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칠 장. 날카로운 말
“위험한 것 아닙니까?”
“무엇이?”
“그것이.”
“아닐세.”
무영의 말에 학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혼은 고작 이 정도를 가지고 불편함을 느낄 사람이 아니었다.
“자네가 혼을 모르는가? 그 사람은 고작 이런 일을 가지고 민감하게 생각을 할 사람이 아닐세.”
“허나 그래도 임금입니다. 임금이 직접 예까지 와서 특별한 부탁을 해주신 것인데. 뭔가 제대로 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뭔가 불편함을 느끼실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아니.”
학도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 번 고개를 저었다. 혼이라면 그가 왜 이러는지 알 사람이었다.
“괜찮아. 괜찮네.”
“그렇습니까?”
무영은 학도를 보며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글이라는 것이 배울수록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렇지요.”
방자는 땀을 닦으며 고개를 저었다. 글을 배우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더욱 난처했다.
“글을 배우는 것. 특히나 한글을 배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리 어려울 줄이야.”
“그럼 쉬울 줄 알았니?”
“아니다.”
향단이 묻자 방자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한 가지 청해도 되겠습니까?”
“무엇입니까?”
“언제 향단이를 데리고 가도 됩니까?”
“미, 미친.”
방자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입을 내밀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향단이와 혼례를 치루고 싶습니까?”
“단 한 번도 향단이와 혼례를 치루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습니다. 늘 향단이만 필요했습니다.”
“그, 그게 무슨?”
“그렇군요.”
춘향은 입을 내밀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향단을 보고 눈을 크게 뜨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네 생각은 어떠하니?”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무엇이.”
“되었습니다.”
향단은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렸다. 방자가 당황하는 표정을 짓자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싫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당황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그냥 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이.”
방자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춘향에게 이 일에 대해서 묻는 것이 가장 우선이라고 생각을 했다.
“제가 묻지 않으면 어떻게 향단이를.”
“향단이에게 물어야지요.”
“예?”
“향단이의 의사가 중요한 것이지요.”
“그것이.”
방자는 머리를 긁적였다. 향단이의 입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우선으로 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겁이 나고 또 망설여지는 것이어서 더욱 두려운 것이었다.
“향단이가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좋아하는 거 같은데요?”
“그렇습니까?”
방자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지자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아랫입술을 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편지를 쓰는 것이 어떻습니까?”
“편지요?”
“편지를 쓸 정도로 글을 배우면.”
“그렇군요.”
방자의 얼굴이 더욱 환해졌다. 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춘향아!”
그때 갑자기 밖에서 소란이 났다.
“무슨?”
“도련님 같습니다.”
“몽룡 도련님?”
춘향이 쳐다보자 방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춘향은 한숨을 토해내고 밖으로 나갔다. 방자의 말대로 몽룡이었다.
“도련님.”
방자는 재빨리 문을 열고 나갔다.
“네 이 놈. 방자야!”
“도련님. 무슨 일이십니까?”
“춘향이 어디에 있느냐?”
“여기 있습니다.”
“이, 이런.”
춘향이 방자의 뒤에서 나타나자 몽룡의 눈이 더욱 커다래졌다.
“어떻게 사내와 계집이 한 방에 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이게 지금 말이 되는 소리란 말인가?”
“글을 배운 것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무슨 문제가 있다고 하는 도련님의 사고방식이 이상합니다.”
“뭐라고?”
춘향의 대답에 방자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네 년이 아주 기고만장하구나.”
“도련님!”
“네가 이런다고 해서 네 신분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을 하는 게야? 네가 천한 것이라는 것이 변하지 않는데. 네가 아무리 그리 노력을 해도 너는 천한 것이다. 너는 천한 신분이란 말이다.”
“그렇지요.”
몽룡의 사나운 말에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자신의 신분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어?”
“예.”
춘향이 간단하게 대답하자 몽룡은 멍해졌다.
“무슨 일입니까?”
“아니다.”
음식을 준비하던 향단이 놀라서 밖으로 나섰다. 몽룡은 머리를 헝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싸늘하게 웃었다.
“아주 웃기지도 않는군.”
“무슨 말입니까?”
“네들 같은 것들이 글을 배운다고 해서 신분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냐? 아무리 양반 흉내를 낸다고 하더라도 네 놈들은 양반이 아니야. 그럴 수 없음을 알아야지.”
“알고 있습니다.”
춘향은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일을 가지고 몽룡에게 이런 모욕적인 취급을 당할 이유는 없었다.
“왜 오신 겁니까?”
“그러니까.”
“저를 보러 오신 것입니까? 방자를 찾으러 오신 겁니까? 설마 향단이를 보러 오신 것은 아니시겠지요? 누구를 보러 온 것입니까? 보러 온 사람만 보십시오. 저희 셋 다 벌을 주지 마시고.”
“그것이.”
“향단아 너는 들어가라.”
“예. 알겠습니다. 아가씨.”
향단은 그대로 다시 부엌에 들어갔다. 춘향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몽룡을 쳐다봤다. 몽룡은 쉬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춘향은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저었다.
“저를 보러 오신 모양입니다. 그대는 향단이에게 가시지요.”
“알겠습니다.”
“저, 저 사내놈이!”
방자가 부엌에 들어가려고 하자 몽룡이 소리를 쳤다. 하지만 방자는 들리지 않는 듯 그대로 부엌에 들어갔다.
“저게 무슨?”
“저랑 대화를 하시지요.”
춘향은 문을 열고 고개를 끄덕였다. 몽룡은 입술을 비틀었다.
“괜찮으냐?”
“그럼.”
향단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방자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를 가지고 무슨 문제가 생길 것이 있니? 이런 것을 가지고 겁을 내는 것이 우스운 것이지.”
“정말 네 도령이라는 자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도대체 네가 뭘 어떻게 했다고 이러는 것이라니?”
“그러게.”
방자가 쉽게 고개를 끄덕이자 향단은 미간을 모았다.
“너 왜 그러는 것이니?”
“뭐가?”
“아니 그것이.”
“미안하다.”
향단이 무슨 말을 더 하기도 전에 방자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너를 쉽게 생각을 해서 춘향 아가씨에게 먼저 그 말을 한 것이 아니다. 그저 먼저 여쭙고 싶었다. 내가 아직 누군가에 묶인 몸이라서 너 역시 그런 줄 알았다. 너는 그렇지 않은데.”
“뭐라니?”
향단은 발을 움직이며 입술을 쭉 내밀었다. 방자가 왜 이러는 것인지 알기에 더욱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직도 뭐라고 하시니?”
“그래도 너랑 아가씨 덕에 좀 나아졌다.”
“무슨 말이니?”
“어제 혼자 도련님이 저녁을 내 몫까지 먹지 않았겠니?”
“이 무슨!”
향단은 소리를 지르면서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자는 향단의 손을 잡고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괜찮다.”
“무엇이 괜찮아?”
“아침을 드리지 않았거든.”
“뭐?”
향단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방자는 어깨를 으쓱하고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네가 내게 무언가를 알려주지 않았니? 아무리 도련님이 그래도 쉬이 물러나지 말라고 말이다.”
“그러니까 그게.”
“그래서 네 말을 들었다.”
향단은 침을 꿀꺽 삼켰다. 방자가 이렇게 말을 해주니 뭔가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너는 나에게 귀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도 귀하게 생각을 하고 너에게 그것을 보여주기로 했다.”
“뭐라니?”
“연모한다.”
방자의 고백에 향단의 눈이 커다래졌다.
“뭐라는 거야?”
“네가 좋다고.”
방자는 어린 아이처럼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알고 있다. 너에게 이런 말을 하기에 내가 너무 자격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이 마음을 숨기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네가 너무 좋은데. 이 마음을 숨긴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이 마음을 숨기는 것이 좋은 일 같지도 않으니까 말이다.”
“그게 무슨?”
향단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렇지만 방자의 이 고백이 마냥 싫기만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지금 당장 내게 시집오라는 것이 아니다.”
“나도 당장 갈 생각은 없다.”
“땅을 마련할게.”
“땅?”
“응. 그래야 너를 고생시키지 않지. 그리고 이곳 남원에 땅을 사고 너랑 춘향 아가씨 근처에서 살아야지.”
“치.”
향단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렇지만 기분이 좋았다. 방자가 이런 것까지 생각을 한다고 하니 고마웠다.
“네가 영판 바보는 아닌 모양이다.”
“바보라니.”
방자는 미간을 모으며 고개를 저었다.
“앞으로 너의 서방이 될 사내에게.”
“그건 되어봐야 알지.”
향단이 혀를 내밀고 방자는 그 모습을 보고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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