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장. 신뢰 1
“조심해.”
“뭘?”
“그 라시안이라는 여자.”
도혁의 말에 태욱은 미간을 모았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에게 뭔가 할 말이 생긴 거 같거든. 그런데 그 여자 말을 잘못 들어줬다가는 그 사람들이 싸우는 거에 휘말리게 될 거야. 너 그렇게 귀찮은 거 별로 안 좋아하잖아. 그러니까 듣지 말라고.”
“너는 들었어?”
태욱의 질문에 도혁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구나.”
“응. 아니야.”
태욱은 입을 내밀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도혁이 아니라고 하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
“나를 의심하는 거야?”
“아니.”
도혁이 반문하자 태욱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
“조심해.”
“알았어.”
태욱은 더욱 밝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가고 싶어.”
“뭐라고?”
시안의 말에 시인은 이마를 짚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답답한 소리만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우리가 가고 싶다고 해도 갈 수가 없다는 거 너도 알고 있잖아. 한 달은 여기에서 있어야 해.”
“그걸 견딜 수 없어.”
“라시안.”
“정말 죽을 거 같아.”
시안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더니 비명을 질렀다.
“도대체 내가 뭘 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한 건데. 도대체 뭘?”
“너 왜 그러는 건데?”
“왜 이러냐고?”
시안은 사나운 눈으로 시인을 응시했다.
“언니야 말로 왜 그러는 건데? 왜 전부 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는 건데? 정말 아무렇지도 않니?”
“뭐?”
“나는 여기가 끔찍해.”
시안은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녀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걸렸다.
“그러니까 더 이상 나를 압박할 생각을 하지 말라는 거야. 다들 이 섬이 낭만적이기만 한가봐.”
시안의 시선이 지아와 윤태, 그리고 세연과 윤한에게 꽂혔다.
“어떻게 여기에서 연애를 시작해?”
“시안아.”
“이거 놔!”
시인이 팔을 붙들자 시안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듯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사납게 노려봤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언니 네가 무슨 내 보호자라도 되는 거니? 그런 게 아니면서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내가 무조건 언니 말을 들어야 하는 이유라도 있어? 아니잖아. 그런 거 없잖아!”
“그래.”
시인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건 없지.”
“그러니까.”
시안은 곧바로 모든 사람들을 노려봤다.
“도대체 다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다들 왜. 다들 왜 이러는 거냐고. 다들 미친 거 같아. 내가 미친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거지? 아니. 당신들이 미친 거야. 이게 아무렇지도 않은 당신들이 미친 거라고.”
시안은 이 말을 남기고 텐트를 나갔다. 시인은 한숨을 토해내면서 그런 시안의 뒤를 쫓았고 시우도 뒤를 쫓았다.
“도대체 뭐야?”
“그러게요.”
윤한은 세연을 안고 그녀의 팔을 문질렀다.
“정말 제멋대로야.”
“이상해.”
다들 시안의 탓을 하고 있었지만 모두 묘한 불안함 같은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이 공동체가 서서히 흔들리고 있었다.
“너 자꾸 왜 그러는 건데?”
“뭐가?”
“시안아.”
“그만 둬.”
시인이 목소리를 낮추면서 다정하게 말을 하려고 하자 시안은 단호히 고개를 흔들고는 검지를 들었다.
“또 그런 식으로 나를 설득하려고 하는 거잖아.”
“설득이 아니라 대화를 하자는 거야. 우리 지금. 여기에서 대화. 너 대화가 뭔지 모르는 거니?”
“대화 같은 거 할 이유 없어. 언니는 그저 언니가 바라는 거. 그거 혼자서 다 하기를 바라는 거잖아.”
“뭐?”
“시안이 누나.”
시우가 끼어들었다.
“누나 지금 너무 과하게 가고 있어. 시인이 누나에게 이러면 안 되는 거 누나도 알고 있잖아. 우리 세 사람은 가족이야. 가족이라고. 그런데 무슨 가족이 이렇게 망가지려고 하는 건데? 응?”
“가족이지. 두 사람은.”
시안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더니 애써 미소를 지어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한쪽 뺨은 마치 경련이라도 난 것처럼 마구 떨리더니 시안이 웃기를 포기하자 멈추었다.
“이게 뭐야.”
시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이런 가족 필요 없어.”
“시안아.”
“당장 여기를 떠나고 싶은데 이상하게 문도혁이라는 사람. 내 정보를 전혀 중하게 생각하지 않더라고.”
“뭐?”
시안의 말에 시인은 곧바로 날카롭게 반응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너 지금 뭐라는 거야?”
“우리가 거기에 두고 온 것들.”
“라시안!”
“그거 말하려고 했지.”
시안이 씩 웃기가 무섭게 시인은 그녀의 뺨을 향해 손을 움직였다. 하지만 시안은 그 손을 잡아냈다.
“또 때리게.”
“너 지금 뭐라는 거냐고.”
“들었잖아. 다 들어놓고서 도대체 왜 못 들은 것처럼 묻는 건데? 나는 나 나름대로 살기 위한 방법을 찾는 거야. 언니가 언니 나름의 방법을 찾고. 시우가 시우 나름의 방법을 찾는 것처럼.”
“그건 다른 사람들을 위험하게 하는 거야. 절대로 이 섬에 있던 사람들은 우리를 믿지 않을 거라고.”
“신뢰?”
시안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혀를 내밀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시인의 손을 밀어냈다.
“어차피 믿고 있는 사람 아무도 없잖아. 서로 의심하고. 또 의심하고, 다시 의심을 하고 있는 거지. 이렇게 서로 의심만 하고 있는 상황에서 뭐 엄청난 믿음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거 이상하잖아.”
“그게 무슨?”
“너무해.”
“내가 너무하다고?”
시우의 말에 시안은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너무한 건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지. 너도 그만 언니 편 들어. 이 사람이 정말 위험할 때 네 편을 들 거 같아? 아니. 바로 자신이 편한 것을 선택을 할 거야. 그런데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뭐라는 거야?”
“그런 거 상관 없어.”
시우는 미소를 지으며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시인을 향해서 부드러운 표정을 지어보인 후 시안을 쳐다봤다.
“그래도 상관은 없어. 가족이니까.”
“뭐?”
“지금 누나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이렇게 대화를 할 사람도 우리 둘이야. 우리 두 사람이 아니면 누나에게 어떻게 할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건데? 정말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대화만 할 거 같아?”
시안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흔들었다. 뭔가 시우에게 말려드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마음에 안 들어.”
“알아.”
시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살짝 입을 내밀더니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여행을 오자고 해서 이런 일을 당한 것도 너무 미안하게 생각해. 그러니까 우리 돌아가야 해. 무조건.”
“그게 왜 네 탓이야.”
“내 탓이야.”
시인이 발끈하자 시우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오자고 한 거니까.”
“하지만.”
“됐습니다.”
시우가 이렇게까지 말하자 시인은 한숨을 토해내며 아랫입술을 물었다. 시우는 물끄러미 시안을 응시했다.
“지금 우리가 뭉쳐야 그나마 나갈 경우가 생긴다는 거 누나도 알고 있잖아.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게 뭔지.”
“그렇지.”
시안은 입술을 꾹 다물고 코로 크게 숨을 쉬었다. 그리고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말 싫어.”
“이 섬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어. 모두 다 이 섬에 있는 거 싫어해. 너무나도 말이야. 그렇지만 다들 어쩔 수 없으니까 이 섬에 있는 거야. 그러니까 너도 그만 해. 다들 이 섬에서 나가고 싶어.”
“아닐 수도 있지.”
“뭐?”
“됐어.”
시안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자신의 말을 들어줄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그런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언니는 그냥 내가 나대지만 않으면 되는 거잖아.”
“그런 말이 어디에 있어?”
“아니야?”
시안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걸렸다.
“언니는 그냥 내가 이상하지 않기를 바라는 거잖아.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튀지 않기를 바라는 거잖아. 그 정도는 해줄게. 대신 그 이상은 바라지 마. 나 어니에게 그러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너 정말.”
시인이 무슨 말을 더 하기도 전에 시안은 그대로 방을 나갔다. 시인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
균열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영부인은 미소를 지으며 항공사 회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항공사 회장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아버님께서 저에게 해주신 것을 생각을 하면 이것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작은 일입니다.”
“그저 아버님께서는 항공사 하나를 드렸을 뿐입니다. 그것을 키운 것은 회장님의 공이지요.”
“그렇습니까?”
항공사 회장은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부인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회장님을 걱정해서도 그렇지만. 제 차명으로 된 주식도 걱정이 되어서 내가 이런 것입니다.”
“그렇지요.”
항공사 회장은 맞장구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비용이 얼마인데 그렇게 막무가내로 쓸 수 있단 말입니까? 영부인께서도 큰 손해를 보실 겁니다.”
“그렇지요?”
“그럼요.”
영부인은 차를 마시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을 다룬다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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