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창고/벚꽃 필적에[완]

[로맨스 소설] 벚꽃 필적에 [육 장. 달이 뜬 밤에. ]

권정선재 2017. 4. 20. 23:55

육 장. 달이 뜬 밤에.

도대체 도련님이 왜 그리 되었는지 모르겠다. 도대체 왜 그리 아둔하게 생각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 동안 남원 고을에 계시지 않았으니 생각이 나아지지 않는 법이지.”

 

향단의 간단한 대답에 방자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향단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얼른 옮기고 나서 빈 소쿠리는 주지 않으련? 나도 어서 돌아가서 아가씨와 아침을 먹어야 한단 말이다.”

그래. 알겠다.”

 

방자의 힘없는 모습을 보니 향단도 그리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렇단 말이지?”

복잡하신 모양입니다.”

그러시겠지.”

 

춘향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몽룡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면 뭔가 갑작스러운 일에 휘말렸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그나저나 왜 그리 신경을 쓰시는 겁니까?”

좋아하는 분이니까.”

아가씨.”

내가 알아서 할 게다.”

 

향단이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자 춘향은 고개를 저었다. 향단은 입을 삐죽 내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아가씨가 알아서 해야 하시는 일이지요.”

그러니 그만 하렴. 나도 생각이 다 있단다.”

. . 알겠습니다.”

 

향단의 어린 아이 같은 행동에 춘향은 빙긋 웃을 따름이었다.

 

 

 

오늘 또 가서 설득을 하려고요?”

. 그렇습니다.”

 

학도는 미간을 모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대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을 해서 동의한 것이지만 아침 향단이가 가봤을 적에 반응을 봐도 아닌 것 같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후세를 가르치는 것이 얼마나 유익한 것인지. 그리고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는 일인지 아실 겁니다.”

모를 일이지요.”

사또.”

알겠습니다.”

 

춘향의 낮은 목소리에 학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춘향의 말에 마냥 마음이 약해지는 그였다.

 

도대체 왜 그리까지 누군가를 믿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저도 사또를 믿고 있는 걸요?”

좋은 겁니까?”

좋은 것이지요.”

 

춘향은 가만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사람을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저보다 사또가 더 잘 아실 거라고 생각을 하니 말입니다.”

그렇지.”

 

학도는 춘향을 따라 웃었다. 그녀로 인해서 마음에 평안이 온다는 것이 너무나도 신기하게 느껴지는 그였다.

 

그 동안 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인지. 내가 너무 미련하고 한심하게만 생각이 되고 그렇소.”

누구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저도 글을 배우기 저에는 이런 생각을 제대로 하지 못했었으니까요. 글을 배우고 나서 이런 생각을 하나하나 하게 되니 그것은 사또의 문제거나 잘못이 아닙니다.”

고맙소.”

 

학도의 말에 춘향은 어색하게 웃었다. 고마운 사람이었다. 춘향은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그럼 도련님을 만나러 가보겠습니다.”

같이 갈까요?”

일을 하셔야지요.”

내가 없어도 어차피 잘 돌아갑니다.”

설마 그럴까요?”

 

춘향은 미간을 모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 일은 저를 믿는다고 하셨으니 그냥 저를 믿어주십시오. 제가 그 분을 꼭 설득을 해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학도는 미소를 지으며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춘향에게 자신이 믿는다는 것을 무조건 보여주고 싶은 그였다.

 

그대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시오.”

. 고맙습니다.”

 

춘향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밝게 웃었다.

 

 

 

그리도 좋으십니까?”

좋지.”

 

무영의 물음에 학도는 빙긋 미소를 지을 따름이었다. 무영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는 사또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무엇이 말이냐?”

그 분은 그리 좋은 분이 아닙니다. 사또께서 그리 마음을 표현을 하시는데 계속 무심하시지 않으십니까? 사또께서도 이제 마음을 접고 다른 분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모르시는 겁니까?”

알고 있네.”

 

학도는 멍하니 하늘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어.”

어찌 그렇습니까?”

춘향이 나의 달이니까.”

사또.”

어두운 밤 나를 밝혀준 사람이네. 내가 그 사람을 외면할 수는 없어. 그 사람이 나를 봐주기를 바라고 그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야.”

 

학도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춘향의 얼굴만 떠올려도 저절로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 사람이 나를 무어라고 생각을 하건. 그런 것은 하나 중요하지 않네.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것. 연모하는 것. 그저 이것이면 되는 것이야.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한다고 반드시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할 이유가 있겠는가?”

그런 분이 수청을 들라 하셨습니까?”

농이지. 이 사람아.”

 

학도는 멋쩍은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나저나 기분이 좋군.”

무엇이 말입니까?”

무영 자네가 나를 이리도 생각을 한다는 것을 알았으니 말이야. 늘 그리 내 곁을 지켜주시게.”

여부가 있겠습니까?”

 

학도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야.”

갑자기 무슨 복이란 말씀이십니까?”

좋은 벗이 있고, 좋은 동료가 있고, 좋은 여인이 있으니. 세상에 이보다 더 복이 많은 사내가 어디에 있겠는가?”

좋은 동료라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자네가 벗일세.”

 

길동을 생각하고 한 무영의 말을 학도가 고쳐주었다.

 

홍길동 그 자는 나와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이야. 이 나라가 더 바르기를 바라는 그런 사람이란 말이야. 허나 자네는 내 벗이야. 늘 내 곁에 머물러주면서 내가 바르게 가기를 바라주는 사람이지.”

고맙습니다.”

 

무영은 고개를 숙였다. 학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 이가 곁에 있다는 것 자체가 더 고마웠다.

 

 

 

안 할 거다.”

도련님.”

 

몽룡의 말에 춘향은 미간을 모으며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왜 그렇게 아이처럼 행동을 하신단 말씀입니까? 이게 얼마나 중한 기회인지 모르시는 겁니까?”

모른다.”

어찌 그러십니까?”

 

춘향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몽룡이 쉬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이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지금 도련님을 어찌 보는지 모르고 그러시는 겁니까? 다들 도련님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고 그러시는 겁니까? 도련님. 그러시면 아니 됩니다. 다시 앞으로 나아가셔야지요.”

그러니 하지 않겠다는 거야.”

뭐라고요?”

 

춘향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몽룡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거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것은 아니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내가 무슨 말을 더 해야 하겠는가? 사람이 하지 않겠다고 하면 그걸로 그만인 것이지. 무슨.”

허나.”

그만 하게.”

 

춘향은 아랫입술을 꼭 다물었다. 몽룡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오지 말게.”

아니요. 올 것입니다.”

 

춘향은 고개를 숙이고 몽룡의 방을 나섰다. 몽룡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대체 왜 저리 된 것이야.”

 

몽룡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방자의 사과에 춘향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것은 그대의 잘못이 아닙니다. 도련님도 지금 마음이 아파서 그런 것을 제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요.”

도대체 왜 저리 아이처럼 행동을 하시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누가 그것을 알아준다고 말입니다.”

상처가 크셔서 그렇지요.”

그렇죠.”

 

방자는 혀를 차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많던 동무들이 모두 사라지셨습니다. 그러니 도련님의 입장에서는 그것을 견디기 어려우실 겁니다.”

다 사라졌습니까?”

.”

 

방자의 대답에 춘향의 눈에 안쓰러운 기색이 스쳐갔다. 한 순간 몽룡은 그 모든 것을 잃은 거였다.

 

그렇군요.”

너무 그러지 마시죠.”

아닙니다. 그나저나 저에게 왜 그리 높인 말을 쓰는 겝니까? 전에는 그러시지 않았던 거 같던데.”

 

춘향의 웃음에 방자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춘향의 말처럼 과거의 그는 춘향에게 말을 높이지 않았다. 허나 이제는 상황이 달랐다. 이제는 춘향이 그리 함부로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제 기생이 아니시니.”

우리는 같은 사람이죠.”

그게.”

서학은 아닙니다.”

 

방자의 얼굴이 당황스러운 기색이 스치자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하늘을 쳐다봤다.

 

그냥 배운 것이 전부입니다.”

무엇을?”

일단 언문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우리말로 된 글을 다 읽었습니다. 읽고 또 읽어도 자꾸만 갈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다시 읽고, 또 다시 읽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언문으로 된 책은 모두 다 읽었습니다. 천자문을 배우고 사내들이 배우는 글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지금이 되었지요.”

대단합니다.”

아니요. 대단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해야 하는 것이지요.”

방자야!”

 

안에서 몽룡의 고함이 들리자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 그럼 가보시죠.”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다시 오신대도.”

달라질 겁니다.”

 

춘향의 확신에 찬 목소리에 방자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확신을 할 수 있는 것일까?

 

혼자서 상처를 입으실 겁니다. 도련님이 그리 쉬이 아가씨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아셔야죠.”

저도 쉽지 않습니다.”

허나.”

방자야!”

 

안에서 다시 몽룡의 목소리가 들리자 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방자는 멀어지는 춘향을 보며 아랫입술을 물었다.

 

배운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새로운 것인지 그리고 어려운 것인지. 방자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도 배우고 싶었다. 무엇이건. 마냥 배우고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