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창고/벚꽃 필적에[완]

[로맨스 소설] 벚꽃 필적에 [칠 장. 별이 뜬 밤에.]

권정선재 2017. 4. 25. 00:28

칠 장. 별이 뜬 밤에.

이 책을 어찌 구하셨습니까?”

내가 못 구할 책이 있겠습니까?”

 

춘향이 책을 품에 안고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며 학도는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저 혼자의 힘이라면 책을 구하는 일이 쉬지 않을 텐데. 사또께서 도와주시니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내가 하는 것은 없습니다.”

아니요.”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학도가 아니었다면 지금 그가 갖고 있는 것은 티끌일 것이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사또가 아니었더라면 저는 지금의 책들을 만나지 못했을 거예요.”

제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저 그대가 책들을 읽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니 구하는 것입니다. 그대가 미리 목록을 정해주지 않았더라면 그런 것은 가능하지 않았겠지요. . 오늘 책방에 가셨습니까?”

아니요.”

이런.”

 

학도의 표정에 춘향은 고개를 갸웃했다.

 

새로운 책이 들어왔답니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큰손이 있는 곳이니 당연히 들여왔겠지요.”

그럼 가야죠.”

 

춘향은 학도의 손을 이끌었다. 학도는 당황하면서도 춘향의 손에 이끌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대로 밖으로 달려갔다.

 

 

 

불란서요?”

그렇소.”

 

책방 주인은 염소수염을 만지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그것을 구하느라 얼마나 고생을 한 줄 아시오? 청나라 놈들이 그리 돈을 내겠다고 해도 내가 막았지.”

얼마입니까?”

 

책방 주인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다가 손가락 세 개를 폈다. 춘향의 눈이 커다래졌다. 석 냥이라면 엄청난 돈이었다.

 

아니 쌀 한 섬도 닷 냥인데. 석 냥이나요?”

그럼 됐소.”

아니.”

사지.”

사또.”

 

학도는 품에서 주머니를 꺼내서 책방 주이에게 건넸다. 책방 주인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그것을 받았다.

 

고맙습니다.”

아닐세. 다음에도 이리 귀한 책을 구해오시게. 모두 다 자네 덕분에 이 남원 고을 사람들이 더 많은 책을 읽는 것이니.”

여부가 있겠습니까.”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무엇이 말이오?”

책값을 깎으려고 한 것입니다.”

 

춘향의 말에 잠시 멍하니 있던 학도가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춘향은 고개를 저었다.

 

사또의 문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책방 주인이 달라는 대로 값을 다 치루시면 어쩌자는 말씀입니까?”

그 자도 먹고 사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그 돈을 모두 다 치루지 않으면 어쩌겠단 말입니까?”

그래도.”

 

춘향은 책을 보며 한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저었다. 불란서의 책이라 반갑기는 하지만 그래도 너무 비싼 가격이었다.

 

비싸다고 하면 값을 조금이라도 낮출 수 있었다고요. 사또께서 그리 막 값을 치루지 않으셔도 되는 건데.”

당신을 위한 거라면 뭐든 다 해주고 싶소.”

사또.”

 

춘향의 놀란 표정에 학도는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왜 그럽니까?”

아니 그러니까.”

 

춘향은 주위를 둘러봤다. 혹여라도 다른 사람들이 보고 이상한 말이라도 할까 그것이 걱정이 되었다.

 

저는 사또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시면 다른 이들이 뭐라고 할지 걱정이 되지 않으십니까? 저는 사또께서 위험하실 것이 빤히 보여서 너무나도 무섭습니다.”

그럴 거 없소.”

허나.”

괜찮습니다.”

 

학도는 춘향의 눈을 쳐다보며 빙긋 웃었다.

 

그러지 말아요.”

사또.”

그대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려고 하는 것이 전부요. 그대에게 부담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어. 허나 나를 걱정해서 하지 말라는 것이라면 그러지 말았으면 합니다.”

허나 저는 사또가 좋습니다. 그러니. 좋은데. 아무튼 그래서 사또에게 그 어떤 폐도 끼치고 싶지 않습니다.”

폐가 아닙니다.”

 

학도는 지나가는 이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춘향의 말처럼 그들에게 그리 관심이 많은 이들은 없었다.

 

어차피 이들은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인데. 어찌 그리 겁이 나고 망설여진단 말입니까?”

그러니까. 그것이.”

그리고 그것이 걱정이 되면 애초에 내 손을 잡고 이리로 오기 전에 생각을 해야 한 것 아닙니까?”

? 그것이.”

 

춘향의 얼굴이 순식간에 잘 익은 홍시처럼 붉어졌다. 다시 생각을 해보니 자신이 무심결에 학도의 손을 잡아 끌었던 것이 뒤늦게 기억이 났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춘향이 허리를 숙이자 학도는 재빨리 그녀를 일으키며 고개를 저었다.

 

사과를 듣고자 한 것이 아니오.”

허나.”

괜찮습니다.”

 

학도의 미소에 춘향은 아랫입술을 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학도는 그저 이 상황이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떡이나 먹고 가지요.”

? 떡이요. 허나 시간이.”

내가 그 책도 사줬는데 떡도 같이 못 먹소?”

 

학도의 말에 춘향은 입을 꾹 다물다 고개를 끄덕였다.

 

떡은 제가 살 것입니다.”

그러시오.”

 

춘향이 앞서 나가는 모습을 보며 학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씩 웃었다. 기분이 좋은 사람이었다.

 

 

 

많이 바뀌었구나.”

그러게 말입니다.”

 

남원 고을의 상점가는 한양 도성과 비교가 되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밝아졌고 상인도 늘어났다.

 

어찌 이리 되었단 말이냐?”

새로 온 사또의 덕이랍니다.”

그 자가?”

. 모든 것을 다 열어주니. 상인들이 편해지고. 상인들이 늘어나니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늘어나는 그런 모습이라고 합니다.”

나 참.”

 

몽룡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상인 같은 것들이 그리 많아지는 것이 뭐가 좋다고 그 자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했단 말인가?”

상인이 늘어나는 것이 왜 안 좋소?”

 

몽룡의 말을 듣던 상인 하나가 버럭했다.

 

사람들이 이리 활기가 차고 다 죽어가던 남원이 이리 북적이게 되었는데. 도대체 무슨 말을?”

아니 천한 상인이.”

천해?”

 

다른 상인들까지 나서려고 하자 방자는 몽룡의 팔을 이끌었다.

 

도련님 가시지요.”

 

 

 

그러시면 큰일이 나십니다.”

무엇이 말이냐?”

이제 상인의 세상입니다.”

상인의 세상?”

 

몽룡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고 한들 아니 될 것은 아니 되는 것이었다.

 

어디 천한 상인 나부랭이들이 그리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단 말이더냐? 그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을 하느냐?”

이미 바뀌는 세상에 대해서 도련님이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하시는 것 같으나 이미 그렇습니다.”

무어라?”

 

방자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하던 몽룡이 순간 말을 멈추었다.

 

도련님?”

춘향과 그 자가 아니더냐?”

? 어디에?”

 

고개를 돌린 방자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춘향과 학도가 나란히 길을 걸으면서 웃고 있었다.

 

어찌 여인과 사내가.”

도련님.”

놓아라.”

 

몽룡이 그리로 가려고 하자 방자가 몽룡의 소매를 붙들었다.

 

아니 됩니다.”

무엇이 아니 돼?”

아니 저기에 가서 무어라고 하실 겁니까?”

그것이.”

 

방자의 물음에 순간 몽룡은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은 거기에 가서 뭐라고 할 말이 마땅치가 않았다.

 

이미 춘향 아가씨와 도련님은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그런데 가서 무어라 하실 수 있단 말입니까?”

허나 여인과 사내가.”

이미 흔한 일입니다.”

흔해?”

아까 상점가에서 못 보셨습니까?”

 

방자의 말에 몽룡은 그제야 아까 상점가에서 느껴지던 위화감이 무엇인지 겨우 깨달을 수 있었다.

 

어찌 이리.”

이게 옳으니까요.”

 

방자의 대답에 몽룡의 얼굴이 더욱 묘해졌다.

 

그게 무슨 말이냐?”

도련님. 이곳은 제가 도련님을 따라 다니면서 보았던 조선의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얼굴이 편안합니다. 이토록 편안한 백성들의 얼굴을 도련님께서는 한 번이라도 보신 적이 있단 말입니까?”

 

몽룡은 그제야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들은 겁이 나거나 위축이 된 것이 하나 없었다. 모두 밝은 표정이었고, 저마다 행복하게 미소를 지으며 길을 걸었다. 조선의 그 어디에도 이런 백성들은 없었다.

 

이것이.”

배움의 힘이죠.”

말도 안 된다.”

 

몽룡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이 많은 이들이 배운단 말인가?”

. 그렇습니다.”

방자야.”

도련님. 제발 정신을 차리십시오.”

뭐라고?”

 

방자의 말에 몽룡의 얼굴이 구겨졌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방자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 것이 유쾌하지 않은 그였다.

 

내가 도대체 무엇을 했다고 네가 그리 말을 하는 것이냐? 다른 사람들이 모두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네가 모르는 것이야. 나만 제정신이다. 이 남원에서 나 혼자만 정상인 법이야. 아니 그러하냐?”

아닙니다.”

 

방자는 힘을 주어 고개를 저었다.

 

도련님. 이 많은 사람들이 모두 한 방향을 보고 있다면 그 방향이 옳은 것입니다. 도련님이 틀리신 겁니다.”

무어라?”

 

방자는 입을 꾹 다물고 몽룡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도련님. 남원은 변했습니다.”

그릇된 것이지.”

그리 생각하시지요. 돌아가시지요.”

 

몽룡은 더 이상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먼저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