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장. 향단이
“아니 그 놈은 무슨 머저리랍니까? 아가씨가 돕지 않으면 그런 거 하나 하지 못한답니까? 맹추도 아니고.”
“너도 알지 않니?”
“무엇을요?”
“방자가 얼마나 선한지.”
춘향의 대답에 향단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삐죽 내밀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리 선한 놈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정도는 스스로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하겠지.”
“아뇨. 안 할 겁니다.”
향단은 허리에 손을 척 얹고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검지를 들었다. 춘향은 그런 향단을 보며 빙긋 웃었다.
“왜 그러니?”
“무엇이 말입니까?”
“아니 방자를 너무나도 걱정을 하느 것이 신기해서 그런다. 네가 자꾸만 그러니 혹여 네가 방자를 좋아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까지 모두 알지 않을까? 그것이 걱정이 되어서 이러는 구나.”
“무슨 말씀을요?”
향단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한 채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절대로 아닙니다.”
“절대로 아니니?”
“예. 아닙니다.”
“그래?”
“아가씨.”
춘향이 계속 얼굴에 미소를 띤 채로 있자 향단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춘향은 어깨를 으쓱했다.
“어찌 그러니?”
“아무리 그래도 그런 멍충이에게 저를 붙이지는 마십시오. 자신이 글을 배우고 싶으면서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그런 맹추에게. 도대체 아가씨는 저를 아끼시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까? 없는 것입니까?”
“있으니 이러지.”
“아가씨.”
“있으니 네 짝으로 방자가 좋다는 것이야. 세상에 방자처럼 좋은 이가 또 어디에 있을 터냐?”
“아니 뭐.”
춘향의 말에 향단은 볼을 부풀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방자가 나쁜 놈이 아니라는 것은 향단도 잘 알고 있었다. 허나 그녀의 짝으로 생각을 하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부족한 곳도 있는 사내였다.
“아가씨도 아시다시피. 그 맹추 같은 놈은 도련님을 따라가면서 저에게 말 한 마디 제대로 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리 떠나갔다가 다시 돌아온 것인데 제가 그 녀석에게 뭘 하라고요?”
“너 말 좀 제대로 하려무나.”
“무엇이요?”
“너보다 나이가 한참이나 많은 사내다.”
“그래도요?”
“열여섯 밖에 되지 않은 것이.”
춘향의 말에 향단은 볼을 부풀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그것은 아닙니다.”
“그래?”
“그리고 글도 배우지 못하고.”
“글을 배우면 조금은 달라지니?”
“그러믄요.”
이렇게 말을 하고 향단은 입을 손으로 막았다. 춘향은 빙긋 웃고 그런 향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럼 방법을 찾아야겠구나.”
“무슨 방법 말씀입니까?”
“방자가 글을 배울 수 있는 방법 말이다. 도련님에게 가서 내가 직접 말을 하거나 해야 하는 것이지.”
“하지 마십시오.”
“응?”
향단의 단호한 태도에 춘향은 고개를 갸웃했다.
“어찌?”
“싫습니다.”
“무엇이 싫으냐?”
“아가씨가 몽룡 도련님과 있는 것 자체가 싫습니다. 아가씨는 거기에만 가시면 자꾸만 약한 사람이 되시지 않습니까? 저는 그 꼴을 보는 것이 싫습니다. 잘난 것이 하나 없는 주제에 그러는 것이 싫습니다.”
“어허.”
“왜요?”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아가씨.”
“하지 말래도.”
춘향이 다시 말하자 향단은 입을 삐쭉 내밀며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춘향은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내 정인이셨다.”
“허나 지금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지.”
춘향은 쓴웃음을 지으며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향단의 말이 모두 다 옳을 수도 있었다.
“그런 사내에게 아까시를 주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가씨에게 너무나도 불행한 일입니다.”
“그럼 네가 나를 데리고 살래?”
“예? 그게 무슨?”
향단은 잠시 눈을 껌뻑이며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이내 밝은 표정으로 가슴을 두드렸다.
“못할 것도 없지요.”
“뭐라고?”
춘향은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게 무슨 말이니?”
“말 그대로입니다. 아니 아가씨가 도대체 왜 그래야 하는 것인데요. 차라리 나랑 삽시다. 그게 맞아요.”
“되었다.”
춘향은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사내 없이는 못 산다.”
“망측스럽게.”
“무엇이?”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향단의 옆구리를 찔렀다.
“이제 너도 좀 솔직해보련. 불란서의 여인들은 그런 것에 대해서 전혀 숨기지 않는다고 하는구나.”
“이곳은 불란서가 아닙니다.”
“그래서 숨겨야 한다고?”
“그럴 수도 있지요.”
“아니.”
춘향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은 그녀가 바라는 새로운 세상과 어울리는 것이 아니었다.
“이곳이 불란서보다 더 나은 곳이 되어야 한다. 그런 것 하나하나 모두 다 바뀌어야 하는 것이지. 나는 사또에게 몽룡 도련님을 설득하는 방법을 물을 터이니 너도 너 나름대로 고민을 하거라.”
“거기 또 가시려고요?”
“왜?”
“그게.”
무슨 말을 하려던 향단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향단아.”
춘향은 향단의 손을 꼭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왜 그러는 것인지 알고 있다. 내가 사또를 보는 것이 너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지.”
“두 분 모두 가여워서 그렇습니다.”
“가여워?”
“네. 가엽습니다.”
향단의 대답에 춘향은 엷은 미소를 지을 따름이었다. 향단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 그녀가 더 잘 알고 있었다.
“내 다 알아서 할 것이다. 네가 그리 말을 하지 않더라도. 내가 알아서 모두 다 잘 할 터이니.”
“예. 예. 아가씨는 늘 그러시겠지요.”
“향단아.”
“저는 멍청하구요.”
“그런 말이 아니래도.”
“다 압니다.”
“얘가.”
향단의 말에 춘향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향단이 왜 이리까지 고집을 부리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사또와 무슨 이야기를 하건. 그것이 도대체 너와 무슨 상관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냐? 응?”
“예. 상관이 없지요.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 다만 두 분의 인생이 너무나도 안쓰러워 그렇습니다.”
“인생이 안쓰러워?”
“아니 그렇습니까?”
향단의 냉정한 대답에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하였다. 자신의 인생은 불쌍하였다.
“그렇구나.”
“이게 그렇구나 하고 그냥 넘어갈 일입니까?”
“그럼 내가 무엇을 할까?”
“아가씨.”
“되었다.”
춘향은 향단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 향단과 이것으로 싸울 힘 같은 것은 없었다.
“일단 이것은 너와 나의 생각의 차이로 두자꾸나. 나중이 되면 결국 모든 것은 풀리게 될 터이니.”
“허나.”
“너도 너 나름대로 생각을 하렴.”
춘향의 말에 향단은 입을 삐쭉 내밀었다.
“방자. 그 자에게 글을 알릴 방법.”
“알겠습니다.”
향단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춘향은 그저 빙긋 웃을 따름이었다.
“글을 배울 이유요?”
“예. 그렇습니다.”
춘향의 물음에 학도는 입을 내밀고 미간을 모았다. 그런 방도가 쉬이 생각이 날 리가 없는 노릇이었다.
“그 이유를 꼭 그대가 찾아야 하는 이유라도 있소?”
“그리 하지 않으면 그 자가 글을 배우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제가 그 자를 도와주고 싶습니다.”
“돕고 싶다라.”
학도는 턱수염을 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춘향을 향해 빙긋 미소를 지었다. 참 좋은 사람이었다.
“어찌 이리 선한 마음을 품었는지.”
“하지 마십시오.”
학도가 말을 더 하려 하자 춘향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학도에게 이런 말을 듣는 것이 미안했다.
“저는 그럴 말을 들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누구보다도 사또께서 잘 아시지 않습니까.”
“어찌 그런가?”
“되었습니다.”
학도는 무슨 말을 하려다 끙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이고 술병을 들었다. 춘향이 따르려 하자 학도는 고개를 저었다.
“왜 그대가 따르는가?”
“예?”
“그대는 더 이상 기생이 아닌데. 어찌?”
“벗으로 따를 수는 있습니까?”
학도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미소를 짓고 술병을 춘향에 건넸다. 춘향은 학도의 잔에 찰랑이게 술을 따랐다. 학도는 다시 술병을 들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대도 잔을 드시오.”
“사또.”
“정녕 그대가 내 벗이라고 한다면 내 잔도 받아야지.”
춘향은 입을 꾹 다물고 어색한 표정을 짓다 술잔을 들었다. 학도는 춘향의 잔에 술을 채웠다.
“이제 된 것이오.”
“짓궂으십니다.”
“어찌?”
“사또.”
“괜찮소.”
학도의 대답에 춘향은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학도는 순간 멍한 표정을 짓다 어둠을 보고 빙긋 웃었다.
“무영이 자네도 이리 오시게.”
춘향이 몸가짐을 정돈하려 하자 학도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가 없소.”
“허나 사내가.”
“괜찮습니다. 그대가 나의 벗이고 무영도 나의 벗이니. 두 사람이 같이 만나면 셋 모두 벗이 되는 것 아니오?”
학도의 미소에 춘향은 그저 미소를 지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무영이 어둠에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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