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장. 작은 균열 1
“어렵습니다.”
대통령의 말이 끝이 나기가 무섭게 항공사 회장의 말이 이어졌다. 대통령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왜 어렵습니까?”
“고의 사고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했습니다. 그곳에 사람들이 있을지 정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입니다.”
항공사 회장은 너무나도 단호했다. 동계 올림픽을 위한 후원금을 부탁할 때도 그렇게 굽실거리던 이가 이리 변했다.
“왜 그렇습니까?”
“현실이 그렇습니다.”
“현실이라.”
대통령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내가 뭘 해야 합니까?”
“아무 것도 하실 것이 없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렇습니다.”
답답한 대화의 연속이었다. 대통령 스스로 무언가를 해도 바뀔 것이 없다는 것은 너무 답답했다.
“나는 내 아들을 살려야만 합니다. 그 사실은 그쪽도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내 아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국민들도 있습니다. 그 국민들을 위해서라도.”
“그 국민들을 살리기 위해서 사용해야 하는 비용이라면 이 나라에 있는 국민들을 위해서도 쓸 수 있습니다.”
“그건.”
대통령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이 말이 사실일 수도 있었다. 그저 자신의 만족만을 위해서 뭔가를 하는 것이 이상할 수도 있었다.
“어떤 마음이신지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이라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아셔야죠.”
“제가 뭘 할 수 있습니까?”
“아무 것도 하실 수 없습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네.”
항공사 회장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통령은 한숨을 토해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법적으로 가시죠.”
“부디 법적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항공사 회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대통령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일은 점점 더 복잡해지는 기분이었다.
“이럴 거면 왜 온 거야?”
“라시안.”
“아니 그렇잖아.”
시안은 생선을 다듬다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원래 있던 섬에 있어도 우리는 생선을 다듬었어. 그런데 여기에 와서도 이걸 하고 있다고.”
“당연하지. 우리가 여기에서 생존을 하려면 당연히 해야 하는 거잖아. 너는 뭐 다른 섬으로 오면 바로 탈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한 거야? 그런 게 아니니까 당연히 이런 걸 해야지.”
“하지만.”
시안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여기에는 뭔가 다른 걸 먹을 수도 없잖아.”
“너 어차피 안 먹잖아.”
“그래도.”
시안은 볼을 부풀리고 울상을 지었다.
“안 먹는 거랑 못 먹는 거랑은 완전히 다른 거잖아. 그 섬에 있을 때는 기내식을 안 먹더라도 거기에 있다는 걸 알았다고. 하지만 여기는 먹지 않으면 없는 거니까. 그게 힘든 거란 말이야.”
“조심 좀 하죠.”
기쁨은 생선을 정리하며 시안을 보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 말.”
“뭐라고요?”
“이 섬의 사람들이 들으면 뭐라고 할 거 같아요?”
“이봐요.”
“주의 좀 하라고요.”
“네. 맞아요.”
시인은 시안의 팔을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기쁨은 다시 생선으로 시선을 가져간 후 손질을 시작했다.
“언니. 도대체 왜 그래? 내가 무슨 말만 하면 다 사과를 하고. 언니는 나를 뭐로 보는 건데?”
“사과를 해야 하니까. 우리로 인해서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거. 정말 모르는 거야? 응?”
“언니.”
“라시안.”
시인은 미간을 모으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시안은 한숨을 토해내면서 아랫입술을 물고 미간을 모았다.
“알아. 언니가 하는 말.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우리가 이 섬에 온 건 뭔가 다른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고 온 거야. 그런데 뭔가 다른 것도 없고 오히려 더 힘든 이 상황이잖아. 아니야?”
“그만 좀 해요. 언니.”
세연은 미소를 지으며 끼어들었다.
“다른 사람들까지 힘 빠져요.”
“뭘 안다고 끼어들어요?”
“네?”
시안이 갑자기 공격적으로 말하자 세연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언니.”
“라시안! 미안해 세연 씨.”
“아니에요.”
세연은 당황하면서도 고개를 저었다. 시안은 한숨을 토해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바다로 향했다.
“미안.”
시인도 그런 시안을 따라갔다.
“도대체 뭐 하자는 거야?”
기쁨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 왜 그러는 건데?”
“언니야 말로 왜 이러는 건데?”
“뭐?”
시안의 물음에 시인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 손은 허리에 얹고 한 손은 이마에 짚었다.
“너 지금 되게 이상하게 행동하는 거 알아? 네가 이러면 다른 사람들이 뭐 좋아할 거라는 거야?”
“그런 건 아니지만.”
“너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이 불편하게 생각을 하는 거 모르는 거야? 너 지금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 말도 안 되는 일을 자꾸 하지 마. 우리들 여기에 있는 사람들보다 나은 거 딱 하나야. 뭉치는 거.”
“그래. 나만 없으면 되는 거지.”
“누가 그렇대?”
시안의 반응에 시인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도 그런 식으로 말을 하는 사람 없어.”
“하지만 언니가 하는 말 그렇게 들려.”
“뭐가?”
“늘 그래.”
시안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앞머리를 뒤로 넘긴 후 크게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알고 있어. 내가 그렇게 좋은 애가 아니라는 거. 하지만 이건 아니잖아. 언니는 내 편을 들어야 하잖아.”
“왜?”
“뭐?”
“왜 그래야 하는 건데?”
“언니.”
시안은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벌렸다.
“그게 무슨?”
“네가 애야? 네가 애도 아닌데 도대체 왜 무조건 나는 네 편을 들어야 하는 거야? 네가 틀린 거면. 네가 잘못 생각하는 게 있으면. 네 편이 아니라 합리적인 생각도 할 수 있어야 하는 거야.”
“합리적?”
“그래.”
시인은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가족이라고 해서 무조건 좋다고 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는 이 섬에서 생존해야 하는 사람들이야. 그리고 그 사실은 너도 잘 알고 있을 거야. 그러니까 그만 해. 부탁이야. 라시안. 우리끼리라도 뭉치자. 그래서 제발 우리 살아서 한국으로 가자.”
“나는 내가 못 갈 거 같아.”
시안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임길석이 이해가 가네.”
“뭐라고?”
“그 사람이 이해가 간다고.”
시인은 그대로 시안의 뺨을 때렸다. 큰 소리가 퍼졌다. 시안의 뺨은 금방 붉게 부풀어 올랐다. 시안은 뺨을 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래야 라시인이지. 여기에 와서 뭐 좋은 사람인 척 그렇게 행동을 하면 정말로 좋은 사람이 된 거 같니?”
“뭐라고?”
“언니 원래 이런 사람이야. 좋은 사람 아니라고. 그러니까 착각 같은 거 하지 마. 굉장히 합리적인 사람인 것처럼 말이야.”
“정말.”
시인이 무슨 말을 더 하기도 전에 시안은 한숨을 토해내며 텐트로 향했다. 시인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뭘 하자는 거야?”
“이런 것도 있네요.”
“그러게요.”
과일은 없지만 섬에 간단한 나물 같은 것은 있었다.
“먹어도 되는 걸까요?”
“그러게요.”
버섯은 느타리버섯처럼 생기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전하다고만 말을 할 수는 없을 거 같았다.
“괜찮겠지?”
“뭐예요? 그 반응은.”
“아니. 뭐 괜찮을 거라고요. 일단 담아요. 소금물로 삶아서 물을 꼭 빼면 버섯도 괜찮으니까. 뭐 섬유소만 먹는 것이긴 하지만. 아.”
지아가 윤태의 손에서 버섯을 가져갔다. 그리고 몸통을 부러뜨리고 팔에 바르려고 하자 윤태가 재빨리 빼앗았다.
“뭐 하는 거예요?”
“두드러기가 나나 보려고.”
“내가 할게요.”
“됐어요.”
지아가 다시 빼앗으려고 했지만 윤태는 단호했다.
“저 현역이에요.”
“뭐래요?”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요.”
윤태는 씩 웃고 자신의 팔 안쪽에 버섯 즙을 발랐다. 지아는 입을 내밀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미안하잖아요.”
“좋아하는 사람끼리는 그런 말 하는 거 아니거든요.”
“어우 뭐야. 그거 몇 년도 광고야.”
“왜요? 그래서 싫어요?”
“아니.”
지아는 볼을 부풀리며 고개를 저었다.
“좋은데.”
“그렇죠?”
“아 자존심 상해.”
“왜요?”
“이런 거 가지고 좋아해서요.”
지아의 말에 윤태는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지아를 품에 꼭 안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뭐 하는 거예요? 나 냄새 나.”
“나도 나요.”
“그러니까 비키라고요.”
“어?”
“진짜.”
지아는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고 자신도 윤태의 허리를 안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남자 품이 그렇게 좋습니까?”
“그럼요. 게다가 어린 남잔데.”
“어. 엉큼해.”
“몰랐어요?”
“뭐. 알아도 괜찮아요.”
지아는 아랫입술을 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윤태는 그런 지아의 한쪽 얼굴을 만지고 허리를 숙였다. 달콤한 입맞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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