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일 장. 이혼 하나
“어찌 이리 늦었는가?”
“죄송합니다.”
학도의 사과에 혼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학도가 이제라도 자신에게 와준 것만으로도 너무나도 고맙다는 것을 그 역시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 오지 않는다는 이를 내가 억지로 데리고 온 것인데. 내가 뭐라고 할 수가 있겠는가? 그대가 이리라도 나에게 와준 것. 이제라도 나에게 와준 것. 그 사실 하나로도 내가 고마워 해야 하는 것이겠지.”
“전하.”
“되었다.”
학도가 무슨 변명을 하려고 하자 혼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 오랜 벗에게 뭐라고 하겠는가?”
“고맙습니다.”
“아닐세.”
혼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저었다. 이제라도 학도가 와준 것만 하더라도 그에게는 큰 힘이 되는 일이었다.
“이미 조정에서 내 편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그대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대라도 와준 것이 참 다행일세.”
“그런 말씀이 어디에 있습니까?”
“자네도 이미 아는 것이 아닌가?”
혼의 진지한 목소리에 학도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 역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나는 서자의 서자일세. 게다가 차남이지. 이런 내가 왕이 되었다는 것도 너무나도 신기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일단 이 자리. 이 왕이라는 자리를 잘 지키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지.”
“받들겠습니다.”
“아.”
순간 혼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번졌다.
“나도 보고 싶네.”
“예?”
“그 여인 말이야.”
“아.”
학도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이미 혼도 자신이 한양에 오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인지 다 아는 모양이었다.
“차차 소개를 해드리겠습니다.”
“궁금할세.”
혼은 그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학도도 미소를 지으며 그런 혼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여기 너무 좋지 않습니까?”
“그러니?”
흥분한 향단과 다르게 춘향은 그 어느 때보다 덤덤했다. 향단은 이런 춘향을 보며 입을 내밀었다.
“아니 아가씨께서는 한양까지 오셔서 그러실 겁니까? 이런 것은 즐기셔도 되는 것 아닙니까?”
“즐겨야지.”
춘향은 웃음을 참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새 집이 향단을 얼마나 설레게 하는지 춘향도 잘 아는 바였다.
“나가시지 않겠습니까?”
“응?”
향단의 제안에 춘향은 미간을 모았다. 아직 이곳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데 공연히 나갔다가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안 될 일이었다.
“별로 내키지 않는다.”
“아가씨.”
향단의 재촉에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향단이 왜 이러는 것인지 알기에 더욱 귀엽게 느껴지는 춘향이었다.
“아직 우리는 이곳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고. 우리 마음대로 막 돌아다니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그럼 무영님을.”
“싫다.”
춘향은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절대로 안 될 일이었다. 무영은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무영 그 분은 너와 내가 아니라 사또를 위해서 일을 하셔야 하는 분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 사사로이 쓴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을 하느냐? 말도 안 되는 것이지. 그러면 안 되는 것이야.”
“허나.”
“되었다.”
춘향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향단은 입을 내밀었지만 더 이상 향단이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래.”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책을 펼쳤다. 향단은 입을 쀼루퉁하게 내밀면서도 춘향의 곁에 앉아 책을 펼쳤다.
“그래서 춘향 그 사람은 무얼 하는가?”
“그냥 방에 계십니다.”
“응?”
무영의 대답에 학도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냥 있을 이유가 없는데 왜 그러는 것인지. 학도는 미간을 모았다.
“그대가 나가자고 하지.”
“제 말을 들을 분입니까?”
“나 참.”
학도는 웃음을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무영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한숨을 토해냈다. 학도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내가 가서 제안을 해야겠군.”
“에?”
“그럼 달라지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무영이 뭐라 할 새도 없이 학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영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찌 저러시누.”
“좀 달라진 것 같지?”
갑작스러운 혼의 말에 길동은 미간을 모았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 그대로네.”
혼을 술을 한 모금 마시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 혼의 태도에 길동은 멍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전하. 혹시라도.”
“아닐세.”
혼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자네를 걱정하게 할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아. 그냥 내 생각에 대해서 자네가 조금이나마 알기를 바라는 것. 그게 전부인 걸세. 그게 전부이니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마시게. 그게 전부야.”
“전하께서 그 모든 일을 다 겪고 나신 후 지치셨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허나 그리 지치셨다고 해서 그 모든 것을 다 하셔도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학도 그 자는 모든 것을 버리고 왔습니다.”
“나를 가르치나?”
순간 사나워진 혼의 목소리에 길동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런 것이 아니라.”
“나도 다 알고 있네.”
“에.”
“나도 다 알아.”
혼은 주먹을 세게 쥔 후 고개를 저었다. 길동은 아랫입술을 물고 어색한 표정을 지을 따름이었다. 너무 답답했다.
“나도 다 알고 있네. 나도 내가 멍청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 허나 내가 멍청하다고 해서 그 모든 것을 다 감당해야 한다는 것인가? 그건 아니지. 내가 학도를 믿어야만 하는 것인가?”
“믿지 않으십니까?”
“믿네. 그리고 믿지 않지.”
“예?”
“믿고 믿지 않아.”
혼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길동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런 혼이 너무나도 낯설었다.
“남원 고을에서 오지 않겠다고 하는 이를 억지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그곳에 둘 수는 없었네.”
“예?”
“그곳에 두어서는 안 됐어.”
“전하.”
“거기에서 그는 왕이나 다름이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네.”
혼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길동은 아랫입술을 물고 물끄러미 그런 혼을 살피고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싫으십니까?”
“죽이고 싶지.”
“전하!”
“농일세.”
혼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저 그 모습이 농으로만 보이지 않아 길동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대가 무슨 생각을 하건. 그런 무서운 생각은 하고 있지 않아. 그랬다가는 그대부터 죽였겠지. 율도국이라니.”
혼은 낄낄거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도 자네 덕에 다행일세.”
“무엇이 말씀입니까?”
“자네가 그 왜의 아래에 율도국을 자리 잡고 나니 그 누구도 조선을 넘보지 않으니 말일세. 동무가 갑자기 한 나라의 왕이 되었다고 하니 그것이 불편하기는 하나 그것을 가지고 뭐라고 하겠는가?”
그저 가벼이 하는 것 같지 않은 말이기에 길동은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혼은 더 이상 말을 보태지는 않았다. 밤은 깊어졌고 달은 밝아졌지만 두 사람 사이의 그늘은 이전보다 더 짙어진 기분이었다.
“괜찮습니다.”
“내가 안 괜찮습니다.”
학도의 말에 춘향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학도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 시간에 사내 혼자 밤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을 다른 이들이 어떻게 생각을 할 거 같습니까?”
“그러니까.”
“그닥 좋게 보지 않을 거외다.”
학도는 향단을 보고도 씩 웃었다.
“향단이 너도 나가고 싶지 않으냐?”
“나가고 싶습니다.”
“향단아.”
“참말로 나가고 싶습니다.”
향단이 이렇게까지 말하자 춘향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학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이 남만시외다.”
“남만시오?”
크기는 감 만한 것이 조금 더 울퉁불퉁하게 생겼다. 꼭지는 초록이었고 꼭 붙어있는 것이 신기했다.
“감이기는 한데 나무를 심어도 한 해만 간다고 해서 일 년 감이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그리고 서역에서는 뭐라고 한다더라.”
상인은 턱을 만지며 묘한 표정을 짓다가 손뼉을 쳤다.
“도마도.”
“예?”
“도마도요.”
“아!”
춘향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런 춘향의 반응에 학도는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춘향의 표정은 너무 밝아졌다.
“토마토요.”
“그래요.”
상인은 손가락을 튕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토마토.”
“아. 이게 토마토구나.”
그 동안 글에서만 읽던 것이었다. 춘향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학도도 뿌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성에 오니 좋지 않소?”
“좋습니다.”
춘향의 입에서 좋다는 말이 나오자 학도는 싱긋 웃었다.
“얼마요?”
“됐습니다.”
춘향은 놀라서 뒤돌았다.
“먹는 법도 모르고.”
“꿀에 절이면 됩니다.”
“예?”
“꿀에 절이면 아주 맛이 일품이지요.”
상인이 이리 말까지 하며 웃어보이자 춘향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가진 것이 없었다.
“제가 돈이 없어서.”
“내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오?”
학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춘향을 대신 해서 값을 치루고 토마토를 받아들었다. 춘향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학도가 너무 고마웠고, 반대로 또 너무나도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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