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일 장. 잎이 푸르러지고
“참말로 사과를 했다고요?”
“그렇대도.”
춘향의 대답에 향단은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들어도 말이 되지 않는 소리였다.
“아가씨께서 몽룡 도련님의 이미지를 바꾸어주려는 것은 알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아닙니다.”
“무엇이?”
“어디 몽룡 도련님이 그런 일에 사과를 하는 양반입니까? 늘 자기만 아는 사람인데 무슨 말입니까?”
“그러니까.”
춘향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분이 나에게 와서 미안하다. 그리 말을 하셨으니 그것으로 된 것이지. 그렇지 않겠느냐?”
“아무리 아가씨가.”
“어허.”
향단이 무어라 더 말을 하려고 하자 춘향은 일부러 짐짓 엄한 흉내를 내며 고개를 저었다. 향단은 입을 삐쭉 내밀었다.
“알겠습니다. 알았다고요.”
“네가 왜 그러는 건지 내가 안다. 나도 알고 있어. 몽룡 도련님이 얼마나 아둔한 분인지를. 허나 그렇다고 해서 네가 무조건 그 분을 이해하지 않고 미워할 이유는 되지 않아. 그럴 이유는 없어.”
“알았습니다.”
향단은 입을 더욱 내밀었다. 춘향은 그런 향단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다.”
“아가씨가 뭐가 미안합니까?”
“너에게 자꾸 안 좋은 모습만 보이는 거 같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되었다.”
춘향은 고개를 저었다. 향단이 부러 무슨 말을 더 할 이유도 없었다. 이건 자신과 몽룡 사이의 문제였다.
“네가 끼어들 일도 아닌데, 나로 인해서 네가 불편할 수도 있다는 것. 그것 하나는 내가 알고 있다.”
향단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도 춘향이 어떤 마음인지 정도는 제대로 알고 있었다.
“저도 아가씨를 괴롭히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괴롭히고 싶대도 내가 당해주려고?”
“그렇지요.”
향단은 이를 드러내고 더욱 밝게 웃었다.
“그래도 참말 그 분이 나에게 와서 사과를 하고 가셨다. 정말 말도 안 되게 나에게 그러고 가셨어.”
춘향의 행복한 표정을 보고 향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춘향을 따라 웃었다. 춘향이 웃는다면 향단 역시 그것으로 충분했다.
“또 소금국이냐?”
“제가 끓일 수 있는 게 이것뿐입니다.”
“나 참.”
몽룡은 숟가락으로 멀건 소금국을 휘휘 젓고 고개를 저었다.
“이걸 지금 사람이 먹으라고 하는 것이냐?”
“그럼 드시지 마십시오.”
“아니.”
방자가 곧바로 가져가려고 하자 몽룡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 것이 아니라.”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 것입니까?”
“무엇이.”
“도련님.”
방자가 다시 한 번 자신을 부르자 몽룡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내 춘향에게 찾아가마.”
“가서요?”
“선생을 하겠다.”
“예?”
“그거 말고 방도가 있느냐?”
몽룡은 다시 방자에게서 소금국을 받아와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한숨을 토해내고는 한 입 먹었다.
“원 이리 요리를 못 해서야.”
“사내가 부엌에 들어가는 거 아니라면서요?”
“너는 많이 들어가라.”
방자는 빙긋 웃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같이 밥을 뜨기 시작했다.
“글이 참 정갈하오.”
“과하십니다.”
“아닐세.”
학도는 춘향을 향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아이들에게 필사를 하기 전에 춘향이 먼저 언문으로 적은 글을 보고 학도는 아주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대가 이리 잘 해주니 내가 아무 걱정이 없소.”
“다 사또께서 저를 도와주셔서 가능한 것이지요. 저 혼자서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겸손하기는.”
“겸손이라뇨.”
춘향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고개를 저었다.
“날이 좋습니다.”
“이제 덥지요.”
“그러게요.”
춘향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모르던 새에 훌쩍 여름이 와버렸다는 것이 신기했다.
“도대체 언제 이리 계절이 변했던 것인지.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원래 계절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지요.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 것 같다가 훅 변하는 것 말입니다.”
“그렇지요.”
학도는 빙긋 웃으며 차를 마셨다.
“차가운 차를 내오라고 할까요?”
“아니요. 그런데 차가운 차가 가능합니까? 이 계절에 남원에서 얼음을 이용할 수도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해서 뜨거운 차를 식히면 그 향이 모두 달아나서 제대로 즐길 수 없을 것인데요.”
“차가운 물에 찻잎을 우린다고 합니다.”
“예?”
춘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학도는 정말 모르는 것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와 시간을 보내면 늘 놀랄 일이 가득이었다.
“어찌 그것이 가능하단 말입니까?”
“불가능할 것은 또 무엇입니까?”
“그러니까.”
불가능할 것은 또 무엇이냐. 그 말에 춘향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불가능할 일윤 그 무엇도 없었다.
“그렇지요.”
“다음에는 내가 그것을 대접하지요.”
“고맙습니다.”
그때 자격루가 시간을 알렸다. 춘향은 남은 차를 모두 마시고 학도를 향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이제 돌아가겠습니다. 아이들이 오늘 글을 배우러 올 시간입니다. 오늘 차는 잘 마셨습니다.”
“아이들이 좀 옵니까?”
“오지요.”
“이제 농번기라.”
“그래도 옵니다.”
학도의 물음에 춘향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이의 어미 아비들도 이제 아는 것이지요.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말입니다. 적어도 자신이 농사를 지은 것을 통해서 양반들에게 후려치기를 당하지 않을 수 있어야지요.”
“그렇지요.”
“아 물론 사또가.”
“알고 있습니다.”
학도의 덕도 크다는 것도 말하려고 하자 학도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춘향도 그를 따라 웃었다.
“고맙습니다.”
“또 고맙다는 소리를.”
“늘 저의 모든 것을 다 이해를 해주십니다. 그래서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 고마우면.”
“사또 있소?”
그때 들린 목소리에 두 사람이 눈을 마주했다. 몽룡이었다. 곧 몽룡이 두 사람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춘향이 네가 여기에 왜 있는 것이냐?”
“이제 돌아가려던 길입니다.”
“아니 그러니까.”
“종이를 얻으러 왔소.”
몽룡이 몽니를 부리려고 하자 학도가 먼저 나서 말을 했다. 학도도 이리 말을 하니 몽룡도 더 이상 뭐라 할 수는 없었다.
“종이를 가져가시오.”
“고맙습니다.”
춘향은 학도에게서 종이를 받아들고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몽룡에게도 살짝 고개를 숙이고 문을 나섰다. 그리고 숨을 내뱉었다. 자신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뭔가 잘못한 기분이었다.
“도대체 왜?”
춘향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신이 왜 이런 기분을 느껴야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지?”
춘향은 가슴에 손을 한 번 얹고 고개를 흔든 후 집을 향했다.
“춘향이 자주 오는 모양입니다.”
“오면 안 되는 겁니까?”
“뭐 그건 아니지만.”
학도의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몽룡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더 이상 춘향에 대해서 아무런 할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춘향이 어디에 간다고 한들 그걸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내가 부탁을 해서 아이들을 가르치니 그러기 위해서 종이를 얻으러 오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소?”
“아직도 글을 가르칩니까?”
“선생이니까요.”
“선생?”
몽룡의 눈썹이 순간 모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몽룡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싸늘하게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계집이 선생을 한다는 것이 말이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다른 이들이 무어라고 생각을 할까요?”
“그게 중요합니까?”
“예?”
학도는 정말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는 그저 그 사람이 글에 흥미가 있고 배우는 것이 빨라서 다른 이들을 가르치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방법으로 가르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이들이 춘향에게 배우면 학습 능력도 빠릅니다.”
“그게 무슨?”
“사람이 재주를 뽐내는 것이 죄입니까?”
“죄는 아닙니다만.”
“그럼 된 겁니다.”
학도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턱수염을 어루만졌다. 마치 학도에게 놀림을 당한 거 같아 몽룡은 고개를 저었다.
“어찌 그러십니까?”
“무엇이요?”
“사또께서 자꾸만 이러시면 춘향이 헛꿈을 꾸게 됩니다. 춘향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시는 겁니까?”
“무슨 헛꿈이요?”
“그러니까.”
“나는 그게 헛꿈이 아니라 생각을 합니다.”
“무어라고요?”
몽룡은 이마를 짚었다. 이건 도대체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였다. 아무리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고 하나 절대로 이렇게 달라질 수는 없는 것이었다. 이 사실을 알면 모두 난리가 날 거였다.
“춘향을 걱정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조정에서 이 사실을 알면 무어라고 하실 것 같습니까? 예?”
“이미 압니다.”
“안다고요?”
“예. 압니다.”
학도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예까지는 왜 오신 겁니까?”
“그러니까.”
몽룡은 침을 꿀꺽 삼켰다. 집에 돈이 없었다. 그러니 무어라도 해야 하지만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데 학도가 먼저 미소를 지은 채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을 해주시겠소? 아직도 사내의 어미와 아비들은 여인에게 글을 배우는 것에 대해서 탐탁지 않소.”
“알겠소.”
학도는 싱긋 웃었다. 그 미소에 모든 것이 들킨 것 같아 몽룡은 그대로 화를 내며 돌아섰다. 학도는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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