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장. 달이 찬다.
“왜 이렇게 화가 나있니?”
“우리 아가씨가 멍청해서 그런다.”
“응?”
향단의 말에 방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은 감히 몽룡에게 한 번도 할 수 없었던 종류의 말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니?”
“뭐가 말이냐?”
“아니 어찌 모시는 아가씨에게.”
“내가 춘향 아가씨를 모시면 이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거라니?”
“어?”
몽룡은 멍해졌다.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도련님이 가끔 멍청한 짓을 하더라도 감히 말을 하지 못한 그였다.
“그거야 당연히.”
“너는 맹추구나.”
“뭐라고?”
방자는 발끈했다. 아무리 어린 것이 맹랑하다고 하더라도 자꾸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유쾌하지 않았다.
“너는 나를 무어로 보느냐?”
“뭐가?”
“내가 너보다 나이가 한참이나 많다.”
“그래서?”
“뭐?”
“나이가 많다고 다 어른이니? 바보.”
향단의 대답에 방자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렇게 조그맣던 계집이 언제부터 이리 말을 잘 한 것인지.
“아가씨에게 많이 배웠구나?”
“그럼. 많이 배웠지. 그런데 네가 모시는 도령은 이게 뭐하는 짓이라니? 멀쩡한 사람 대구빡을 깨놓고.”
“대구빡이 뭐야. 대구빡이.”
“그래. 대가리.”
“이게.”
방자가 순간 손목을 잡자 향단의 얼굴이 붉어졌다. 방자도 헛기침을 하며 재빨리 그 손을 놓았다.
“미, 미안.”
“맹추.”
“응?”
“하여간 너는 맹추다.”
향단은 이 말을 남기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방자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그 집에 안 가면 안 되겠소?”
학도의 낮은 목소리에 춘향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가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허나 이 집에 계속 머무르는 것은 불편했다.
“사또 댁에 계속 있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있으니 어려모로 불편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나는 괜찮소.”
“사또.”
“부디.”
학도의 간절한 목소리에 춘향은 침을 삼켰다. 학도가 왜 저리 구는 것인지 알기에 더욱 미안한 그녀였다.
“내가 지금 춘향이 그대에게 뭐 어려운 것을 바라는가? 내 반려자가 되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네. 그저 내 곁에 있어달라고 하는 것이야. 지금 내가 바라는 이것이 그리 큰 문제라는 것인가?”
“그것이.”
그리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었다. 그리고 학도가 자신에게 해준 것을 생각을 하면 당연한 것이었다. 자신은 오히려 너무 적은 것을 학도에게 해주는 중이었다. 그래서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내가 지금 그대에게 바라는 것이 그리 말도 안 되는 억지가 아니라는 것은 그대도 알고 있지 않소?”
“허나 이 댁에 있는 것은 불편합니다.”
“춘향이 그대.”
“그만 두시지요.”
무영은 미소를 지은 채로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나까지 있는 자리에서 이게 무슨.”
“맞습니다.”
춘향은 재빨리 끼어들었다.
“그러하지요.”
“나 참.”
학도는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무슨 말을 더 하고 싶었지만 가슴이 답답할 따름이었다.
“술잔에 달이 떴소.”
“그러네요.”
“내 눈에도 늘 그대가 있소.”
춘향은 침을 삼켰다. 너무 고마운 사람이었다. 너무나도 고마운 사람이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어떻게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저 고맙다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다 받아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분명히 저에게 그러시지 않았습니까? 저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렇다면 제가 떠나도 된다고 그리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사또 곁에 그저 머무르는 것입니다. 혹여나 사또께서 다른 것을 바라신다면 저는 사또를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매정해도 이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어찌 그러오?”
학도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어찌 그리 매정하게만 구시오. 내가 그대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것을 해주고 있는데. 얼마나 많은 것들을 하는데.”
“그것이 불편합니다.”
“불편해요?”
“예. 불편합니다.”
춘향은 덤덤히 고백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것 숨길 이유가 없었다. 그녀가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말을 해야만 했다.
“사또께서 좋은 분입니다. 정말로 감사한 분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괜찮은 것은 아닙니다. 사또께서 하시는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도 저에게 너무 큽니다.”
“그래서 그리로 돌아간다?”
“싫으면 원래 집으로 가겠습니다.”
춘향은 물끄러미 학도를 응시했다. 학도는 잠시 그런 춘향을 응시하더니 웃음을 터뜨리고 고개를 저었다.
“내가 거절하지 못할 것을 아는군.”
학도는 쓴웃음을 지으며 술을 들이켰다.
“술이 쓰구나.”
“사또. 찬도 좀 드시면서.”
“되었다.”
학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이몽룡 그 자에게 보내는 것은 하지 못해도 너를 네 집으로 가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지.”
“고맙습니다.”
“대신 지금 바로는 갈 수가 없다. 그 집은 사람이 살 수 없는 집이라고 하였다. 내가 그 집을 고칠 것이다. 무영아.”
“예. 사또.”
“아닙니다.”
춘향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 학도에게 폐를 끼칠 수 없었다. 이건 스스로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 정도는 저와 향단이가 할 수 있습니다.”
“여인 둘이서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 무영 님이 도와주십시오.”
춘향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무영은 잠시 망설이며 학도를 쳐다봤고 학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되겠구나.”
“허면 사또는.”
“별 일이 없을 거다.”
학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어디 다른 이들에게 쉬이 당할 사람이란 말이냐? 무영이 너는 나를 너무 무시하는구나?”
“그런 말씀이 아니라.”
“그런 말씀이 아니면 그만 하거라.”
“에 알겠습니다.”
무영은 술을 단숨에 비운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래.”
“저기.”
“그대는 여기에 좀 있으시게.”
무영은 춘향에게 짧게 고개를 숙이고 멀어졌다. 춘향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대가 왜 죄송한가?”
“늘 저에게 많은 것을 해주시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저를 위해서 뭐라도 해주려고 하시는 것 압니다. 허나 그러실 이유가 없습니다. 사또께서 자꾸만 이러시면 저는 너무 죄송합니다.”
“그저 내가 좋아 이러는 것이다.”
학도가 다시 술을 따르려고 하자 춘향은 재빨리 병을 빼앗아 자신이 따랐다.
“무얼 하는 겐가?”
“그것이.”
“그대는 기생이 아니다.”
학도가 화를 내자 춘향은 침을 삼켰다.
“내 그대를 기생으로 생각을 하지 않는데. 내가 그대를 천하게 보지 않는데.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인가?”
“그냥 죄송해서 그렇습니다.”
“죄송?”
학도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나를 떠나지 마시게.”
“그것은.”
“그토록 싫었던 기생이 하던 일은 쉬이 할 수 있으면서도 내 곁을 떠나지 않는 일은 하지 못한다.”
학도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술을 마시고 연거푸 따라 마셨다.
“술이 하나도 취하지 않소.”
“사또.”
“알고 있습니다.”
학도는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에게 내가 이럴 자격이 없다는 것을.”
춘향은 안타까운 시선으로 학도를 응시했다.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다 그녀의 잘못이었다.
“내가 무엇을 하더라도 그대에게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너무 힘들고 또 힘듭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럼?”
“죄송해서 그렇습니다.”
“죄송?”
학도의 눈썹이 올라갔다. 학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
“내가 그대를 사모하오.”
“사또!”
춘향은 새된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저었다.
“어찌 그런?”
“왜 그러시오?”
“예?”
“이런 말을 그 자에게 듣지 못한 것 아니오?”
“그것이.”
학도의 말이 옳았다. 그래서 한 마디 말을 할 수 없었다. 몽룡은 한 번도 들려주지 않았던 말이었다.
“그러니 그것이.”
“내가 그대의 자존심을 망가뜨리는 것이 아니오. 오히려 그대가 자존심을 챙기기 바라서 이러는 것입니다.”
“자존심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하지 않다?”
학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가 그 누구보다도 귀히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귀한 것을 몰랐다.
“어찌 그런.”
“저에게는 그 분이 중합니다.”
“춘향. 그대는.”
“죄송합니다.”
춘향은 아랫입술을 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은 내일 아침에 치우겠습니다.”
“그럴 것 없소.”
“사또. 하오나.”
“무영이 지금 집을 정리했을 것이오.”
춘향은 멍해졌다. 그 이야기는 아까 무영이 나간 이유가 지금 자신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춘향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어찌.”
“가시게.”
춘향은 잠시 학도를 쳐다봤다. 그리고 깊이 고개를 숙이고 돌아섰다. 학도는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술을 가득 따랐다. 술은 하나도 취하지 않았고, 그저 슬픔을 고조시킬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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