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칠 장. 외로움 하나
“자네가 누군가에 대해서 그런 것을 물을 줄 몰랐네.”
“그 사람에게 중요한 사람입니다.”
“그래?”
혼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움직였다.
“자네의 입장에서는 그 사람이 입신양명하지 못하는 것이 더 나은 일이 아닌가? 나는 그리 생각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그래?”
혼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학도는 그저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움직여서 혼의 말을 잡았다.
“그 사람이 오히려 남원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지금 이러다가는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할 테니까요.”
“그런가?”
혼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학도의 말이 옳을 수도 있었다. 혼은 다시 말을 움직여서 학도의 말을 잡았다.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
“무엇을요?”
“모든 걸?”
“모르겠습니다.”
학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
“저는 그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제가 뭔가를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왜?”
“그냥 그렇게 느껴집니다.”
학도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혼의 말을 잡았다. 혼은 인상을 찌푸리더니 검지를 입에 물고 미간을 모았다.
“하여간 자네는 쉬운 사람이 아니네. 내가 뭘 잡으려고 해도 이렇게 잡히지 않으니 말이야.”
“제가 그리 쉬운 사람이라면 전하께서 저를 곁에 두시겠습니까? 제가 어려워서 곁에 두시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
학도의 대답에 혼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모든 입바른 소리를 하는 이라 아끼는 셈이었다.
“그걸 아는가?”
“그럼 알지요.”
“아는 군.”
학도는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혼도 그런 그를 따라 웃더니 말을 움직였고 학도는 바로 그 말을 잡았다.
“일부러 이러는 것인가?”
“예?”
“변죽만 올리고.”
“잡아도 되는 것입니까?”
“그렇지.”
혼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학도는 말을 움직이고 씩 웃었다.
“장군입니다.”
“한 판을 못 이기네.”
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장기판을 치웠다. 그리고 물끄러미 벗인 이의 얼굴을 응시했다.
“정녕 조정에 들지 않을 것인가?”
“예. 저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어울리지 않는다.”
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묘한 표정을 지으며 학도를 보고 슬픈 미소를 지은 후 고개를 저었다.
“모두 그리 생각을 하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서자의 서자라.”
“전하.”
“사실이야.”
학도가 말리려고 했지만 혼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건 이미 그대도 알고 있지 않은가?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어떤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인지. 나는 그것을 알고 있기에 너무나도 겁이 나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네.”
“도대체 왜 그리 겁을 내시는 것입니까? 누가 감히 전하께 말을 함부로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모두가.”
“그런 생각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학도는 혼의 눈을 보고 엷은 미소를 지었다.
“전하. 절대로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미 전하는 이 나라의 임금이십니다. 그 누구도 전하를 우습게보지 않습니다. 전하께서 이미 위엄을 품고 있는데 무슨 걱정이십니까?”
“그게 두렵네.”
혼은 한숨을 토해내며 미간을 모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혼은 차를 마신 후 한숨을 토해냈다.
“그만 두지.”
“전하.”
“돌아가시게.”
“전하.”
“돌아가시게.”
학도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많이 바쁘신 모양입니다.”
“미안하네.”
“예. 쉬십시오.”
춘향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학도를 보냈다. 춘향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마음이 불편했다.
“도대체 무슨 고민이 저리 많으신 것인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너무 미안했다.
“이것 좀 주십시오.”
“팔지 않을 거요.”
“예?”
어물전 상인의 말에 춘향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어물전 상인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요망한 계집이니 썩 가시오.”
“아니 제가.”
춘향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어물전 상인은 춘향에게 소금까지 뿌렸다. 춘향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그곳을 피했다.
“아가씨께서는 변고가 없으셨소?”
“응?”
향단의 말에 춘향은 향단에게도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곧바로 향단을 살폈다.
“괜찮니?”
“괜찮습니다.”
향단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우리에게 뭘 팔지 않는다고.”
“그래.”
춘향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구나.”
“그러게 말입니다.”
“저 사또.”
“응?”
늦은 시간에 오는 이에게 이런 것을 물을 수는 없었다. 허나 궁금한 것은 물어야 했고 해결해야 했다.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이상한 일?”
학도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너는 무엇을 하는 게냐?”
“죄송합니다.”
학도의 타박에 무영은 고개를 숙였다. 이것저것 챙겨야 할 일이 많았는데 이것까지 할 시간은 부족했다. 허나 자신이 신경을 써야 하는 일이었다.
“빠르게 파악하겠습니다.”
“그래.”
학도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한양에 오지 않겠다고 하는 이를 내가 데리고 온 것이다. 그러니 내가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알겠습니다.”
“미안하다.”
학도의 사과에 무영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학도의 걱정은 모두 자신도 알고 있었으니까.
“아마 물 문제로 그런 것 같습니다.”
“물이요?”
아침 자리에 나온 무영의 말에 춘향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그리고 그 마님.”
“아.”
춘향은 작게 탄식을 내뱉었다. 그 여인이 뭔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이럴 줄은 몰랐다.
“아마 나름 힘이 있는 사람인 모양입니다. 그래서 자기 나름대로 불만을 표시한 모양입니다.”
“그렇다고 이게 다 가능합니까?”
“어마어마한 거부라고 합니다.”
“거부.”
춘향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모두 다 자신이 자초한 일이었다. 자신으로 인해서 학도가 영향을 받을 것이었다.
“사또 죄송합니다.”
“아니오.”
학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춘향은 늘 자신이 하던 대로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이곳 한양 사람들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걸 춘향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사람들이 잘못인 것이지 그대의 잘못은 아니니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어떻게든 해결이 될 겁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학도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미소에 지침이 보이는 것 같아서 춘향은 더욱 마음이 불편했다.
“그대를 다시 내려 보내라는 말이 많아.”
“죄송합니다.”
혼의 말에 학도는 고개를 숙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된 것이야?”
“그것이.”
“그 여인이 그대의 말을 그리 듣지 않나?”
혼의 물음에 학도는 어색하게 웃었다. 춘향이 자시의 말을 들을 이유는 없지만 답답한 것도 사실이었다.
“들어보니 영의정 부인의 부탁을 거절했다던데.”
“예.”
“그리 대단한 여인인가?”
“그것이 규칙이라.”
“규칙?”
혼은 웃음기가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대단한 여인일세. 그 모든 규칙을 지키니 말이야.”
“제가 다 감내할 것입니다.”
“그렇겠지.”
학도의 대답에 혼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벗을 지키고자 하지만 이러면 점점 지칠 수밖에 없었다.
“그저 그것이 전부십니까?”
“내가 무얼 하겠는가?”
권 내관의 물음에 혼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미 그 사람은 그 여인을 너무나도 아끼는데. 내가 뭐라고 한다고 내 말을 들을 리도 없는 것이고.”
“허나 그렇다고 해도.”
“되었네.”
권 내관이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자 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손을 내저었다. 권 내관은 고개를 숙일 따름이었다.
“오셨습니까?”
“예. 피곤해서 좀 쉬겠소.”
“들어가세요.”
춘향은 그저 미안한 표정을 지을 따름이었다. 자신 탓이었다. 학도가 저리 지친 것은 자신 때문이었다.
“사또.”
너무 미안했다. 그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일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허나 자신이 옳다고 하는 일이 거꾸로 누군가에게 짐이 될 수도 있었다. 허나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더 아무 것도 없었다.
'☆ 소설 창고 > 벚꽃 필적에[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맨스 소설] 벚꽃 필적에 [오십구 장. 남원으로] (0) | 2017.09.15 |
---|---|
[로맨스 소설] 벚꽃 필적에 [오십팔 장. 외로움 둘] (0) | 2017.09.11 |
[로맨스 소설] 벚꽃 필적에 [오십육 장. 한양을 바꾸다.] (0) | 2017.09.06 |
[로맨스 소설] 벚꽃 필적에 [오십오 장. 남원에서 온 이상한 처자] (0) | 2017.09.04 |
[로맨스 소설] 벚꽃 필적에 [오십사 장. 한양 살이 둘] (0) | 2017.09.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