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장. 흐르는 시간
“어찌 같이 오는가?”
“제가 걱정이 되실 것 같아서 왔습니다. 그런 게 아니라고.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 제가 왔습니다.”
“그래도.”
“사또. 그러지 마십시오.”
학도가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자 춘향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저를 그리 못 믿으십니까?”
“그런 게 아니라.”
“자꾸 이러면 제가 마음이 불편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무영님은 저를 지키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 고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아니라 바로 사또입니다. 사또가 위험에 닥치시면 안 됩니다.”
“나를 못 믿는가?”
“믿습니다마만.”
학도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믿으면 그냥 두시게. 내가 마음이 불편해서 그래.”
“내 마음이 불편한 건 안 보이오?”
춘향이 이리 말하고 입을 막았다. 당황한 춘향을 보며 학도는 빙긋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말을 편하게 하니 얼마나 좋소.”
“아니 그것이 아니라.”
“되었소.”
춘향이 변명을 하려고 하자 학도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소. 그런데 정말 괜찮겠소?”
“예. 괜찮습니다.”
학도는 끙 소리를 내며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저를 좀 믿어주십시오.”
“알겠소.”
학도는 잠시 멈칫하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보통 사람을 알면 알수록 조금 실망을 한다거나 그럴 일이 있는데 그대는 어쩜 그리 사람을 또 반하게 하오?”
“되었습니다.”
“연모합니다.”
춘향의 눈이 커다래졌다. 평소에 학도가 단 한 번도 하지 않던 식의 말이었다. 춘향은 입을 꾹 다물었다.
“사또 그러니까.”
“되었네. 굳이 대답을 들으려고 한 말이 아닐세. 그냥 내 마음이 이렇다고 그대에게 말을 해주려고 한 것이야.”
“하지만 사또.”
“무영아.”
춘향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학도는 무영을 불러버렸다. 무영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방으로 들어섰다.
“부르셨습니까?”
“춘향을 집에 좀 데려다 주고 너는 이리 오거라.”
“예.”
춘향은 학도를 한 번 더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는 이만 가겠습니다.”
“나를 좋아해달란 말은 아닙니다.”
학도의 이 말을 춘향은 듣지 못한 척 하며 돌아섰다.
“이래서 나보고.”
방자는 향단이 싸준 밥을 보고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유난히 흰 쌀밥이 그의 몫에만 들어있었다.
“나 참.”
몽룡의 것을 열어보니 콩이 한 가득이었다. 방자는 괜히 기분이 좋았다.
“계집이 좋으면서.”
방자는 쿡쿡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사또께서 그대를 곤란하게 하였나 봅니다.”
“뭐.”
춘향의 어색한 미소에 무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운 분이지만 뭔가 너무 죄송해서 말입니다. 사또께서 정말로 감사한 분이기는 하나. 그것이.”
“너무 그러지 마십시오.”
무영은 부드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춘향은 아랫입술을 살짝 물고 작게 헛기침을 했다.
“사또 곁에는 좋은 분이 있을 텐데.”
“그 어떤 여인도 보지 않습니다.”
“예? 참말입니까?”
“모르셨습니까?”
“그러니까.”
무릇 사내라면 여인을 품을 일이었다. 게다가 학도의 인품이라고 하면 뭔가 다를 것이라 믿었다.
“그러니까 그것이.”
“사또께서는 늘 그대만을 보십니다. 뭐 그러라고 부담을 느끼라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그냥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러시군요.”
춘향은 침을 삼켰다.
“그러니까.”
“괜찮습니다.”
무영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지난번에도 말씀을 드린 것처럼 굳이 부담을 느끼실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니 너무 마음에 담지 마십시오.”
“허나 사또께서 저를 좋아하시니. 그것이 죄송해서. 그것이 미안해서. 그래서 그냥 그렇습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굳이 밀어내지 마십시오. 짝사랑이라도 하지 못하시면 사또는 더 힘들어 하실 겁니다.”
“그렇습니까?”
춘향은 어색한 표정으로 웃었다. 집에 도착하고 무영에게 짧게 고개를 숙였다. 뭔가 너무 미안했다.
“혹여 무슨 일이 있으면 꼭 말을 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왜 물리셨습니까?”
“응?”
“아니 뭐 고마운 사람인데.”
“얘!”
향단은 눈을 끔뻑거리며 입을 삐쭉 내밀었다.
“너는 방자를 두고.”
“누가 무어라 하였습니까?”
“그러니까.”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나저나 쌀밥이 없던데?”
“그러니까.”
“잘 했다.”
춘향의 대답에 향단은 혀를 살짝 내밀었다. 춘향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책을 펼쳤다. 향단은 입을 삐쭉 내밀었다.
“왜 오지 않으셨습니까?”
“내가 거기를 왜 가느냐?”
“사과를 하셔야지요.”
방자의 말에 몽룡은 곧바로 미간을 모았다.
“내가 도대체 왜 그래야 하느냐?”
“사또가 얼마나 춘향 아가씨를 위해서 노력을 하는지 아십니까?”
“무어라고?”
“되었습니다.”
방자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왜 그러시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조금 더 이 고을 사람들하고 어울리시면 안 되겠습니까?”
“내가 왜?”
“여전히 춘향 아가씨를 좋아 하시니까요.”
방자의 말에 몽룡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방자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시간이 흐르면 어떻게 될지를 모르는 법입니다. 지금 당장 곁에 있는 사람을 손에 잡지 않으시면 모든 것을 다 놓치게 되실 겁니다.”
“되었다.”
“허나 도련님.”
“내가 되었다고 하지 않느냐!”
“이러지 마십시오!”
방자도 밀리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반응에 몽룡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쉬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네가 어찌 감히.”
“도련님을 아껴서 그렇습니다. 도련님이 조금만 더. 제대로 행동을 하시기. 부디 그러기를 바랍니다.”
“내가 무얼 잘못한다는 것이냐?”
“선생 부탁을 하셨다지요?”
“네가 그것을 어찌 아느냐?”
“들었습니다.”
몽룡은 끙 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저었다. 방자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미간을 모았다.
“도대체 왜 그리 행동을 하시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부디, 부디 바르게 생각을 하십시오. 부디. 달라지십시오. 시간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되었다.”
몽룡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내 너에게 그런 말을 들으려고 이러는 줄 아느냐?”
“허나.”
“되었대도.”
몽룡은 이러고 그대로 나가버렸다. 방자는 아랫입술을 물고 고개를 저었다.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도대체 왜 저러는 것인지.”
“내가 사과를 해야 한다고?”
몽룡은 입술을 뾰투룽하니 내밀었다. 너무 답답했다. 왜 그래야 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대체 내가 뭘 어떻게 하였다고.”
몽룡은 문득 달을 쳐다봤다.
“가서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인가?”
몽룡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 문제가 없더냐?”
“없습니다.”
학도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고 하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하고 낯설었다.
“그런데 왜 이러는 것인가?”
“사또께서 춘향 그 분을 좋아하니까요.”
“아니다.”
학도는 고개를 저었다. 좋아한다는 마음은 누군가에게 강요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좋아한다고 해서 무조건 춘향이 자신을 좋아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도 걱정이다.”
“저는 사또가 걱정입니다.”
“무엇이?”
“임금의 명까지 거절하고.”
“혹 그것을.”
“아닙니다.”
학도가 눈이 동그래져서 물어보자 무영은 빙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학도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토해냈다.
“절대로 춘향 그 사람에게 말을 하지 마시게. 알게 되면 마음이 불편하다고. 그리 생각을 할 터이니 절대로. 절대로.”
“예. 알겠습니다.”
무영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학도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로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그리 잘못했는가?”
달을 보던 춘향이 흠칫 놀랐다. 그러다 그 목소리가 몽룡인 것을 깨닫고 빙긋 웃으며 돌아섰다.
“어인 일이십니까?”
“내가 너를 보러 오면 안 되느냐?”
“아니 될 것은 없지요.”
“미안하다.”
춘향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몽룡이 먼저 사과의 말을 건넸다.
“미안하다.”
“도련님.”
“미안하다.”
몽룡은 입을 꾹 다물고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그리고 이내 어색하게 웃었다.
“네가 나를 어찌 생각을 하는지는 알고 있다. 그리고 내가 어떤 위인인지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너에게 미안하다. 절대로 내가 너에게 그리 함부로 굴면 이나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방자에 글을 가르쳐주어서 고맙다.”
“아닙니다.”
몽룡은 춘향이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자 그대로 멀어졌다. 마치 허깨비처럼 멀어진 그 모습에 춘향은 한숨을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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