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이 장. 해도 길어지고
“정말 저 자에게 맡기실 겁니까?”
“그럼.”
무영의 물음에 학도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될 이유가 있느냐?”
“그것이야.”
“없다.”
무영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학도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 어떤 사람도 누군가에게 글을 가르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나는 저 사람을 믿네. 그러니까 저 사람도 뭔가 달라질 수 있을 거라는 어떤 희망을 갖고 있어.”
“혹여 춘향과 가까워지기라도 한다면.”
“어쩔 수 없지.”
학도는 짧은 한숨을 토해내고 어개를 으쓱한 후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다시 무영을 보며 싱긋 웃었다.
“술이라도 한 잔 할 텐가?”
“아직 날이 밝습니다.”
“그래?”
학도는 하늘을 보더니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리고 손뼉을 치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발을 내렸다. 방은 곧 어두워졌다.
“밤이 왔네.”
“사또.”
“마셔주게.”
학도의 간절한 목소리에 무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고마우이.”
무영은 학도를 보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너무나도 힘들게 누군가를 연모하는 그를 보는 것이 그리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정말 사과를 하셨다고요?”
“그렇대도.”
“나 참.”
춘향의 말을 들은 방자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젯밤 외출이 그 일 때문이었다니.
“그대가 부탁한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방자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렇군요.”
“아니 도대체 왜 그러시는 겁니까? 그리 화를 내고 그리 혼자서 사과를 하고 그게 전부인 겁니까?”
“그래도 이전이라면 절대로 저에게 사과를 하시지 않을 분이었습니다. 사과라도 하시는 것이 달라진 것이지요.”
“그건 그렇지만.”
방자는 입을 삐쭉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아. 오늘은 그리고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이요?”
“싫습니다.”
“아이들이 온다.”
“허나.”
향단이 있는 방에 방자를 밀어 넣으며 춘향은 고개를 저었다.
“방자가 아이들과 같이 글을 배우면 은근히 부끄러워할 것이야. 그리고 그 아이들이 하루 이틀 글을 배운 아이들이라니? 얼마나 오래 배웠는데. 다들 글을 잘 읽는 아이들이다. 너도 알잖니?”
“그건 그렇지만.”
향단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하지만 자신이 방자를 가르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아가씨.”
“할 수 있다.”
“예?”
“너는 할 수 있어.”
춘향은 이 말을 하고 그대로 문을 닫아버렸다. 방자와 향단은 어색한 눈으로 서로를 보며 웃었다.
“그, 그럼 해볼까?”
“그래.”
향단이 먼저 책을 펴고 방자도 그 앞에 앉았다.
“확실히 아이들이 적구나.”
“죄송합니다.”
“아니다.”
반에서 가장 영특한 삼월이의 사과에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농번기라 그런 것을 어찌 그럴 수 있을까?
“너는 괜찮니?”
“엄니랑 싸우고 왔지요.”
“저런.”
“그래도 저는요. 지금 글을 읽을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고을의 방도 제가 다 읽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춘향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삼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늘 사람들에게 묻고 하는 것이 버릇이던 이들이었다.
“엄니는 뭐라고 하는데 아부지가 뭐라고 안 하시더라고요. 그래도. 삼월이 저것이 글을 읽을 줄 아니까 방이 나오면 뭐라고 씨불이는지 알기는 안 허냐? 이러시면서 말입니다. 다행이지요?”
“다행이다. 다행이야. 오늘은 필사를 해보려고 한다.”
“필사요?”
“응. 내가 글을 읽으면 너희들이 받아쓰는 것이다.”
춘향의 말에 삼월과 다른 아이들이 모두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할 수 있어.”
“예. 알겠습니다.”
아이들이 자리에 앉고 춘향은 글을 읽기 시작했다.
“나 참.”
춘향에게 말을 건네러 오던 몽룡은 멈칫했다. 제법 선생 티가 나는 것이 자신의 생각과는 달랐다.
“선생이라.”
여인이라면 당연히 하지 못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열심히 따라하는 아이들도 있고 자신의 생각과는 영 다른 모양이었다.
“저게 무슨.”
그러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몽룡은 한숨을 토해내고 입을 삐쭉 내민 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멈칫했다.
“정말 사내놈은 없군.”
죄다 계집이었다. 열네댓은 될 아이들 중에 사내놈이란 두 어 명 점찍어 놓은 노릇이라. 어쩔 수 없었다.
“내가 해야지.”
몽룡은 입을 쭉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맹추.”
“뭐라고?”
향단의 말에 방자가 발끈했다.
“무슨 말이냐?”
“아직도 못 알아들으니 맹추지.”
“어려우니 그러지.”
“어려워?”
향단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애들도 바로 배운다.”
“되었다.”
방자는 책을 덮어버렸다.
“내가 너에게 혼나려고 여기로 온 줄 아느냐? 그냥 네 얼굴이나 한 번 더 보고 그러려고 그러는 거지.”
“응?”
“아니.”
방자는 방금 자신이 한 말에 눈이 동그래졌다. 그러니까 이런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었는데. 방자는 입을 막았다.
“아니다.”
“다시 말해봐라.”
향단은 눈웃음을 치며 방자의 옆구리를 찔렀다.
“얼른.”
“되었다. 글이나 읽자.”
“싫다면서?”
“얼른.”
향단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책을 폈다.
“기다리셨습니까?”
“아니다.”
춘향의 물음에 몽룡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한참이나 기다렸으면서도 그 내색을 하지 않는 것이 귀여워 춘향은 작게 미소를 지었으나 몽룡은 도대체 춘향이 왜 자신을 보고 웃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왜 오셨는지?”
“내가 오면 안 되는 곳이냐?”
“아닙니다.”
춘향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혹시라도 또 몽룡이 버럭이라도 할까 그것이 걱정이 되는 상황이었다.
“그냥 궁금해서요.”
“선생을 하겠다.”
“예?”
“보아하니 사내놈들은 너에게 배우지 않겠다고 생각을 하는 모양이더구나. 내가 그래서 하려고.”
“고맙습니다.”
춘향은 덥석 몽룡의 손을 잡아버렸다.
“정말로 고맙습니다.”
“아, 아니.”
몽룡은 오히려 당황해서 손을 빼내려고 했지만 춘향은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사내아이들의 어미와 아비는 저를 그다지 신뢰하지 못하는데 너무나도 다행입니다.”
“이, 이것 좀 놓고.”
“아. 예.”
춘향은 그제야 자신이 몽룡의 손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춘향은 놀라서 몽룡의 손을 놓았다.
“죄송합니다.”
“나 참.”
몽룡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글을 읽으면 그리 되는 것이냐?”
“예?”
“글을 읽으면 그리 사내에게 막 대하고. 응?”
“지금 제가 도련님에게 막 대한 것입니까?”
“어?”
춘향이 여유로운 미소를 지은 채 반문하자 몽룡은 침을 꿀꺽 삼켰다. 춘향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제가 혹여나 다른 사내의 손도 그리 아무렇지도 않게 덥석덥석 잡는다. 그리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그게 아니라.”
“아니면 되었습니다.”
춘향은 차분히 대답했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도련님만 저를 오해하지 않으시면 그걸로 됩니다.”
“나 참.”
몽룡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도대체 춘향이 왜 이러는 것인지 그로는 쉬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럼 사또에게 가야겠습니다.”
“내가 다녀왔다.”
“예?”
“한다고. 한다고 내 말을 하고 왔다.”
“아.”
춘향은 작은 가방을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요.”
“응?”
“가서 더 자세히 말씀을 드려야지요. 그리고 사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책도 필요할 겁니다.”
“책?”
“예. 모든 걸 다 사또가 해주십니다.”
“내일 나랑 같이 가자.”
“예? 허나.”
“날이 늦었다.”
해가 기울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늦은 시간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춘향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 방자와 같이 오십시오.”
“알았다. 그럼 나는 가마.”
“아니 방자랑 같이 가시지.”
혼자 손을 흔들며 멀어지는 몽룡을 보며 춘향은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 혼자 다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귀여운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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