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 장. 한양으로 가다. 둘
“정말 가는 거야?”
“예.”
“아이고.”
춘자는 춘향의 손을 꼭 잡고 눈물을 글썽였다. 춘향은 혀를 내밀고 그런 춘자의 손을 더욱 꼭 잡았다.
“앞으로도 글공부 계속 하셔야 해요.”
“이 나이에 무슨.”
“그래도요.”
춘향은 고개를 저었다.
“꼭 더 하셔야 해요.”
“그래. 그래.”
“삼월아.”
춘향은 옆의 삼월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미안해.”
“아니여요.”
삼월은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춘향은 그런 삼월의 손을 꼭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향단을 쳐다봤다. 향단은 앞으로 나와서 보따리 하나를 삼월에게 건넸다. 삼월은 그것을 받아보더니 눈이 커졌다.
“아, 아가씨.”
“이 집을 봐달라는 거야.”
“예?”
“공부하면서 간단히 정리 같은 것.”
“아가씨.”
“힘든 것은 여기 부탁을 했으니 그러지 말고.”
삼월에게 준 보따리에는 돈과 대국에서 온 인형이 담겨 있었다. 삼월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오지 않으시는 거니?”
“그래.”
방자의 대답에 향단은 한숨을 토해냈다. 아무리 속상해도 몽룡이 춘향을 보러 올 거라고 믿었기에 서글펐다.
“네 말처럼 그리 아가씨를 귀하게 여기면 당연히 와야 하는 거 아니니? 그게 당연한 것이잖아.”
“그래도 어쩔 수 없으시겠지.”
“정말.”
“되었다.”
향단이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자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모두 다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누구 하나 편할 수 없는 일은 그만 하는 것이 차라리 더 나은 거였다.
“도련님은 잘 하시겠지?”
“그렇습니다.”
“그렇지.”
방자의 대답에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몽룡은 자신이 생각을 한 것보다 더 강한 사내일 터였다. 자신이 걱정할 것은 오롯이 이 고장 아이들의 교육에 관한 것이었고 그것은 잘될 거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더 이상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런 것이 없다는 것이 다소 아쉽기만 하네.”
“한양에서도 잘 할 겁니다.”
“고맙습니다.”
춘향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련이 남지 않소?”
“남습니다.”
학도의 물음에 춘향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미련이 남는다고 해서 이제 이 걸음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은 제가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니요.”
학도가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자 춘향은 고개를 저었다. 무슨 말을 더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내가 바라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뭘 해야 하는지. 그런 것들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그렇소?”
“제가 과연 한양에 가서 제가 뜻을 하는 그대로 뭔가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그럴 수 있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할 수 있을 거요.”
“그럴까요?”
춘향은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 한양에서 여인이 글을 가르친다는 것을 어찌 여길지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내일 아침 이르게 떠날 거요.”
“예. 그래야 걸음이 편하겠지요.”
“가마를 준비했소.”
“아니요.”
“타시오.”
춘향은 고개를 저었지만 학도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나를 위해서도. 그대를 위해서도 좋소.”
“예. 고맙습니다.”
춘향은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학도가 이리 배려하는데 무조건 싫다고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었다.
“정말 안 가보실 겁니까?”
“그래.”
“도련님.”
방자는 한숨을 토해내며 미간을 모았다. 자신이 몽룡에게 춘향을 놓아주라고 했지만 이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가시면 도련님께서도 후회하시고 아가씨께서도 후회하실 겁니다. 그걸 모르시는 겁니까?”
“안다.”
“아는데요?”
“가면 미련이 생긴다.”
“도련님.”
“내가 알아.”
몽룡은 단호한 어조로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춘향을 놓는다고 했지만 여전히 마음에는 알 수 없는 미련이 남았다.
“더 이상 그리 멍청하게 행동을 해서는 안 되는 걸세. 내가 더 잘 알고 있으니. 부디 부탁이야.”
“도련님.”
“되었어.”
몽룡은 먼 하늘을 응시했다. 유난히 달이 밝은 밤이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내일 춘향이 떠나는 길. 날이 밝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달이 밝구나.”
“안 가보셔도 되겠습니까?”
“응.”
향단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몽룡이 그리 강건하게 마음을 먹었다면 자신이 흔들 이유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자신이 너무 흔들릴까 그것이 걱정이 되었다.
“내가 얼마나 겁이 많은 사람인지 나보다 네가 더 잘 알고 있지 않으니? 가면 나는 흔들릴 것이다.”
“그럼 흔들리시면 되지요.”
“아니.”
춘향은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안 되지.”
“아가씨.”
“차라리 마음이 편하구나.”
더 긴장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았다.
“내일 가는 사람의 마음이 아니다.”
“그럼 서찰이라도.”
“아니.”
춘향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 미련 같은 것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런 것을 남기면 오히려 더 지치고 힘들 거였다. 미련이라는 것은 그렇게 사람을 지치게 하고 또 포기하게 하는 거였다.
“도련님을 위해서도. 그리고 나를 위해서도 절대로 그러면 안 되는 것이야. 너도 이미 알고 있지 않니?”
“알고 있으나.”
“그래. 알면 행하면 된다.”
춘향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달이 밝았다. 내일 걸음이 힘들지 않을 것 같아 더욱 걱정이었다.
“내일은 무조건 가야겠구나.”
“아가씨.”
“자자.”
“예.”
향단은 더 이상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그런 향단의 손을 꼭 잡았다.
“미안해.”
“제가 왜요?”
“방자와 이제 겨우 마음을 열고 서로를 보게 되었는데. 내가 두 사람을 갈라놓은 것이니 말이다.”
“아닙니다.”
향단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절대로 그런 마음을 먹을 수도 없었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
“저의 모든 것은 다 아가씨의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어찌 그런 말도 안 되는 마음을 먹겠습니까?”
“그래도 너의 욕망을 챙기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누구 하나 그것을 잘못이라고 할 사람은 없다.”
“아니요.”
향단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저었다. 답답했지만 이 모든 것이 결국 시간의 흐름이고 향단의 운명이었다. 운명은 함부로 거스르는 것이 아니었고 함부로 피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저는 아가씨의 곁을 지키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건 아가씨의 잘못이 아니라 오로지 저와 방자. 그 놈의 연이 더 이상 닿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 그냥 이대로 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래?”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침을 한 번 삼켰다. 답답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스스로 모두 다 감내해야 할 일이었다.
“그래. 진짜로 자자.”
“예. 자요.”
“언제나 다시 올까?”
춘향은 집을 한 번 둘러봤다. 오랜 시간 머물던 곳이었다. 이제 더 이상 이 집에서 머물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 그 사실은 또 다른 생각을 만들었지만 춘향은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밀어냈다.
“좋은 밤이다.”
먼저 눈을 감는 춘향을 보며 향단은 입을 내밀었다. 자신이 공연한 말을 해서 이 모든 사달을 낸 기분이었다.
“네가 한 것이라 해라.”
“예?”
“어서.”
아침부터 무슨 부산인가 했더니 몽룡이 보따리 하나를 대뜸 내밀었다. 방자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도련님.”
“긴 걸음이 힘들 것이다. 한양으로 가는 다음 주막은 점심시간을 지나서야 겨우 도착할 것이야.”
“그러니까 이게.”
“주먹밥이다.”
방자는 아랫입술을 물었다. 이것이 바로 몽룡의 마음일 터였다. 제대로 말을 할 수 없는 그런 마음이었다.
“어서.”
“예. 알겠습니다.”
방자는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였다. 방자가 멀어지는 모습을 보며 몽룡은 한숨을 토해냈다.
“부디 늦지 않았어야 하는데.”
“오르시지요.”
“고맙습니다.”
뒤에 더 미련을 두던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무영의 손을 잡고 가마에 올랐다. 편안했지만 불편했다. 이어 향단이 가마에 올랐다.
“꽤 넓습니다.”
“사또께서 배려를 하신 것이지.”
춘향의 대답에 학도는 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출발하겠소.”
“예.”
“잠시만!”
그때 멀리서 소리가 들렸다. 방자가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춘향은 다시 가마에서 내렸다. 그리고 방자를 맞았다.
“어찌?”
“도련님이 이걸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응?”
“주먹밥입니다.”
춘향의 눈에 순간 눈물이 차올랐다. 자신은 차마 오지 못하더라도 뭐라도 해주고 싶었던 그 마음을 알 것 같아서 더욱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춘향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주먹밥을 품에 꼭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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