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팔 장. 외로움 둘
“이것이면 되겠소?”
“예. 괜찮습니다.”
무영이 사온 것도 그리 상태가 좋지 않았다. 허나 무영이 그나마 재료를 구해 와서 먹고 살 수 있는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춘향의 사과에 무영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동안 신념으로 살아온 것을 모르는 이가 없는데. 오히려 그런 것을 가지고 이런 말을 하는 이들이 더 문제가 있는 거겠죠.”
“허나.”
“괜찮습니다.”
무영은 이리 말을 하고 다시 문을 나섰다. 아마 자신의 일을 또 하러 간 모양이었다. 너무 답답했다.
“내가 무얼 할 수가 있는 것인지.”
춘향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도 속상하고 학도에게 미안했다.
“그대를 멀리하라는 경고를 들었네.”
“송구합니다.”
“조심하게.”
“예.”
혼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그 동안 학도가 늘 옳다고 생각했건만 지금의 학도의 행동은 다소 이상한 모습이었다.
“어찌 그리 아무렇지도 않은가?”
“무슨 말씀이십니까?”
“내가 그대를 밀어내려고 하는 것이다. 한 나라의 임금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나?”
“알고 있습니다.”
“아는데?”
“안다고 해서 다를 것이 없습니다.”
“다를 것이 없다.”
혼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학도가 늘 이렇게 고집이 센 이라는 것은 알았으나 이것은 아니었다.
“내가 그대를 이리 지키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데 그대는 도대체 왜 그리 행동하는 것인지 모르겠소.”
“그렇습니까?”
학도는 어색하게 웃었다. 혼은 아랫입술을 지그시 문 후 물끄러미 학도를 쳐다보다 시선을 돌렸다. 학도는 이 모든 상황이 너무나도 불편했다. 자신이 혼에게 짐이 된다는 것도 너무 버거웠다.
“남원으로 가는 게 어떻습니까?”
“예?”
글을 배우고 일을 봐주던 아낙의 말에 춘향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십니까?”
“한양에서 이미 소문이 자자합니다. 아가씨와 같이 있으면 무슨 일이 생길 수 있다는 말들 말입니다.”
“그렇습니까?”
춘향은 그저 어색한 미소를 지을 따름이었다.
“허나 제가 이곳으로 온 이유는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려고 온 것입니다. 이리 빠르게 돌아갈 수 없지요.”
“뭐 하나 할 수 있겠습니까?”
아낙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저도 아가씨를 중하게 생각합니다. 좋은 분이라는 것은 알고 있어요. 허나 지금의 방식은 아닙니다.”
“그렇지요.”
춘향은 더욱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방법은 이미 틀린 방법이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도 불편해하고. 일단 아가씨와 같이 오신 분부터 여러 문제가 생기니 말입니다.”
“사또께 무슨 문제라도?”
“모르십니까?”
“예?”
아낙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 관직도 없으시오.”
“관직이 없다고요?”
“그래요.”
춘향의 표정을 살피던 아낙의 표정이 묘해졌다.
“정말 모르셨소?”
“몰랐습니다.”
춘향은 침을 꿀꺽 삼켰다.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머리가 복잡했다. 모두 자신의 잘못이었다.
“아무튼 나는 가봐야 하니.”
“예.”
아낙은 자신이 무슨 실수라도 한 것이라 생각했는지 바쁘게 집을 나섰다. 춘향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남원에 가면 갈 거니?”
춘향의 물음에 향단은 가만히 고개를 돌려 빤히 쳐다봤다.
“향단아.”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말 그대로다.”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하려던 것을 한양에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어. 더 이상 다른 이들에게 어떤 짐도 되고 싶지 않아. 그건 너도 마찬가지일 거고. 나는 정말 그러고 싶지 않아. 그러니 나는 돌아가고 싶어.”
“그럼 가요.”
“응?”
“그럼 가자고요.”
향단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밝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춘향의 손을 꼭 잡았다.
“아가씨. 저는 아가씨를 따르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아가씨만 생각하세요.”
“나만?”
“예.”
향단은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아가씨가 이래서 어쩌누.”
“향단아.”
“아가씨는 늘 제가 너무 어리다고. 저를 지켜야 한다고. 그렇게 말씀을 하시지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아가씨도 마찬가지십니다. 어쩌면 이렇게 약하신 것이고 마음이 여리신 것인지.”
“내가?”
춘향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은 너무나도 이기적인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너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 네가 그리 나를 믿어주니 나는 너무 미안해.”
“아가씨가 왜 미안하세요?”
향단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춘향에 몸을 기댔다.
“돌아가요.”
“후회할 거야.”
“아니요.”
향단은 몸서리를 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곳은 할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아가씨는 이미 이곳에서 많은 것을 해내신 분입니다. 모르세요?”
“내가?”
“그럼요.”
“내가 해내다니.”
춘향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은 한양에 와서 모든 것을 실패한 사람이었다. 허나 향단의 표정은 단호했다.
“물과 글.”
“물과 글이라.”
춘향은 가만히 이 말을 입 안에서 굴려보았다. 전혀 새로운 것도 아니었고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반드시 내가 아니라도 가능한 일이야. 이런 일을 가지고 뭔가 해낸 것처럼 그리 말을 할 수는 없어.”
“허나 아가씨께서 행동하시지 않았더라면 이곳에서 그런 변화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자부심을 가지세요.”
“자부심이라.”
자신은 그런 것을 가져도 되는 사람이 아니었다. 허나 향단의 눈은 너무나도 단호하고 또 간절했다.
“아가씨께서 도대체 왜 스스로에 대해서 그렇게 믿음이 없으신가 모르겠습니다. 뭐든 하실 수 있는 분이고 뭐든 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제가 아가씨를 믿고 따르고 여기까지 함께 온 것입니다.”
“그래?”
향단의 말은 마치 주문처럼 편안함을 주었다.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고마웠다.
“돌아가다니?”
“말 그대로입니다.”
춘향의 말에 학도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제가 사또께 얼마나 큰 폐를 끼치는 사람인지 알았습니다. 더 이상 이곳에서 머물지 않을 것입니다.”
“안 된다.”
학도의 대답에 춘향은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 그리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건 사또께서 된다. 아니 된다. 그렇게 하실 말이 아닙니다. 모두 제가 결정할 그럴 일입니다.”
“도대체 그대가 나에게서 어디로 가겠다는 말인가? 내가 그대와 같이 한양에 온 것을 모르는가?”
“사또. 저를 보내주십시오.”
“보내라니?”
“죄송해서 안 됩니다.”
춘향은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학도는 그런 춘향을 보며 한숨을 토해내고 하늘을 쳐다봤다.
“내가 그대에 이리 부족한가?”
“제가 부족합니다.”
“무엇이?”
“이미 한양에서 그 무엇도 하지 못하는 처지입니다. 글도 가르칠 수 없다는 여기에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내가 있지 않은가?”
“사또.”
“내가 그대 곁에 있다.”
학도의 간절한 말에 춘향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나 학도가 있다고 해서 뭐가 될 것은 아니었다.
“내가 이리 그대를 필요로 하는데. 내가 이렇게 그대가 내 옆에 있어야 하나고 말을 하는데. 그래도 갈 것인가?”
“예.”
“그래도 간다고?”
“그렇습니다.”
“어찌.”
학도는 충격이라도 받은 표정이었다. 춘향은 학도에게 이리 말하는 것이 너무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차피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고 그건 너무나도 답답한 일이었다.
“저는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그럼 예서 가르치면 되는 거 아니오?”
“누가 저에게 글을 배우겠습니까?”
“그것이.”
이미 무영에게 모두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 누구도 춘향에게 글을 가르쳐 달라고 청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답답하고. 더 아프고 더 속상한 상황이었다.
“이미 제가 바라는 일은 이루어졌습니다.”
“무엇 말이오?”
“한양의 여인들이 스스로 글을 배워도 된다고 깨달은 것. 그리고 한양에 물 문제 말입니다.”
“그것은.”
“사또 저를 보내주셔요.”
춘향의 간절한 부탁에 학도는 한숨을 토해냈다.
“그러면 나도 가겠소.”
“아니요.”
춘향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 학도의 앞을 막아서는 안 될 거였다. 그럴 수 없었다.
“한양에서 관직을 하십시오.”
“어찌.”
“그래서 더 좋은 분이 되세요. 저는 사또와 어울리는 여인이 아닙니다. 부디 그렇게 해주세요. 미천한 여인의 간절한 청입니다.”
춘향의 눈빛은 그 어느 순간보다도 간절했다. 학도는 한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내일 당장 가겠습니다.”
학도에게서는 더 이상 답이 없었다. 춘향은 자리에서 일어나 절을 올렸다. 학도의 눈에 눈물이 흘렀다. 춘향은 그 눈물에 마음이 아렸으나 더 이상 이곳에서 자신이 할 일은 없었고, 학도도 더 이상 춘향을 말릴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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