼고 싶어 했잖아.”
“이거 왜 이래?”
윤태의 말에 서준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손으로 엑스까지 그려가면서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나 두 사람 연애에 끼어들고 싶은 생각 전혀 없습니다. 이미 충분히 후회하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럼.”
윤태는 살짝 흘겨보는 시늉을 하다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았다.
“만일 올무가 또 있으면 누가 이 섬에 올 수 있다는 거니까. 우리도 그 섬에 갈 수 있는 방법을 찾겠지.”
“그럴 수 있을까?”
“당연히.”
윤태의 확신에 서준은 빙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섬에서 무조건 나갈 수 있다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날이 또 없죠.”
“네?”
갑작스러운 지아의 물음에 지웅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그러니까 처음에 제가 이윤태 씨를 구했던 그런 날처럼 계곡에 물이 가득 들어차는 날 말이에요.”
“아마 없을 걸요.”
지웅의 대답에 지아는 침을 삼켰다. 그런 날이 온다면 섬의 상황이 또 달라질 수 있다는 거였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거기에 물이 차는 거고. 그러면 아마 이안류 같은 것은 없을 수도 있을 거 같아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지웅은 손가락을 튕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물이 가득 차면 전혀 다른 상황이 생길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 상황을 생각하면 되겠네요.”
“물론 제가 생각을 한 것처럼 무조건 그렇게 될 거라는 보장은 아무도 할 수는 없지만 말이에요.”
“가능할 겁니다.”
지웅이 이렇게 말을 해주니 지아는 마음이 편했다.
“그 날이 그믐이죠.”
“그렇네요.”
“곧 그믐이고.”
“그렇죠.”
한 달이 꼬박 차는 거였다. 그리고 그 한 달은 그들에게 전혀 다른 기회를 줄 수도 있는 거였다.
“일단 우리는 이곳에서 나가는 것이 우선이니까요.”
“그믐을 확인을 해야겠죠.”
“너무 친한 거 아니야?”
“뭐가?”
재율의 말에 지웅은 미간을 모았다.
“그럼 같은 생존자끼리 외면해.”
“그런 말이 아니라.”
“알고 있어.”
지웅은 미소를 지으며 재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재율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제도 말을 한 것처럼 저 사람은 자신이 뭐든 다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 거 같아. 그리고 그게 마음에 안 드는 거고.”
“너도 그래.”
“내가 그래요?”
“그럼.”
재율은 입을 삐쭉 내밀었다.
“아무튼 그믐이 오길 바라야지.”
“정말 그 여자 말처럼 그럴 거 같아?”
“그럴 가능성이 크지.”
“가능성이라.”
재율은 혀로 이를 훑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기 싫다.”
지웅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얼른 이 지긋지긋한 섬에서 나가고 싶어. 그리고 욕조에 몸을 푹 담그고 시원하게 쉬고 싶어.”
“하여간 아저씨.”
“내 나이면 아저씨지.”
지웅의 말에 재율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살짝 무슨 말을 할까 입술을 달싹이다 말았다. 지웅도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다 이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흔들었다.
“문자메시지가 전송이 된 흔적이 있습니다.”
“한 건만이지요.”
총리의 말에 대통령은 침을 삼켰다.
“그 말은 나머지 하나는 제대로 전송이 되지 않았다는 것인데 대통령께서는 모르시는 겁니까?”
“그거야.”
“살지 않았을 수도 있죠.”
“총리!”
대통령이 고함을 지르자 총리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혀로 입술을 축이고 고개를 저었다.
“불쌍한 아비가 되세요.”
“뭐라고요?”
“그래야 우리 당이 새 정부를 구성합니다.”
“아니요.”
대통령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미 한 번 이 늙은이에게 속아서 그런 일을 당한 후였다. 더 이상 그럴 수는 없었다.
“내가 대통령이 될 수 없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한 번 당신의 도움은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내 말을 안 들어요?”
총리의 눈빛이 곧바로 사납게 변했다. 그의 도움이 없었으면 아무 것도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 그였다.
“내가 당신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데.”
“그게 나를 위한 겁니까?”
“뭐라고요?”
“당신을 위한 것이지요.”
대통령의 지적에 총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유력 대선 후보가 당선이 되면 당신은 위태로우니까. 이곳 호남에서 그저 평생 의원이나 하면서 총리를 차지하려고 한 것 아닙니까? 당신이 언론을 다루는 기술은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내가 대세인 것처럼 만들었지요. 허나. 이제는 아닙니다. 더 이상 당신에게 휘말리지 않을 겁니다.”
“그게 쉬울 거라고 보십니까?”
“아니요.”
대통령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 오랜 시간 정치를 한 노회한 정치인에게 자신은 쉽지 않은 상대였다. 분명히 질 거였다.
“허나 나는 제대로 부딪칠 겁니다.”
“제대로 부딪친다.”
총리는 늙은 손가락으로 늙은 턱을 어루만졌다.
“그러다 여럿 피를 보지요.”
“내가 피를 보면 총리도 볼 겁니다.”
대통령의 경고에 총리의 눈이 더욱 사납게 변했다.
“그러니 어디 한 번 해보시지요.”
대통령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사람은 더 이상 겁을 낼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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