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구 장. 한양으로 가다. 하나
“짐을 모두 가져간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나 참.”
춘향이 정리한 짐을 보고 학도는 미간을 모았다.
“아니 부족한 것은 한양에 가서 새로 사면 될 것인데 도대체 왜 미련하게 이 모든 것을 가져간단 말이오?”
“제가 가져갈 것입니다.”
“아니.”
춘향의 대답에 학도는 잠시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아마도 누가 들고 갈까 그것을 묻는 줄 알았나 보다.
“그런 것이 아니라. 어차피 한양에 가서 새로 사면 되는 것입니다. 새 것을 쓰면 되는데 어찌 그렇소?”
“저는 사또께 짐이 되기 위해서 한양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 나라 조선을 위해서. 이 나라 조선의 여인들을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이 있을까 찾아보려고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그런데 제가 그리 가서 그리 사치를 하면 사람들의 시선이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그건.”
진지하게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춘향이 그저 자신을 따라오는 것만 생각을 한 그였다.
“그것이야.”
“저는 절대로 사또께 폐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가서 모두 새로 산다 해도 폐가 되지 않을 것이오. 그리고 오히려 너무 낡은 것을 가지고 가면 내가 그대를 함부로 대한다고 할 이도 있으니 꼭 필요한 것, 의미가 있는 게 아니면 놓고 가시오.”
“그렇습니까?”
춘향의 반문에 학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라도 말을 하면 춘향이 조금은 짐을 줄일 것이었다.
“미안하네.”
“예?”
대청에 홀로 앉은 학도에게 물을 건네던 향단은 학도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학도는 물을 받아들고 짧게 기침을 했다.
“내가 공연히 춘향 저 사람을 한양에 가자고 하여서 그대도 이곳을 떠나게 된 것이니 말이야.”
“아닙니다.”
향단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도 가고자 한 것이었다. 춘향을 위해서는 이것이 옳았다.
“아가씨를 위해서도 한양에 가는 것이 낫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어디 한양에서 살아볼 수 있는 기회나 얻을 수 있겠습니까? 오직 사또의 은혜에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입니다.”
“은혜라니?”
학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물을 모두 마시고 살짝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무엇을 해도 이몽룡 그 자를 이길 수 없겠지?”
“예?”
“되었네.”
향단이 당황한 기색을 보이자 학도는 고개를 흔들었다. 공연히 향단을 놀리려고 한 말은 아니었다.
“그저 내 생각이야.”
“그러니까.”
“곡 대답을 할 이유는 없다는 거지.”
“예. 알겠습니다.”
향단은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학도는 심호흡을 하고 먼 하늘을 바라봤다. 가슴이 답답해왔다.
“나는 한양이 싫어.”
“그럼 가지 않으시면 되는 것 아닙니까?”
“어명일세.”
“어명이요?”
“그러하네.”
학도의 말에 향단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학도가 높은 사람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어명이라고 하니 또 다른 기분이었다.
“진작 오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을 내가 몇 번이나 거절을 한 것이라 가면 얼마나 귀찮을까 걱정이야.”
“왜 가지 않으셨습니까?”
“그야 알지 않는가?”
“예? 아.”
학도의 말에 향단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학도가 왜 그런 것을 했는지 너무 뻔한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됐네.”
학도는 싱긋 웃었다. 그리고 입을 살짝 내밀고 어색한 표정을 지은 후 목을 가다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절대 안 되겠지?”
“무엇이 말씀입니까?”
“이몽룡 그 사람을 이기는 거 말일세.”
“아 그것 말입니까?”
쉽게 이긴다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절대로 춘향은 몽룡을 지우거나 밀어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몸이 멀어지면 저절로 마음도 멀어지지 않겠습니까? 그 시작은 쉽지 않으나 끝이 간다면 다를 것입니다.”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군.”
“그것이.”
“되었어. 괜찮네.”
향단이 자신을 위로하려고 하자 학도는 고개를 저었다. 향단의 위로가 필요해서 하는 말은 아니었다.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걸세.”
“아가씨에게 귀한 분입니다.”
“그렇지.”
학도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몽룡이라는 사람이 어쩌면 여태 춘향이 살게 한 사람일 터였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 사람을 이기지 못하겠지.”
“그런 말씀이 아니라.”
“알고 있네.”
학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
“사또.”
“한양에 가면 고생을 할 걸세.”
“알고 있습니다.”
“그렇겠지.”
향단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학도는 별 말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향단은 두 손을 모으고 예를 갖췄다.
“내 그대의 아가씨를 마음대로 다룬다고 하여 미워하지 마시게. 나도 어쩔 수 없어 이러는 것이니.”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다행이고.”
학도는 가볍게 손을 흔들고 멀어졌다. 향단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숨을 크게 쉬었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혼 그 사람은 뭐라고 하던가?”
“그저 웃으셨습니다.”
“그래?”
무영의 대답에 학도는 빙긋 웃었다. 늘 그런 이였다. 자신의 감정을 쉬이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왜란에 그리 고생을 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그리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지.”
“믿으십니까?”
“믿지. 왜?”
“아닙니다.”
무영이 말을 감추자 학도는 미간을 모았다.
“왜 그러는가?”
“전과 다르십니다.”
“그렇겠지.”
학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모진 일을 겪은 분일세. 그런 분이 이전과 마냥 같을 수만 없다는 것은 그대도 알지 않는가?”
“허나 너무 달라지셨습니다. 그 성정이 너무나도 달라지셔서 정말로 같은 분이 맞나 싶었습니다.”
“그래?”
무영이 이리까지 말을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기에 학도는 입을 내밀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 없었다.
“나는 그저 그 자를 믿고 따를 뿐일세. 그 사실은 그대도 이미 다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말이야.”
무영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학도도 그를 따라 웃었다. 어차피 한양으로 가기로 한 결심이었다.
“그 사람이 많이 지쳤지?”
“예.”
“정쟁도 시달렸을 거고.”
“사또도 그리 편하시지 않을 겁니다.”
“이미 편하지 않은 것은 알고 있네.”
학도의 옅은 미소에 무영은 입을 꾹 다물었다. 학도가 자신이 죽을 길임을 알고 가는 기분이었다.
“아마 견제가 엄청날 것입니다.”
“그렇겠지.”
“혼인이라도 치루고 가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응?”
학도는 물끄러미 무영을 응시했다. 무영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단호했지만 학도는 고개를 저었다.
“싫네.”
“사또.”
“그건 아니야.”
“허나.”
“춘향 그 사람을 위한 게 아닐세.”
학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숨을 내뱉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나 하나 살자고 춘향 그 사람을 괴롭힐 수가 있겠는가? 나에게는 그럴 수 있는 자격이 없네.”
“허나.”
“되었네.”
무영이 다시 설득하려고 하자 학도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절대 그럴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혹여라도 그 사람에게 그런 말은 하지 마시게. 그러면 그 사람이 이상한 생각을 할 수도 있으니.”
“알겠습니다.”
무영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모실 이는 오직 학도였다. 다른 생각을 할 이유는 없었다.
“가보지 않으실 겁니까?”
“그래.”
“도련님.”
몽룡의 단호한 태도에 방자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이리 그냥 춘향 아가씨를 보내면 후회하실 겁니다. 정녕 그리 후회를 하셔도 괜찮으시다는 겁니까?”
“괜찮지 않다.”
“그런데 왜?”
“가면 서로 아플 것이다.”
“예?”
“서로 너무 지치고 아플 것이야.”
몽룡의 그 쓸쓸한 말에 방자는 아랫입술을 물었다. 방자는 먼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그 사람 곁에 있었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지금 가면 미련을 남기고 있다고. 그렇게 그 사람을 생각하고 있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을 할 것이 아닌가?”
“그것이.”
“그러면 안 돼.”
몽룡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단호했다.
“그건 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야.”
“도련님.”
“춘향이를 놓아주기로 했네.”
몽룡은 순간 묘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놓아주는 것이 아니지. 내가 먼저 춘향을 소유한 적이 없는데 누구를 놓아준다는 말인가? 미련으로 잡고 있던 것을 이제 놓아야지. 그러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으니 놓아야지.”
“도련님. 그리 힘드시면.”
“아니다.”
방자의 채근에 몽룡은 더욱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은 춘향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저 짐일 따름이었고 그저 평범한 사람일 따름이었다. 자신은 춘향에게 불편한 무언가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임을 알 때. 물러서는 것 역시 그에게는 연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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