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 장. 돌아가다.
“미안하네.”
“아닙니다.”
결국 여정이 길어졌다. 하루가 늦은 시간. 그리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학도는 미안함을 표했다.
“내가 절대로 전하께 이리 하시면 아니 된다고 그랬어야 하는 것인데. 자네에게 미안하네. 미안해.”
“아닙니다.”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물끄러미 학도를 보고 한숨을 토해냈다. 정말 고마웠다.
“제가 밉지 않으십니까?”
“왜 그대가 미운가?”
“그것이.”
춘향은 말을 삼켰다. 당연히 자신이 미울 거였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무엇이?”
“그러니까.”
“밉지 않네.”
학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물끄러미 춘향의 얼굴을 보며 한숨을 토해냈다.
“질투가 나.”
“무슨 질투 말씀입니까?”
“이제 몽룡 그 자는 그대를 보겠지.”
“모르지요.”
“모르기는.”
학도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생각해 보면 단 한 번도 춘향은 자신을 봐준 적이 없었다. 늘 몽룡의 곁에 있었다.
“내가 그 동안 너무 미련한 생각을 했어. 자네가 단 한 번도 나에게 오지 않았는데 말일세.”
“죄송합니다.”
“아니.”
학도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건 춘향이 자신에게 사과를 하거나 해야 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대는 그대의 생각이 있는 것이고. 나도 나의 생각이 있는 것일세. 내가 그대를 좋아한다고 해서 그대가 무조건 나를 좋아해야 하는 것이 아니야. 그것은 너무 잔인한 것이 아닌가? 그러면 안 되는 것이지.”
“허나.”
“그러지 마시게.”
학도는 춘향을 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저 보는 것이 좋았네. 그리고 그대를 위해서 뭐라도 할 수 있는 것으로 좋았어. 그러니 더 이상 나에게 미안함을 표하지 마시게. 그러면 내가 그대를 좋아하는 것이 참 미안하고 불편하네.”
“사또.”
“나는 사또가 아니야.”
학도는 다시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고맙네.”
“무엇이 말입니까?”
“내 곁에 그대가 머물었기에 고맙네.”
“아닙니다.”
춘향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을 위해서 학도가 그 동안 해준 것이 더 고마웠다.
“그 모든 시간 사또 덕에 제가 나아질 수 있었습니다. 제가 글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가능성을 품은 존재라는 것. 이 모든 것은 다 사또께서 알려주시지 않았더라면 알지 못했을 겁니다.”
“그럴 리가 있는가?”
“사실입니다.”
춘향은 학도에게 술을 따랐다. 학도가 그것을 피하려고 했으나 춘향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제발 받으시지요.”
“왜 이러시나?”
“한 잔 드리고 싶습니다.”
“나 참.”
춘향은 학도의 잔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절을 했다. 이것이 진짜 절이었다. 춘향은 문들 닫고 학도의 방을 나섰다.
“왜 이리 이른 시간에 가십니까?”
“그래야 사또를 안 뵙지.”
“예?”
“가자.”
향단은 더 이상 아무 말을 하지 않고 가마에 올랐다. 춘향은 학도의 방을 한 번 보고 고개를 숙인 후 가마에 올랐다.
“왜 나가지 않으십니까?”
“나가서 무얼 하나?”
“그것이.”
학도의 대답에 무영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이미 갈 사람이네. 내가 여기에 있건. 여기에 없건. 그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게. 갈 사람이야.”
“그렇지요.”
“그런데 굳이 내가 나가서 마음이 불편하고 그래야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럴 게 없네.”
“사또.”
“나는 사또가 아니래도.”
학도는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왜 다들 나를 사또로 부르는가?”
“그 모습이 가장 멋지셨습니다.”
“그런가?”
자신은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춘향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었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무영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학도의 곁에 앉아 밖을 바라봤다. 봄바람이 살랑 불었다.
“집이구나.”
“집입니다.”
집은 깔끔했다. 아마 누가 그대로 관리를 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누구인지 알았으나 함부로 나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고맙구나.”
“예?”
“아니다.”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몸이 피곤하다.”
“쉬십시오.”
향단은 춘향을 방에 남기고 나섰다. 그리고 마당에 서서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생경한 기분이었다.
“어찌 이러누. 원래 살던 곳인데 이렇게 낯설게 느껴지면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느껴진단 말인가?”
“햐. 향단아!”
순간 들리는 목소리에 향단은 고개를 돌렸다. 방자였다.
“나는 누구라고. 방자 놈.”
“향단아.”
향단이 방자를 보고 알은 체를 제대로 하기도 전에 방자는 달려와서 향단을 와락 껴안았다. 향단은 어안이 벙벙했다.
“뭐, 뭐하는 게요?”
“기다렸다.”
“무슨.”
“기다렸어.”
방자는 향단의 등을 두드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방자를 보니 향단도 괜히 마음이 아렸다.
“미안해.”
“아니다.”
향단의 사과에 방자는 고개를 저었다.
“네가 갈 수밖에 없는 것을 내가 모를 리가 있겠는가? 결국 너도 어떻게 할 수 없었던 거다.”
“고맙다.”
향단은 울음을 꾹꾹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매일 가꾼 것이오?”
“그것이.”
춘향을 마주하며 방자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당황하는데 춘향은 그대로 방자를 꼭 안았다.
“왜 이러십니까?”
“고맙습니다.”
“아니.”
방자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 혼자서 한 것이 아니라. 그러니까.”
“그래도 고맙습니다.”
춘향은 몸을 떨어뜨리고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도련님이 부탁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리 깔끔하게 한 것은 모두 그대가 해준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요.”
“그러니까요.”
방자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한양은 어떻더냐?”
“아주 좋았어.”
향단과 방자가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며 춘향은 사립을 나섰다. 익숙한 거리. 너무나도 편안했다.
“돌아온 것이냐.”
그리고 모퉁이를 돈 순간 춘향은 숨을 멈췄다.
“도련님.”
“왔어?”
“예.”
그리고 춘향이 뭐라 더 대답하기도 전에 몽룡은 춘향을 꼭 안았다.
“고맙다.”
“도련님.”
춘향의 눈이 커다래졌다. 몽룡이 도대체 왜 이렇게 구는 것인지 춘향은 침을 꿀꺽 삼키고 고개를 저었다.
“왜 이러십니까?”
“너무 고맙다.”
“어찌.”
“기다렸다.”
몽룡의 말에 춘향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너무나도 미련하게도 네가 더 이상 내 곁에 없어지고 나서야. 그러고 나서야 네가 얼마나 귀한 사람인지. 얼마나 중한 사람인지 알았다.”
“그러지 마셔요.”
춘향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시면 마음이 불편합니다.”
“춘향아.”
“우리가 무슨 사이입니까?”
춘향은 이리 말하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더 이상 우리는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그런데 도련님이 이리 행동을 하시면 다른 이들이 오해를 합니다.”
“오해를 하면 안 되느냐?”
“예?”
“나는 네가 좋다.”
“도련님.”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하지만 한 번도 몽룡이 자신에게 제대로 해준 적이 없던 말이었다.
“그런 말은 함부로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어째서?”
“그것이.”
왜 하면 안 되는 것일까? 뭐라고 말을 해야 하는 것일까? 수많은 말들이 머리에 떠올라도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내가 보고 싶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보고 싶었습니다. 너무나도 보고 싶어서 꿈에도 나오고 눈을 감아도 보였습니다. 그리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말을 해도 되는 걸까? 몽룡이 불편하게 여기고 그러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그것이. 도련님. 그것이.”
“나도 그렇다.”
몽룡은 춘향의 눈을 물끄러미 보며 고개를 저었다.
“네가 보고 싶었다.”
“도련님.”
“그 동안 미련하게 내가 너를 좋아하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이 마음이 겁이 나서. 뭔가 망설여져서. 너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미련하고 한심하고 또 멍청했어.”
“아닙니다.”
춘향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잘못이었고 결국 두 사람의 잘못이었다. 둘 다 겁이 많아서 생긴 일이었다.
“더 이상 가지 말아라.”
“도련님.”
“더는 내게서 멀어지지 마라.”
몽룡은 춘향을 꼭 안았다. 춘향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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