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팔 장. 가시
“뭘 하자는 겁니까?”
“너야 말로 뭘 하는 게야?”
몽룡은 사나운 눈으로 춘향을 노려봤다.
“지금 여기에서 글이나 좀 가르친다고 하여서 완벽히 다른 무언가가 된 것이라. 그리 믿는 것인가?”
“에.”
“뭐라고?”
“그리 믿습니다.”
춘향은 덤덤한 눈빛으로 몽룡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도련님은 무엇입니까?”
“무어라?”
“저는 이리 달라졌습니다. 그런데 도련님은 도대체 무엇이 달라지셨습니까? 아니 달라지신 것이 있습니까?”
“이, 이 무슨.”
몽룡이 발끈하자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입술을 꼭 다물고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도련님. 도련님은 정말 좋은 분입니다. 허나 그렇게 좋은 분이라고 하더라도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저는 이미 도련님께서 알고 있는 그 성춘향이 아닙니다. 저는 달라졌고. 이런 제가 싫다면 도련님을 보러 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상한 생각을 하면서 어떤 미련도 가지지 마십시오.”
“미련?”
몽룡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미련이라니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자신이 춘향에게 미련이라니.
“나는 그저 아둔한 너에게 알려주러 왔다.”
“무엇을요?”
“너처럼 행동을 하다가는 그 어떤 사내도 너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그것을 미리 말을 하려고.”
“아닐 겁니다.”
“뭐라고?”
춘향의 대답에 몽룡은 비위가 상했다. 춘향이 이렇게 한 마디도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말을 마주한 적이 없었다. 춘향은 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살짝 내밀었다가 아랫입술을 적신 후 입을 열었다.
“도련님이 아니라도 저를 좋아해줄 사람은 많습니다. 저는 저 자신에 대해서 믿음이 있는 사람이니까요.”
“믿음이라니?”
“도련님은 믿음이 있습니까?”
“당연하지.”
“그렇군요.”
춘향의 묘한 목소리에 몽룡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뭔가 대화를 하면 할수록 춘향에게 말려드는 기분이었다.
“나에게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이냐?”
“무엇이 말입니까?”
“그러니까.”
몽룡은 아랫입술을 물었다. 춘향에게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머리만 복잡했다.
“저는 도련님의 몸종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찌 저를 그리 마음대로만 다루려고 하시는 겁니까?”
“내가 언제 너를 몸종이라고 하였느냐? 그저, 그저 내 말을 조금이라도 들어달라는 것이다.”
“아니요.”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도련님은 저에게 그저 강요를 하려고 하시는 겁니다. 제가 도련님의 말을 제대로 들어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지요. 그저 도련님의 말을 그저 주인에게 복종하는 무엇처럼 무작정 듣기를 바라는 겁니다.”
“그러면 안 되는가?”
“예. 안 됩니다.”
춘향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춘향이 너무나도 단호하게 말하자 몽룡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춘향이 이렇게까지 냉정하게 그에게 말을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도대체 내게 왜 그러는 것이냐?”
“도련님은 왜 그러시는 겁니까?”
“뭐라고?”
“세상은 달라졌습니다.”
“달라졌다니.”
몽룡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아무리 세상이 달라졌다고 하더라도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무리 달라졌다고 해도 이건 안 되는 것이다. 네가 나를 한때 그래도 정인으로 생각을 한 것이라면 이러면 안 되는 것이 아니냐? 도대체 네가. 네가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가 있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네가 나를 그런 식으로 망신을 주는 것이냐?”
“망신이요?”
몽룡의 말에 춘향의 눈썹이 묘하게 올라갔다. 춘향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입술을 꾹 다물었다.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그럼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란 말이냐?”
“무엇이요?”
“그러니까 지금 이 모든 것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춘향의 말에 몽룡은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지금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춘향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리고 물끄러미 몽룡을 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순간 바람이 휙 하고 불었다. 춘향은 싱긋 웃었다.
“지금 그 바람도 도련님이 하신 것입니까?”
“무슨 말이냐?”
“그러니 말입니다.”
“무어라?”
“저는 그저 바람일 따름입니다. 저의 의지가 있는 것이지요. 도련님으로 인한 것도. 도련님에게 뭘 보여주려고 그러는 것도 아닙니다.”
춘향의 대답에 몽룡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사나운 눈으로 몽룡을 노려봤다.
“네 어미는 기생이었다!”
“그래서요?”
“네가 글을 배운다고 나와 대등할 거라고 생각을 하느냐?”
“대등하기 바란 적 없습니다.”
춘향은 입술을 꾹 다물고 몽룡을 노려봤다. 몽룡은 그런 춘향을 이해를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저 평범한 사내의 여인으로 존재하면 편할 것인데 도대체 왜 이렇게 부딪치려고 하는 것인가?”
“누가 누구랑 부딪칩니까?”
“네가 지금 나랑?”
“아닙니다.”
춘향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저는 도련님을 그리 생각하지 않습니다.”
“뭐라고?”
몽룡은 당황한 나머지 아무 말도 쉽게 내뱉지 못했다. 춘향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가주시죠.”
“무슨?”
“여인의 집입니다.”
“그래.”
몽룡은 이를 악 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정인인 사또가 오려는 모양이지.”
“뭐라고요?”
“둘이 이미 정을 통한 것이 아니더냐?”
“그게 무슨?”
춘향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감히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학도는 그저 좋은 사람이었다.
“사또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이 상황에서 그 자의 편을 드는 것이냐?”
“이건 누가 누구의 편을 드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저 도련님이 얼마나 아둔한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얼마나 멍청하게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지금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멍청해?”
몽룡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아랫입술을 세게 물더니 그대로 춘향의 책장을 넘어뜨렸다. 커다란 소리가 나고 춘향은 몽룡의 뺨을 때렸다. 몽룡이 그대로 굳었다.
“무, 무슨?”
“뭐 하는 겁니까!”
몽룡이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는 사이 춘향이 먼저 고함을 질렀다.
“도대체. 도대체 지금 뭘 하는 겁니까! 지금 도대체 무슨 짓을 하시는 겁니까? 예? 나가십시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어이고.”
문이 벌컥 열리고 향단과 방자가 방에 들어왔다. 다들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몽룡을 쳐다봤다. 춘향은 이마를 짚었다.
“도련님을 모시고 나가주시겠습니까?”
“예. 예.”
“놓아라.”
“나가시죠.”
몽룡이 발버둥을 쳤지만 방자는 몽룡을 끌고 나갔다. 향단은 감히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어찌. 어찌.”
“괜찮다.”
향단의 물음에 춘향은 가만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고작 이 정도를 가지고 흔들린다거나 무너질 이유는 없었다.
“정리를 도와줄 수 있니?”
“그럼요. 그럼요.”
“왜 그러시는 겁니까?”
“건방진.”
몽룡이 손을 들자 방자는 그 손을 잡았다. 몽룡은 당황해서 손을 빼내려고 했지만 방자는 단호했다.
“도대체 뭘 하시려는 겁니까?”
“너야 말로 지금 뭘 하는 것이냐?”
“도련님.”
“그래. 내가 누구인지 잊은 것이야? 네가 모시는 도련님이다. 내가 바로 네가 모시는 도련님이라는 말이야. 그런데 어찌.”
“저도 사람입니다!”
방자의 호통에 몽룡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방자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대체 왜 혼자서 그렇게 행동을 하시는 겁니까? 모든 사람들이 다 달라지려고 하는데. 모두 다 변화하려고 하는데.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쪽이 아닌데. 도대체 왜 도련님은. 도대체 왜?”
“뭐라는 것이야?”
방자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토해낸 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눈을 감고 머리를 내밀었다.
“때리십시오.”
“무슨?”
“때리시란 말입니다.”
몽룡은 침을 꿀꺽 삼켰다.
“내가 야만인이냐?”
“그러니 말입니다.”
방자의 말에 몽룡은 이마를 짚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도련님.”
“다 나만 빼고 앞으로 간 기분이야.”
몽룡의 대답에 방자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이게 무슨?”
“아. 사또.”
학도가 집에 들어서면서 멈칫했다. 춘향이 뭐라고 말을 하려는 순간 학도의 얼굴이 그대로 굳어졌다.
“이몽룡 그 자인 겁니까?”
“그러니까.”
“이게 무슨.”
학도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말도 안 되는 거였다. 아무리 그가 춘향의 정인이었다고 하더라도 이건 아니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사또.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춘향이 자신을 말리자 학도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저었다.
“나의 집으로 가십시다.”
“아니요.”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인가?”
“사또. 저는 사또가 아닙니다. 몽룡 도련님이 저의 정인이었고 정인입니다. 이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게 무슨?”
학도는 하늘을 보며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멍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럼 포졸이라도 두겠소.”
학도는 이 말을 남기고 밖으로 나갔다. 춘향은 한숨을 토해냈다. 너무 미안하고 또 미안한 마음에 견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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