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장. 남으려는 사람들 3
“뭐하는 거야?”
“너야 말로 뭐하는 거니?”
영애의 반문에 영부인은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이리저리 몸을 풀었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냈다.
“네가 지금 누리고 있는 그 많은 것들. 누가 만들어준 거라고 생각을 해? 내가 만든 거라는 거 모르니?”
“엄마.”
“다 내가 한 거야.”
영부인은 씩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네 아버지가 뭐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니? 아니. 그 사람 아무 것도 할 줄 몰라.”
“그걸 엄마가 어떻게 알아?”
“내가 왜 모르니?”
영부인은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침대에 앉았다. 그리고 익숙하게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나는 대통령이 되는데 실패했어. 하지만 그건 내가 여성이라서 그런 거야.”
“아니.”
지희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영부인은 여성이라서 대통령이 되지 못한 게 아니었다. 너무 이기적이어서 불가능한 거였다.
“내가 얼마나 뛰어났는지 아니? 하지만 네 할아버지는 나를 전혀 정치 후계자로 생각하지 않았어.”
“엄마가 이기적이니까.”
“뭐?”
영애의 말에 영부인의 얼굴이 더욱 구겨졌다.
“그게 무슨 말이니?”
“엄마는 지금 이 상황에서도 아빠에 대한 그저 원망. 그거 하나로 사람들을 구하지 못하게 하는 거잖아.”
“아니.”
영부인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멀리 담배 연기를 뿜으며 숨을 크게 쉬었다.
“그런 거 돈이 얼마나 드는 줄 알아?”
“뭐?”
“돈이 우선이야.”
“돈?”
지희는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사람을 구하는데 돈 이야기가 우선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돈?”
“그럼 돈이 안 중요해?”
“안 중요하지.”
“딸.”
영애의 말에 영부인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물끄러미 영애를 보고 씩 웃었다.
“딸도 곧 알게 될 거야. 사람들은 무조건 옳은 일에 나서지 않아. 아니지. 모두가 옳다고 생각하는 게 다른 거지.”
“뭐라고?”
“어쩔 수 없는 거야.”
영부인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네가 아무리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더라도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그게 무슨.”
지희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도 나가야겠다.”
“뭐?”
영부인은 아랫입술을 물었다.
“딸.”
“됐어.”
지희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리고 물끄러미 영부인을 바라보며 서늘하게 웃고 고개를 저었다.
“엄마가 뭘 원하건 나는 엄마 인형이 아니야.”
“딸.”
“됐어.”
지희는 그대로 방을 나갔다. 영부인은 서러운 눈으로 방문을 노려봤다. 그리고 이내 서늘하게 아랫입술을 물었다.
“어떻게 할 거예요?”
“그러게요.”
기쁨의 물음에 재율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나는 잘 모르겠어요.”
“아무 걱정이 없어요?”
“음.”
재율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할 게 뭐가 있어요?”
“뭐라고요?”
“그런 거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거 없잖아요. 그렇게 걱정이 되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거죠.”
“뭐.”
재율의 간단한 말에 기쁨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왜 그래요?”
“뭐가요?”
재율은 자리를 바로 잡아서 물끄러미 기쁨을 응시했다. 그리고 이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그런 걸 왜 나에게 물어요?”
“네?”
“누나는 나가려고요?”
“나가야죠.”
기쁨의 말에 재율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왜 그래요?”
“나는 안 나가려고요.”
“뭐라고요?”
“무서워요.”
재율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는 나간다고 해서 살아날 가능성이 더 커진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적어도 이 섬은 우리가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사람들도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것은 알겠죠.”
“안다고요?”
기쁨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누가 아는데요?”
“모두요.”
“그런데 안 온다고요?”
“네. 안 오는 거죠.”
재율이 힘을 주어 말하자 기쁨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말 그대로요.”
재율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지금 여기에 있었던 것이 한 달 보름이에요. 그런데 그 누구도 우리를 구하러 오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제 와서 누군가가 우리를 구하러 올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거 우습지 않아요?”
“그래도 희망을 가져야죠.”
“희망이라.”
재율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그게 뭔지 모르겠어요.”
“나는 그래도 나갈 거예요.”
“그러면 나가요.”
“그러려고요.”
기쁨은 재율을 보며 한숨을 토해냈다. 가슴이 괜히 콱 막히는 기분이었다. 재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조심히 나가세요.”
“그러려고요.”
재율은 장난스럽게 웃어보였다. 기쁨은 그런 재율을 한 번 더 보더니 서늘한 표정을 짓고 돌아섰다.
“나갈 거라고요?”
“네. 나가야죠.”
지아는 멍한 표정을 하고 기쁨을 쳐다봤다. 기쁨은 자신과 나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을 해서 더욱 당황스러웠다.
“왜요?”
“네? 아니.”
“내가 싫어요?”
“아니요.”
기쁨의 물음에 지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이 어디에 있어요?”
“그냥 지금 표정이 안 좋아서요.”
“그냥 생각도 하지 않아서요. 다른 사람들이 안 나갈 거라고 생각을 해서. 이렇게 와준 게 고마워서요.”
“정말 고마운 거죠?”
“네. 그럼요.”
기쁨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고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믿음이에요.”
“네?”
“강지아 씨를 믿는다고요.”
“나를요?”
“네. 믿어요.”
“왜요?”
“그냥 믿어요.”
기쁨의 말에 지아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내 밝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운 말이었다.
“언니는 어떻게 할 거야?”
“뭘?”
“나갈 거야?”
“모르겠어.”
시인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뭘 선택해야 할지. 어떤 것이 답일지 아무 것도 알 수 없어서 답답했다.
“내가 믿는 것. 지금 내가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 이게 진짜일지. 아니면 가짜일지 모르는 거니까.”
“나는 안 가고 싶어.”
시안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시인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내밀고 가볍게 시안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면 안 나가면 되는 거지.”
“하지만 시우는 나간다며?”
“그런데?”
“나도 나가야지.”
시안은 가볍게 몸을 떨고 고개를 저었다.
“시우가 나가면 나도 나가야 해. 시우가 이 섬에서 안 나갈 수는 없는 거니까. 우리도 나가야지.”
“그러지 마.”
시인은 미간을 모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식으로 선택을 하다가 무슨 일이 일어나면 시우를 원망할 거였다.
“너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 라시안. 네가 너를 믿으면 되는 거야. 네가 너를 선택하면 되는 건데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
“나는 한 번도 그런 적 없잖아.”
시안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며 머리를 뒤로 넘겼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언니. 나는 시우 하나 지키기 위해서 이 여행을 같이 온 거야. 언니도 알고 있잖아. 그런데 내가 이 상황에서 시우 없이 도대체 뭘 선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거야? 그거 아니잖아.”
“시안아.”
“나는 나갈래.”
시안의 말에 시인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미간을 모으고 입술을 꾹 다물었다. 답답했다. 시안이 망가진 것 같았다.
“네가 왜 그러는 건지 모르겠어.”
“왜?”
“너를 더 생각해. 네가 우선이야.”
“아니.”
시안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시우가 우선이야.”
“시안아.”
“그런 표정 짓지 마.”
시인이 자신을 안쓰럽게 보자 시안은 인상을 찌푸리고 고개를 흔들었다.
“왜 그래?”
“네가 불쌍해서 그래.”
“내가 뭐가 불쌍해?”
시안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절대로 그런 동정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언니는 남을 거야?”
“응.”
시인은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시안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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