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창고/벚꽃 필적에[완]

[로맨스 소설] 벚꽃 필적에 [일 장. 엇갈렸구나.]

권정선재 2017. 4. 4. 20:03

일 장. 엇갈렸구나.

그래서 춘향을 내놓지 못하겠다는 겁니까?”

그렇소.”

 

학도의 대답에 몽룡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워낙 바른 이라서 꼬투리를 잡을 것이 많지 않았다. 다른 사또들처럼 재물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고, 여색도 즐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지역에서 이 자를 다루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던 자가 천기 출생인 춘향을 지키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사또께서도 아실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온 고을이 사또께서 계집 하나만 계속 품에 지니고 계신다고 하여 말이 많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 자들이 사또의 이야기를 함부로 입에 올리는데 다시 한 번 빌미를 주시려고 하시는 겁니까? 제가 생각을 하기에 이제 그만 하실 때도 되었다고 사료되는데 말입니다.”

도대체 뭐가 이제 그만할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까?”

고집이십니다.”

 

몽룡은 고개를 몇 번 젓고는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 얼굴에 표정도 없이 가만히 사또의 눈을 바라봤다.

 

이제 사또께서도 그 계집에게 지칠 때가 되시지 않았습니까? 이미 지치셨는데 제가 계속 그 계집을 놓으라고 말씀을 드리니 오히려 고집으로 그 계집을 품에 가지려고 하시는 것 아닙니까?”

그런 것이 아니오. 내가 그 여인에게 모든 것을 약속했소. 그러니 나는 그 여자를 버릴 수가 없는 거요. 그리고 도대체 그대가 춘향을 원하는 이유가 무엇이오? 나는 이해를 할 수가 없소.”

곱지 않습니까?”

 

몽룡은 음흉한 표정을 지으면서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런 몽룡을 보면서 학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몽룡은 이해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춘향에게 집착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한 고을의 사또의 곁에 있는 여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저런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사또께서도 고와서 그 아이를 데리고 있는 것이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 남원 고을에 그 춘향이라는 계집보다 훨씬 고운 기생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사또께서 말씀만 하신다면 내가 그 아이들을 쭉 보여드리리다.”

그리 고운 여인들이 많은데 그대께서는 왜 그리 춘향이라는 사람에게 집착을 하신다는 말씀입니까?”

집착이요?”

 

학도가 사용한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인지 몽룡은 엷은 미소를 지으면서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학도를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미소 지었다. 처음 보는 사또가 그의 말을 잘 듣지 않을 거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토록 고집을 피우니 몽룡도 당혹스러운 것이 사실이었다.

 

비록 사또라고 하시나 이 고을에서 저와 그렇게 부딪히시려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지금은 비록 계시지 아니하다고 하시나, 친척 어른이 관직의 저 위까지 닿아 계시는 분입니다. 그런 저에게 이런 식으로 함부로 행동을 해도 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제가 그랬다는 말입니까?”

아무렴요!”

 

언성을 높이는 몽룡을 보며 학도는 엷게 미소를 지었다. 정작 자신이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어린 아이였다. 이런 아이가 지금 누구인지도 알 수 없는 친척 어른이 잘난 양반이라고 자랑을 하고 있는 거였다. 웃음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몽룡이 망나니로 여기저기 돌아다녔다는 소문은 이미 들은 그였다. 그런 사내가 여인을 원한다고 자신에게 하는 짓도 불쾌하기보다는 유쾌했다.

 

저는 그대와 부딪히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저 제가 품고 있는 계집을 지키려고 하는 것뿐이지요. 세상에 그 어떤 사내가 자신의 곁에 있는 여인을 내놓으라는 이야기에 바로 내놓겠습니까? 그럴 수 없는 것이지요. 도령도 사모하는 여인을 제가 내놓으라고 하면 바로 내놓겠습니까?”

사모요?”

 

순간 몽룡의 얼굴에 비웃음이 스쳐지나갔다. 새로 부임한 사또는 말도 안 되는 사랑 놀음이라도 하려는 모양이었다.

 

진정 처로 삼으실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저 평범한 기생일 뿐입니다. 그 천기가 도대체 뭐가 그리 좋다고 그리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천기를 사모하는 것은 사또 스스로의 격을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서 그런 계집의 치마 폭에서 벗어나시지는 것이 어떻습니까?”

천기가 아닙니다. 기생이었던 이지요. 혼인을 맺지 않아서 그러는 것이오?”

그것이야. 잠시만 혼인이요? ?”

그럼 혼사를 치러야지요. 내가 그 여인에게 약속을 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 이것 참.”

 

절대로 춘향을 내놓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엷게 미소까지 짓고 있는 학도를 보며 몽룡은 가만히 미간을 모았다. 사실 그도 춘향을 이토록 사모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의 곁에 있는 춘향의 모습을 보니 그에게도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자신이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지 못한 적 없던 그였다. 그런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가 가지고 싶은 것을 손에 넣지 못하고 있었다.

 

관리가 계집의 품에서 그리 헤어 나오지 못한다면 도대체 누가 고을을 다스린단 말씀입니까? 사또 부디 정신을 차리세요. 그 계집은 사또께서 그렇게 목숨을 걸만한 가치가 없는 계집이란 말입니다.”

그것은 도령에게만 해당이 되는 것 같습니다.”

?”

나는 그 여인을 위해서 목숨보다도 더 한 것을 바치고 싶으니 말입니다. 그 여인은 내게 정말 많은 것을 준 사람입니다. 그리고 또 나를 믿는 사람이고 말입니다. 그러니 저는 그 여인의 믿음을 배신할 수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몽룡은 얼굴 가득 심통이 가득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은 사내이니 몇 번 이야기를 하면 자신이 하는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무슨 벽창호랑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이 자는 그의 이야기를 전혀 알아듣지 않고 있었다. 알아듣지 않는 척을 하는 것인지 아무튼 불쾌했다. 학도 역시 그를 배웅하기 위해서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많이 취하신 것 같으니 제가 사람을 불러서 댁까지 모셔다 드리라. 그렇게 말을 하겠습니다.”

됐습니다. 취하기는요.”

 

몽룡이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문을 여는데 춘향이 그 앞에 서 있었다. 몽룡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춘향과 학도를 번갈아 바라봤다.

 

너는 참 좋겠구나.”

?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저 양반이 천기인 너와 혼사까지 맺고 싶다고 하시는 구나. 도대체 조선의 지엄한 국법을 어떻게 보고 저런 소리를 함부로 입 밖으로 내시는지 모르겠으나, 너를 사모한다는 그 이야기가 단순 헛것은 아닌 모양이다.”

많이 취하셨습니다.”

 

춘향이 자신을 부축하려 하자 몽룡은 눈에 힘을 주며 그녀의 팔을 뿌리쳤다.

 

네 년이 나에게 한 약속을 벌써 잊었단 말이더냐? 네 년이 나를 사모한다는 그것은 거짓이었더냐?”

제가 언제 그랬습니까?”

고얀 것.”

그만 하시지요.”

 

보다 못한 학도가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앞으로 나섰다. 학도가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춘향은 그제야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이리 취하셨는데 정말 사람 없이 혼자 가실 수 있겠습니까? 어제 보니 얼음도 얼기 시작하였던데 그러다 다치시면 대감께서 많이 걱정을 하실 거외다. 그러니 내가 사람을 불러서 모셔다 드리라 하겠소.”

그럼 춘향이 어떻소?”

춘향이 무엇이 어떻습니까?”

아니 이 늦은 시간에 사람을 굳이 부를 것이 또 무엇이란 말입니까? 저렇게 춘향이 시중을 들기 위해서 이리로 왔는데 말입니다. 아니 그렇습니까?”

아니 어찌 여인에게 그런 일을 시킨단 말이오?”

아닙니다.”

 

몽룡이 한 마디 더 덧붙이려 하자 춘향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면서 학도의 손을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학도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 몽룡을 춘향에게 넘겼다. 방금 전까지는 그래도 자신의 힘으로 서 있던 몽룡이 자신의 체중을 거의 다 춘향에게로 싣기 시작했다. 그러나 춘향은 힘든 기색 하나 없이 몽룡을 밖으로 부축하기 시작했다. 학도는 그런 춘향이 불안하여 계속 그녀의 옆을 따라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춘향이 걸음을 우뚝 멈추고 학도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도대체 어디까지 따라오려고 하시는 겁니까?”

지금 같은 마음으로는 도령의 댁까지 따라가고 싶습니다.”

세상에 그런 법도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고 갑자기 사또를 찾는 이가 오면 어쩌시려고 그러시는 겁니까? 저 혼자서도 도령을 충분히 댁에 모셔다 드릴 수가 있으니 그리 걱정하지 마십시오.”

허나.”

저는 괜찮습니다.”

 

춘향이 단호하게 이야기를 하자 학도도 결국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춘향은 미소를 지으면서 사립을 나섰다. 춘향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던 학도는 결국 시선을 거두고 방으로 돌아섰다.

 

어찌. 어찌 그러는 게야.”

 

학도는 한숨을 토해내며 눈을 내리깔았다. 깊은 슬픔이 그의 가슴을 콱 하고 막아서는 기분이었다. 그의 밤은 그리 짧지 않을 것이었다. 그가 사모하는 여인은 그를 사모하지 않는 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