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오 장. 선생 이몽룡 하나
“나 참. 선생이라니.”
방에 앉은 몽룡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자신과 선생은 어울리는 일이 아니었다.
“내 예서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닌데.”
“뭐라 그러십니까?”
“아니다.”
방자가 고개를 갸웃하자 몽룡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방자는 떡이 담긴 쟁반을 몽룡에게 건넸다.
“드세요.”
“뭐냐?”
“든든히 드시고 오시랍니다. 보조 선생으로 뒤에 서있으니.”
“뭐?”
방자의 말에 몽룡의 얼굴이 곧바로 구겨졌다. 아니 보조 선생이라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내가 도대체 누구의 보조라는 말이냐?”
“당연히 춘향 아가씨지요.”
“뭐라?”
몽룡은 미간을 찌푸렸다. 말도 안 되는 거였다. 자신이 춘향의 보조 선생이라니. 용납할 수 없었다.
“나는 사내다.”
“그래서요?”
“뭐라고?”
“춘향 아가씨가 더 오래 이곳 아이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안 하시는 겁니까?”
“그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몽룡은 한숨을 토해내며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머리가 지끈지끈거렸다.
“이거 나 참. 시작부터 영 꼬이는 군.”
몽룡은 혀를 차며 방자를 노려봤다.
“왜 이런 일을 시켜서.”
“제가 하라고 했습니까?”
“그럼?”
“도련님이 직접 춘향 아가씨를 뵈러 와서 사과를 하고 하신다고 하신 겁니다. 그런데 왜 제 핑계십니까?”
“너 때문이다.”
“예?”
몽룡이 갑자기 윽박을 지르자 방자는 눈을 껌뻑이며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몽룡은 떡을 들고 우물거리며 입을 쭉 내밀었다. 가슴이 콱 하고 막혔지만 그래도 춘향 옆에 딱 붙어있어야 했다.
“변학도.”
“사또요?”
“아니다.”
그 망할 인간만 없으면. 몽룡은 숨을 크게 쉬다가 순간 떡에 무은 고물이 목구멍에 들어와서 켁켁거렸다. 방자가 놀라서 방으로 들어왔다.
“도련님 괜찮습니까?”
“목. 켁. 켁.”
방자는 우악스럽게도 몽룡의 등을 때렸다. 몽룡이 기침을 멈추고도 때린 것은 정말 방자가 몰라서 그런 것인지는 후에도 답을 하지 않았다.
“정말 가르치실 거라고 봅니까?”
“아니.”
향단의 물음에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도련님이 그런 것과 어울리는 분이 아니지.”
“그런데 왜?”
“이리 뭔가를 하시다 보면 자신이 뭘 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아시지 않겠니?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도 아시겠지. 그렇다면 뭔가를 해내실 수도 있게 되실 거라고 나는 믿는다.”
“그렇습니까?”
향단은 발을 까불며 고개를 갸웃했다.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그렇겠지.”
“아가씨는 왜 그리 믿으시는 겁니까?”
“글쎄다.”
춘향은 아랫입술을 물고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성정이라면 더 이상 믿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몽룡에게는 자꾸만 기회를 주고 다시 또 기회를 주어야만 할 것 같았다.
“도련님이니까.”
“그게 뭡니까?”
향단은 입을 삐쭉 내밀었다.
“사람들은 모두 공평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지금 아가씨께서 몽룡 도련님을 대하는 것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하니?”
“당연하지요.”
“그렇구나.”
춘향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이런 지적을 받는다고 해서 자신을 변화시킬 수도 없었다. 자신은 이미 몽룡을 좋아하고. 몽룡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나저나 날이 좋구나.”
“아가씨. 또 말을 돌리시기는.”
“얘는. 오늘은 애들이 많이 올까?”
“글쎄요.”
향단은 까치발을 들고 담장을 보며 한숨을 토해냈다.
“오늘도 날이 너무 좋습니다. 이리도 날이 좋으면 아이들이 글을 배우러 오는 것이 힘들겠지요.”
“그렇겠지.”
춘향은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차를 마저 마셨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포기할 수는 없었다.
“오늘부터 남자 선생님이 있다고.”
“그래. 맞다.”
처음으로 온 사내아이의 눈을 마주하며 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사내가 왔다고 사내아이를 보냈을 거라는 생각을 들으니 이것으로도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춘향이었다. 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련님.”
“뭐냐?”
“여기. 도련님에게 배우러 온 아이입니다.”
힐끗 밖을 본 몽룡은 입을 내밀었다.
“방으로 오게 하라.”
“얼른 가렴.”
춘향은 싱긋 웃으며 아이를 방으로 보냈다. 그리고 늘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 넷이 오는 것을 보고 얼굴을 밝혔다.
“어떻게 왔구나.”
“그럼요.”
삼월은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춘향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대청으로 갔다. 그래도 모두 몽룡에게만 가지 않는다는 것이 고마웠다.
“글은 읽을 줄 아느냐?”
몽룡의 물음에 아이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하나도 못 읽어?”
“그러니까 왔지요.”
“나 참.”
아이의 맹랑한 대답에 몽룡은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떻게 하나도 모를 수가 있다니.
“네 이름도 모르니?”
“최막돌입니다.”
“막돌?”
몽룡은 한숨을 토해냈다.
“글로 말이다.”
“모릅니다.”
“몰라?”
“그러니 왔지요.”
“나 참.”
몽룡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아무 것도 모른다고 하지만 언문까지 이리 모를 줄이야.
“그래서 어떻게 사니?”
“뭐가 말입니까?”
“글을 몰라서 말이다.”
“아무렇게나 살아집니다.”
“아무렇게나 살아지다니.”
몽룡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리 천한 신분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모든 것을 다 포기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삶의 희망을 갖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만 하는 거였다.
“글을 내가 가르치겠다.”
“그래서 온 겁니다.”
“아니.”
“예?”
“제대로 말이다.”
몽룡의 눈이 묘하게 이글거렸다.
“내일도 꼭 오거라.”
“모르겠습니다.”
도망이라도 치는 것처럼 멀어지는 아이를 보며 몽룡은 혀를 끌끌 찼다. 춘향은 몽룡의 곁에 서서 미소를 지었다.
“왜 그러십니까?”
“어찌 저리 삶의 희망이 없는지.”
“예?”
“그냥 되는 대로 살아가겠다는 것이. 그게 지금 말이나 된다고 생각을 하는 게야? 그것이 어떻게 말이 돼?”
“그렇지요.”
춘향은 가만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안 되지요.”
“말이 안 되는데 왜?”
“어려우니까요”
“뭐?”
“다들 어렵습니다.”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물끄러미 몽룡을 응시했다. 그리고 아랫입술을 살짝 물고 묘한 미소를 지었다.
“도련님께서는 단 한 번도 이런 생활을 하신 적이 없으시겠지요. 늘 도련님은 모든 것이 쉬우셨겠지요.”
“그런 게 아니라.”
“보통은 어렵습니다. 아주.”
춘향이 다소 엄한 목소리로 답하자 몽룡은 끙 하는 소리를 냈다.
“아무튼 그래도 도련님께서 이리 도와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저 홀로 할 적에는 사내아이가 잘 오지 않거든요.”
“그 또한 웃기구나.”
“당연한 것이지요.”
춘향의 대답에 몽룡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모두 대단한 사람인 척 하더니 고작 성별만으로 이런다는 것이 우스웠다.
“원래 그러냐?”
“예.”
“나 참.”
몽룡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래도 내가 와서 다행이구나.”
“다행입니다. 저에게 사내아이들을 가르치지 않으면서, 계집도 저에게 보내지 않는 이들이 많으니까요.”
“그건 또 무슨 연유냐?”
“계집이 사내보다 많이 배우면 안 되니까요.”
“그 무슨.”
몽룡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혀로 입술을 축였다.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어떻게 그런 생각들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 사내 녀석이 글을 배우기 싫은 것은 그 아이의 일인데. 도대체 그것을 왜 묶는 것이야.”
“이제 달라지셨습니까?”
“무엇이?”
“도련님의 마음 말입니다.”
“나야 뭐.”
몽룡은 끙 하는 소리를 내며 시선을 피했다.
“나는 늘 달랐다.
“고맙습니다.”
“고맙기는.”
“도련님이 아니셨더라면 정말 사내아이들은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겁니다. 물론 오늘 도련님께서 잘 가르치셨다는 전제 하에요.”
“잘 가르쳤지.”
몽룡은 괜히 목소리를 높이며 가슴을 두드렸다. 춘향은 씩 웃고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몽룡이 열정적인 거 같아 다행이었다.
“내일도 오시면 됩니다.”
“매일 하는 게야?”
“예. 매일 합니다. 뭐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이 매일 오지는 않으니 크게 걱정은 하지 마셔요.”
“누가 뭐 그렇다고 했느냐?”
몽룡은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저었다. 매일 춘향의 옆에 딱 붙어 있으면 적어도 학도가 나타나지는 못할 것이었다. 일단 그 점만 하더라도 자신이 이곳에서 선생을 하는 것으로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는 몽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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