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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소설] 벚꽃 필적에 [십오 장. 모든 걸 잃던 날]

권정선재 2017. 5. 23. 23:23

십오 장. 모든 걸 잃던 날

서학이라니! 서학이라니!”

온 동네에 소문이 파다하오.”

아니야. 아니라고!”

 

월매는 악을 바락바락 쓰며 사내들에게 덤볐다.

 

어찌. 어찌 내 딸을 그리 말을 해. 내 딸에게 어떻게 그리 말을 할 수가 있어? 아무리 내 딸의 편이 아무리 없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아니지. 이러면 아니 되는 것이지. 없는 이야기를 어찌 이리 함부로 할 수가 있단 말이야? 이건 아니 되네. 서학이라는 소문이 무엇인지 다 아는데.”

그런데 어찌 여인들이 그리 글을 배우오?”

그게 잘못입니까?”

잘못이지.”

아니지!”

 

월매는 고함을 질렀다. 자신도 그리 생각을 했었다. 여인은 글을 배우면 안 된다고. 그리 믿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여인도 충분히 글을 배울 수 있었다. 아니 여인도 글을 배워야 하는 거였다.

 

내가 평생 한스러웠던 것이 엄니 이름 한 번 못 쓴 것인데. 이리 쓰게 되었어. 그런데 이게 죄인가!”

 

월매의 고함에 모두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세상에 자식이 엄니 이름. 엄니 이름을 쓰고자 하는 것이 어찌 되는 것이야. 어떻게 죄가 되는 것이야.”

 

월매는 자리에 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떠나.”

엄마.”

떠나.”

 

낮의 소란을 다 들은 춘향은 한숨을 토해냈다. 월매가 왜 이러는 것인지는 알았지만 그래도 아니었다.

 

어떻게 그러우?”

너 여기에 있으면 죽어 내가 그것을 모르냐? 다들 너보고 서학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여기에 있어?”

엄마.”

!”

 

월매는 악다구니를 썼다.

 

세상에 어떤 애미가 자기 딸이 그냥 죽는 꼴을 보라고 그러냐? 여기에 있으면 너를 죽게 된다.”

안 죽어.”

춘향아.”

엄마.”

 

춘향은 월매의 손을 꼭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 딸 그리 불효녀 아니야. 그러니 그러지 말어요. 그러니까 제발. 제발 그러지 말어요. 괜찮아.”

정말 괜찮아?”

그럼.”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월매는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춘향을 보며 주름진 손으로 춘향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이리 고운 것을.”

엄마. 왜 그런데?”

내가 천한 신분이라서. 너를 내가 이리 만들었다. 네 아버지가 너를 달라고 할 때. 그때 너를 줄 것을.”

?”

네 아버지가 너를 달라 했다. 그 집에 딸이 없다고. 그런데 내가 너를 주지 않았어. 내 욕심에 그랬어.”

괜찮아.”

 

춘향은 더 밝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 가지 않아도 좋았다. 엄마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았다.

 

갔으면 엄마와 내가 이런 시간을 보내지 못했는데. 우리가 이리 함께 하지 못한 건데 무슨 소리를 하오?”

그래도.”

아니.”

 

춘향은 단호히 고개를 흔들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이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고 또 당연한 거였다.

 

나는 엄마를 절대로 떠나지 않아. 그러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요. 나는 절대 그렇지 않아.”

정말?”

그럼.”

 

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월매의 눈물을 훔쳤다.

 

 

 

죄인은 오라를 받으라!”

 

춘향은 잠에서 깨기가 무섭게 문이 벌컥 열렸다.

 

무슨 일이오?”

네 년이 서학을 공부한다는 첩보야.”

서학이라뇨!”

이 년을 잡아라!”

이게 무슨 일인가?”

 

월매가 뒤늦게 뛰어들어왔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춘향아. 춘향아!”

엄니. 괜찮소. 그러니 방에 계셔. 향단아 엄니를 부탁한다.”

. 아가씨. 저만 믿어요.”

그래. 그래 내 너를 믿는다.”

 

춘향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말이 되오?”

그것이.”

 

월매는 가슴을 치고 울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춘향이 서학이라니. 서학이라니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내가 그 아이를 모르오?”

알고 있습니다.”

 

학도는 걱정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 알고 있습니다.”

사또 우리 딸 좀 살려주오.”

그러겠습니다.”

부디. 부디 그래요.”

. 예 그러겠습니다.”

 

학도는 아랫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온 나라가 서학을 믿는 이 때문에 미쳐돌아가고 있는데 그대는 왜 그 말도 안 되는 자를 돕는 것이오?”

그 사람은 서학을 믿지 않습니다.”

 

학도의 말에 관리는 혀를 끌끌 차며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그걸 잡아야 그대가 그 자리를 지키지.”

뭐라고요?”

지금 그 자리를 노리는 자리가 얼마나 많은지 아시오? 한 고을의 사또가 되고 나서 뭐 하나 실적이 없는데. 이것으로라도 실적을 만들라는 것인데. 어찌 그대는 그리 아둔하게 행동하는 게요?”

그 이유를 가지고. 그저 제가 이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서 죄가 없는 이도 그리 만들어야 하는 게요?”

그렇지.”

그럼 저는 싫습니다.”

 

학도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거였다. 죄도 없는 이들에게 죄를 만들 수는 없었다.

 

나는 이 자리가 싫소.”

이보게.”

부탁입니다.”

 

관리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정녕 그러오?”

. 저는 이 사또 자리도 필요가 없소.”

나 참.”

부디. 부디 그 사람을 살려주오.”

정인이라도 됩니까?”

그러고 싶소.”

 

학도의 간절한 눈빛에 관리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식사는 하셔야지요.”

되었다.”

마님.”

되었대도.”

 

향단이 다시 한 번 권해도 월매는 단호했다.

 

내가 어떻게 이것을 먹을 수가 있어? 내 딸을 그리 해놓고서. 내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어?”

그것이.”

내가 내 딸을 사지로 몰아넣은 것이다. 내가 내 딸을. 그 딸이 글을 배우겠다고 할 때 말릴 것을.”

아가씨가 글을 배운 것이 어찌 잘못이랍니까?”

되었다.”

 

향단이 더 말을 하려고 하자 월매는 고개를 저었다. 향단은 한숨을 토해내고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래?”

.”

이것 참.”

 

춘향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숙였다.

 

어찌 이리 되었단 말이냐.”

아가씨는 아가씨나 신경을 쓰시어요.”

?”

얼굴도 지금 얼마나 상하셨는데.”

 

향단의 걱정이 가득한 말에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얼굴을 매만졌다. 거칠한 것이 손에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러하구나.”

아가씨도 잘 드셔야 해요.”

그러믄. 그러니 엄니 부탁을 한다.”

그럼요. 제가 다 잘 하겠습니다.”

 

향단의 대답에 춘향은 빙긋 웃었다.

 

 

 

또 안 드셔요?”

그래.”

마님. 일주일이 넘었습니다.”

열흘이건 보름이건. 내 딸이 나오기 전에 내 곡기 하나 먹지 않을 것이야. 어떻게 내가 그럴 수 있어?”

 

월매가 시름시름 앓아가는 모습을 보며 향단은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그녀에겐 월매를 설득시킬 힘이 없었다.

 

 

 

얼른 드셔요.”

되었다.”

이러다 큰일이라도 나십니다.”

 

월매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저 굶어죽는 것일랑 큰일일 수가 없었다. 딸년을 거기에 넣어두고 큰일이 아니었다.

 

내가 내 딸을 살려야 살지.”

마님.”

춘향이. 춘향이가 얼른 나와야 한다.”

 

향단은 한숨을 토해냈다. 월매가 이리 말라가는 것을 춘향이 알면 뭐라고 할지. 그것이 걱정이었다.

 

 

 

엄니는 잘 있지?”

그럼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춘향이 마음이 불편할 것을 알기에. 향단은 거짓말을 했다.

 

너무나도 잘 지내십니다.”

다행이구나.”

 

초췌한 몰골에도 춘향의 얼굴에선 빛이 났다.

 

그나저나 아가씨께서는 도대체 언제 나오실 수가 있는 겝니까? 어찌 이리 마르셨소? 안에서 아무 것도 못 먹는 것 같습니다.”

나야 괜찮다.”

괜찮지 않습니다.”

괜찮대도.”

 

춘향은 싱긋 웃어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다. 괜찮다. 나는 괜찮다.”

 

 

 

마님. 아가씨에게 다녀왔습니다.”

 

집에 들어서던 향단의 몸이 굳었다.

 

마님?”

 

평소라면 당연히 춘향에 대해서 모든 것을 물어야 했다. 향단은 조심스럽게 방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마님! 마님!”

 

월매는 깊은 잠에 빠진 사람처럼 자리에 누워 일어나지 못했다.

 

 

 

네가 왜 또 왔니?”

 

향단이 다시 자신을 찾아온 순간 춘향은 아랫입술을 물었다. 그녀가 자신을 다시 찾아올 이유는 없었다.

 

향단아.”

아가씨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향단은 춘향의 앞에 무릎을 꿇고 울었다. 그런 향단의 모습을 보며 춘향은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이었다. 자신이 모든 문제를 만들었다. 모든 것은 자신의 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