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장. 바람이 분다.
“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이냐?”
“달라지셨으니 말입니다.”
방자의 대답에 몽룡의 눈썹이 가늘게 모였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
“모르셨습니까?”
“무엇을?”
“글을 깨우치고 나서 이곳의 계집들에게 글을 가르쳤답니다. 그리고 남원은 이전과 많이 달라졌지요.”
“그 색목인들이 믿는.”
“아닙니다.”
몽룡의 말이 끝이 나기도 전에 방자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서학을 믿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다?”
“그저 글을 깨우신 겁니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여인네들에게 되지 않았던 것을 하는 것인데 그것이 어찌 그리 큰 문제가 될 수 있단 말입니까? 누구라도 글을 배울 수는 있는 것이지요.”
“누구나 글을 배울 수 있다?”
몽룡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네 놈은 그것이 말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는 게냐? 그것이 말이 되는 일이야? 어찌 감히 여인의 몸으로 함부로 글을 배울 수가 있단 말이더냐? 그것은 너무나도 어리석은 일이야.”
“왜 아니 되는 것입니까?”
“무어라?”
“같은 사람이 아닙니까?”
“같되 같지 않다.”
몽룡의 대답에 방자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럼 도련님은 제가 글을 배우는 것도 싫으십니까?”
“글을 배우는 이는 미리 정해져 있다. 그 일이 너의 일이 아닌데 어찌 네가 하려고 하는 것이냐?”
“늘 도련님에게 글을 묻고 그러는 것이 너무 답답합니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그리 하고 싶습니다.”
“아니.”
몽룡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글은 아무나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네가 왜 그러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안 된다. 결국 춘향이도 마음을 다시 돌리게 될 것이다.”
“무엇을요?”
몽룡의 대답에 방자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꾹 다물고 가만히 고개를 흔들었다.
“이미 세상은 변하고 있습니다. 도련님. 아무리 도련님이 아니라고 하셔도 그리 되고 있습니다.”
“아니. 그렇지 않을 것이다.”
“밤이 늦었습니다.”
몽룡이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자 방자가 먼저 말을 치고 나섰다.
“그럼 주무시지요.”
“저런 고얀.”
몽룡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도대체 어이 저런 것이야?”
“선생을 할 것 같습니까?”
“모르지.”
“안 하겠지요.”
향단의 대답에 춘향은 살짝 미간을 모으며 고개를 저었다.
“네가 그것을 어찌 아누?”
“아가씨는 모르십니까? 몽룡 도련님이라면 당연히 하지 않을 것입니다. 얼마나 고집이 센 분인데. 그리고 전혀 이곳 남원이 바뀌었다는 것을 모르시는 분이 아니시겠습니까? 그럼 아니하시겠지요.”
“하실 게다.”
“네?”
“하시고 말 것이다.”
춘향의 확실한 답에 향단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아가시가 이해가 안 갑니다.”
“무엇이?”
“아니 사또처럼 좋은 분이 또 어디에 있다고 사또를 그리 밀어내기만 하신다는 말씀입니까?”
“얘는.”
춘향은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진 채로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아니 되는 일이었다. 자신과 학도는 아니 될 말이었다.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 말입니까?”
“나는 그 일이 재미로 생각이 될 수도 있으나. 그 분은 옳게 살아가셔야 하는 분이시다. 나와 얽히는 것은 그 분에게 하나 좋을 일이 없는 일인데 어찌 그리 말도 안 되는 농을 하는 게야?”
“사또께서 아가씨를 좋아하시는 것을 모르고 그리 말씀을 하십니까? 지나가면서 봐도 그 모든 것이 다 보이는 법인데 아가씨야 말로 사또의 마음을 그리 무시하시면 아니 되는 것이지요.”
향단의 대답에 춘향은 고개를 흔들었다. 학도는 고마운 이었으나 그의 마음과는 별개의 일이었다.
“그것은 사또를 진정으로 위하는 길이 아니야. 나와 같이 있으면 사람들이 무어라 할 줄 알고?”
“오히려 지금 사람들이 몽룡 도련님에게 뭐라고 하는지 아가씨가 몰라서 하는 말이십니까? 다 아시지 않습니까? 천하의 망나니를 아가씨가 다시 거둬들이려고 한다고. 이해가 안 간다고.”
“어허.”
“아가씨.”
“되었다.”
춘향이 짐짓 엄한 표정을 지어보이자 향단은 입을 삐쭉 내밀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푹 숙였다.
“아니 방자 그것도 사람 말귀를 대충 알아들을 거 같은데 도련님은 도대체 왜 그 모양이신지.”
“방자가?”
“네.”
“무엇을?”
“자신도 글을 배우고 싶다고 합니다.”
“그래?”
춘향의 얼굴에 곧바로 밝은 기색이 펼쳐졌다.
“그렇구나.”
“좋으십니까?”
“그럼 좋지. 한 사람이라도 더 글을 깨친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몰라서 하는 말이더냐?”
“이해가 안 갑니다.”
향단은 바닥에 놓인 돌을 가볍게 툭 차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저도 아가씨가 글을 배우라 해서 억지로 배우기는 했으나 영 쓸 곳도 없고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왜 그러느냐? 어른들이 농사에 대해서 책으로 남겨두고 그러는 것의 도움을 모르는 법이더냐?”
“그것이야 배우면 되지요.”
“아니지.”
춘향은 검지를 들어 보이며 힘을 주어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한계가 있다. 언젠가 그 어르신들이 모두 돌아가시고 나면 그 정보를 누가 줄 것이냐?”
“그것은 또 배우고.”
“아니다.”
춘향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 식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법이야. 사람들이 뭔가를 하기 위해서는 달라져야 한다. 그리고 그 달라지는 것이 글을 배우는 것이고 그것은 지식을 후대에 남기는 일이다. 그것은 너무나도 중한 일이고 누구 하나 나서서 해서는 아니 되는 일이어야만 한다.”
“허나.”
“어허.”
“네. 알고 있습니다.”
춘향이 목소리를 높이자 향단은 볼을 부풀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가씨의 말씀을 제가 하루 이틀을 들은 것도 아닌데 모두 다 알고 있지요. 모두 알고 있습니다. 여인들도 글을 배워야 한다. 천것들도 글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는다. 그렇지요. 아가씨 말씀처럼 모두 글을 배우고 나니 좋은 점도 있지요. 분명 그렇기도 합니다. 허나 그것이 좋기만 합니까? 사람들 사이의 싸움이 늘어나는 것을 모르시는 겁니까? 그런 일들도 늘어나는데 무조건 그리 글, 글. 그것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이 됩니다.”
“글을 정녕 몰라도 싸움이 없었을까?”
춘향은 나른한 목소리로 향단에 반문했다.
“어차피 있을 다툼이었다.”
“허나.”
“그것이 이제 사람들이 깨우치니 알게 된 것이야. 그것을 두고 이리저리 말들을 옮기는 것이지.”
춘향의 말에 향단은 입을 꾹 다물었다. 이건 춘향의 말이 옳았다. 어차피 다툴 사람들이었다.
“새로운 시대가 오는 것이야.”
“위험합니다.”
“무엇이?”
“서학이라도.”
“서학?”
춘향은 웃음을 터뜨리며 박수까지 쳤다.
“누가 그러디?”
“그것이.”
“나는 서학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우리 스스로 무언가를 꺠우치지 않으면 그것은 오롯이 우리의 것이 아니야. 아무리 색목인들이 우리보다 뭔가를 배웠다고 한들. 그것이 조선의 것이라니?”
“그렇지요?”
“그렇다.”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향단과 눈을 마주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걱정을 했구나?”
“아니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지. 아니 할 수가 있겠느냐? 할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 그리고 다들 너를 걱정하게 했을 것이고.”
“아가씨.”
“괜찮아.”
“하지만.”
“괜찮대도.”
춘향은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향단이 걱정하는 그런 일은 만들지 않을 것이다. 그리 다짐을 했다.
“너는 나에게 있어서 유일한 식구야. 너를 걱정시키는 일은 만들지 않을 것이야. 어서 돌아가자. 바람이 분다.”
“네. 아가씨.”
향단은 아랫입술을 물고 어색하게 웃었다.
“그래서 어찌 될 것 같습니까?”
“솔직히 말하여 모르겠습니다.”
춘향의 솔직한 대답에 학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어찌 그렇게 말씀을 하십니까?”
“그러게 말이다.”
학도는 어렴풋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물끄러미 춘향을 응시하더니 짧은 한숨을 토해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인지 나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무엇이 말입니까?”
“그 자는 달라졌소.”
학도의 말에 춘향은 잠시 멈칫했다. 그러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달라졌지요.”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찌 그리 아무렇지도 않을 수가 있단 말입니까? 어찌 그 자를 마음으로 받아들입니까?”
“사모하던 분이었으니까요.”
“슬픕니다.”
“죄송합니다.”
춘향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학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하늘을 쳐다봤다.
“바람이 찹니다.”
“그러게요. 아직 봄이 오지 않은 모양입니다.”
“적어도 저의 마음에는 봄이 오지 않을 모양입니다.”
“사또.”
학도의 말에 춘향은 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말은 함부로 하지 마십시오.”
“어찌 그렇소?”
“사또께 도움이 하나 되지 않습니다.”
“그런 건 중하지 않소.”
“중합니다.”
학도는 무슨 말을 더 하려다가 빙긋 웃고 말았다. 그리고 가만히 고개를 주억거리며 가볍게 상을 쳤다.
“봄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사또께도 봄이 올 것입니다. 저는 이만 물러가지요.”
학도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미소를 지어보였다. 춘향은 고개를 숙이고 학도만을 남긴 채로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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