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장. 신뢰 2
“아주 역겨워.”
“괜찮으십니까?”
“그래.”
영부인은 항공사 회장과 만진 손을 비서에게 내밀었다. 비서는 깨끗한 수건을 이용해서 영부인의 손을 닦았다.
“어디를 함부로 만져.”
“그래도 효과를 보셨습니다.”
“그래?”
“네. 확실히 영부인 님의 편이 되신 것 같습니다.”
“그래?”
영부인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번졌다.
“그런데 그 사람도 내가 간지러운 등을 긁어준 셈이지. 이런 일에 돈을 그렇게 막대하게 쓰고 싶은 사람이 어디에 있어? 안 그래?”
“그렇습니다.”
“그냥 하고 싶은 것을 내가 해준 거야. 그런데 무슨 뭐 특별한 거라도 해준 것처럼. 말도 안 되는 거지.”
영부인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이리저리 목을 풀고 고개를 끄덕였다. 차는 부드럽게 미끄러졌다.
“대통령님은.”
“회의 중입니다.”
“회의라.”
영부인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로 가지.”
“네?”
“왜?”
“아닙니다.”
비서가 놀란 표정을 짓자 영부인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내가 너에게 이미 말을 하지 않았나? 사람이 그렇게 표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 위험하다고 말이야.”
“죄송합니다.”
“함부로 사과하지 마.”
영부인은 그대로 기다란 손톱으로 비서의 뺨을 쿡 찔렀다. 그리고 더욱 힘을 주고 비서는 아랫입술을 물었다. 뺨에 묘한 느낌이 들고 영부인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뗐다. 비서는 얼굴에 손을 가져갔다. 따가웠다. 손을 보니 피가 묻어났다.
“닦아.”
“네.”
영부인은 다시 손을 내밀었다. 비서는 입을 꾹 다물고 그 손을 닦았다. 너무나도 자존심이 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영부인은 이런 비서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창밖을 보며 밝게 웃었다.
“고마워요.”
“아닙니다.”
서준의 인사에 세라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는 내가 할 수가 있는 거니까요. 그나저나 바다의 상태가 더 나빠지기만 하는 거 같아요.”
“그러게요.”
서준은 바닥에 더욱 깊이 SOS 글자를 새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라는 그런 그 옆에 와서 쪼그렸다.
“그런데 그걸 왜 쓰는 거예요?”
“네?”
세라의 물음에 서준은 입을 내밀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냉정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솔직히 그걸 쓴다고 해서 우리가 구조를 받을 거라는 것은 장담하지 못하잖아요.”
“뭐 그렇죠.”
서준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어떤 부적과도 같은 것이었따. 그저 그들이 구조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 이상, 그 이하의 의미도 없는 그냥 그런 것이었다.
“대단한 건 아니에요.”
“신기해요.”
“뭐가요?”
“아니.”
서준이 반문하자 진안은 혀를 내밀고 어색하게 웃었다.
“절대로 그쪽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사실 이런 일을 마냥 한다는 거 너무 신기한 일이잖아요. 안 될 수도 있는 건데. 어떤 자신감? 그런 게 있는 거 같아서. 나는 절대로 그러지 못할 거 같아서요.”
“희망이죠.”
“희망이요?”
“네.”
서준은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세라의 말처럼 이건 그 무엇도 해내지 못할 수도 있었다.
“정말로 그렇게 무모한 일일 수도 있어요. 아무런 의미도 가지고 있지 않은 말일 수도 있죠. 하지만 그 일도 매일 해내다 보면 분명히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을 거예요. 아니라고 해도 말이죠.”
“그렇죠.”
세라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래요.”
“네?”
“승무원이요.”
“승무원이 왜요?”
“키가 작잖아요.”
그제야 서준은 세라의 키를 살폈다. 160이 가까스로 넘을 것 같은 아주 작은 키였지만 비율이 좋았다.
“아주 훌륭한데요?”
“채용 기준이 달라지지 않았더라면 아마 승무원은 하지 못했을 거예요. 절대로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조례가 만들어지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승무원이 되지 못했겠죠.”
“그렇습니까?”
“네. 그렇게 작아요.”
세라의 밝은 미소에 서준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늘 당당하다고 생각했어요.”
“내가요?”
“네. 성세라 씨요.”
“당당은요.”
세라는 그대로 바닥에 철퍼덕 앉으며 고개를 저었다.
“당당이 아니라 꼬장이죠.”
“에이.”
“사실이잖아요.”
서준이 말하자 세라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동안 늘 유치하게 행동을 했어요. 멍청하기도 하고. 그래서 이 모든 사달을 만들어 낸 거고요.”
“무슨 사달이요?”
“서준 씨랑 나를 이 섬에 강제로 가두는.”
“어차피 저 못 갔습니다.”
서준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바닷물이 몸에 닿는 것도 싫거든요.”
“그럼 그거나 치료하죠.”
“네?”
서준이 무슨 말을 하는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데 세라가 재빨리 바다에 가서 물을 양손 가득 떴다. 서준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싫어요.”
“느껴봐요.”
“싫어요.”
“느껴 보라니까요.”
세라는 밝게 웃으며 서준에게 그대로 물을 뿌렸다. 바닷물이 방울방울 부서지고 햇살에 반짝였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진아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저었다.
“라시안 씨를 그대로 두면 결국 우리 모두 위험해질 수 있어요.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그냥 둬요.”
“그러지 마.”
진아가 말을 더 하려고 하자 지웅은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
“사무장님.”
“지금 자기만 그 일에 대해서 스트레스를 받는 거 아니야. 라시인 씨도 스트레스를 받고 그러는데 왜 그래?”
“속상해서 그러죠.”
진아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녀의 말처럼 모두 불편하게 여기는 중이었다.
“미안해요.”
시인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저었다.
“내가 더 잘 했어야 했는데.”
“아니요.”
지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시인을 보며 힘을 주어서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마다 저마다 생각이 다른 거예요. 그 각가의 생각이 뎔국 나올 수밖에 없는 거고요. 당연한 거잖아요.”
“하지만 그 각각의 생각이 나오는 통에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면. 그건 정말 아닌 거죠.”
“하지만.”
지아는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했지만 윤태가 그녀의 손을 잡고 고개를 저었다. 지아는 한숨을 토해냈다.
“무섭습니다.”
재율의 말에 모두 알게 모르게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지금 낯선 사람들하고 함께 하고 있는 겁니다. 이거 정말로 잘못하면 위험한 거라고요.”
“그렇죠. 이 섬에 있는 사람들이 아직 우리에게 완벽하게 믿음을 가지지 않고 있는 거니까 더더욱 그런 거죠.”
“그러니까요.”
“어떻게 할까요?”
시우의 목소리가 툭 하고 던져졌다.
“우리가 뭘 더 해야 하는 겁니까?”
“시우야.”
“누나도 그만 해.”
시우는 아랫입술을 물고 고개를 흔들며 머리를 긁적였다.
“알아요. 시안이 누나가 이상한 거. 그런데 이것도 이상한 거 아니에요? 그냥 믿어요. 신뢰하면 되는 거라고요.”
“신뢰.”
지아는 시우의 말을 가만히 따라했다.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 그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시우 씨는 나 믿어?”
“네?”
갑작스러운 지아의 물음에 시우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나 믿느냐고?”
“그게 무슨?”
“안 믿어?”
시우는 물끄러미 지아를 응시했다. 그리고 입술을 꾹 다물더니 천천히 고개를 흔들고 엷은 미소를 지었다.
“믿어요.”
“그래?”
“네. 지아 누나 믿어요.”
“그럼 나도 라시안 씨 믿어.”
지아의 말에 모두 그녀를 쳐다봤다. 지아는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일이 많아서 가볼게요. 다른 사람들도 라시안 씨를 믿을지. 믿지 않을지는 각자 정해요. 하지만 이 섬에서 우리가 신뢰를 얻는 순간 모든 게 다 망가지는 거예요.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지아는 이 말을 남기고 텐트를 나갔다.
“나도 믿습니다.”
윤태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니 가죠.”
윤태는 씩 웃어 보이고 지아를 따라 텐트를 나갔다. 다른 사람들은 멍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쳐다봤다.
“저게 뭐야?”
시안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지금 무슨?”
“나도 믿어요.”
세연은 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한 씨는요.”
“나는 세연 씨를 믿고. 세연 씨가 시안 씨를 믿으면. 뭐 나도 라시안 씨를 믿을 수 있어요. 됐어요.”
윤한은 세연에게 손을 내밀었다. 세연은 윤한의 손을 잡고 싱긋 웃으며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나도 믿습니다.”
“저도요.”
재율과 기쁨도 자리에서 일어나서 시안을 향해 미소를 지어보이고 밖으로 나갔다. 시안은 입을 꾹 다물었다.
“저도 믿어요.”
“저도 신뢰합니다.”
진아와 나라도 사이좋게 시안을 향해서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갔다. 시안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저도 믿습니다.”
지웅까지 나가고 나니 세 사람 사이에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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