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장. 춘향과 무영
“그 동안 사또를 통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으나 이리 직접 만나는 것이 처음이니 다소 낯설고 신기합니다.”
“그러하군요.”
무영의 말에 춘향은 빙긋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학도는 술병을 들고 무영을 향해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대도 받으시게.”
“허나.”
“괜찮아.”
무영이 망설이자 학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나를 죽이러 하겠는가?”
“그런 말은 마십시오.”
“그러니.”
학도는 가볍게 술병을 흔들었다.
“그리고 그대가 술 한두 잔에 그리 휘청거리며 나를 지키지 못할 그런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그럼 딱 한 잔만. 정말 딱 한 잔만 받겠습니다.”
“그러하시게.”
무영이 잔을 들고 학도는 무영의 잔에 술을 가득 따랐다. 그리고 술병을 내리고 잔을 높이 들었다.
“도원결의는 아니고 우리는 매원결의 정도가 되려나?”
흐드러진 매화는 달빛에 반짝였다.
“모두 같이 함께 어떠한가?”
“만나서 영광입니다.”
“저야 말로 영광입니다.”
춘향과 무영은 가볍게 잔을 부딪쳤다. 세 사람의 술이 섞이고 각자 술을 한 모금씩 마셨다. 술은 달았다.
“이제 우리는 벗이오.”
“어디를 다녀오는 겝니까?”
“안 주무셨습니까?”
몽룡은 방자를 보며 못 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둔한 놈.”
“도련님.”
“되었다. 내일은 심부름을 좀 다녀와야겠다. 친척 어른께 가서 이곳의 사또가 이상하다는 말을 전해야겠다.”
“그게 무슨?”
방자의 얼굴이 순간 구겨졌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도련님. 설마 이곳의 모든 이들을 다 적으로 돌리려 하시는 겝니까?”
“적?”
방자의 말에 몽룡은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조신의 법도가 이러하지 않은데 이곳만 제멋대로 사는 것을 지금 인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냐?”
“당연합죠.”
“아니.”
방자의 대답에 몽룡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건 말도 안 되는 거였다. 안 될 것은 안 되는 거였다.
“이곳의 사람들은 모두 미친 사람들이다. 그런데 내가 이들을 위해서 어찌하여 그래야 하는 것이냐?”
“도련님. 도대체 어이 이리 되셨소? 이런 분이 아니신데. 도대체 왜 이리 추하게 변하시는 게요?”
“무어라?”
방자의 말에 몽룡은 주먹을 세게 쥐었다. 그리고 벼루를 그대로 방자에게 던졌다. 방자의 머리에 퍽 하는 소리가 나고 피가 흘러내렸다.
“머, 멍청한 놈. 피하지 않고.”
“제가 피할 자격이나 있습니까?”
방자는 피도 닦지 않고 조곤조곤 대답했다.
“글을 배울 자격도 없는 놈이. 이런 것을 감히 피할 수 있는 자격이나 가지고 있을 것 같소?”
“무어라?”
“저는 도련님 물건 아닙니까?”
방자의 단호한 물음에 몽룡은 쉬이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니라고 할 수도 그렇다고 할 수도 없었다.
“너는 내 몸종이다.”
“그렇지요.”
방자는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도련님에게 매인 몸이오. 그러니 이리 하여도 내가 어디 피할 곳이나 있을 거라 생각을 하십니까?”
“고얀.”
“이런 분이 아니셨습니다. 마음이 따스한 분이고 낮은 이들에게 기꺼이 품어줄 품을 내어주는 분이셨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이냐?”
몽룡의 얼굴에 싸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내 부모는 그런 이들을 품었다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재물을 잃었지. 그런데 나도 그런 멍청한 짓을 해야 한다고 말을 하는 게냐? 너도 내 목을 따서 저기 거리에 내 목을 내놓고 싶으냐?”
“도련님.”
“되었다.”
몽룡은 그대로 문을 닫았다. 방자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떨어져서 부숴진 벼루를 들었따.
“어찌 이리.”
“그림자도 없어야 하고 이름도 없어야 한다.”
“그렇소.”
무영의 말에 춘향은 슬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 슬픈 삶이 어디에 있습니까?”
“역적의 아들이 이리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이 되니 다행인 것이지요.”
“역적이라뇨.”
춘향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실이 아니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들로 인해서 억울한 누명이라는 것을 저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러 것은 중하지 않습니다.”
“뭐라고요?”
“사람들은 그런 것을 전혀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볼 따름이죠.”
무영의 대답에 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옳았다. 모든 것은 다 그런 것으로 흘러가는 것이었다.
“그대도 알고 있지 않소?”
“알고 있습니다.”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더 잘 알고 있지요. 그래서 저에게 어떤 소문이 돌고 있는지는 저 역시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춘향은 가만히 술잔의 테두리를 어루만졌다. 손 끝에 닿는 느낌이 묘하고 특별하게 다가왔다.
“이런 자리가 좋습니다.”
“그게 무슨?”
“단 한 번도 이리 사내와 그저 아무런 사이도 아닌 채로 술을 마주하고 마신 적이 없으니 말이죠.”
춘향의 대답에 무영은 아차 싶었다. 그런 그의 표정에 춘향은 미소를 지은 채 도리질하며 더 밝게 웃었다.
“그러지 마세요.”
“제가 무얼 했다 말입니까?”
“지금 저를 가여이 여기려 하시지 않습니까? 그러지 마십시오. 저는 사또 덕에 더 이상 가여운 운명의 처연한 여인은 아니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너무 그렇게 보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무영은 술잔을 비운 채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춘향이 막을 새도 없이 스스로 술잔을 가득 채웠다.
“저도 이렇게 아무렇게 지낼 수 없는 사람이 된지가 얼마 되지 않는데 제가 감히 무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하군요.”
“사또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이 자리에서 이리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면서 지낼 수가 없을 게지요.”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영은 가볍게 술잔을 들었다. 춘향도 그를 따라서 술잔을 들고 가볍게 술잔을 부딪치며 웃었다.
“무얼 하는 게요?”
술을 더 가지고 오던 학도는 입을 삐쭉 내밀었다.
“둘 너무 친한 것 아닌가?”
“아니 사또께서 우리 둘이 벗이 되라고 하였는데 이리 친하게 지내는 것이 불만이라는 말입니까?”
“우리.”
춘향의 입에서 나온 우리라는 단어아 학도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미간을 찌푸리자 춘향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게 무슨 표정입니까?”
“그대 나에게 우리라 하지 않으니.”
“사또께서는 저에게 이상한 마음을 품으시니 말입니다. 그러니 저는 무영 님과만 벗이 되어야지요.”
“그렇지. 나는 춘향 님에게 그런 마음을 품지 않으니. 춘향 님. 우리 벗끼리 잔을 부딪치지요.”
“그러지요.”
“어허.”
두 사람이 잔을 들자 학도가 재빨리 자리에 앉아서 자신의 잔에 술을 가득 채웠다. 세 사람은 웃으며 잔을 부딪쳤다.
“술이 세지 않으십니다.”
“그렇지요.”
술에 취해 나가떨어진 학도를 보며 무영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목을 가다듬었다.
“이래놓고서는 매일 같이 술을 마시려고 하니 몸이 제대로 버틸 수나 있을지 그것이 걱정입니다.”
“술을 그리 좋아하십니까?”
“그럼요.”
“몰랐습니다.”
“그러시겠지요.”
무영의 말에 춘향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것이.”
무영은 무슨 말을 하려다 아차 싶었다. 춘향이 한 번 더 채근하는 듯 눈썹을 움직이자 어색하게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사또께서는 그대가 사또가 술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알기에 그대 앞에서는 술을 마시지 않소.”
“그렇습니까?”
춘향은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학도가 자신을 생각하는 마음이 너무나도 크게 느껴졌다.
“미안하게 느낄 필요가 없소.”
“예?”
무영의 말에 춘향은 그를 응시했다.
“그게 무슨?”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을 품는 것이 죄가 아닌 것처럼, 누군가가 좋아하는 마음을 외면한다고 그게 죄가 아닙니다.”
“그렇지요.”
춘향은 술을 한 모금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술향이 입 안에 가득 맴돌았다. 그런데 달던 술이 쓰게 느껴졌다.
“가여운 분입니다.”
“사또는 정녕 아닙니까?”
“예. 아닙니다.”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답하는 춘향을 보며 무영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표정을 지웠다.
“그렇군요.”
“여인으로 태어나 처음으로 마음에 품은 사내가 있는데 어찌 다른 사내를 또 마음에 품을 수 있겠습니까?”
“그.”
“예. 몽룡 도련님이요.”
“그렇군요.”
무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춘향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술을 따르려고 하자 무영이 대신 따라주었다.
“슬픈 일입니다.”
“무엇이 말입니까?”
“저 자가 저리 마음을 준 사람은 그대가 처음입니다.”
무영의 말에 춘향은 학도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좋은 사람이었다. 너무 좋은 사람이어서 이상한 사람이었다.
“도대체 내가 뭐라고. 도대체 내가 무어라서 저리도 나에게 잘 해주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대가 처음일 것입니다.”
“무엇이요?”
“저 자를 있는 그대로 본.”
“예? 그게 무슨?”
“모두들 변 가의 자손으로 보았지요. 허나 그대는 학도로 보았습니다. 그것이 저이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지요. 자신을 오롯이 학도 그 자체로 본다는 것. 그것 자체가 저 자의 마음을 흔든 것이지요.”
“학도.”
춘향이 가만히 학도의 이름을 입안에서 굴려보았다. 낯설었다. 그저 그대로 본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멍청한 자가 아니니 그대가 적당히 선을 긋게 된다면 곧 제정신을 차리고 뒤로 물러날 겁니다.”
“내가 나쁜 사람 같습니다.”
“나쁘기는요.”
무영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술을 한 모금 마셨다.
“아무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러믄요.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나쁘다. 아니다. 그런 말을 감히 뉘가 할 수 있겠습니까? 없지요.”
“그렇군요.”
춘향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그리고 술을 비웠다. 술은 점점 더 쓰게 느껴졌다. 너무나도 쓰고 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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