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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소설] 벚꽃 필적에 [십육 장. 여정 하나]

권정선재 2017. 5. 25. 23:50

십육 장. 여정 하나

미안하오.”

 

학도의 사과에도 춘향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학도는 짧은 한숨을 토해내며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대의 어머니를 지켰어야 하는 건데. 정말 미안하오. 미안합니다.”

됐습니다.”

 

춘향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모두 저의 복이지요.”

그게 무슨?”

계집 주제에 글을 배우려고 한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제가 너무나도 아둔하여. 제가 멍청하여 그런 것입니다.”

그 무슨?”

사실이 아닙니ᄁᆞ?”

 

춘향의 대답에 학도는 쉬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춘향은 입술을 꼭 다물고 어색하게 웃었다.

 

엄니 하나 보러 갈 수 없소.”

그것은.”

상은 잘 치뤘지요?”

그래요.”

 

아무도 오지 않는 쓸쓸한 장례였다. 오직 학도와 향단. 두 사람이 모든 것을 챙겼다. 혹여나 몽룡의 집에서 누군가 와주지 않을까 그것을 기다렸건만 그 누구도 와서 조문하는 이가 없었다.

 

이것이 다 이 연닝 헛꿈을 꾸어서 그렇습니다. 이것이 다 이 년이 멍청한 생각을 해서 그렇습니다.”

사람이 배우는 것을 두고 어찌 그리 말을 할 수가 있소? 그대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요.”

 

춘향은 그대로 손을 들어서 자신의 뺨을 때렸다. 놀랄 정도로 큰 소리가 나서 학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문을 여시오!”

내가 나쁜 거예요.”

 

춘향이 다시 자신의 뺨을 세게 때렸다. 볼 안이 터져서 피가 고였다. 문지기가 와서 재빨리 문을 열었다. 학도는 그대로 들어가서 춘향을 품에 안았다.

 

하지 마오. 하지 마오.”

내가 나쁜 년이외다.”

아니오. 그렇지 않아.”

 

학도는 입술을 꾹 다물고 춘향을 더욱 꼭 안았다.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가 꼭 밝혀야 했다.

 

 

 

아무런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 해당 증언을 한 자가 있으나 그 자도 더 이상 아무 것도 아는 바가 없다고 한 바. 서학을 믿는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음을 내 분명히 밝히며 춘향을 풀어준다.”

 

이 말은 너무나도 간단한 말이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어려운 말이었다. 악이라도 쓰고 싶었다. 하지만 말이 모두 말라 나오지 않았다.

 

엄마.”

 

춘향이 자리에 일어나려는 순간 그대로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학도가 재빨리 그녀에게 다가 부축했다.

 

괜찮소.”

엄마는. 엄마는.”

같이 가시게.”

 

학도는 멀리에 있는 향단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향단도 입술을 꼭 다물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엄니. 엄니.”

 

춘향은 월매의 무덤에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산소가 깔끔하다는 것이었다.

 

어찌 이리.”

다 사또가 하였소.”

사또가?”

그래요. 사또가 모든 것을 다 챙겼습니다. 사또가 아니었으면 마님 산소를 이 정도로 챙기지 못했을 겁니다.”

 

향단의 말에 춘향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너무나도 원망스러운 사람이었지만 그럼에도 동시에 너무나도 고마운 사람이었다.

 

어찌.”

도련님네는 아무도 오지 않았소.”

?”

아무도 오지 않았단 말입니다.”

 

향단의 말에 춘향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느냐 싶었지만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춘향은 당황하며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말도 안 되는 거였다.

 

어찌?”

아시지 않습니까?”

?”

한 번도 도련님은 먼저 아가씨를 본 적이 없소. 늘 아가씨가 먼저 도련님을 찾아서 그리 가셨지.”

그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건. 다소 다른 종류의 문제였다.

 

내가 일부러 그런 것이었다. 도련님이 나를 찾으면. 그것이 사내로의 품위가 떨어지는 일이니.”

그러니 그 사내로의 품위를 그리 지키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가씨.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사또가 아니었다면 지금 아가씨가 이리 나오지 못했을 거라는 것을 모르시는 겁니까? 참말 모르세요?”

그게 무슨 말이냐?”

 

춘향의 목소리에 긴장이 서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사또가 자신의 사또까지 내던졌습니다.”

뭐라고?”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사또 자리는 그리 쉬운 자리가 아니었다. 그리고 남원 고을로 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해야 하는지는 몽룡으로부터 이미 들었던 그녀였다. 이 자리를 버린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거였다.

 

도대체 왜?”

정녕 모르십니까?”

무엇을?”

아가씨를 연모해서 그런 것 아닙니까?”

뭐라고?”

 

춘향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말도 안 되는 거였다. 자신을 연모해서 그러면 아니 되는 것이었다.

 

아니 사또께서 그러시면 나보고 어찌 하라고. 내가 도대체 그 분에게 죄송해서. 너무 미안해서 어떻게 하라고 이러시는 것이야?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러시면 아니 되는 일이다. 안 되는 일이야.”

아가씨.”

사또.”

그만 두셔요.”

 

춘향이 학도에게 가려고 하자 향단은 춘향의 손을 잡고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놓아라.”

따지려고 하시죠?”

당연하지.”

그럼 사또께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습니까?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사용해서 아가씨를 지킨 겁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뭐라고 하시면 사또께서 어떻게 견디시겠습니까?”

시킨 이는 없다.”

그렇지요.”

 

향단의 대답에 춘향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학도가 어찌 저러는 것인지 알기에 더욱 괴로웠다.

 

내려가자.”

허나.”

되었어.”

 

춘향은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불효녀였다. 이제 와서 무덤을 지킨다고 해서 누구 하나 그녀를 인정해줄 리가 만무하였다. 그녀 탓으로 월매가 죽은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내가 멍청해서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이다. 사람들이 모두 달라질 거라고 믿은 것이 잘못이야.”

그것이 어떻게 아가씨의 잘못입니까? 아가씨가 아무 것도 하신 것이 없습니다. 아가씨와 관련이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잘못이지.”

아가씨.”

내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아 이리 되었다.”

 

춘향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내가 무엇이라도 해야만 하는 거였다. 차라리 내가 서학쟁이라고. 그리 말을 하고 그랬어야 했어.”

그리 하셔서는 아니 되는 거였습니다. 그랬다가는 정말 아무 것도 얻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어머니를 잃은 일을. 내 탓이라고 말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야? 그런 것이더냐?”

. 아가씨 탓이 아니니까요.”

 

향단은 춘향의 헝크러진 앞머리를 만지며 고개를 저었다.

 

이건 아가씨의 잘못이 아닙니다. 아니,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그러니 부디 그런 마음 약한 소리는 하지 마셔요. 아가씨께서 그리 말씀을 하시면 마님께서 정말 아프게 느끼실 겁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신다면 너무 아프고. 너무 지치게 되실 겁니다.”

그러할까?”

그러믄요.”

 

춘향은 하늘을 보고 침을 삼켰다. 가슴이 너무나도 답답했다. 너무 답답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지만 뭔가 해야 했다. 하지만 자신이 뭘 할 수 있는지. 뭘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학도의 얼굴도 수척해진 것을 보니 그에게 따지고 싶은 마음이라곤 모두 사라져버린 춘향이었다.

 

어찌 이리 되셨소?”

무엇이 말입니까?”

그러니까 그것이.”

 

춘향이 순간 할 말을 잃자 학도는 쿡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목을 가다듬었다.

 

미안합니다.”

사또께서 무엇이 미안하시단 말씀입니까?”

내가 더 잘 했어야 하는 거였습니다. 내가 더 현명하게 행동하고 그랬어야. 그래야지만 했던 겁니다.”

아니요.”

 

춘향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이건 학도의 탓이 아니었다. 학도는 그저 그녀를 위한 것을 한 것이었다.

 

나를 위해서. 내가 글을 배우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을 하여서. 그래서 그랬던 것 아닙니까?”

그렇지요.”

그게 이리 된 것입니다.”

 

너무 간단한 것이었다. 말을 내뱉고 보니 너무 간단해서 이상할 정도로 아무 것도 아닌 것이었다.

 

우스워요.”

무엇이 말입니까?”

그러니까.”

떠나겠습니까?”

?”

 

갑작스러운 학도의 말에 춘향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떠난다니. 이 사람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었다.

 

그게 무슨?”

이제 나는 더 이상 이 고을에서 사또 일을 하기가 싫소. 이곳 사람들이 얼마나 더러운 사람들인지. 추악하고 얼마나 이상하게 행동을 하는지. 그 모든 것을 알게 되었소. 그래서 나는 싫어요. 그러니까 우리 같이 떠나지 않겠소? 내가 다른 것은 몰라도 그대 하나는 지킬 수 있소.”

사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너무나도 우스운 일이었다.

 

저에겐 정인이 있습니다.”

그게 중요합니까?”

중요하지요.”

그 정인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이.”

 

몽룡은 지금 그녀의 곁에 없었다. 그녀를 지켜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춘향은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

 

그러니 내가 같이 떠나자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그대를 홀로 두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관기입니다.”

더 이상 아닙니다.”

? 더 이상 아니라니?”

적어도 남원에는 이제 관기가 없습니다. 모두가 자유로운 신분이 되었습니다. 그대는 더 이상 천한 기생이 아닙니다.”

 

눈물이 차올랐다. 더 이상 천한 신분이 아니라니. 더 이상 그런 것에 매이지 않아도 되는 몸이라니.

 

그 말씀은?”

나와 같이 가지 않겠소?”

 

춘향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자신에게 어떤 선택지가 있다는 것. 무언가를 골라도 된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