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 장. 설득하다.
“이게 무슨 일이니?”
“미안하다.”
“멍청하게.”
향단은 놀라서 곧바로 방자에게 달려갔다. 방자는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흔들고 괜찮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내가 이 정도를 가지고 무슨 일을 당할 놈이라고 생각을 하니? 그러니 그런 표정은 짓지 마려무나.”
“도련님이 그랬니?”
“그랬지.”
“내 이것을.”
“되었다.”
향단이 소매를 걷고 나가려고 하자 방자는 재빨리 향단의 손목을 잡았다. 향단은 미간을 모았다.
“왜 잡니?”
“그것이.”
“너는 바보니? 멍청해? 도대체 왜 그런 이에게 그냥 그렇게 맞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거야?”
“미안하게 하려고.”
“뭐?”
“그래야 내가 글을 배워도 되게 하겠지?”
“그게 무슨?”
향단의 눈동자가 순간 흔들렸다. 방자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 후 아랫입술을 물었다.
“나는 글을 배우고 싶다.”
“그러면 배우면 되지.”
“너랑 다르게 나는 아직도 도련님이 가지고 있는 종놈이다. 이런 내가 도련님의 허락이 없이 함부로 글이나 배울 수가 있을 거 같으니? 이렇게 두들겨 맞고. 그래야 그럴 기회가 생기지.”
“그래도 이건.”
“괜찮다.”
“안 괜찮아!”
향단은 손목을 뿌리치고 한숨을 토해낸 후 주머니에서 헝겊을 꺼내서 가만히 방자의 이마를 닦았다. 방자가 미간을 모으자 어깨를 맵게 때렸다.
“이게 아프니?”
“아프지.”
“맹추 같이.”
“나 네 오라버니다.”
“오라버니는 무슨.”
“내가 너보다 나이가 두 살이나 더 많아.”
“시끄럽다. 그리 많으면 무얼하니? 이렇게 멍청하게 두들겨 맞고나 다니는 것을. 마음에 들지 않는다.”
향단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방자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좋다.”
“좋기는 무어가 좋아?”
“네가 나를 간호하지 않니?”
“뭐?”
“좋다. 나는.”
향단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하지만 향단은 손을 떼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손을 뗄 수는 없었다. 그저 이 상황이 너무나도 화가 나는 것이 견디기 어려울 따름이었다. 향단은 고개를 저었다.
“누가 왔니?”
“방자가 왔습니다.”
“방자가?”
향단의 말에 춘향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 늦은 시간에 왜?”
“대가리가 터져서 왔습니다.”
“뭐?”
춘향의 눈이 커다래졌다. 향단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춘향은 재빨리 사랑채로 가서 문을 열었다. 거기에는 방자가 이마에 천을 둘둘 두른 채로 홍시를 먹고 있다가 놀라서 손을 뒤로 감추었다.
“이것은.”
“먹어도 되니 먹어요. 그런데 이게 무슨?”
“아.”
방자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다시 앞으로 내고 홍시를 내려두었다.
“무슨 일이오?”
“도련님에게 글을 배우고 싶다고 하니 이럤습니다.”
“뭐라고?”
춘향은 놀라서 향단을 쳐다봤다. 향단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입을 쭉 내밀었다.
“머저리도 아니고 도대체 뭐가 좋다고 우리 집에 왔습니다. 대가리가 다 깨져서 왜 오는 것인지.”
“너를 보러 왔다.”
방자의 농에 향단의 얼굴이 곧바로 붉어졌다. 춘향은 입을 꾹 다물고 가만히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되네. 의원을.”
“안 됩니다.”
방자는 곧바로 손을 저었다.
“아니 됩니다.”
“허나.”
“만일 그러면 도련님에게 해가 가는 것이 아니오? 내가 다른 것은 몰라도 그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도련님이니?”
“당연하지.”
향자가 톡 쏘며 물었지만 방자는 단호했다.
“네가 아무리 무어라 하더라도 나는 내 도련님을 외면할 수 없어. 그 분은 참말로 좋은 분이야.”
“좋은 분은? 세상에 좋은 분이 어떻게 자신이 거느리는 사람의 머리를 그 따위로 깨뜨릴 수가 있니?”
“그냥 벼루에 좀 맞은 거야.”
“벼루?”
춘향은 아랫입술을 꾹 다물었다.
“향단아 불을 가져오거라.”
“안 됩니다.”
“내 다녀오겠소.”
방자가 말리려고 했지만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것은 자신과 몽룡이 해야 하는 말이었다.
“내가 가서 설득을 하리다.”
“허나.”
“두어라.”
방자가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자 향단은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아가씨가 너처럼 멍청한 줄 아니? 우리 아가씨는 가서 정말 제대로 해내실 수 있는 분이다.”
“허나.”
“괜찮소.”
춘향은 방자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몽룡 도련님을 그대만큼은 아니더라도, 그 못지 않게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알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방자는 한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춘향이 자신 못지않게 몽룡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러니 내가 가서 말을 하면 뭔가 달라질 것입니다.”
“그래도 너무 늦었습니다.”
“괜찮습니다. 이곳은 남원이니까요.”
향단은 불을 가지고 왔다. 춘향은 밝은 표정으로 그 불을 받고 고개를 끄덕였다. 방자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죄송합니다.”
“무엇이 죄송합니까?”
“제가 도련님하고 이런 간단한 문제 하나 제대로 해결을 하지 못해서 이리 와서 폐를 끼치니 말입니다.”
“그걸 이제 알았니?”
“향단아.”
춘향이 눈을 찡긋하자 향단은 입을 내밀며 고개를 끄덕였다.
“쌀가루를 꿀에 개어서 이마에 대게 해주어라.”
“그 귀한 것을요?”
“사람이 먼저다. 그리고 집에 두부나 달걀이 있으면 좀 내주거라. 사람이 골병이 들었을 적에는 그만한 것이 없어.”
“예.”
춘향은 향단의 어깨를 한 번 두드리고 밖으로 나섰다. 향단은 방자를 노려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우리 아가씨가 저리 좋은 분이다.”
“그렇구나.”
방자가 감동한 표정을 짓자 향단은 괜히 자신이 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련님.”
몽룡은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춘향이 왔다는 것을 알았지만 문을 열지 않았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주무십니까?”
다시 들려오는 목소리.
“춘향입니다.”
더 이상 모르는 척을 할 수가 없어서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잠시 아무런 소리가 없더니 문앞에 누군가 앉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주무시지 않는군요?”
“왜 왔느냐?”
“방자가 제 집에 있습니다.”
“대가리가 터져서 어디에 갔나 했더니 거기 있었군.”
몽룡은 일부러 더 날카롭게 대답했다. 그리고 잠시 대답이 없더니 문이 벌컥 열리고 춘향이 사나운 표정으로 서있었다.
“뭐, 뭐 하는 게야?”
“도대체 뭘 하시는 겝니까?”
“무엇이?”
“방자처럼 도련님의 곁에서 오롯이 도련님만을 생각을 하는 사람이 누가 또 있다고 그리 구십니까?”
“무엇이 말이냐?”
“사람을 다치게 하면 아니 되지요.”
“사람?”
몽룡은 코웃음을 치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것이 사람이냐?”
“도련님.”
“종이다. 종.”
“사람입니다.”
“사람?”
몽룡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아무리 이곳이 다르다고 하지만 이것까지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아무리 같은 사람 생김새라고 하더라도 그 가치가 다른 법인데. 어찌 그리 말을 한다는 것인가?”
“그렇다고 다치게 하는 겁니까?”
“놈이 피하지 않았어.”
“도련님!”
춘향이 고함을 지르자 몽룡은 미간을 찌푸렸다. 춘향은 이마를 짚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찌 이리 되셔습니까?”
“무어라?”
“이 정도로 최악인 분은 아니셨습니다. 적어도 이곳 남원 고을을 떠나기 전에. 처음에 암행어사가 되셨을 때는 이 정도는 아니셨습니다.”
“그랬지.”
몽룡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너 때문에 이리 되었지.”
“도련님.”
“네가 모두 이리 한 것이다.”
춘향은 입을 꾹 다물었다. 아니라고 해야 하는데 아니라고 할 수 없는 이 상황이 너무 답답했다.
“도대체 왜 그런 것이야?”
“그것이 참이니까요.”
“참?”
몽룡의 얼굴이 묘하게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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