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이 장. 하늘도 피고
“도대체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리 오신 겁니까? 이리 일이 많고 또 일이 많아서 견딜 수가 없는데.”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지.”
“당연히는.”
향단은 손에 들고 있던 걸레를 던지며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마루를 몇 번이나 훔치는지 아십니까?”
“계속 훔쳐야지.”
“아가씨.”
“어허. 어서 손을 놀리지 못할까? 사람이 살지 않은 집이라 폐가나 다름이 없는 집이다. 관리가 잘 되어서 다행히 무너지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사람의 때가 묻을 때까지 노력을 해야 할 게야.”
“허나.”
“어이고. 왔구먼.”
그때 문으로 옆집 무주댁 아주머니가 나타났다. 춘향은 걸레를 내려놓고 공손히 자리에 앉아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이에요.”
“집에 영영 안 오는 줄 알았더니.”
“집을 두고 어디에 가요.”
“그러니까. 그래도 집이 괜찮아.”
“그러게요. 사람이 살지 않는 집 치고는 괜찮아요.”
“사또가 얼마나 노력을 했는데.”
“예?”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무주댁 아주머니는 권하지도 않았는데 마당에 앉아서 손부채질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동안 마을 사람들에게 부탁을 해서 이 집을 지킨 것이 바로 사또야. 사람을 써서 이것저것 챙겼다고.”
“정말로요?”
“몰랐어?”
“예. 몰랐습니다.”
“어이고.”
춘향의 반응에 무주댁 아주머니는 입을 가리고 어색하게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기둥을 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먼지가 앉기는 했지만 사람이 이 년이나 비운 집이 아무렇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을 한 거야?”
“그러게요.‘
춘향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 시간 동안 집이 아무렇지도 않을 수는 없었다. 그건 기적이나 다름이 없는 일이었으니까.
“월매 언니도 자네가 사또랑.”
“고맙습니다.”
“그래. 그래.”
춘향이 말을 끊자 왜 그러는지 알고 있는 무주댁 아주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춘향의 어깨를 한 번 꼭 잡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씩 웃고 밖으로 나갔다. 춘향은 어색하게 웃으며 그 자리에 서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셔요?”
“사또는 왜 그러실까?”
“뭐가요?”
“너무 하잖아.”
춘향의 말에 향단은 입을 삐죽 내밀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사또처럼 아가씨에게 잘 해주시는 분이 없는데 그것도 지금 불만이라고 하시는 겁니까?”
“아니 아무리 나에게 잘 해주시는 분이라고 하더라도 이것은 아니지. 내가 너무 부담스러우니 말이다.”
“부담스러울 것도 많습니다.”
“향단아.”
“그냥 받으시면 되지요.”
“아니.”
향단의 간단한 말에 춘향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냥 받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사또가 도대체 왜 나에게 이러시는 것이야? 아무리 이래도 내가 자신의 마음을 받을 일이 없다는 것을 아시면. 이제는 그만 하여야 할 것이 아니야. 도대체 왜 그리 미련하게 행동을 하셔?”
“그게 좋아하는 마음이니까요.”
“그렇지.”
향단의 대답에 춘향은 가만히 웃으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사람의 마음이었다. 마음을 어떻게 해보려고 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내 것임에도 움직이는 않는 것이 마음이었다.
“그래서 너무 죄송하다. 아무리 사또가 그러셔도 나는 사또를 볼 생각이 전혀 없으니 말이다.”
“도대체 왜요?”
“응?”
향단의 도발적인 물음에 춘향은 고개를 돌렸다.
“그게 무슨 말이니?”
“아니 사또가 그리 아가씨에게 잘 해주시는데 도대체 왜 그리 사또를 밀어내고 또 밀어내시는 겁니까?”
“잘 해주신다고 해서 내가 무조건 그 마음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니? 그건 아니다. 너도 혹여나 누군가가 너를 좋아한다고 하면 한 번 더 생각을 해보려무나. 그거 무조건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거야.”
“그건 그렇지만.”
향단은 아랫입술을 살짝 물고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가씨도 사또를 보는 마음이 영 없는 것이 아닌 것 같아서. 내가 그래서 하는 말씀입니다.”
“그래. 고마운 분이지.”
춘향은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고마운 마음과 연모의 마음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나에게는 몽룡 도련님이 있다.”
“또.”
“왜?”
“아니 도대체 그 분이 무어인데요?”
“내 첫 정인이다.”
“아가씨.”
“또 잔소리.”
춘향은 작게 웃음을 터뜨리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서 가만히 향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언제 이리 컸누.”
“아가씨. 제발 아가씨부터 생각을 하셔요. 저도 시집을 가고 그러면 누가 아가씨를 챙기겠습니까?”
“시집을 가려고?”
“아니 그게 아니라.”
향단의 얼굴이 눈에 띄게 붉어졌다. 춘향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향단이 이런 생각을 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 방자가 그리 좋아?”
“누가 방자 놈이 좋다고 합니까?”
향단은 춘향의 손을 밀어내며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냥 말이 그렇다고요.”
“고집도.”
“아가씨 고집만 하겠습니까?”
“그래.
춘향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나를 쏙 닮았구나.”
“이리 붙어 있는데 안 닮을 리가요.”
“그래. 그렇겠지.”
향단의 대답에 춘향은 더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벽에 걸린 월매의 그림을 보고 한숨을 토해냈다.
“내 사또에게 다녀오마.”
“같이 갈까요?”
“아니다. 아마 방자가 올게다.”
“예? 방자 놈이 왜?”
향단이 자신의 옷깃을 만지며 하는 말에 춘향은 고개를 저었다.
“아마 글을 배우러 올 거야.”
“허락을 받았을까요?”
“그렇겠지.”
춘향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몽룡이 말도 안 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이것까지 막지는 않을 거였다. 그리고 방자도 꽤나 고집이 있어서 쉽게 밀리지 않을 거였다.
“네가 그리 방자를 무시하더라도 방자도 영 바보가 아니니 말이다. 자기가 할 일은 할 것이야.”
“과연 그럴까요?”
“그럼.”
춘향의 대답에 향단은 입을 삐쭉 내밀었다.
“모르겠습니다.”
“그럼 좀 보려무나.”
“예. 그럼 다녀오십시오.”
“그래.”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집은 어떠한가?”
“고맙습니다.”
“무엇이?”
“다 들었습니다.”
춘향의 대답에 학도의 얼굴에 어색함이 묻어났다. 춘향은 짧은 한숨을 토해내며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왜 저에게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 동안 제 집을 지켜준다 왜 하지 않으신 겁니까?”
“돌아간다고 할 것이니까.”
“그거야.”
춘향은 아랫입술을 꼭 물었다. 그 집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을 알면 자신이 돌아가기에 말을 하지 못했다. 너무 미안했다. 학도가 자신으로 인해서 이런 선택을 한다는 것이 또 미안했다.
“도대체 왜 그러신 것입니까? 그리 지키지 않으셔도 되었을 겁니다. 그게 더 사또의 뜻과 가까운 것이 아닙니까?”
“그렇겠지.”
학도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미소가 너무 힘이 없어서 춘향은 아랫입술을 물었다 어색하게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어머니 그림은.”
“잘 그렸던가?”
“예. 너무 좋았습니다.”
“그래. 다행이네.”
“허나 그것이.”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이야.”
춘향의 말이 끝이 나기도 전에 학도는 고개를 저었다.
“그림쟁이를 불러서 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린 것이네.”
“예? 사또께서 직접이요?”
“그래. 내가 그 정도 재주는 있는 사람이야.”
학도는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환쟁이 것인 줄 알았나?”
“예.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그렸네. 그대가 그 일을 당하고 어머니 임종도 지키지 못하여.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였어.”
“고맙습니다.”
춘향은 입술을 꼭 다물었다. 그 모든 한을 학도가 풀어주는 것 같았다. 너무 고마운 사람이었다.
“하오나.”
“내가 이제 일이 많으네.”
“사또.”
“돌아가주겠나?”
부드러우면서도 위엄이 있는 목소리. 아마 춘향이 하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는 것일 거였다.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음에 뵙지요.”
“그래. 그럼 가시게.”
“예.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춘향은 고개를 숙였다. 학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보고 싶으면서도 보고 싶다고 할 수 없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춘향은 마음이 불편했지만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정말 왔구나?”
“응?”
집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하는 향단의 말에 방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말이니?”
“아가씨가 네가 올 거라고 하더구나.”
“어찌 아시고?”
“그러니 말이다.”
향단은 입을 쭉 내밀고 심드렁한 척 대답했다.
“머리는 좀 괜찮니?”
“그럼. 괜찮고 말고.”
“하여간 무식한 것이 대가리는 튼튼한 모양이다. 그리 벼루를 맞고도 아무렇지도 않으니 말이다.”
“너 말이 좀 심하지 않니?”
“무엇이?”
향단은 입을 내밀고 별 것 아니라는 듯 대꾸했다. 방자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가씨는 어디에 갔니?”
“밥은 먹었니?”
“밥은 왜?”
“밥 먹었느냐고?”
“안 먹었다.”
“미련하긴.”
향단은 이 말을 남기고 그대로 나가버렸다. 방자는 눈만 끔뻑끔뻑하며 멍한 표정을 지으며 미간을 모았다.
“도대체 뭐라는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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