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이 장. 이혼 둘
“여인이라.”
“그렇습니다.”
혼은 물끄러미 학도를 응시하며 고개를 저었다.
“내 아무리 그대를 소중한 벗이라고 생각을 한다 하더라도 안 될 것이라는 것은 알고 온 것이겠지?”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
혼은 낮게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학도가 이전과 달라졌다고 하더니 길동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내가 직접 남원까지 가도 그대가 오지 않겠다고 하는 이야기는 알았으나 이럴 줄은 몰랐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계집 치마폭에 싸여 그대가 이리 멍청한 이가 되었는 줄 몰랐다는 것이야. 여인이 뭘 한다고?”
혼은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 학도가 자신을 따라 웃지 않자 이내 미간을 모았다.
“불만인가?”
“예.”
“뭐라고?”
“불만입니다.”
학도는 물러서지 않고 물끄러미 혼을 응시했다.
“전하께서는 새로운 조선을 세우실 분입니다. 그 난리가 난 상황에서도 백성들을 버리시지 않았습니다. 그런 분께서 어지 이리 백성이 가진 재능을, 재주를 무시하실 수가 있단 말입니까?”
“재능을 무시한다.”
혼은 턱을 어루만지면서 심히 불쾌한 표정을 지었으나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서 내가 뭘 하기를 바라나?”
“한 번 그 사람을 만나주십시오.”
“만나라.”
혼은 잠시 멈칫하다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농이 과하군.”
“농이 아닙니다.”
“농이 아니라고?”
혼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게 무슨 말인가?”
“말씀 그대로입니다.”
“어허.”
혼은 주먹으로 세게 상을 내리쳤다.
“어찌 감히 과인에게 천한 여인이나 만나라고 하는가? 그것이 지금 그대가 나에게 할 소리인가?”
“임금이 바르게 서기를 바라는 것이 백성이 가져야 할 올바른 본분이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그저 전하에게 더 좋은 이를 소개를 해드리고 어떠한지 보여드리고 싶어서 그런 것이 전부입니다.”
“더 좋은 이?”
혼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물끄러미 학도를 보더니 이를 드러내고 서늘하게 웃었다.
“여인에 너무 빠졌어.”
“그런 게 아닙니다.”
“말대답이라도 하는 겐가?”
“전하.”
“내가 그 사람을 만나면 뭘 해주겠는가?”
“예?”
갑작스러운 혼의 제안에 학도는 미간을 모았다.
“그게 무슨?”
“내가 그대의 말을 들어준다면 그대도 나에게 뭐라도 하나 해줘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안 그래?”
“그것이.”
혼은 아랫입술을 물고 물끄러미 학도를 응시했다. 학도는 어색한 미소를 짓더니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하께서 바라시는 것. 그것이 무엇이건 제가 무엇이건 다 해드리겠습니다. 전하를 위해서 하겠습니다.”
“나를 위해서 해?”
“그렇습니다.”
“좋네.”
혼은 이를 드러내고 씩 웃었다.
“조정에 들게.”
“전하.”
“왜 그러는가?”
“그것은.”
관직에 오르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의 정적이 지금처럼 많은 상황에서는 위험했다.
“내 말을 듣지 않겠는가?”
“아직은 이르지 않겠습니까?”
“이르다.”
학도의 대답에 혼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거절이군.”
“그런 것이 아니라.”
“그대의 여인에 기회를 주지.”
“예?”
“그렇다면 관직에 오르겠는가?”
“그건.”
확답을 얻어야만 했다. 더 많은 것을 얻어내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일단 이 정도로도 충분할 것이었다. 괜히 혼을 더 자극해서 그가 얻을 수 있는 것도 모두 놓치는 것 보다는 나을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많이 변했군.”
“전하도 달라지셨습니다.”
“그런가?”
혼은 물끄러미 자신의 손을 응시하더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나도 내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고 있어. 그 많은 시간 동안 백성만을 그렸는데 말이야.”
“지금도 그러시지 않습니까?”
“아니.”
혼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왜란이 끝이 나고 나서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어. 대국은 우리에게 힘이 되지 않았고 아버지는 도망을 가셨었지.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무엇도, 아무 것도 없었네.”
“그 상황에서도 백성과 같이 의병을 만드셨던 분이 바로 전하십니다. 그러니 더 자신감을 가지시옵소서.”
학도를 물끄러미 보던 혼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마치 어릴 적 같은 그 모습에 학도도 마음이 편해졌으나 곧 혼은 표정을 지웠다.
“돌아가게.”
“알겠습니다.”
“내일 그 여인을 만나보지.”
“예. 알겠습니다.”
학도는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혼은 멀어지는 학도를 보며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생각을 하는가?”
“괜찮아 보입니다.”
“그러한가?”
권 내관의 말에 혼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저 사람이 그런 사람이 아닌데 유난히 여인을 너무 끼고 있는 것이 거꾸로 약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약점이 아닐 것입니다. 때로는 사람이 잃을 것이 있어야 더 성실하게 움직이는 법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한가?”
잃을 것이 있어야 노력을 할 수 있다는 것. 혼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이었다. 혼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내일이 기대가 되는 군.”
“전하를요?”
“그렇소.”
“안 됩니다.”
춘향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감히 천한 여인의 몸으로 임금을 만날 수 없었다.
“싫습니다.”
“거절이오?”
“그것이.”
어명을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진퇴양난이었다. 허나 이런 마음과 다르게 학도는 그저 웃을 따름이었다.
“무엇이 즐겁습니까?”
“모두 즐겁소.”
“사또.”
“나는 이제 사또가 아니오.”
학도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하며 고개를 저었다.
“관직을 내려놓은 이니. 그냥 편하게 부르시오. 뭐 내가 그대보다 나이가 많으니 오라버니라고 하시던가.”
“오라버니요?”
춘향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미간을 모았다. 학도는 그런 춘향을 보며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표정도 지을 줄 아시오?”
“농이 지나치십니다.”
“농이 아니오.”
“어찌.”
“아무튼 우리 두 사람의 호칭 문제는 차차 정하기로 하고. 일단 내일 전하를 뵈어야 할 것이오.”
“나 참.”
춘향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한양에서 산다는 것이 이런 의미를 지닐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기에 너무 당황스러웠다. 학도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장난스럽게 웃어보였다.
“내가 전하와 친하다는 것은 이미 그대도 알고 있었던 사실이 아니오? 내 벗을 만나는 것이오.”
“허나 벗이라고 해도 그 분이 임금이라면. 그것은 벗이 아니라 섬겨야 하는 분이 아닌 겁니까?”
“그렇지.”
학도는 턱을 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나도 간단한 학도의 대답에 춘향은 이마에 내천 자가 그려졌다. 허나 학도는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짐짓 묘한 미소를 지을 따름이었다.
“아무튼 가는 것이오.”
“옷도 없고.”
“그럼 사지.”
“됐습니다.”
학도가 금방이라도 옷을 파는 곳으로 데리고 가려고 하자 춘향은 미간을 모으며 고개를 저었다.
“안 사도 됩니다.”
“그럼 내일 가는 것이지?”
“알겠습니다.”
춘향은 긴장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습니다.”
학도는 그런 춘향을 보며 그저 웃을 따름이었다.
“즐거워 보이십니다.”
“그러하냐?”
아이들을 배웅하고 난 몽룡을 보며 방자는 가벼이 말을 건넸다. 몽룡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즐겁다.”
“정말이십니까?”
“그래.”
“어찌 그러십니까?”
“무엇이?”
“아니.”
방자는 알맞은 말을 고르지 못했다. 몽룡은 그저 그런 방자를 보며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일 따름이었다.
“전에는 왜 나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인가 싶었다. 허나 지금은 그저 모든 것이 편안하다.”
“다행이십니다.”
방자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몽룡은 작게 숨을 내뱉었다. 그래도 마음 한 부분이 답답한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춘향이는 잘 있나 모르겠구나.”
“잘 계실 겁니다.”
“그렇겠지.”
학도와 같이 간 것이니 그리 걱정할 것은 없을 것이었다. 오히려 훨씬 더 윤택한 삶을 누릴 것이었다.
“그 아이를 걱정할 것이 없는데 나는 도대체 왜 이리 걱정이 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구나. 내가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어.”
“마음을 계속 품고 계시니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마음이라.”
몽룡은 가슴에 손을 한 번 얹은 후 쓴 웃음을 지었다. 이제 와서 이런 생각을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저 혼자 이렇게 그리워하는 것이 전부일 뿐. 이 이상 그가 할 일은 없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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