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일 장. 선생 성춘향 하나
“참말로 온 것이지요?”
“그래.”
삼월은 곧바로 춘향을 품에 안았다.
“선생님.”
“얘도.”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 마음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자신을 여전히 스승오로 생각해준다는 것이 감사했다.
“미안해.”
자신이 더 아이들을 신경을 썼어야 하는 거였다. 자신은 스승이었고 아이들은 자신을 믿을 거였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안 됩니다.”
“왜?”
“안 돼요.”
춘향의 제안에 향단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제가 도대체 무어라고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단 말입니까?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절대 싫습니다.”
“그럼 나 홀로 하라고?”
“아니.”
춘향의 반문에 향단은 침을 삼켰다. 춘향이 한양에서 돌아왔다는 이야기와 함께 사내아이들까지 춘향에게 글을 가르쳐달라고 오는 실정이었다. 이 상황에서 춘향이 원래 하던 일까지 하는 것은 무리였다.
“하지만 저는 안 됩니다. 방자라도.”
“안 된다.”
“왜요?”
“여자여야 해.”
“예?”
“아이들에게 꿈이 되어야 한다.”
“꿈이요?”
향단은 심장이 두근거렸다. 꿈이라니. 자신이 누군가에게 꿈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평범한 여인도 글을 배워서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다. 네가 그것을 보여주어야만 해. 알고 있니?”
“하지만 저는.”
“아무 것도 아니지.”
춘향은 빙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너여야만 하는 거야. 다른 그 누구도 아닌 평범한 사람이니까. 오직 너만 할 수 있는 거야. 향단아.”
“하지 그래.”
“아니.”
방자의 말에도 향단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네가 왜 아무 것도 아니냐?”
“응?”
“나에게도 글을 가르치고.”
“에이.”
향단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은 글을 가르쳤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아무런 재주도 없는 사람이다. 그저 아가씨가 하라고 하는 것을 그대로 하는 것이지.”
“그 정도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너는 네가 얼마나 귀한 사람인지 모르는 거니?”
“응?”
“너를 믿어.”
방자는 향단의 손을 꼭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춘향은 침을 삼켰다. 자신이 뭘 할 수 있는 사람인지 너무나도 두려웠다.
“내가 뭘 할 수 있는 사람일까?”
“너 아가씨를 안 믿는 거니?”
“응?”
이건 또 갑자기 무슨 말인가?
“그게 무슨 말이냐?”
“네가 너를 믿지 못하면 아가씨라도 믿어. 춘향 아가씨가 너에게 그 일을 맡긴 것이 아니니?”
“그건 그렇지만.”
향단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뭘 할 수가 있는 사람인 건지. 그런 것에 대한 걱정이 들었다.
“괜히 내가 이런 것을 한다고 나서다가 결국 아가씨에게 어떤 폐나 끼칠지 모르겠어서 하는 말이지.”
“그럴 일 없을 거다.”
“네가 어찌 아니?”
“나도 너를 믿으니까?”
“응?”
“나도 너를 믿어.”
방자의 괜한 말에 향단의 얼굴이 붉어졌다. 방자도 얼굴이 붉어진 향단을 보며 헛기침을 했다.
“향단이를?”
“예. 잘 할 겁니다.”
“뭐.”
춘향이 이리 말하는데 몽룡이라고 해서 말릴 수 있는 자격 같은 것을 가지고 있을 리 만무했다.
“춘향이 네가 하고 싶다면 하는 것이지. 공연히 그런 것을 나에게 물을 것이 무어가 있겠느냐?”
“그래도 도련님에게 여쭈어야지요.”
“왜?”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아니다.”
춘향의 반문에 몽룡은 고개를 저었다. 춘향은 자신에게 이런 것을 물을 것이 없었다. 자신은 너무나도 부족하고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이었다.
“네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깨우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네가 나를 그리 높이 보지 않아도 된다.”
“높이 보는 건 아닙니다.”
“뭐라고?”
몽룡은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고맙다.”
“무엇이요?”
“돌아와주어서.”
“아니요.”
춘향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몽룡 때문에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그저 돌아오고 싶어서 온 것이었다. 오히려 몽룡이 이 자리에 있어줘서 고마울 따름이었다. 몽룡은 춘향이 와야 하는 이유였다.
“고맙습니다.”
“나 참.”
몽룡은 미소를 지으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이런 평범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특별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렇지. 암.”
이제 사내아이의 부모들도 춘향에게 아이를 맡기러 왔다. 이전과 달라진 사람들의 반응에 춘향은 그저 생경할 따름이었다. 전에는 여인이라 안 된다는 사람들도 이제는 춘향에게 많이 부탁을 하러 왔으니까. 춘향은 그저 그런 이들에게 모두 감사한 마음을 품을 따름이었다. 이제 달라진 거였다.
“사람이 늘었습니다.”
“그러게.”
향단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춘향이 살짝 걱정을 하는 것 같기에 춘향의 어깨를 두드리며 고개를 저었다.
“왜 그러십니까?”
“무섭다.”
“무엇이요?”
“너무 잘 되는 거 같아서.”
“에이.”
“한 순간 모두 사라질 거 같아.”
“아가씨.”
춘향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기에 향단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리 망설이고 그럴 이유는 없지. 어서 책을 펴거라. 글을 읽어야지.”
“아가씨.”
향단이 투덜거렸지만 춘향은 밝은 미소를 지을 따름이었다.
“이런 걸 받을 수 없습니다.”
“에이 그래도 받으시지.”
“안 됩니다.”
춘향은 고개를 저으며 아이의 부모가 주는 것을 받지 않았다. 이미 몽룡에게 충분한 돈을 받고 있었다.
“저는 돈을 받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미안해서 어떻게 해요?”
“그러면 아이들을 더 믿어주세요.”
“예?”
“그러시면 됩니다.”
춘향의 알 수 없는 말에 아이의 부모는 고개를 갸웃하고 돌아섰다. 춘향은 더욱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들의 수가 나날이 늘어나는 것으로 보여.”
“그러게요.”
춘향의 집을 온 몽룡은 혀를 내둘렀다. 이제 확실히 춘향의 집은 서당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였다.
“이거 문제네.”
“예?”
몽룡의 말에 춘향은 고개를 돌렸다.
“왜요?”
“아니 우리가 만날 시간이 없지 않나?”
“도련님.”
춘향의 얼굴이 화르륵 달아올랐다. 몽룡도 헛기침을 하면서 짐짓 아무 것도 아닌 표정을 지으면서도 흐뭇해보였다.
“자네도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요즘 제대로 만나는 시간 하나 제대로 없다는 것을 말이야.”
“각자 하는 일이 워낙 바빠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은 도련님께서도 이미 다 아시는 것 아닙니까?”
“알지.”
몽룡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다른 고을에서도 춘향의 명성은 널리 알려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속상하다는 거야.”
“예?”
“다들 알아버렸으니.”
“뭐라고요?”
춘향은 밉지 않게 눈을 흘겼다. 자신이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 너무나도 신기했다.
“더 열심히 할 것입니다.”
“그래야지.”
“그래서 사람들이 더 많이 깨닫게 할 것입니다.”
“그러게.”
몽룡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춘향이 이전과 다른 모습인 것이 낯설었지만 반가웠다. 자신을 벗어나서 더 자유롭게 나갈 수 있다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멋있게만 느껴졌다.
“이것 좀 보십시오.”
“무엇인가?”
무영이 다급히 책을 건네자 학도는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혹시 서학이라도.”
“아니요. 춘향의 글입니다.”
“응?”
학도도 재빨리 책을 펼쳤다. 춘향이 서양의 이야기를 번역한 것이었다. 이름도 성춘향이었다.
“성춘향.”
“대단하지요?”
“그러게.”
학도는 가만히 책장을 쓸었다.
“대단한 사람이야.”
“그리우십니까?”
“그립지.”
학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웠다. 허나 자신과 어울리는 일이 아니었다. 춘향에게는 춘향의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그리워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네. 고마워. 고마우이. 그래도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야.”
학도의 쓸쓸한 대답에 무영인 괜한 짓을 한 것인가 싶으면서도 그래도 이런 것을 학도에게 전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도는 다시 자신의 일을 하면서도 시선은 춘향의 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대단한 사람이야.”
자신이 잡아둘 수 없는 사람임을 학도는 이제야 분명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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