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삼 장. 그 시절 이야기 둘
“관아에 너무 자주 가는 것이 아니냐?”
“그럼 제가 어디에 갑니까?”
“그래도.”
월매의 질문에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런 춘향의 반응에도 월매는 걱정이 가득이었다.
“사람들이 뭐라 수군대는지 알아?”
“뭐라는데?”
“네가 사또와 정을 통한다 한다.”
“뭐라는 거야?”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월매는 더욱 걱정이 가득 담긴 눈으로 춘향을 쳐다봤다.
“네가 그러면 안 되는 것이다. 몽룡이 녀석이 지금 한양에 수학하러 갔는데 네가 어찌 이럴 수가 있어?”
“엄마가 생각하는 그런 일 없네. 내가 뭐 맹추도 아니고 그런 일을 만들 사람으로 보여요? 그런 일 없습니다. 그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즐겁고 그래서 거기에 가는 거예요. 사또가 좋은 분이거든.”
“대화?”
월매의 눈썹이 가늘어졌다.
“무슨 대화?”
“이런저런.”
“춘향아.”
“아유. 그런 일은 없대도.”
춘향은 입을 내밀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멍하니 있는 월매를 두고 그대로 집을 나섰다.
“글을 배워보지 않겠는가?”
“예? 글이요?”
학도의 말에 춘향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글이란 무릇 사내가 배우는 것이요 계집은 다가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 것을 제가 어찌 배운단 말입니까?”
“내가 그대에게 알려주겠소.”
“허나.”
“그리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게.”
춘향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면서도 문득 글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몽룡을 놀라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고 싶습니다. 글을 배우고 싶습니다.”
“언문은 아는가?”
“그것이.”
“괜찮네.”
춘향이 아랫입술을 물며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자 학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학도의 반응에 춘향은 다소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왜 제게 글을 알려주시려는 겁니까?”
“이것들 좀 읽으라고.”
“에? 이건 사람들이.”
“그래.”
학도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학도가 가리킨 책상 위에는 종이가 한 무더기로 있었다.
“아니 한 고을 사또에게 이리도 바라는 것이 많으니 내가 뭐라 할 수 있겠나? 그런데 정작 내가 목소리를 듣고 싶은 평범한 사람들은 나를 보는 것만으로도 겁을 내는 것이니 또 그것도 걱정이고.”
“그것을 아십니까?”
“응?”
“사람들이 겁을 내는 것이요.”
“당연하지.”
학도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학도의 미소에 춘향은 침을 삼켰다. 그는 다른 사내와 달랐다.
“그래서 그대가 필요하네.”
“제가 필요하다고요?”
“그러하네.”
“필요하다.”
“아가씨.”
“응?”
향단이 자신을 부르자 춘향은 고개를 갸웃했다. 향단은 입을 쭉 내밀고 영 마뜩찮다는 눈빛으로 자신을 보는 중이었다.
“왜 그러니?”
“요즘 이상하십니다.”
“내가 이상해?”
“예. 많이 이상하십니다.”
“그래?”
춘향의 별 것 아니라는 대답에 향단은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저 요즘 언문을 읽는 것이 즐거워 그런다.”
“언문이요?”
“너도 배워보련?”
“아니요.”
춘향의 말에 향단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는 뭘 배우는 일에는 영 젬병입니다. 그런 거 전혀 좋아하시지 않는 것 아가씨가 더 잘 알고 계시면서 저에게 뭘 배우라고 하십니까? 절대로 싫습니다. 그런 거에 취미 키우지 않습니다.”
“그래도 혹여나 배우면 달라지지 않겠니? 세상에 소설이라고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는 글들이 많은 것을 처음 알았다. 너도 글을 배우면 세상이 아주 조금은. 정말 아주 조금은 더 넓어질 것이다.”
“넓어져요?”
“그럼.”
“에이.”
향단은 입을 쭉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그게 말이 됩니까?”
“왜 안 되니?”
“세상은 원래 이만한 것입니다.”
향단은 양팔을 쭉 벌려 말하며 당당한 표정을 지었다. 춘향은 쿡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는 자신의 팔을 벌리고 한쪽 손으로는 향단의 손을 잡았다.
“아가씨 뭐 하시는 겁니까?”
“글을 배우면 세상이 이 만큼은 보인다.”
“예?”
“이리 넓어진단 말이다.”
춘향의 말이 알 듯 말 듯 하여 향단은 당황스러웠다.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고개를 저었다.
“나도 처음에는 여인이 글을 배워 도대체 무어에 쓰나 싶었는데 다 쓸 곳이 있고 배우니 보람이 있더구나.”
“무슨 보람 말씀입니까?”
“방이 요즘 언문인 것은 아니?”
“아. 알고 있습니다.”
향단은 손뼉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또가 바뀌고 나서 마을에 붙는 방이 모두 다 언문이라서 편하다는 말을 동네 어른들에게 들었다. 허나 일부에서는 그를 욕하는 이들도 꽤나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양반 나리들은 뭐라 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럼 틀린 것 아닙니까?”
“어이하여?”
“그것이야.”
향단은 당황스러웠다. 어째서 그렇느냐는 물음에 대해서 쉬이 뭐라고 대답을 할 말이 없었다.
“그냥 그런 것이지요.”
“아니다.”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은 이유가 될 수 없는 거였다. 오히려 그들이 특정 정보를 손에 쥐고 다른 이들에게 그 정보를 나눠주려고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큰 문제였다.
“그 양반들이 자신들만 방을 읽고 그것을 마치 권력처럼. 그리 사용을 하려고 하는 것이 문제이지.”
“권력이요?”
“그런 생각을 하지 않니?”
“그거야.”
향단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원래 그런 것이었다. 그것은 원래 그런 것이었으니 달라질 것이 없었다.
“아가씨도 아시다시피 원래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에 대해서 감히 어찌 불경한 생각을 품습니까?”
“언문을 배우는 것이 불경하니?”
“아닙니까?”
“아니다. 여인도 글을 배울 수 있어. 양반집 마나님들도 다 배우는 글을 우리라고 왜 못 배우겠니?”
“우리는 천하니까요.”
“아니!”
춘향이 갑자기 목소리를 키우자 향단은 움츠러들었다. 춘향은 향단의 양볼을 꼭 잡고 고개를 저었다.
“사람들 사이에 귀하고 천하고는 없다. 신분이 있으나 사람 자체를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알겠니?”
“아가씨. 혹시나.”
“서학은 아니다.”
“예?”
춘향은 그제야 학도가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읽은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도 향단처럼 이리 군 것이었다.
“내 서학을 배울 짬이나 있겠니? 그리고 너랑 나랑 이렇게 붙어있는데 몰래 수학할 수간이나 있겠니?”
“그것이야.”
향단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가만 고개를 저었다.
“내 가르쳐주겠다.”
“아가씨.”
“정말 재미있대도.”
“언문을 다른 이에게 가르친단 말입니까?”
“예. 제가 데리고 있는 아이인데 빠르게 읽고 있습니다. 아이를 가르치다 보니 저 역시 배우는 것이 더 빠르고요.”
“그렇군요.”
학도의 반응에 춘향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말씀입니까?”
“다른 이들도 가르치지 않겠습니까?”
“예?”
춘향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저 향단과 대화를 더 나누고 싶어서 이런 것인데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게 무슨?”
“생각을 해보니 언문은 한 사람이라도 더 배우면 좋은 것 아닙니까?”
“그것이야 그렇지만.”
“사내들은 내 가르칠 터이니 여인들은 그대가 가르치시오.”
“안 됩니다.”
춘향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천한 신분인 자신이 글을 가르는 것은 우스운 일이었다.
“절대로 안 됩니다.”
“어찌 안 됩니까?”
“사또께서도 이미 아시지 않습니까? 저는 천한 관기입니다. 이런 이가 글을 가르친다 누가 배우겠습니까?”
“허나.”
“아니요.”
춘향은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다른 것은 다 말이 되어도 이건 진짜로 안 되는 일이었다.
“여인이 글을 배운다는 사실만 하더라도 사람들이 무어라 할지 생각이 되지 않으십니까?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간단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이 온갖 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제가 누군가를 가르친다고요? 지나가는 개가 웃을 겁니다.”
“아닙니다.”
학도는 뭉근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아니 됩니다.”
“무엇이 아니 됩니까?”
“그대 스스로 무엇이건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믿어야지요. 스스로 믿지 않는 사람을 누가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건.”
춘향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스스로 믿지 못하는 사람을 누가 믿을 수 있겠느냐는 말은 그녀에게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말이었다. 몽룡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흔들고 아이처럼 해맑게 웃었다.
“부디 제대로 생각을 해요.”
“사또.”
“할 수 있습니다.”
춘향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정말 할 수 있습니까?”
“그러믄요.”
“두렵습니다.”
“그럴 거 없습니다.”
춘향의 떨리는 목소리에 학도는 미소를 지으며 힘을 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는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대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아무 것도 생각을 하지 마세요. 내가 그대를 믿으니 그대도 스스로를 믿어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아니 그래야만 합니다.”
춘향은 아랫입술을 물고 어색하게 웃었다. 긴장이 되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할 수 있다는 거. 그것 하나만 믿고 싶었다.
'☆ 소설 창고 > 벚꽃 필적에[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맨스 소설] 벚꽃 필적에 [십오 장. 모든 걸 잃던 날] (0) | 2017.05.23 |
---|---|
[로맨스 소설] 벚꽃 필적에 [십사 장. 그 시절 이야기 셋] (0) | 2017.05.18 |
[로맨스 소설] 벚꽃 필적에 [십이 장. 그 시절 이야기 하나] (0) | 2017.05.11 |
[로맨스 소설] 벚꽃 필적에 [십일 장. 설득하다.] (0) | 2017.05.09 |
[로맨스 소설] 벚꽃 필적에 [십 장. 춘향과 무영] (0) | 2017.05.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