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육 장. 선생 이몽룡 둘
“그 자는 좀 일을 잘 하는가?”
“잘 합니다.”
학도의 물음에 춘향은 곧바로 대답했다. 이런 춘향의 대답에 학도는 미소를 지은 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군. 그 자가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닐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아이들을 의외로 좋아하는 모양일세.”
“다 사또께서 도련님에게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계셔서 그런 것입니다. 도련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저, 저런!”
이방이 곧바로 고함을 질렀다.
“어디 감히 사또께.”
“되었네.”
학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방은 끙 하는 소리를 내며 그의 눈치를 살피고 입을 다물었다.
“그래 아이들은 더 늘었는가?”
“새로 사내아이가 하나 왔습니다.”
“사내아이가?”
학도의 얼굴이 더욱 큰 미소가 번졌다.
“그대의 생각처럼 남자 선생이 생긴 것만으로도 그런 변화가 생겨나는 거구나. 춘향 그대의 말이 옳다.”
“고맙습니다.”
자신도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몽룡이 들어오기가 무섭게 이런 일이 생기니 정말로 다행인 일이었다.
“그래서 필사는?”
“일단 저는 다 적었으니 이제 아이들과 해보려고 합니다.”
“그럼 약간씩 달라지지 않을까?”
“원래 이야기란 그런 법입니다.”
춘향의 나긋나긋한 목소리오 학도는 미간을 모았다.
“원래 그런 법이라니?”
“아이들이 듣는 이야기가 모두 같은 형식인 것은 이상하지 않습니까? 각자의 사정에 맞게 다른 이야기가 되는 것이지요. 지금도 누가 들려주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이야기이니 말입니다.”
“그렇구나.”
학도는 손뼉까지 치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방은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그것을 어찌 할 생각인가?”
“널리 읽힐 생각입니다.”
“널리 읽혀?”
“예. 일단 사또께서 주신 그 불란서의 책을 먼저 하고 나면, 이제 우리 이야기도 해보려고 합니다.”
“우리 이야기라.”
학도는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아이들을 위한 글이 없어서 걱정이었는데 신기한 일이었다.
“나보다 낫구나.”
“아닙니다.”
춘향은 곧바로 저었다. 자신이 감히 학도보다 낫다니. 이건 말도 아니 되는 일이었다. 학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겸손하기는.”
“정말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전부 다 사또께서 저를 배려해주셔서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불가능했습니다.”
“그러하냐?”
“그럼요.”
“그래.”
학도는 턱수염을 만지며 씩 웃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이 고을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글을 배우는 것에 흥미를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누구나 다 마찬가지일 겁니다. 다만 자신이 글을 배워도 되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을 따름이지요.”
“확신이라.”
학도는 숨을 크게 쉬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확신이라는 것. 그것은 간단하면서도 두려운 말이었다. 그 확신이라는 것이 없기에 사람들은 새로운 것에 도전하지 못하고 조선이 이리 정체된 것일 터이니.
“그럼 이제 저는.”
“무영아.”
춘향이 자리에 일어나기가 무섭게 학도가 무영을 불렀다. 춘향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 앞입니다.”
“그래도 같이 가시게.”
“알겠습니다.”
“정말.”
춘향은 무영에게 미안해 한숨을 토해냈다.
“글을 좀 가르치니 어떠십니까?”
“어렵다.”
몽룡의 말에 방자는 그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뭐 건방지게 그런 말을 묻느냐고 할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내가 그 동안 살던 세상과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정말로 이상해.”
“그렇습니까?”
방자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자신이 모시는 도령이 영 형편이 없는 사내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춘향이도 고생이 많았겠구나.”
“무슨 고생이요?”
“사내들이 무시를 하니.”
“아.”
방자는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이미 향단에게 어느 정도 들었던 종류의 이야기였다.
“와서 욕지거리도 많이 했답니다.”
“무어라? 왜?”
“계집이 나댄다고 말입니다.”
“나 참.”
몽룡은 침을 꿀꺽 삼켰다. 참 모진 사람들이었다. 전부 다 어차피 한 동네 사람들이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하긴 월매가 죽은 것도 그래서라고 했지.”
“예?”
“서학을 한다고.”
“아.”
방자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춘향이 홀로 이 자리에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눈에 다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러니 도련님께서 더 잘 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춘향 아가씨도 조금이라도 여유를 가지실 수 있죠.”
“뭐라는 게야?”
이리 말을 하면서도 방자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은 춘향과 연인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시 그녀를 생각하면 묘하게 가슴이 뛰는 것이 이제는 달라져야만 할 것 같았다.
“그나저나 오늘은 보따리가 크구나.”
“도련님이 선생 노릇을 하니까요.”
“응?”
“그 몫까지 들었답니다.”
방자는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방자도 그런 몽룡을 따라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가볍게 방자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럼 가서 먹어보자꾸나.”
“저 때문에 공연히 고생입니다.”
“아닙니다. 사또께서 이방과 단 둘이 있을 시간이 필요해서 그럴 겁니다. 아마 누구의 청탁을 하려고 하겠죠.”
“청탁이라니.”
춘향은 미간을 모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도 그런 일이 있습니까?”
“작은 마을이니까요.”
“이런.”
춘향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래도 이제 남원이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을 했는데 반드시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왜 나오십니까? 혹여나 말도 안 되는 부탁을 하면 그 자리에 계셔야 증인이 되시는 것 아닙니까?”
“저는 어차피 아무도 모르게 그냥 사또께서 데리고 있는 사람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무슨 증인이 되겠습니까?”
“허나.”
“다 왔습니다.”
춘향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무영이 그것을 막았다. 춘향은 빙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예. 그럼 들어가시지요.”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무영이 멀어지는 모습을 응시했다.
“사또께서 영 고생이 많으시구나.”
춘향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머리가 나쁜 게냐?”
“그러니 배우러 왔지요!”
막돌의 되바라진 대답에 몽룡은 끙 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나 달라진 것이 없는 녀석이었다.
“내가 네 스승이다.”
“그런데요?”
“무어라?”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아니 세상 천지에 어느 멍청이가 자신을 보고 머리가 나쁘다고 하는데. 예. 예. 하면서 그냥 이리 듣고 있겠습니까? 그게 지금 말이 되는 거라고 생각을 하시는 겝니까?”
“나 참.”
몽룡은 도포를 휘두르며 옷 속에 바람을 넣었다. 갑자기 열이 나서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너는 저기 계집들에 가서 배우라.”
“뭐라고요?”
“왜 싫으냐?”
“됐습니다.”
막돌은 입을 삐쭉 내밀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본인이 가르치시는 재주가 부족한 것을 가지고 왜 제 탓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춘향 선생은 안 이렇소.”
“앉아라!”
막돌이 이렇게 말하고 나가려고 하자 몽룡은 곧바로 아이를 붙들었다.
“내가 모자라다고?”
“아닙니까?”
“아니다.”
몽룡의 눈이 다시금 반짝였다.
“앉아라. 내가 그렇게 부족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네가 무시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증명하겠다.”
“그렇습니까?”
“그럼.”
몽룡은 더욱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꽤나 선생과 잘 어울리십니다.”
“되었다.”
춘향의 칭찬에 몽룡은 끙 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저었다. 조그마한 아이에게 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린 것이 맹랑하구나.”
“어리다고 해서 어리석은 것은 아니지요.”
“어리석다는 것이 아니라.”
“압니다.”
몽룡이 뭐라 말을 하려고 하자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몽룡의 마음은 그 누구보다도 춘향이 잘 알고 있었다.
“그나저나 다행입니다.”
“무엇이?”
“이틀 내리 왔으니 말입니다.”
“응?”
춘향의 말에 몽룡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평소에는 바로 오지 않는 경우도 있단 말이냐?”
“그럼요.”
춘향은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이 첫날만 나오고 도망을 가는 일은 꽤나 잦은 일이었다.
“처음 배우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곧바로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도 다시 막돌이가 나왔다는 것은 도련님이 잘 했다는 이야기죠.”
“그럼. 그럼.”
몽룡의 뿌듯한 표정에 춘향은 입을 막고 웃었다. 춘향의 반응에 몽룡은 춘향을 살피며 입을 살짝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내가 우스우냐?”
“아닙니다.”
“아니기는.”
몽룡은 미간을 모으며 고개를 저었다.
“너는 나를 아주 우습게 보는 구나.”
“아닙니다.”
“참말이냐?”
“그럼요.”
몽룡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묘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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