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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소설] 벚꽃 필적에 [오십사 장. 한양 살이 둘]

권정선재 2017. 9. 1. 23:30

오십사 장. 한양 살이 둘

괜찮습니다.”

전하가 내리신 옷이오.”

?”

그래도 거절하겠소?”

아니.”

 

학도가 이리까지 말을 하는데 춘향이 싫다고 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춘향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제가 뭐라고 이런 것들을 해주시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런 대접을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내가 한양에 데려왔소.”

허나.”

그러니 이런 대접은 당연하지.”

 

학도의 장난스러운 표정에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고마우면서도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옷이 아주 좋아 보입니다.”

그러니?”

 

향단의 칭찬에 춘향은 자신의 옷차림을 쳐다봤다. 확실히 깔끔해 보이는 것이 좋아 보이기는 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이런 옷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은 아니었다. 지나친 사치였다.

 

지금 얼마나 많은 이들이 전쟁 이후라서 굶고 있는지 아는 분들이 이런 옷을 나에게 권하다니.”

한양이니까요.”

오셨습니까?”

 

무영의 말에 춘향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무영은 엷은 미소를 지은 후 고개를 숙이고 춘향을 응시했다.

 

이곳 사람들은 전쟁과 관련이 없습니다.”

어찌?”

 

춘향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분명 지난 번 전쟁에 임금이 명까지 달아나고, 새 왕이 오신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런 말씀입니까?”

자신들과 관련이 없으니까요.”

?”

그런 일은 신경을 쓰지 마시지요.”

예 그렇군요.”

 

춘향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영도 이렇게 말을 한다는 것은 자신이 틀렸다는 것일 수도 있다는 거였다. 속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게 이들의 처한 현실일 거였다.

 

준비는 모두 끝을 내신 거지요?”

. 이제 다 마쳤습니다.”

아가씨 이것까지요.”

 

춘향이 돌아서려고 하는데 향단이 재빨리 춘향의 머리에 비녀를 꽂았다. 춘향은 미간을 모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혼례를 치룬 몸도 아닌데.”

꽂으시지요.”

?”

이곳 사람들은 사또와 함께 오신 줄 압니다.”

. 알겠습니다.”

 

무영의 말에 춘향은 더 이상 아무 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학도를 위해서 그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불렀는가?”

올 것입니다.”

그래?”

 

혼은 턱을 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학도가 이리도 걱정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신기한 일이었다.

 

그 동안 내가 그리도 혼인을 하기를 원했건만, 단 한 번도 그런 일이 없던 그대가 아니었는가?”

그게 중요하십니까?”

.”

 

혼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하지 않지.”

대단한 여인입니다.”

대단한 여인이라.”

 

순간 혼의 눈빛이 묘하게 빛났다. 학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차를 마셨다. 혼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대가 지금 그대의 임금 앞에서 고작 여인을 대단하다고 지칭한다는 것인가? 그리 하여도 되는 것인가?”

정말 대단한 여인입니다.”

대단해?”

 

혼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게 무슨 말인가?”

영리합니다.”

영리하다.”

 

혼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릴 적부터 학도는 학습 능력이 뛰어난 이에게 가까이 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렇다고 한들 여인이 아무리 해도 오를 수 없는 경지가 있을 거였다. 그걸 넘기는 어려울 거였다.

 

글도 스스로 배우고. 모든 것을 스스로 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서역의 글을 옮기고 있습니다.”

서역?”

서학이 아닙니다.”

 

혼이 눈을 가늘게 뜨자 학도는 곧바로 덧붙였다. 혼은 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흔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무어라고 했나?”

혹여라도 오해를 하실까.”

그래.”

 

혼은 입을 꾹 다물었다. 서학에 대한 이야기가 슬슬 돌고 있었다. 아직 모든 이들이 배우고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걱정이 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전쟁을 이제 막 마친 참에 또 다른 혼란은 안 될 일이었다.

 

그나저나 조정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

관직에 오를 것인가?”

모르겠습니다.”

모른다?”

 

혼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그대가 왜 모르나?”

공식적인 직함은 맞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지금 전하께 필요한 사람은 그저 전하의 뜻을 받들 사람이 아닙니까? 그런 일을 제가 하겠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혼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학도의 말처럼 자신은 지금 관직에서 자신의 편을 들어줄 이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허나 이렇게 영리한 학도가 불편하기도 한 혼이었다. 그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그대에게 긴장하는 것은 알고 있지?”

?”

아닐세.”

들었습니다.”

 

그때 밖에서 상궁의 목소리가 들렸다. 혼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문이 열렸다.

 

 

 

잘 하시겠지요?”

모르겠습니다.”

 

무영의 대답에 향단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전하께서 까다로운 분이십니까?”

저도 사또 덕분에 몇 번을 뵌 분이기는 하나 그리 유하게 만나실 수 있는 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요?”

 

향단은 아랫입술을 물었다. 걱정이었다. 혹시라도 무슨 변고가 일어나지 않을까 그것이 걱정이었다.

 

그래도 괜찮을 겁니다.”

?”

그런 걱정스러운 표정은 하지 마시오.”

.”

 

향단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황한 향단과 다르게 무영은 그저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대도 알다시피 사또가 춘향 아가씨 정도는 충분히 지킬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궐로 모셔 가시지 않았을 것이니. 그런 일에 대해서 하나하나 걱정할 이유는 없소.”

그렇겠지요.”

 

향단도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허나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로 마주하는 것은 전혀 다른 법이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잘 모르겠습니다.”

잘 되지 않겠습니까?”

 

무영의 미소에 향단은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긴장이 되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기다리는 것이 전부였다.

 

 

 

고개를 들어도 괜찮다.”

?”

괜찮대도.”

 

옆을 보니 학도도 고개를 끄덕였다. 춘향은 긴장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얼굴이 멀끔한 사내가 거기 앉아있었다. 혼은 춘향의 얼굴을 확인하고 미소를 지으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학도 이 사람이 왜 그리 그대에게 목을 매고 있나 몰랐건만 지금 그대를 보니 쉽게 알겠군.”

과찬이십니다.”

과찬은.”

 

혼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 글을 배운다고?”

미천합니다.”

미천하다.”

 

혼은 숨을 들이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 여인이었다.

 

그래 한양에서 뭘 하고 있나?”

글을 마저 정리할까 싶습니다.”

글을?”

. 이곳에 제가 얼마나 더 머물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남원에서는 글을 구하는 것에 한계가 있나이다. 그래서 제가 이곳에서 저만의 글을 마련하고 다른 이들에게도 그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래?”

 

혼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 어떤 여인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그에게 이런 것을 라는 이는 춘향이 처음이었다.

 

혹 내게 할 청이 있느냐?”

?”

그럼 들어주겠다.”

그것이.”

 

춘향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학도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춘향은 결심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물입니다.”

?”

그만 두시오.”

 

학도는 미간을 모았다. 공연히 여기에서 혼을 더 자극한다고 해서 춘향에게 좋을 것이 없었다. 혼은 그리 간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이미 말을 하지 않았소. 전하는 그리 한가하신 분이 아니니 그런 중하지 않은 이야기는 그만 두시오.”

어찌 중하지 않습니까?”

 

춘향은 곧바로 목소리를 키웠다.

 

지금 도성 안에 물을 마시지 못하는 이가 수두룩합니다.”

그러한가?”

그러합니다.”

 

혼은 묘한 표정으로 춘향을 응시했다. 그 동안 그에게 이런 식으로 함부로 말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았다.

 

내가 두렵지 않은가?”

한 나라의 아비인 임금을 두려워하는 자식이 있겠나이까? 그 어떤 자식도 아비를 두려워해서는 아니 됩니다.”

그렇군.”

 

혼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그대의 방도는 무엇인가?”

궐의 물을 나누십시오.”

궐의 물을?”

. 그것이 유일한 방도인 줄 압니다.”

 

춘향의 말에 혼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 많은 이들 중 누구 하나 자신에게 이런 고언을 한 이가 없었다.

 

네 말이 틀리면 어찌 할 것이냐?”

남원으로 돌아가겠나이다.”

남원으로.”

 

춘향의 말에 혼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게 지금 나에 대한 경고인가?”

경고가 아닙니다. 고언입니다.”

고언이라.”

 

혼은 아랫입술을 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긴장된 분위기가 있는 순간 그는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춘향은 긴장된 표정으로 학도를 쳐다봤고 학도도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