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장. 비가 내린다.
“아가씨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무엇이 말이야?”
“사또께 말입니다.”
“향단아.”
“압니다.”
수를 놓던 향단은 입을 삐쭉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가씨가 사또께 얼마나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하는지 정도는 말입니다. 허나 지금 그 행동이 거꾸로 사또를 아프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 모르시는 것 같아서. 그래서 제가 이러는 것입니다.”
“내가 그분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분은 너무나도 많은 피해를 입고 계시는 것을 모르는 게냐?”
“허나.”
“되었다.”
수를 보며 춘향은 고개를 저었다. 이런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참 다행이었다.
“그래도 우리 고을의 수가 유명해져서 이리 먹고 살 도리는 되었으니 얼마나 기쁜 일이냐? 아니 그러니?”
“그걸 갖고 기쁘다 합니까?”
“그럼?”
“됐습니다.”
향단은 혀를 낼름 내밀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가씨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무엇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말이니?”
“저는 사또 같은 분이 저를 좋다고 하면 그냥 좋다고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애매하게 행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애매한 적이 없다.”
“그 말이 아니라.”
춘향의 음성이 변하자 향단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 향단의 모습에 춘향은 가만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는 알고 있다. 허나 다음부터는 그런 말을 함부로 하지 말거라.”
“네. 알겠습니다.”
향단은 입을 꼭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춘향은 수를 치우고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목이 불편했다.
“이제 일을 줄여야겠다.”
“책을 줄이시지요.”
“아니. 그럴 수는 없지.”
다시 책을 끌어당기는 춘향을 보며 향단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소설을 읽으시는 것도 아니고 그런 공부를 하는 것이 도대체 뭐가 즐겁다고 그리 매일 하시는 겝니까? 저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저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 그리 좋으시다니.”
“이 좋은 것을 너는 왜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좋다고요?”
“그래. 사내들만의 일이었던 것이 이곳 남원에서는 사람의 일이 되지 않았느냐? 더 많이 배워야지.”
“아니요.”
향단은 바닥에 벌러덩 누우며 고개를 저었다.
“저는 싫습니다.”
“여인이.”
“여인은요. 제가요?”
“그럼. 이제 가슴도 보기 좋게 부풀었고. 우리 향단이는 시집을 가야겠구나. 곧 내가 보내줘야 할 텐데.”
“시집은요.”
향단이 얼굴을 붉히며 모로 누웠다. 그리고 춘향의 얼굴을 보며 입을 쭉 내밀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가씨야 말로 얼른 혼례를 치루셔야지요.”
“내가 무슨?”
“사또께.”
“아니다.”
“그럼 도련님께 가려고요?”
춘향은 대답을 하지 않고 빙긋 웃을 따름이었다. 이런 춘향의 반응에 향단은 입을 쩍 벌리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 됩니다.”
“네가 어찌 그러니?”
“그것이.”
“알고 있다. 네가 무엇을 걱정을 하는지. 그러나 너도 사또에 대해서 알고 있지 않느냐? 원래 그런 분이 아니라는 것을. 그런데 네가 그리 하면 안 되는 것이지. 너라도 도련님을 이해를 해야지.”
“이해라니.”
향단은 볼을 잔뜩 부풀리고 한숨을 토해냈다.
“한양에 가서 안 안은 여인이 없답니다.”
“부친을 잃었으니 그러지.”
“그래서 관직도 잃었습니다.”
“다시 오르실 거다.”
“아가씨.”
“오늘따라 말이 많구나.”
춘향이 미간을 모으자 향단은 시선을 돌렸다. 춘향은 장난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네가 왜 그러는 것인지는 내가 알고 있다. 내가 다 알고 있으니 그만 해도 되는 것이야. 그만 하거라. 네가 그리 하지 않아도 나도 이런저런 생각을 자꾸만 해야 하는 상황이니 말이야. 고민이 많아.”
“아가씨도 그러십니까?”
“당연하지.”
향단은 다시 자리에 바르게 앉았다.
“허면.”
“그만.”
“아가씨.”
“그만 하자꾸나. 네가 자꾸만 말을 걸어서 내가 책을 읽을 수가 없구나. 글 좀 읽게 해다오.”
“네. 네. 알겠습니다.”
향단이 반대로 눕자 춘향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운 아이였다. 늘 자신의 곁에 있어주는 식구였다.
“그래서 춘향 아가씨는?”
“거절을 하였지.”
“이런.”
길동은 웃음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학도는 그런 길동을 노려보았다.
“자네는 무엇이 그리 즐거운 것인가?”
“천하의 변학도가 여인 마음 하나 제대로 사로 잡지 못하여서 그런다는 것이 내 우스워서 그러지.”
“자네야 말로 잘 지내게. 뉘의 일이라고 그리 말을 하는가? 율도국 일이나 잘 신경을 쓰면 되는 게지.”
“그렇지.”
길동은 술을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예는 어쩐 일인가?”
“벗을 만나러도 못 오는가?”
“올 수 있지.”
“그래서 왔네.”
학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길동의 빈 잔에 술을 따르며 먼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 사람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주었네. 그러나 내가 무엇을 해준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나에게 마음을 여는 것이 아니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더 이상 없어서 답답하네.”
“모든 것이 그렇지 않겠나?”
“그렇지.”
길동은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학도를 쳐다봤다.
“그러니 천기를 면해주는 조건으로 자네와의 혼례를 걸라고 하지 않았나? 그 정도는 해야 한다고.”
“그건 비겁하지 않나?”
“비겁?”
잠시 멍하니 있던 길동은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물끄러미 학도를 응시했다.
“세상에 그런 것을 가지고 비겁이라는 말을 쓸 수 있는 사내가 이곳 조선에 있었다는 말인가?”
“자네야 말로 너무 그러하지 마시게. 그나저나 자네가 부럽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그 사람이.”
“무엇이든 할 수 있기는. 율도국이라는 곳의 왕으로 살 수 있을 줄 알았더니 이놈의 임금은 어찌 그리 자꾸만 부르는지.”
“홀로 힘드시니 그렇지.”
“그렇겠지.”
길동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들어 자꾸만 임금의 곁에 여인이 보여.”
“무릇 사내의 곁에는 여인이 있게 마련이지.”
“그 여인이 쉽지 않아 말이야.”
“그러하건.”
길동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그건 모두 임금이 알아서 해야 할 일이니 그가 신경을 쓸 일은 아니었다.
“아무튼 나는 그대가 대단하다 생각이 되네. 나도 아직 여인들에게 글을 제대로 알려줄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말이야. 자네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여인에게 글도 알려주고. 그 여인이 다른 여인들에게 글을 알려주는 것도 그저 지켜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건 정말 대단한 것이야.”
“그것이 당연한 것이지. 춘향도 나와 같은 사람인데. 나만 글을 읽고 그 사람이 글을 읽을 자격이 없다는 것 자체가 너무 우스운 일이 아닌가? 누가 그런 망ㅎㄹ 것을 정했는지도 알 수가 없는 일이지.”
“그렇지.”
길동은 순순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남은 술을 모두 따른 후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를 가려고.”
“이제 가봐야지.”
“도 언제 올 것인가?”
“모르지.”
“나 참.”
길동은 학도의 눈을 보며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는 이미 너무나도 잘 하고 있어. 그러니 어떤 불안함을 느낄 이유도 없어. 그냥 다시 하면 되는 것이야.”
“나도 알고 있네. 내가 남원 고을에 오고 나서 이 마을이 얼마나 편안해졌는지 자네가 말을 하지 않아도 내가 이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 모든 것이 내가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말을 말아야지.”
길동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학도를 향해 미소를 한 번 지어보이고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리고 길동은 온데간데가 없었다. 학도는 쓴웃음을 지며 하늘을 보고 아랫입술을 지그시 물었다.
“비가 오려나 보군.”
“망할.”
몽룡은 주먹을 세게 쥐었다.
“도대체 어찌 그리 되었단 말이야?”
“도련님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네가 왜 신경이냐?”
몽룡의 날카로운 반응에 방자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날이 갈수록 성정이 더욱 사나워지는 몽룡이었다.
“저에게 그러셔서 무엇을 얻을 것이 있다고 저에게 그리 사납게 구시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뭐라?”
방자의 대답에 몽룡은 기가 막혔다. 이곳에 오고 나서 방자도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행동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네가 어찌 그리 행동을 하는 게야?다른 이들도 나를 무시한다고 해서 너도 나를 무시하는 것이냐?”
“제가 언제 도련님을 무시했단 말입니까? 아무튼 글을 가르치시지요. 도련님만 하실 수 있습니다.”
“아니.”
몽룡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곧바로 다시 벼슬에 오를 것이었다. 그런 식으로 아이들이나 가르쳐서는 뭔가 새로운 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다른 사람보다도 그가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럴 수 없었다.
“변학도라는 자가 나를 이 자리에서 낮추려고 하는 것을 내가 정녕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는 게야?”
“설마 그러하겠습니까? 향단이에게 들으니 다 춘향 아가씨가 도련님을 위해서 사또에게 부탁을 했다고 합니다.”
“춘향이도 나를 무시하는 것이지.”
“도련님.”
“되었다.”
몽룡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그 모든 일을 듣는 것이 너무 귀찮게 느껴졌다.
“네가 무슨 말을 하건 그것은 나에게 위로가 되지 않아.”
“위로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무어라?”
몽룡은 고개를 돌려 방자를 쳐다봤다.
“도련님이 어른이 되길 바라는 겁니다.”
“네가 무어라고? 썩 나가거라.”
방자는 무슨 말을 더 하려다가 입을 꾹 다물고 그대로 방을 나갔다. 몽룡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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