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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소설] 벚꽃 필적에 [삼십사 장. 질투 둘]

권정선재 2017. 7. 24. 20:43

삼십사 장. 질투 둘

일찍 오셨습니다.”

누가 그리 오자고 재촉을 해서요.”

?”

 

방자가 옆을 가리키자 춘향은 입을 가리고 낮게 웃었다. 몽룡이 그러지 않는 척 재촉했다는 것이 신기했다.

 

도련님 정말 그러셨습니까?”

무슨? 얼른 가자꾸나.”

어디를요?”

종이를 얻어와야지.”

아침은 자셨습니까?”

먹었다. 먹었으니 가자.”

 

몽룡이 다시금 재촉하자 춘향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향단을 향해 미소를 지은 채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오마.”

다녀오시지요.”

그래. 방자에게 먹을 것을 내주고. 어제처럼 둘이 같이 공부를 하려무나. 누군가를 가르치면서 실력도 느는 법이니. 그것이 그저 어려운 일이다. 힘든 일이다. 버거운 일이다. 이리만 생각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향단은 짧게 고개를 숙였고 방자도 향단을 따라 고개를 숙였다. 춘향은 가방을 챙겨들고 몽룡을 쳐다봤다.

 

가시죠.”

 

 

 

춘향 아가씨께서 우리 도련님을 다루는 솜씨가 아주 능수능란한 거 같구나. 아까도 그렇고 말이다.”

그럼. 우리 아가씨가 얼마나 똑똑한 분이신데. 그 정도도 못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되는 거지. 안 그러니?”

.”

 

방자는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나 요즘 들어서 몽룡이 더 멍청하게 행동한다는 것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나저나 너는 글을 많이 읽니?”

아가씨가 읽으라고 해서 하는 것이지.”

읽으라고 하셨니?”

. 나는 그저 내 이름만 겨우 쓰면 그것으로 된다고 생각을 하였는데 아가씨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구나.”

 

방자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은 그리 글을 배우고 싶다고 해서 머리가 깨지고 나서야 가능한 것을 향단은 너무 쉽게 한 것이었다. 안 그래도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고민이 그 방향이었다.

 

내가 공부를 더 할 수 있을까?”

당연하지.”

도련님이.”

나 참.”

 

방자의 대답에 향단은 혀를 차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네가 글을 배우는 것은 오롯이 네 의지로만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는 거라니?”

허나 네가 아무리 그래도 내가 도련님에게 묶인 몸이라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야.”

하지만.”

괜찮아.”

 

향단이 자신의 편에서 무슨 말을 하려는 것 같아 방자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몽룡을 떠난다고 갈 곳도 없었다.

 

어릴 적부터 도련님을 모셨다. 그래서 도련님은 나의 유일한 가족이야. 그런데 어디를 가겠니?”

내가 있잖아.”

?”

아니다.”

 

향단은 이리 말을 하고 상을 들고 총총 멀어졌다. 방자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입이 찢어져라 웃었다.

 

그거 나에게 시집을 온다는 거지?”

문이나 열어라.”

연모한다. 향단아.”

 

방자가 이 말을 하고 향단을 뒤에서 안았다. 향단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지만 싫지는 않은지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너무 이른 시간에 오신 것 아닙니까?”

뭐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이른 시간이라는 게 뭐가 있겠느냐? 그냥 이르게 가서 종이를 받아와야지.”

. .”

 

춘향은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춘향의 반응에 몽룡은 미간을 살짝 모은 채 고개를 저었다.

 

그 반응은 무어냐?”

?”

뭔가 안다는 것처럼.”

. 혹시나 제가 혼자 사또를 뵈러 갈까. 그것이 걱정이 되어서 도련님이 오신 것이 아닌가 싶어서요.”

, 무슨!”

 

몽룡이 얼굴은 순식간에 태양보다도 더 빠르게 달아오르며 말까지 더듬었다. 춘향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그 얼굴을 보지 못한 채를 하면서 그저 걸음을 걸었다. 몽룡은 빠르게 춘향을 쫓았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지 마라. 내가 무슨. 그냥 아침에 눈이 떠져서 온 것이다. 그게 다야.”

. 알겠습니다.”

진짜래도?”

. 그렇지요.”

 

춘향의 웃음이 섞인 목소리에 몽룡은 끙 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저었다. 춘향은 묘하게 걸음이 가벼워졌다.

 

어찌 이리 이르게 오셨소?”

그럴 일이 있었습니다.”

 

춘향의 곁에 있는 몽룡을 보며 학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둘의 반응에 몽룡은 괜히 빈정이 상했다.

 

그런데 관아가 한가합니다.”

내가 덕이 있어서 그렇지요.”

그게 무슨?”

 

학도를 몰아세우려던 몽룡이 거꾸로 당황한 기색을 내비췄다. 학도는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아이들에게는 알렸습니까?”

. 오늘부터 몽룡 도련님이 선생으로 나선다고 하니 아이들의 부모들 역시 관심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다행입니다.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으나. 오늘 오는 아이들을 보면 대충 반응이 알려지겠죠.”

그래도 많지는 않을 겁니다.”

 

춘향은 학도를 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글을 배우는데 돈이 드니.”

돈은 들지 않습니다.”

돈이라니.”

 

춘향과 학도의 말에 몽룡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글을 가르치고 돈을 받지 않으면 어디에서 번다는 것인지.

 

그게 무슨 말이냐?”

돈은 내가 그대에게 줍니다.”

?”

 

학도의 말에 몽룡은 당황했다. 아니 당연히 학생들이 먹을 것을 가지고 와서 배우는 것이 아니었나?

 

그게 무슨?”

학생들이 직접 돈을 가지고 와서 배움을 청하게 되면 돈이 있는 집 아이들만 배우게 되는 것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만.”

 

그제야 몽룡은 춘향의 집에서 느껴졌던 위화감이 무엇인지 찾아냈다. 몽룡은 미간을 모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왜 아이들이 오지 않는다는 게냐? 공짜라고 하면 누구라도 다 올 것 같은데 말이다. 글을 그냥 가르쳐 준다는데.”

글을 배워서 슬 곳이 없다고 생각을 하는 부모도 많고, 또 지금은 농번기라서 어렵기도 하지요.”

농번기?”

 

평소에 제대로 생각도 해보지 않았던 단어였다. 이런 몽룡을 보고 학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서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겠소?”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춘향이 대신 대답하며 눈을 반짝였다.

 

저는 믿습니다.”

 

 

 

뭐라는 거야?”

 

몽룡은 홀로 방에서 책을 넘겨보며 입을 삐쭉 내밀었다.

 

나 빼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몽룡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그럼요.”

나는 걱정이 됩니다.”

 

춘향의 답에도 불구하고 학도는 미간을 모았다.

 

혹시라도 생각이 없이 말을 하다가 아이들에게 상처라도 주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시는 겁니까?”

아무리 눈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 정도 눈치는 가볍게 가지고 있지 않겠습니까?”

아니지요.”

 

춘향의 대답에 학도는 더욱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춘향은 혀를 내밀고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안 된다고 하는 것도 그렇지요. 그리고 사또께서도 아시는 것처럼 제가 여인이라는 이유로 글을 배우러 오지 않는 아이들도 많으니 도련님은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차라리.”

아니요.”

 

학도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아는 춘향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도련님이어야 합니다.”

왜요?”

사또께서는 믿음이 가지 않으시겠으나. 이 고을의 유지였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이유가 되지요.”

유지라.”

 

학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춘향의 말이 옳을 수도 있었다. 그 사실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진 말일 수도 있었다. 답답하기는 하지만 무조건 춘향이 틀렸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아직 저런 생각을 갖고 있기는 하나 실제로 아이들을 가르치시면 달라지실 수도 있습니다.”

그럴까요?”

그럼요.”

 

춘향의 확신에 찬 목소리에 학도의 얼굴이 살짝 구겨졌다. 하지만 춘향이 알지 못하게 곧 표정이 밝아졌다.

 

하긴 그렇겠지요.”

그렇죠?”

처음에는 하지 않겠다 그리 발을 빼더니 이제 와서 선생을 하겠다는 것을 보면 달라지겠지. 일단 알겠소.”

 

학도의 대답에 춘향의 얼굴은 밝아졌다. 학도는 그런 춘향을 보며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너무 그 사람의 편을 드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소. 뭔가 나를 차별하는 것 같으니.”

사또께서는 제가 편을 들어주지 않으시더라도 모든 이가 좋아하지 않습니까? 허나 도련님은 다릅니다.”

다르다.”

 

학도는 이리 말을 따라하며 턱수염을 어루만졌다. 다르다는 것. 과연 뭐가 다른지 모르겠지만 묘한 기분이었다.

 

일단 그대를 믿어야겠지.”

고맙습니다.”

 

춘향은 밝은 미소를 지었다. 학도도 춘향을 따라 웃었다. 춘향이 웃는 일이라면 잘못되지 않을 거였다.

 

종이는 들고 갈 수 있겠소?”

그거부터 도련님을 시켜야지요.”

할 것 같은가?”

하실 겁니다.”

 

춘향은 아이처럼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혼자 들라고?”

.”

 

춘향의 간단한 대답에 몽룡은 미간을 모았다. 아무리 선생을 한다고 해도 이건 그가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 여인인 제가 들까요?”

 

춘향의 이 한 마디 말에 몽룡은 입을 꾹 다물고 종이를 들었다. 춘향은 학도를 보며 허리를 숙였다. 학도는 손을 들었다.

 

뭐해? 얼른 안 가고.”

갑니다.”

 

춘향은 한 번 더 학도를 보고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숙였다. 학도는 들었던 손을 내려놓으며 어색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