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삼 장. 방자의 글공부
“밥은 왜 갑자기?”
“먹고 하래도.”
“나 참.”
방자는 미간을 모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신은 공부를 하러 온 것인데 갑자기 왜 밥을 주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것을 주는 이유가 뭐니?”
“밥을 주는데 이유가 필요하니?”
“당연하지.”
“멍청하긴.”
방자는 여전히 멍한 표정을 지었다. 향단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방자에게 밥상을 밀었다.
“얼른 먹어라.”
“이거 나 줘도 되는 거니?”
“왜 그러니?”
“아니.”
방자는 침을 꿀꺽 삼켰다. 당장이라도 먹고 싶은. 그리고 먹어야만 하는 음식들이 상에 가득이었다.
“이걸 정말 나를 줘도 되는 거니?”
“왜?”
“아니.”
“먹기 싫으니?”
“먹기 싫다는 게 아니다.”
향단이 숟가락을 가져가려고 하자 방자는 자신도 모르게 숟가락을 피했다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한 번도 먹지 못한 것이다.”
“아가씨께서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치면서 이리저리 받은 것들도 있고. 쌀도 아가씨에게 나오니까.”
“쌀이 나온다고?”
“응.”
“왜?”
“선생이니까.”
“선생.”
방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인이 선생이라니. 쉽게 생각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이 춘향은 선생이었다. 그와 몽룡이 없던 시간 동안 남원은 이 만큼이나 변했다.
“그러니 얼른 먹어라.”
“고맙구나.”
“그래야 공부를 하지.”
방자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향단은 그런 방자를 보며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예서 뭐하고 있니?”
“오셨습니까?”
춘향이 집으로 돌아오자 향단이 반갑게 맞으며 대청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왜 이리 늦으셨습니까?”
“기다렸니?”
“그럼요.”
“아.”
댓돌에 놓인 신발을 보고 춘향은 쿡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논 고래를 절레절레 흔들고 향단을 묘하게 쳐다봤다.
“왜 방에 안 있고.”
“아가씨. 남녀칠세부동석입니다. 아가씨도 아시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제가 저 방에 같이 있습니까?”
“방자가 사내로 보이니?”
“그럼 계집입니까?”
“어머 얘.”
“아무튼요.”
향단은 볼을 부풀리고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그렇습니다.”
“그래. 내 준비를 하마. 먹을 것이라도 주지.”
“안 그래도 밥을 줬더니 안 먹는다, 뭐 어쩐다 하더니. 한 그릇 더 처해서 처먹었습니다. 하여간 대가리에 들은 것 없는 놈이 무슨 식탐이 그리 많은 것인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너는 말을 해도.”
“왜요?”
“되었다.”
춘향은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향단은 자기 나름대로 방자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기다리라 일러라.”
“예. 알겠습니다.”
향단을 향해 한 번 웃어 보이고 춘향은 방으로 들어섰다.
“동의를 구하였소?”
“허락을 받았습니다.”
“아니.”
춘향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허락이 아니지요.”
“예?”
“허락이 아니라 동의여야 합니다. 그대가 누군가의 소유물이 아닌데 무슨 허락이 필요하단 말입니까?”
“소유물입니다.”
방자의 쓸쓸한 대답에 춘향은 침을 꿀꺽 삼켰다.
“허나.”
“괜찮습니다.”
방자는 밝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련님은 나쁜 분이 아닙니다. 지금 아가씨가 어떻게 생각을 하는지 알고는 있으나 그렇지 않습니다.”
“도련님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그대가 지금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말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충분히 좋습니다. 편안합니다. 다른 집에 있는 종놈들보다 한참이나 편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건.”
춘향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방자가 이렇게 말을 하는데 굳이 뭐라고 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가씨께서 왜 저에게 그리 말씀을 해주시는지 알고 있습니다. 너무 감사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저의 모든 것을 다 바꿀 수 있다고 믿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그건 뭔가 도련님에게 너무 잔인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잔인하다.”
춘향은 방자의 말을 따라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에게 어떤 말이 잔인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다.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방자가 이리 말하는데 뭐라 할 수 없었다.
“그럼 그리 하지요.”
“고맙습니다.”
“그럼 이제 글을 배워볼까요?”
“글을 어찌 배우니?”
“무슨 말이니?”
집으로 돌아가려 나서던 방자는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저었다.
“원래 저리 열성이시니?”
“당연하지.”
“대단하시다.”
“무엇이?”
“아니.”
방자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말로 인해서 향단이 괜히 기분이 나쁠 수도 있었다.
“그냥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다. 아가씨가 정말로 대단한 분이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구나.”
“그래서 이제 글은 좀 배웠니?”
“매일 배워야지.”
“그래.”
향단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는데 방자가 그녀를 두고 휙 지나갔다.
“그럼 내일 보자.”
“마음대로.”
향단은 혀를 내밀고 익살맞은 표정을 지었다. 방자는 웃음을 터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멀어졌다.
“멍청이.”
“네가 먼저 표현을 하래도.”
“아가씨.”
춘향이 옆으로 나타나자 향단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보아하니 방자 저 자는 너에게 자신의 마음을 먼저 고백할 그런 위인은 확실히 못 되는 거 같다.”
“그럼 저도 싫습니다.”
“거짓말.”
춘향은 향단의 코를 한 번 누르고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게 아니면서.”
“아가씨.”
“좋으면 그냥 좋다고 말을 해야 한다. 그리 망설이고, 또 망설이다가는 그리 잡지 못하게 돼.”
“아가씨에게 들을 말은 아닌 거 같습니다. 사또가 너무 불쌍하다는 말씀을 또 드려야 하는 겁니까?”
“알았다.”
춘향은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입술을 꾹 다물고 한숨을 토해냈다. 학도가 불쌍한 것은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나저나 밥을 그리 많이 주어서 어쩌누?”
“예?”
“우리 먹을 밥이 없다.”
“아. 지금 바로 하겠습니다.”
향단이 부엌으로 뛰어가는 것을 보며 춘향은 웃음을 터뜨렸다.
“저리 좋누.”
“아닙니다!”
부엌에서 나오는 향단의 항변에 춘향은 더욱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향단이 나아가는 모습이 참 고마웠다.
“다녀왔습니다.”
“그래.”
몽룡은 더 이상 별다른 말이 없었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그래. 유성댁이 해주어서 먹었다. 그런데 유성댁이 이제 우리 집에 오지 않는다는 말을 하던데 무슨 말이냐?”
“아. 이제 더 이상 신분이 천민이 아니니 돈을 주지 않으면 집에 와서 일을 하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무어라?”
몽룡의 방문이 벌컥 열렸다. 방자는 괜히 자신이 당황해서 목을 움츠렀다. 몽룡은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 우리 집에서 땅을 부쳐 먹는 주제에 지금 그러지 않겠다는 것이 말이 된다는 말이더냐? 그게 무슨.”
“그러니 그 땅을 부치는 것으로 값을 치룬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것으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밥을 알아서 지으라고.”
“말도 안 된다.”
몽룡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남원 고을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는 없었다.
“내 이것들을.”
“제가 하겠습니다.”
“네가?”
“예. 그리고 우리도 돈이 생기면 다른 사람을 쓰면 되는 겁니다.”
“그래. 계집종을 하나 사자꾸나.”
“안 됩니다.”
방자의 단호한 반응에 몽룡은 눈을 가늘게 떴다. 계집종도 하나 마음대로 사지 못하다니 이게 또 무슨 말인가?
“왜 그러한가?”
“더 이상 노비의 거래를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 무슨.”
몽룡은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고 하더라도 이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말이 되는 것인가?”
“도련님.”
“나는 양반이다.”
“망하셔죠.”
“이놈!”
몽룡이 고함을 질렀지만 방자는 눈 하나 껌뻑하지 않았다. 그리고 물끄러미 몽룡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련님도 달라지셔야 합니다.”
“뭐가?”
“이곳에 적응을 하셔야죠.”
“아니.”
몽룡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거였다.
“내가 왜?”
“아무튼 다른 이들을 물어보겠습니다.”
“고얀, 고얀.”
몽룡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방자는 한숨을 토해냈다. 몽룡이 점점 더 고집만 세지는 것 같아서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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