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장. 석구 3
“아주 좋아요.”
여론의 흐름을 들은 총리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렇게 상황이 유지가 된다면 굳이 우리가 위험한 일을 할 이유도 하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지요.”
3선 의원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안 그래도 영부인의 부탁을 그냥 듣기에는 부담스러웠는데 이렇게 되면 그 사람의 부탁도 들어주고 많이 편안한 것 아닙니까?”
“그렇지요.”
총리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렇게 쉬울 수가 없지요.”
“이렇게 일이 잘 풀리다니.”
“얼마나 좋습니까?”
“허허.”
두 사람 사이의 웃음이 점점 더 커졌다.
“그래 이제 대통령은 무얼 한답니까?”
“모르지요.”
총리는 미간을 모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이 상황에서 뭔가를 더 한다면 인정해줄 수 있을 거였다.
“자기 힘으로 뭐 하나 해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뭘 할 수 있을 리가 없는 법이지요.”
“그렇지요.”
총리는 이를 드러내고 서늘하게 웃었다.
“나보고 그만 두라고?”
“그럴 일이 있겠습니까?”
“그렇지요.”
총리는 턱을 어루만졌다.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거였다. 이 자리까지 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내가 이 자리를 어떻게 왔는데? 그 풋내기는 절대로 이해를 하지도 인정을 하지도 않을 겁니다.”
“그렇지요.”
“그대도 쉽지 않았잖아요?”
“물론입니다.”
총리는 입가에 더욱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나를 마음껏 밀어내라고 하세요. 그러면 나는 더 제대로 밟을 테니까. 대통령이 뭘 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힘들 겁니다.”
총리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뜨거운 차가 하나도 거북하게 느껴지지 않고 편안하게 만 느껴졌다.
“왜 우리에겐 숨긴 거죠?”
“그러니까.”
지아가 따지러 오자 도혁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일부러 말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굳이 말을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을 한 거였다.
“어차피 그쪽이랑은 상관이 없잖아요.”
“뭐라고요?”
“임길석 씨는 우리에게로 온 사람이고. 석구도 우리 사람이에요. 우리끼리 일어난 일이라고요.”
“아니.”
지아는 이마를 짚고 고개를 저었다. 이 상황에서도 편을 가른다는 것은 너무나도 우스운 일이었다.
“여기에서 그런 걸 왜 따져요?”
“뭐라고요?”
“어차피 우리들은 모두 다 생존자잖아요. 첫 섬이 달랐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모두 생존자인데. 도대체 그런 게 왜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애도 아니고 너무 유치한 거잖아요. 아니에요?”
“유치하다니.”
도혁은 미간을 모은 채 이마를 짚었다.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뭐가요?”
“이 상황이 아무렇지 않아 보여요?”
“아니요. 심각해 보여요.”
“그런데요?”
“그러니까 더 공유하자는 거죠.”
지아는 오히려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에서 밀린다면 다시는 이들에게 무슨 말을 하지 못할 거였다.
“그쪽 지금 되게 우스운 생각을 하고 있는 거 알아요? 바보가 아니라면 그러면 안 되는 거라고요.”
“나 참.”
도혁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물끄러미 지아를 응시했다.
“그래서 뭘 하자고요?”
“우리 모두 만나자고요.”
“뭐라고요?”
도혁의 얼굴이 굳었다.
“안 됩니다.”
“왜요?”
“왜라니?”
도혁은 할 말이 없었다. 이 사람들과 섬의 사람들이 만나지 않아야 하는 이유 같은 것은 없었다. 그냥 싫었다.
“그건 안 됩니다.”
“그쪽이 뭔데요?”
“네?”
“그쪽이 뭐 이쪽의 대표라도 됩니까?”
“네. 그렇습니다.”
도혁은 곧바로 지아의 말을 받았다.
“내가 이 섬의 대표입니다.”
“아니지.”
갑자기 들린 태욱의 목소리에 도혁의 얼굴이 구겨졌다. 태욱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네가 어떻게 우리들의 대표가 될 수 있어? 그건 말도 안 되는 거지. 너 그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거야.”
“너 정말?”
“왜?”
도혁이 이를 드러내자 태욱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은 채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도혁은 고개를 저었다.
“뭘 어떻게 하자는 거야? 너로 인해서 이 모든 사람들이 다 망가지기를 바라는 거야? 그런 게 아니라면 그만 둬.”
“그런 거 아니야.”
“그럼?”
“그냥 내 입장에서 대해서 말하는 거지.”
태욱은 가볍게 눈썹을 움직이며 씩 웃었다.
“도혁이 네가 우리의 리더가 아닌데 이런 식으로 이 사람이 하는 말을 막을 이유는 없는 거잖아.”
“정태욱. 저리 가. 이건 이 사람하고 나의 문제야. 우리가 그렇게 쉽게 모든 걸 다 열 수는 없어.”
“왜?”
“왜라니?”
도혁은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이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다 드러내면 바로 약점이 될 수밖에 없었다.
“너도 알잖아.”
“뭘?”
태욱은 지아의 곁에 서더니 장난스럽게 웃었다.
“너 설마 아직도 강지아 씨를 못 믿는 거야?”
“정태욱.”
“나는 믿어.”
태욱은 지아를 쳐다보며 씩 웃었다.
“그러니까 나는 이 사람에게 모든 걸 다 말을 할 수 있어. 내가 임길석을 죽게 만든 사람이에요.”
“뭐라고요?”
“정태욱!”
도혁은 고함을 지르고 지아는 움찔거렸지만 태욱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도혁을 묵묵히 응시했다.
“사람이 교양이 없이.”
“너야 말로 지금 교양 좀 찾아. 뭐 하자는 거야? 그 사람에게 지금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건데?”
“진실.”
“진실?”
도혁은 코웃음을 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무슨 진실?”
“석구의 행동.”
“야. 너 정말.”
“원래 정신병이 있었어요.”
태욱의 말에 도혁은 머리를 콱 쥐고 그대로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입을 벌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 정말?”
“그래서 내가 정말 아주 약간의 말을 했더니 그대로 임길석 씨를 죽여버리더라고요. 너무나도 간단하게.”
“농담이죠?”
“진지한 건데요?”
지아는 입을 막았다. 역겨웠다. 이 사람들하고는 그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돌아갈래요.”
“가지 마요.”
지아가 돌아서자 태욱이 곧바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
“이거 놔요!”
“가지 말라고요.”
지아는 뿌리치려고 했지만 태욱의 힘은 그녀가 뿌리치기에 너무 센 편이었다.
“이대로 가면 별로 우리에게 유리한 말을 하지 않을 거잖아요. 나 그런 거 별로 반갑지 않아요.”
“이거 놓아요.”
“그거 놔.”
“싫어.”
도혁이 자신에게 명령하듯 말하자 태욱은 검지를 들고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이를 드러내고 씩 웃었다.
“강지아 씨는 나를 믿지 않아요?”
“뭐라고요?”
“처음에 내가 왜 접근한 거라고 생각을 해요? 당신처럼 나대는 사람들은 오히려 속이기 쉽거든요.”
“그게 무슨?”
지아의 눈이 흔들렸다. 혼자서 오면 안 되는 거였다. 누구라도 남자가 있어야 이 상황을 피하는 거였는데.
“일단 이거 놓고 이야기 해요.”
“그럼 달아날 거잖아.”
지아가 손톱으로 태욱의 팔을 긁어서 피가 맺힐 정도였지만 태욱은 얼굴 하나 꿈쩍이지 않았다.
“그 정도를 가지고 달아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면 애초에 나는 당신을 잡지 않았어요.”
“이거 놓으라고요!”
“그거 놓으라고!”
그때 윤태의 목소리가 들리던 그대로 태욱이 뒤로 나가떨어졌다. 윤태의 뒤로 윤한과 시우도 나란히 섰다.
“괜찮아요?”
“어? 어.”
“이거 뭐야?”
태욱은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를 툭툭 털며 싸늘하게 웃었다.
“무슨 기사단이야?”
“그래.”
윤태가 지아의 앞을 막았다.
“더러운 새끼들.”
“미친.”
“사람을 죽여 달라고 부탁을 한 적 없어. 우리는 그저 임길석 그 사람에 대해서 너희들이 알기 바란 거야.”
“그게 죽여 달란 거지.”
“아니.”
태욱의 능글맞은 말에 윤태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지아의 손을 꼭 잡고 지아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아는 심호흡을 하고 앞으로 나섰다.
“우리는 그냥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 공유하고자 한 것이 전부에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에요.”
“공유라.”
태욱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군요.”
“아무튼 우리는 이 섬의 모든 사람들하고 다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싫습니다.”
“대화라.”
태욱은 턱을 어루만지며 고개를 저었다. 도혁은 침을 꿀꺽 삼키고 한숨을 토해낸 후 미간을 모았다.
“우리 사람들도 물어보죠.”
“그럼 저녁에 보죠.”
윤태는 한 번 더 태욱을 노려봤다. 지아는 윤태의 손을 꼭 잡고 고개를 저었다. 굳이 부딪칠 이유는 없었다.
“돌아가요.”
윤태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람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태욱은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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