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장. 마음에 들지 않는 사내.
“정녕 그 자만 가능하다고 생각을 합니까?”
“예. 그렇습니다.”
춘향의 확신에 찬 어조에 학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몽룡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이해가 가지 않는 그였다.
“그 자는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니오. 그것은 나보다도 춘향. 그대가 더 잘 알고 있을 거라 믿습니다.”
“좋은 분입니다.”
“허나.”
“좋은 분입니다.”
춘향이 다시 한 번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하자 학도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춘향이 이리까지 말을 하는데 그가 뭐라고 그녀의 생각을 꺾을 수 있는 자격 같은 것은 없는 거였다.
“그러니 부디 기회를 주십시오.”
“나는 주려고 하고 있소. 허나 본인이 그 일을 하고자 하지 않는데 왜 그리 시키려 하는 것인지?”
“세상을 보는 눈이 넓으니까요.”
“눈이 넓다.”
춘향의 대답에 학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몽룡은 지금 남원 고을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많은 것을 보았던 것이 분명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그게 옳다고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을 통해서 아무 것도 배운 바가 없다면 그런 이를 스승으로 삼는 것이 문제가 될 터인데.”
“배움이 빠른 분입니다. 그러니 곧 남원 고을의 달라진 모습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실 겁니다.”
“원래 배움이 많은 자들이 이러한 변화를 몸으로 느끼지 못하는 법입니다. 그네들에게는 자신들이 알고 있는 지식만이 상식으로 다가오니 말입니다. 그것은 그대도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요. 아마 그럴 수도 있지요. 허나 저는 몽룡 도련님을 믿고, 다시 또 믿고 싶습니다.”
춘향의 말에 학도는 괜히 마음이 삐뚤었다. 이리도 누군가에 대해 맹목적인 지지를 보낼 수가 있다니. 그가 생각을 하는 것보다 춘향은 훨씬 더 많이 몽룡을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후회가 된다.”
“무엇이 말입니까?”
“남원으로 돌아온 것이.”
학도의 말에 춘향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저 그대가 나를 따라 돌아다닐 적에. 그 다른 곳에 터를 잡았더라면. 이리 그대가 흔들리거나 그러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 자네를 보면 내가 그러지 못했던 것이 답답해.”
“그래서 저를 그저 가둬두시기 바라신 겁니까? 그런 것이라면 지금도 늦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가두려면 가두셔요. 허나 저에게 자유를 주신 것은 다른 그 누구도 아닌 사또. 바로 사또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사또를 더욱 존경하고. 또 존경하는 마음인 것 아니겠습니까?”
“존경이라.”
학도는 쓴웃움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존경 같은 것은 나에게 중하지 않아.”
“허나.”
“알고 있소.”
춘향이 그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자 학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가 반드시 모든 것을 다 말을 하지 않더라도 나는 그대의 생각을 알고 있어. 그저 자네가 조금 더 나를 제대로 봐주기를. 나에게 다시 한 번이라도 기회를 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지.”
“사또는 언제든 저를 취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래서 저를 취하시지 않는 것을 감사히 여깁니다.”
사내가 아니라는 말이었다. 학도는 빙긋 웃고 술을 가득 따라 마셨다. 위장을 따라 찌르르 술이 가득 찼다. 다시 술을 따르려고 하자 춘향이 술병을 잡으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학도를 쳐다봤다.
“이러시면 아니 됩니다.”
“나를 걱정하는 것이오?”
“제가 그 누구보다도 사또를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사또께서 더 잘 알고 계시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
학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춘향은 자신을 걱정했다. 허나 그것이 전부였다. 걱정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로 인해서 달라지는 것이 없는데. 내가 도대체 뭘 할 수 있단 말이오? 내가 무얼 해야 한단 말이오? 그대가 나를 걱정하고. 그저 그것으로 그치는 것인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는데.”
“사또 죄송합니다.”
춘향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자신은 학도가 바라는 것을 해줄 수가 없었다. 그것이 너무 미안했다.
“돌아가시오.”
“사또. 허나.”
“돌아가시오. 안 그래도 오늘 사온 책을 읽고 싶어서 안달이 났을 것이 아니오. 나는 괜찮으니 가시오.”
춘향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짧게 고개를 숙이고 돌아섰다. 다시 돌아서서 학도의 얼굴을 보고 싶었으나 그랬다가는 학도가 무슨 오해라도 할까 그것이 걱정이 되어 돌아볼 수 없었다. 그리 나가는 춘향을 보며 학도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물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리도 푸른 밤인데 나는 홀로 있고. 이 술을 같이 나눌 여인이 하나 없으니 이것이 사내의 밤이란 말인가.”
학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술을 연거푸 마셨다. 그러나 술은 취하지 않고 점점 더 정신은 또렷해졌다.
“어찌 취하지 않는가.”
취하려고 마시는 술은 점점 더 그를 또렷이 만들 따름이었다. 학도는 술상을 무르고 책을 폈다. 책에 어지러이 춘향이 나타났다. 그것이 자신의 마음을 헝클고 정신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허나 그렇다고 하여 함부로 춘향을 품을 수 없었다. 그가 마음에 품은 사람이었으니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언제 나를 봐줄 것인가?”
이리 말을 해도 달라질 것이 없다는 것은 스스로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답답한 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시간에 어인 일입니까?”
“글을 배우고 싶습니다.”
자신을 기다리던 방자의 말에 춘향은 멍해졌다. 그리고 향단을 보니 향단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아까부터 기다렸습니다.”
“부르시지.”
“왜요? 아가씨께서 사또랑 같이 있는데. 그 좋은 시간을 도대체 제가 왜 방해를 한단 말입니까?”
“좋은 시간은 무슨.”
향단의 머리에 꿀밤을 먹이고 춘향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방자를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오해입니다.”
“아닙니다.”
방자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찌 그리 계속 존대를 쓰는 것입니까? 자꾸 들으니 거북하여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냥 편히 하시지요.”
“어찌 그렇습니까? 이제 더 이상 기생의 몸이 아니신데. 저 역시 존대를 쓰지 않으면 불편하니 그냥 계시지요.”
“그리 하여도.”
“괜찮습니다.”
방자의 대답에 춘향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미 자신은 너무나도 다랄져 있었다. 그녀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그녀를 어떻게 대하는지. 그것만 생각을 하더라도 이미 춘향 자신이 너무나도 달라져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글이라니?”
“글을 배운 이들이 달라 보입니다.”
“다르죠.”
춘향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글을 배우면 내가 그 동안 보던 세상과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를 토해서 더 넓은 세상을 배우게 되죠.”
“그래서 배우고 싶습니다. 더 이상 도련님을 통해서 모든 세상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도련님이 나쁜 분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그래도 싫습니다. 도련님이 아니라 나 홀로 서고 싶습니다.”
“예. 그렇겠지요.”
춘향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방자는 그런 춘향을 보며 어색하게 웃으며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 우리 도련님을 설득 좀 해주오.”
“예? 몽룡 도련님을요?”
“그렇습니다. 내 글을 배운다고 하면 그 분이 도대체 뭐라고 할지 춘향 아가씨가 더 잘 알지 않습니까?”
“허나.”
춘향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은 몽룡에게 있어서 그런 것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없었다.
“글은 스스로 배우는 것입니다. 누가 허락을 하고 그러한 것이 아닌데 도대체 어찌 그렇습니까?”
“남원의 법이 그리 바뀌었다고 하여 도련님에게 그것을 무조건 강요할 수는 없다는 것. 더 잘 알고 있지 않소?”
“그것은.”
춘향은 입을 꾹 다물었다. 몽룡이 어떤 성정을 품고 있는 사내인지는 확실히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도련님이 나쁜 사람이라는 것은 아니나 이런 일에 있어서는 전혀 빠른 사람이 아니니 말입니다.”
“그렇지요.”
춘향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방자에게 글을 배우라고 설득을 할 수는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몽룡의 허락까지 얻어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건 제가 할 일이 아닙니다.”
“허나.”
“그것은 스스로 하셔야지요.”
“그럼 접겠습니다.”
“예?”
춘향의 얼굴이 멍해졌다. 방자처럼 스스로 글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이런 고민을 하다니.
“허나 도대체 왜 그런 고민을 하시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글을 배우는 것이 무슨 죄라도 된다고.”
“죄지요.”
“어찌 죄입니까!”
춘향이 목소리를 높이자 방자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춘향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사람이 배우겠다고 하는데 그것은 죄라고 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것을 죄라고 하면 그 사람이 잘못인 것이지요. 어쩌 사람이 배우겠다고 하는데 그것이 어떤 잘못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나는 상놈이니까요.”
“어찌 그런 말을 하십니까?”
춘향은 슬픈 눈으로 방자를 쳐다봤다. 하지만 방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돌아가겠습니다.”
“예? 아니.”
“어차피 도련님은 제가 글을 배우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공연히 사고를 칠 수는 없지요.”
“허나.”
“아가씨.”
춘향에게 오던 향단이 걸음을 멈추고 경계가 가득한 눈으로 방자를 쳐다보고 입을 삐쭉 내밀었다.
“예는 무슨 일이냐?”
“글을 배우러 왔다.”
“글?”
방자의 말에 향단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게 무슨 말이냐?”
“나도 글을 배우고 싶다.”
“참말이냐?”
“참말이지.”
향단은 곧바로 춘향을 쳐다봤다.
“아가씨 이 녀석에게 글을 가르치실 겁니까?”
“나는 가르치고 싶다. 아니지. 내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치기를 돕고 싶어. 허나 내가 할 것이 없어.”
“왜요?”
“몽룡 도련님을 대신 설득해 달라 하는구나.”
“뭐라고요?”
향단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방자를 쳐다봤다.
“아니 그것을 왜 우리 아가씨가 해줘야 한단 말이니? 그런 것 정도는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어야 하는 일이 아니더냐? 네가 어린 아이도 아니고 어찌 아가씨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게냐?”
“그래서 가려고 했다.”
“뭐라고?”
방자는 고개를 숙이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만.”
“저기.”
춘향이 붙잡으려 했지만 방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멀어졌다. 춘향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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