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장. 국
“주태식 씨. 이것 좀 봐줄래요?”
“좋네요.”
지우가 끓인 미역국을 맛보며 태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깔끔하네요.”
“미역국에 달걀도 푸는 건 처음 봤어요.”
“전에 어떤 식당에 갔더니 미역국을 이렇게 주기도 하더라고요. 이상할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하나도 이상하지 않고 오히려 부드럽게 다가오더라고요. 크게 나쁘지 않으니까. 가볍게 즐길 수 있을 거 같아요.”
지우는 입을 내밀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달걀을 푼 미역국은 다른 것보다 부드러웠다.
“맛있어요.”
“다행이네요.”
태식은 미소를 지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저기.”
“음식 안 나와요?”
“어. 나가.”
준재가 주방에 불쑥 얼굴을 내밀자 지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갔다 .태식은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 저 꼬맹이가.”
“생선 사올게요.”
“내가 갈게.”
“제가 가도 되는데요?”
“아니.”
준재가 가려고 하자 지우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이제 곧 식당 일을 그만 두게 되는데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조금이라도 더 하고 싶어. 감사하다고도 자주 말씀을 드려야 하고.”
“알겠습니다. 다녀오세요.”
준재는 미소를 지으며 지우개의 줄을 지우에게 건넸다. 지우를 배웅하고 돌아서려는데 태식이 그에게 불쑥 다가왔다.
“깜짝이야.”
“너 뭐야?”
“뭐가요?”
“마음에 안 들어.”
태식은 이러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아저씨 뭐야?”
준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저었다.
“혹시 금요일 저녁에 일정 있으세요?”
“일정? 그런 게 있을 게 뭐가 있어?”
지우의 물음에 생선 가게 아주머니는 웃음을 터뜨리며 손사래까지 치며 고개를 단호히 저었다.
“아줌마가 그런 게 있나.”
“그럼 식사 하러 오세요.”
“응?”
“저 이제 식당을 그만 두니까. 아주머니들에게 맛있는 식사 한 끼 제대로 대접을 하고 싶어서요.”
“어유.”
지우의 말에 생선 가게 아주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됐어.”
“왜? 언니 가자.”
과일 가게 아주머니는 입장이 다른 모양이었다.
“우리 여기 식당가서 밥 한 번 안 먹었잖아.”
“그래도.”
“한 번은 가야지.”
“제가 대접하는 거예요.”
“됐어.”
지우의 말에 과일 가게 아주머니는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자기가 여기에서 생선 가져가는 거 마진만 해도 이 언니 괜찮아. 그리고 동네 가게 우리가 먹어줘야 장사가 되지.”
“아니 집밥 놔두고.”
“이제 그만 한다잖아.”
생선 가게 아주머니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금요일에 갈게. 몇 시에 갈까?”
“일곱 시 어떠세요?”
“시간이 너무 이르지 않아?”
“갈게. 갈게.”
과일 가게 아주머니는 눈을 찡긋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람은 내가 데리고 갈 테니까. 자기는 너무 신경을 쓰지 말아. 그럼 조심해서 가요. 조심해서.”
“네. 안녕히 계세요.”
지우는 싱긋 웃어 보이고 돌아섰다. 그래도 일단 하나하나 식당을 그만 둘 준비를 하는 기분이 꽤나 묘했다.
“아저씨 저한테 화났어요?”
“아니.”
쌀을 씻는 태식의 반응에 준재는 입을 내밀었다.
“뭐가 있는데?”
“있기는 뭐가 있어?”
“아무 것도 없는데 이런다고요?”
준재의 반응에 태식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입을 쭉 내밀었다.
“너 뭐야?”
“뭐가요?”
“마음에 안 들어.”
“에?”
태식은 이렇게 말하고 준재의 머리를 세게 한 대 쳤다.
“도대체 뭐예요?”
“그냥 마음에 안 들어.”
태식은 이러고 그대로 주방을 나가버렸다. 준재는 씻던 쌀을 보며 미간을 모았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아저씨 이 쌀은!”
“네가 씻어.”
“네?”
준재의 당황스러움을 뒤로 하고 태식은 멀어졌다.
“도대체 뭐야?”
“이제 와요?”
“아.”
태식이 식당 앞까지 마중 나오자 지우는 밝게 웃었다. 태식은 재빨리 지우의 손에서 장바구니를 받아들었다.
“뭐예요?”
“나도 그만 둘래요.”
“네?”
“식당요.”
태식의 말에 지우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지우는 숨을 멈췄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하려다 단골이었던 아저씨를 보고 곧바로 그리로 뛰어갔다.
“아저씨 오랜만이에요.”
“아유. 요즘 못 가서 미안.”
“아니에요.”
아저씨의 사과에 지우는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요즘 손님이 너무 많아서 아저씨가 오실 수 없을 거 같아서 제가 오히려 죄송하게 생각을 하고 있는 걸요.”
“알기는 아네.”
“그럼요.”
지우는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 금요일까지만 식당을 할 거에요.”
“그럼 식당 문을 닫아?”
“아니요. 이 사람이 해요.”
지우는 옆에 서있던 태식을 잡아끌었다.
“저보다 훨씬 더 경험도 많고 잘 하는 사람이에요.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래서 제가 동네 분들에게 식사 대접을 할 거거든요. 아저씨도 저녁에 괜찮으시면 같이 식사하러 오실래요? 일곱 시요.”
“내가 가도 돼?”
“그럼요. 아저씨가 최고의 단골인 걸요?”
“그려. 내가 꼭 올게.”
“고맙습니다.”
지우는 아저씨에게 밝게 웃으며 그가 없어질 때까지 그곳을 쳐다봤다. 그리고 입을 다물고 태식을 쳐다봤다.
“뭐라고요?”
“식당 그만 둘 겁니다.”
“주태식 씨.”
지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게 무슨?”
“일단 영업 하죠. 손님도 많은데.”
지우는 그제야 식당 앞에 기다리는 손님들이 보였다. 지우는 입술을 꼭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알겠어요.”
태식은 먼저 식당에 들어가는 지우를 보고 어색하게 웃었다.
“식당을 그만 두다뇨?”
마지막 손님이 나가기가 무섭게 지우는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돌아섰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니.”
“뭐예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준재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아저씨가 식당을 그만 두면요?”
“내가 이 식당에 있을 이유가 없겠더라고요. 꼬맹이가 이 식당을 너무 잘 운영하고 있기도 하고요.”
“저는 주태식 씨가 이 식당을 지켜준다고 해서 그만 둘 수가 있는 건데요.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우가 흥분하자 태식은 지우의 양팔을 붙잡고 고개를 저었다.
“같이 가자고요.”
“어디를요?”
“여행이요.”
“그게 무슨?”
지우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단 한 번도 생각도 해보지 않았던 말을 지금 태식이 하는 거였다.
“그러니까 그게.”
“장지우 씨를 아무리 생각해도 혼자서 보낼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내가 어떤 것을 해야 할까 고민을 하니까. 같이 가면 되는 구나. 이렇게 간단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게 무슨?”
지우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럴 수 없었다.
“분명히 계약서에는.”
“내가 그만 두면 안 된다는 건 없죠.”
“뭐라고요?”
“확인을 해봐요.”
태식의 능청스러운 말에 지우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벌렸다. 하지만 태식은 꽤나 덤덤했다.
“장지우 씨도 알고 있는 것처럼.”
“그럼 제가 계속 할 거예요.”
“그러지 마요.”
“뭘. 그러지 마요?”
지우는 한숨을 토해내며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거 말도 안 되는 거잖아요. 도대체 준재가 혼자서 이 식당을 어떻게 운영을 해요? 말이 안 되잖아요.”
“저기.”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준재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할 수 있는데요?”
“뭐라고?”
“할 수 있어요.”
준재는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새로 이모님도 오기로 했고. 저 여기 일이 꽤나 능숙하고. 주말 일은 형진이가 도울 수 있다고 했거든요.”
“하지만.”
“영원히 안 돌아오실 거 아니잖아요?”
준재의 물음에 지우는 아랫입술을 물었다. 자신은 언젠가 이 식당을 다시 돌아올 거였다. 그럴 거였다.
“그때까지 지킬게요.”
“잠깐만.”
지우는 태식을 밀어냈다.
“일단 생각 좀 할게요.”
“네. 그래요.”
“둘 다 나가요.”
준재와 태식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고 짐을 챙겼다. 두 사람이 나가고 지우개가 식당으로 들어왔다. 지우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대로 문을 닫았다. 그리고 불을 끄고 지우개를 품에 안았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걸 선택을 해야 할지. 이제 중요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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