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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소설] 벚꽃 필적에 [오십오 장. 남원에서 온 이상한 처자]

권정선재 2017. 9. 4. 21:45

오십오 장. 남원에서 온 이상한 처자

다행입니다.”

죄송합니다.”

 

학도가 자신을 나무라지 않았지만 춘향은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지 정도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전하에게 그런 말씀을 드리면 안 된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그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닙니다.”

 

학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그래서 다행입니다.”

?”

제가 그대를 아주 영리하다 하였습니다.”

그게 무슨?”

 

춘향의 얼굴이 순간 붉어졌다. 자신은 영리한 것과 전혀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하지만 학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전하께서 그대가 누구인지 너무 궁금해 하고 있었습니다. 이리라도 알려드리니 다행 아닙니까.”

하지만 화를 내시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그리고 그 불똥이 사또에게까지 튀면 어떻게 할까.”

그렇다면 말을 하지 말아야지요.”

그건.”

 

춘향은 할 말이 궁해졌다. 그렇게 말을 하면 대답은 없었다. 허나 말을 해야만 했다. 그래야 옳았다.

 

하지만 사람들이 물이 없어서 힘들어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것을 모르는 척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요.”

 

학도는 곧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하도 이미 아셨습니다.”

?”

허나 그 어떤 방법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찌?”

그대의 방법을 충고한 이가 없소.”

그렇습니까?”

 

너무나도 간단한 방법이었다. 힘이 없는 이가 물을 나누는 것을 막는 사람이 있다면 더 강한 힘이 있는 사람이 나서면 되는 거였다. 지금 한양 도성에서 가장 힘이 강한 이는 바로 임금이었다.

 

그러나 쉽지 않을 것이오.”

어찌 그렇습니까?”

전하께서는 지금 왜란 이후로 조정의 힘을 균형을 잡는 일에 너무나도 힘을 쏟으시니 말이오.”

그렇습니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전쟁이 끝나고 이제 겨우 사람들이 안정이 되었다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춘향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소?”

영특합니다.”

그렇지?”

 

권 내관의 대답에 혼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을 보고도 그리 말을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어찌 나를 겁을 내지 않을까?”

그 누구도 겁을 내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한가?”

용기가 있는 사람입니다.”

용기.”

 

그 동안 왕의 곁에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모두 다 아첨을 할 뿐 그에게 용기를 보이는 이는 없었다.

 

학도가 부럽네.”

?”

그런 이가 곁에 있으니.”

허나 한 나라의 임금이 그런 이를 부러워할 이유는 또 무엇이란 말씀입니까? 그런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혹여라도 다른 이들이 듣고 전하에 대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할까 걱정이 됩니다.”

걱정이라.”

 

혼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부러운 것은 어쩔 수 없네.”

 

 

 

궐에서 물을 주다니.”

그게 다 어떤 처자 때문이래.”

어떤 처자?”

남원에서 웬 처자가 왔다는 구먼.”

남원?”

 

사람들 사이에 수군거리는 목소리는 점점 더 커졌고 이제 더 이상 한양에서 춘향을 모르는 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정말 여인에게도 글을 가르치는가?”

그렇습니다.”

 

높은 지체의 마님이라는 말을 듣기는 하였으나 실제로 만나보니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외모였다.

 

내가 왜 자네를 불렀는지 아는가?”

모릅니다.”

모른다?”

 

마님은 미소를 지은 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한숨을 토해냈다.

 

나는 글을 모르네.”

?”

그래서 그대가 가르치기 청하네.”

하지만.”

 

춘향은 당황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자신보다 더 높은 분이 글을 모른다는 것이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다.

 

정말 글을 모르십니까?”

그렇다네.”

 

마님은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먼 하늘을 바라보며 가만히 고개를 흔들었다.

 

어릴 적 나도 글을 배우고 싶었지. 허나 이상하게 너무 많은 배운 여인은 사내들이 탐탁지 않아 하지.”

하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것을 배우고자 했으나 그런 것은 아무 소용이 없어. 그러니 그대가 내게 글을 가르치게.”

그러면 저에게 오시면 됩니다.”

 

이미 한양에서도 여러 방도로 글을 가르치기 시작한 춘향이었다. 누구라도 오면 되는 거였다.

 

마님께서도.”

아니.”

 

마님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싫어.”

허나.”

싫으네.”

 

춘향은 침을 꿀꺽 삼켰다. 마님은 차가운 눈으로 춘향을 응시하며 미간을 모으며 한숨을 토해냈다.

 

나는 그럴 수 없네.”

허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도 마님께 글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뭐라고?”

 

마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그 누구도 자신에게 이리 말을 한 이가 없었다.

 

내가 누구인지 아는가? 그리고 내가 그대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인지도 알고 있는 것인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제가 가지고 있는 가치를 다르게 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것은 글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

 

마님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춘향은 긴장되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물러날 수도 없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내 말을 들어야지.”

허나.”

그대가 이러면 그대의 곁에 있는 변학도. 그 사람이 무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겐가?”

?”

 

이것은 또 무슨 말인가? 춘향의 반응에 마님이라는 작자는 이제야 승기를 잡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제야 걱정이 되는가?”

그것이 무슨?”

그대가 내 말을 듣지 않으면 그 사람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런 것들이 궁금하지 않은가?”

 

춘향은 숨을 크게 쉬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자신이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야 감이 잡혔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따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저에게는 저의 신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분에게는 그 분의 신념이 있고 이것은 다른 것입니다.”

다른 것?”

 

마님의 표정이 묘하게 굳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저에게는 저의 신념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님에게 따로 글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그건 저의 신념이 아닙니다.”

무슨 소리!”

 

마님은 갑자기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리고 이내 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얼마를 원하나?”

?”

원하는 금액을 말을 하게. 내가 그 정도는 들어줄 수 있으니. 그런 것을 가지고 도대체 왜 그렇게 의뭉스럽게 행동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네.”

돈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뭐라고?”

 

마님의 얼굴에 균열이 갔다. 하지만 춘향은 그저 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마님을 응시할 따름이었다.

 

저는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글을 가르치면서 개인적으로 돈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남원 고을에 있을 적에는 사또에게 돈을 받아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쳤고.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도 그 분에게 돈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는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그러니 그런 제안을 하신다고 해서 제가 흔들릴 일은 없습니다. 저는 그런 것을 가지고 움직이거나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돈이 중하지 않다고?”

 

마님은 미간을 모으며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단 한 번도 자신의 말을 거절하는 이들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말을 무시하고 이렇게 말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불쾌했다.

 

내가 우스운가?”

?”

내가 우스워서 이래!”

아닙니다.”

 

마님은 고함을 지르며 난리를 쳤지만 춘향은 그저 덤덤할 따름이었다. 마님의 온갖 악다구니가 이어졌건만 그런 것은 두렵지 않았다.

 

내가 그 사람을 망가뜨려도 괜찮은가?”

그럼 그렇게 하십시오.”

뭐라고?”

그렇게 하실 힘이 있으시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하지만 저는 그 분을 믿습니다. 그 분은 자신의 재주를 가지고 이곳 한양까지 오신 분입니다. 그러니 하실 수 있는 일은 모두 하십시오.”

, 미친.”

하실 말씀은 끝이 나신 것이지요?”

 

춘향은 싱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허리를 숙이고 돌아섰다. 뒤에서 마님이 고함을 질렀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저기.”

왜 그러오?”

 

학도의 얼굴을 보니 춘향은 자신이 무언가 잘못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춘향은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오늘 마님 한 분이 자신에게 직접 와서 글을 가르치라는 것을 거절했습니다. 사또에게 해가 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럴 일은 없을 것이오.”

?”

내가 그대가 생각한 것보다 재주가 많소.”

저도 그리 생각했습니다.”

 

싱긋 웃는 춘향을 보며 학도도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학도는 춘향을 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작 그런 일을 가지고 이곳 한양에서 밀려나지 않을 것이오. 한양에 오지 않으려고 했으나 온 것이오. 오지 않으려다 온 것이니 더 많은 것을 이룰 것이오. 그러니 그대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오.”

고맙습니다.”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학도가 이리 말해주니 자신이 가진 신념을 모두 지킬 수 있었다.

 

앞으로도 마음껏 뜻을 펼치시오.”

 

춘향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너무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