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섬의 사람들 3
“그래도 여기는 우리 섬하고 다르게 계절의 영향을 받지 않는 모양이에요. 생선이 꽤 많아요.”
“그래요?”
윤한은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며 생선을 손질했다. 맨 처음 섬에 도착했을 때처럼 물고기가 넘쳐났다.
“이 섬에 있었더라면 더 편할 수 있었는데요.”
“아닐 겁니다.”
도혁은 미간을 모으며 고개를 저었다.
“여러분들하고 전혀 다른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래도 신기하네요. 여기는 이렇게 분업이 된다는 게.”
“그렇죠.”
“야.”
“응?”
태욱이 나타나자 도혁은 더욱 진하게 미간을 모았다. 태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혁은 살짝 고개를 숙이고 멀어졌다.
“도대체 뭐야?”
“뭐가요?”
“너무 잘난 척을 해.”
윤한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신들이 지금 약한 쪽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이건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도대체 우리에게 뭘 어떻게 하라고 하는 거냐고. 이해가 안 간단 말이야. 마음에 안 들어. 마음에.”
“에이. 뭘 그래요?”
“그렇지 않아요?”
“그냥 경계하는 거죠.”
세연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별 것 아니라는 표정을 지었다. 윤한은 그런가 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숨을 내쉬었다.
“세연 씨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내 말을 잘 듣네요?”
“당연하죠.”
“아유 착해.”
“그럼요. 나 착하지.”
세연은 윤한의 어깨에 가볍게 머리를 기대고 윤한도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며 그런 세연의 머리에 자신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얹었다.
“고마워요.”
“뭐가요?”
“그냥 있어줘서.”
지아의 말에 윤태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고작 이 정도를 가지고 고맙다는 말을 들을 이유는 없었다.
“더한 것도 해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정도만 가지고 고맙다고 하면 내가 오히려 민망하죠.”
“뭐래?”
“뭐가요?”
“하여간 틈을 주면 안 돼.”
윤태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미간을 모았다.
“뭐라는 거예요?”
“됐어. 아무튼 한기쁨 씨에게는 말을 하면 안 되겠네. 그 인간이 이렇게 여전히 생각이 안 바뀌었다는 걸 알면 정말 기분이 나쁠 거야. 정말 나쁜 인간이야. 사과 좀 하라고 간 거였는데 말이야.”
“사과를 할 리가 있어요?”
“그러니까.”
지아는 몸서리를 치며 미간을 찌푸렸다. 말도 안 되는 인간이었다. 도대체 왜 그 모양이었던 건지.
“애초에 두 사람이 배를 타고 나가게 하면 안 되었던 건데. 이제 와서 후회를 해도 어쩔 수 없지만.”
“그렇죠. 이미 다 지난 일인데. 이제 와서 뭐라고 할 수는 없는 거죠. 그나저나 강지아 씨야 말로 괜찮아요?”
“내가 왜요?”
“괜찮아요.”
윤태는 부드러운 표정을 지은 채 지아와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것이 익숙하지 않은 지아는 시선을 돌렸다. 마치 자신의 모든 감정이 다 윤태에게 읽히는 것 같아 유쾌하지 않았다.
“뭐 하는 거에요?”
“왜 그렇게 숨기는 겁니까?”
“뭘요?”
“뭐든요.”
지아는 입을 꾹 다물었다. 자신은 그저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드러내지 않을 뿐이었다. 그건 잘못이 아니었다.
“내가 다 말을 할 이유는 없잖아요.”
“말을 해야죠.”
“왜요?”
“우리는 연인이니까.”
지아는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연인이라는 이유로 모든 것을 다 말을 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지만 윤태가 이렇게까지 말을 하는데 굳이 딱 잘라서 싫다고 하는 것도 이상할 노릇이었다.
“그냥 나중에 더 편해지면 말을 할게요.”
“그래요.”
윤태가 너무 쉽게 대답을 하자 지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도 그냥 이렇게 넘어가주는 것이 너무 고마웠다.
“여기는 과일 같은 것은 없어요.”
“그래요?”
나라의 대답에 지웅은 입을 내밀며 고개를 끄덕였다. 먹을 것이 그나마 있는 편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다른 것이 없다고 하면 그것 나름대로 고민이었다. 한 달을 버텨야 했다.
“채소가 부족하면 아무래도 비타민 때문에 여러 문제가 나타날 수도 있는데. 이거 그리 좋지만은 않은 거 같은데요.”
“아직 그 정도는 아닐 거예요.”
진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생선에도 비타민은 들었고. 우리 막 그런 병에 걸릴 정도는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게.”
지웅은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아의 말처럼 자신은 너무 많은 것을 걱정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솔직히 말을 하면 우리 내일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 거잖아요. 그런데 무슨 걱정을 그렇게 많이 해요?”
“그러게.”
“에이. 그래도 그건 아니죠.”
“뭐가 아닙니까?”
나라의 대답에 진아는 지웅의 말투를 흉내내며 반문했다. 나라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 그거 뭐예요?”
“뭐가 말입니까?”
“완전 똑같아.”
나라는 배를 잡고 뒤로 넘어갔다. 진아는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웅도 그런 진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나라 승무원 잘해주고 있죠?”
“그러게.”
진아의 물음에 지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첫 비행에서 이런 일을 당해서 굉장히 견디기 어려울 거라고. 힘들어 할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다행히 잘 버텨주고 있어.”
“사무장님이 걱정이에요.”
“나?”
“네. 사무장님이요.”
“나는 괜찮아.”
지웅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 동안 온갖 일을 다 겪은 그였다. 고작 이 정도로 물러날 이유는 없었다.
“자기가 생각을 하는 것보다 나 더 잘 버티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걱정이 가득한 표정 짓지 마요.”
“그래도 걱정이 되니까 그러는 거죠. 사무장님은 정말로 좋은 분이라는 거 내가 다 알고 있으니까.”
“그래요?”
지웅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아랫입술을 한 번 물었다가 혀를 내밀고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도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데 그걸 성진아 승무원이 도대체 어떻게 압니까?”
“모르죠. 적어도 다른 사람이 보기에라도 좋으면 다행이 아니에요? 스스로 믿음이 있고 다른 사람이 믿어주는 게 좋지만, 스스로도 믿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까지 안 믿어주는 거 좀 그렇잖아요.”
“뭐.”
진아의 말에 지웅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편을 생각을 하면 이쪽이 더 나을 것 같기는 했다.
“하여간 똑똑해.”
“저 이대 나온 여자거든요.”
“아. 네.”
지웅은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돌아갈 거예요.”
“그래야지.”
“돌아갈 거예요.”
진아가 다시 한 번 반복하자 지웅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드시 돌아가야만 했다. 반드시.
“석구가 이상해.”
“석구?”
태욱의 말에 도혁은 미간을 모으며 고개를 저었다.
“걔 원래 이상하잖아.”
“하지만.”
“태욱아.”
도혁은 미간을 모으며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 그리고 태욱의 어깨에 손을 얹고 침을 한 번 삼켰다. 유난히 도드라진 그의 목젖이 유난히 움직였다.
“우리 지금 여기에서 좀 살자.”
“하지만.”
“저 사람들이 우리 쪽이 미친 망상 장애 새끼가 하나 있는 거 알면 도대체 뭐라고 할 거 같은데?”
도혁의 물음에 태욱은 쉬이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런 장애인이 있다는 것은 분명히 약점일 거였다.
“우리도 감당이 안 되는 새끼라서. 그래서 지금 우리가 이 모양이라는 거 뭐라고 설명을 할 건데?”
“그거야.”
“안 그래도 우리는 멍청하게도 살인마를 우리 그룹에 넣었어. 그런데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킨다고?”
도혁은 코웃음을 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머리를 뒤로 넘겼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 그건 절대로 못해. 그러니까 너도 그러지 마. 알아 들어? 너도 그런 말 더 이상 하지 말라고. 그 미친 새끼는. 병태가 알아서 하고 있잖아. 석구 일은 병태에게 무조건 다 맡겨. 알아?”
“그걸 어떻게.”
“병태는 할 수 있잖아.”
도혁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크게 떴다. 태욱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냥 저 사람들에게 말을 하자는 게 아니야. 이상하다고. 지금 석구가 조금 더 이상하단 말이야.”
“그러니까.”
도혁은 미소를 지었지만 그 미소는 꽤나 기이했다.
“그러니까 그만 하자고.”
태욱은 아랫입술을 지그시 물었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가 할 수 없는 일들이 자꾸만 늘어나는 기분이었다.
“왜 이렇게 되는 거냐?”
“뭐가?”
“저 사람들이 오고 나서 우리는 더 작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야.”
도혁의 말에 태욱은 입을 꾹 다물었다. 사실이었다. 그래서 더 복잡하고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문제들이 자꾸만 생기는 중이었다.
“안 됩니다.”
“하지만.”
“안 됩니다.”
대통령이 다시 말을 하기도 전에 보좌관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안 그래도 여론이 지금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일본은 안 됩니다.”
“맞습니다.”
민정수석도 고개를 끄덕이며 보좌관에 말을 보탰다.
“사람들의 여론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대통령은 한숨을 토해내며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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