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삼 장. 질투 하나
“저랑 같이 가시지.”
“그러게나 말이오.”
방자의 서운한 표정에 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도련님도 이해를 해주시지요. 아무래도 저에게 그리 사과를 하고. 또 선생을 한다고 말을 했으니. 방자 그대를 보는 것이 그리 마음이 여유롭거나 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렇겠지요.”
춘향의 답을 들은 방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춘향의 말이 옳을 거였다. 아마 부끄러워할 수도 있었다.
“여기.”
“고맙다.”
향단은 싱긋 웃으며 방자에게 보따리를 건넸다.
“매일 신세만 지는구나.”
“아가씨에게나 고마워하려무나.”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방자가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자 춘향은 손사래를 쳤다.
“나는 요리 하나 하지 못해요. 그 모든 음식은 전부 다 향단이가 준비해서 방자에게 드리는 겁니다.”
“예. 그래도.”
“나도 못 먹어본 음식이 요즘 늘었습니다.”
“아가씨!”
춘향이 장난스럽게 말을 덧붙이자 향단은 춘향을 크게 불렀다.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왜 그러셨습니까?”
“무엇이?”
“저랑 방자를 놀리면 좋습니까?”
“응.”
춘향의 대답에 향단은 입을 삐쭉 내밀었다.
“무엇이 좋습니까?”
“좋아 보여서.”
“예?”
춘향의 목소리가 갑자기 묘하게 차분해지자 향단은 고개를 갸웃했다. 춘향은 어깨를 으쓱하고 씩 웃었다.
“두 사람의 모습이 정말로 좋아 보인다는 것을. 너는 모르니? 두 사람은 정말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설마요.”
향단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냥 사내라고는 방자만 알아서 그런 것이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거기까지는 아닙니다.”
“그래 보인 데도.”
“정말입니까?”
“그럼.”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춘향의 이런 말을 들으니 괜히 기분이 좋은 향단이었다. 향단은 배시시 웃었다.
“고맙습니다.”
“고맙기는.”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도 전이나 먹고 싶다.”
“예?”
“전 부친 거. 설마 다 줬니?”
“그게.”
향단의 표정에 춘향은 허탈하게 웃으며 가볍게 향단의 머리를 때렸다.
“하여간.”
“죄송합니다. 아가씨.”
“같이 오시지.”
“되었다.”
“저녁 보겠습니다.”
“저기.”
방자가 다시 돌아서자 몽룡이 그를 불렀다.
“무슨?”
“미안하다.”
“예?”
“미안하구나.”
몽룡의 사과에 방자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몽룡이 나쁜 사람은 아니었지만 이런 사과를 할 사람도 아니었다.
“왜 그러시는 겁니까?”
“내가 너무 아둔한 사람이었다. 나만 생각하고 다른 이들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도련님.”
“가서 밥이나 가져와라.”
방자는 싱긋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몽룡은 깊은 한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저었다. 괜히 긴장되는 일들이었다.
“나 참.”
사과라는 것이 이리 어려운 것인지. 몽룡은 고개를 저었다.
“안 가냐?”
“갑니다. 가.”
아침부터 채근하는 몽룡에 방자는 한숨을 토해냈다. 도대체 왜 이렇게 그를 재촉만 하는 것인지.
“아직 너무 이른 시간입니다. 이렇게 이르게 가야 하는 이유가 하나 없는데 왜 그러십니까? 예?”
“춘향이가 나 없이 사또에게 갈 수도 있다.”
“예?”
“어서.”
“나 참.”
방자는 한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무슨 꽃단장을 그리 하십니까?”
“뭐가?”
“몽룡 도련님 탓입니까?”
“아니다.”
향단의 물음에 춘향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고작 사내 하나에 이리 꾸미거나 할 이유는 없었다.
“그냥 꾸미는 것이 좋아서 이러는 것이다. 공연히 나의 생각을 네 마음대로 재단하지 말아라. 알겠느냐?”
“예. 예.”
향단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어차피 도련님이 오시려면 아직 멀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벌써 이러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마 곧 오실 걸?”
“예?”
향단의 눈이 곧바로 커다래졌다.
“그러니까.”
“너도 얼른 옷을 입고 준비를 하렴.”
자신의 방으로 달려가는 향단을 보며 춘향은 가만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간 속을 숨길 수 없는 아이라니까.”
“좀 괜찮으십니까?”
“괜찮네.”
무영은 걱정이 가득한 눈으로 학도를 응시했다.
“술이 그리 강하지도 않으신 분이 매일 그렇게 술을 독하게만 드시니. 그것이 걱정이 됩니다.”
“내가 왜 술을 잘 마시지 못한다고 생각을 하는가? 나 술을 잘 마시네. 자네는 왜 오해를 하는가?”
“그런 것이 아니라?”
“어허.”
“예. 알겠습니다.”
학도는 이내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이런 사내가 우습다는 것은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도대체 왜 다른 사내들이 그리 술을 가지고 내기를 하는 것인가 했는데 나도 이런 사람이 되어버리는 군.”
“제발 그리 되지 마십시오.”
“왜?”
“제가 사또를 인간적으로 얼마나 좋아하는데.”
“알겠네.”
무영의 대답에 학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나저나 어제 이몽룡 그 자가 한 말이 참.”
“아직도 미련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렇겠지.”
학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미련이 없고서야 그리 선생을 하겠다고 나설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자존심에 그것을 받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정말. 말도 안 되는 선택을 하더군.”
“어떻게 하실 겁니까?”
“무엇을?”
“그러니까.”
“나랑은 상관이 없는 일일세.”
학도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건 그건 춘향의 선택에 따른 문제였다.
“일단 그 사람에게도 그런 기회 정도는 주어야 하지 않을 텐가? 그리고 선생을 잘 할 리가 없을 걸세.”
“어찌 그리 생각을 하십니까?”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니까.”
“자존심.”
무영은 입을 살짝 내밀었다. 실제로 몽룡은 그리 나긋한 성격의 사람인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아마 선생이 그다지 맞지 않을 거야.”
“그러기 바라시는 거 아닙니까?”
“그래 보이나?”
“예.”
“그렇군.”
학도는 턱수염을 어루만지며 어색하게 웃었다.
“질투를 하니 이렇게 되는 군.”
“질투라.”
“내가 질투를 하면 안 되는 건가?”
“질투를 해서 안 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무영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누구라도 질투의 감정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거였다.
“그저 사또는 그리 보이지 않으신다는 것이지요. 제가 오래 모신 바 정말 완벽한 분이니까요.”
“또 나를 연 취급을 하는군.”
학도는 껄껄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예?”
“저 멀리 날린다고.”
“아.”
학도의 농담에 무영은 웃음을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왜 이런 농을 하는 것인지 가끔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유쾌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시기 바랍니까?”
“모르겠어.”
“정녕 모르시겠습니까?”
“그러하네.”
학도는 한숨을 토해내고 어색하게 웃었다. 과연 그가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이 질투라는 감정이 그리 나쁘지 않아.”
“그렇습니까?”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네.”
“더 나은 사람.”
학도는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더 나은 사람. 그것이 되어야만 하는 거였다.
“그래야 춘향이 나를 봐주겠지.”
“그렇겠지요.”
학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조건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만 했다. 다른 관리들과 달라야만 했다. 그게 그의 목표였다.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될 걸세.”
“이미 훌륭하십니다.”
“아니.”
학도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미 훌륭한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거였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만 했다.
“지금 내가 누구인지는 이미 춘향도 알고 있어. 그러니 더 나은 사람. 그리고 또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거지.”
“부럽습니다.”
“무엇이?”
“그리 달라지실 수 있다는 게.”
무영의 알 수 없는 말에 학도는 그저 빙긋 미소를 지을 따름이었다.
“그나저나 요즘은 할 일이 없어.”
“워낙 고을이 안정이 되어서 말입니다.”
“이러다가 다시 한양에 불려갈까 걱정일세.”
“좋은 일이지요. 사또께서는 그리 생각을 하지 않으시겠지만.”
무영의 농이 섞인 말에 학도는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바라는 한양이라는 장소가 그에게는 그다지 반가운 곳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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