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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소설] 벚꽃 필적에 [사십팔 장. 변학도 셋]

권정선재 2017. 8. 18. 23:34

사십팔 장. 변학도 셋

여긴 어찌 오셨소?”

사또가 믿음이 가지 않아서 왔습니다.”

 

몽룡의 차가운 대답에 학도의 미간이 모아졌다. 자신을 믿을 수가 없어서 왔다. 묘한 기분이었다.

 

내가 그대에게 뭔가 허락이라도 받아야 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이 되는데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알지 않습니까?”

아니요.”

 

학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춘향이를 울리지 마시오.”

내 알아서 할 겁니다.”

그러겠지.”

 

몽룡은 한숨을 토해내며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 알아서 할 것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속상했다.

 

춘향이 그대를 믿는 듯 합니다.”

당연한 것 아니겠소?”

그렇습니까?”

 

어쩌면 학도가 앉아있는 저 자리가 바로 몽룡의 자리일 수도 있었다. 그가 조금 더 현명했더라면 그랬을 것이었다.

 

이 고을에서 선생을 하실 겁니까?”

그래야지요.”

그렇습니까?”

그래야 춘향이 마음을 놓을 테니까요.”

 

학도는 입을 꾹 다물었다. 몽룡의 말이 정답이기에 불편하면서도 여기에 남아준다고 해서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 사람을 놓아주어서 고맙습니다.”

애초에 제가 붙잡고 있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고맙습니다.”

 

학도의 거듭된 인사에 몽룡은 어색하게 웃었다. 불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결국 모든 시간은 흐르는 법이었다.

 

 

 

제 글은 이제 누가 가르쳐준답니까?”

이제 몽룡 도련님이 잘 가르쳐주실 거다.”

 

아이들은 모두 춘향을 보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 하나하나와 모두 눈을 마주했다.

 

아마 너희 모두를 다스하게 대해주실 거야. 내가 믿는 분이니. 너희들도 그 분을 믿으면 좋겠구나.”

 

슬펐다. 자신의 모든 것이 다 끝이 나는 기분. 허나 이렇게 해야지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었다.

 

 

 

너도 가는 게지?”

당연하지.”

 

방자의 미련이 가득한 눈빛을 보면서 향단은 부러 더 사납게 대답했다. 여기에서 마음이 약해져봐야 달라질 것은 없었다.

 

내가 너를 따라가도 되겠니?”

?”

 

향단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게 무슨 말이니?”

도련님께서 내가 원한다면 너와 함께 가도 된다고 하셨다. 도련님은 혼자서도 괜찮으시다고 말이다.”

아니.”

 

향단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몽룡의 곁에 그럼 아무도 남지 않는 거였다.

 

싫어.”

향단아.”

네가 도련님 곁을 떠나면 아가씨께서 얼마나 마음이 불편하실지 모르고 하는 말이니? 하여간 너는 멍청하구나.”

네가 더 멍청하지!”

 

방자는 갑자기 고함을 질렀다.

 

네가 없으면 내가 못 사니까. 너 없이 내가 살 수 없어서 .그래서 내가 너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 아니냐?”

아니. 나는 견딜 수 있다. 나는 내 아가씨를 위해서 나 하나 희생할 수 있어. 그건 어렵지 않다.”

향단아.”

되었다.”

 

방자가 손을 잡자 향단은 고개를 흔들며 그 손을 놓았다. 그리고 짧은 한숨을 토해내며 아랫입술을 물었다.

 

우리는 결국 이리 또 헤어지는구나.”

내가 싫다.”

싫어도 도리가 없지.”

 

방자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리고 눈시울일 뜨거워져서 대충 주먹으로 눈물을 훔친 후 고개를 저었다. 방자의 눈물을 보고 향단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향단은 아랫입술을 물고 고개를 저었다.

 

싫다. 정말 싫어.”

우리 같이 살자.”

그럴 수 없어.”

향단아.”

나는 마님을 지키지 못했어. 그러니까 아가씨 곁을 지켜야 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거 하나야.”

 

향단은 입을 꾹 다물고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 헛기침을 한 후 숨을 크게 쉬고 고개를 저었다.

 

나는 아가씨를 절대로 떠날 수 없어. 아무리 방자 네가 좋더라도 나는 그것을 떠날 수가 없다.”

그래.”

 

방자는 꺽꺽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미안해.”

아니.”

 

방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고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물끄러미 향단을 응시했다.

 

연모한다.”

나도 너를 연모한다.”

 

향단은 방자를 보며 싱긋 웃었다.

 

 

 

짐은 다 꾸렸니?”

.”

 

향단의 눈에 눈물 자국이 가득한 것을 보고 춘향은 한숨을 토해내고 향단을 가만히 안아주었다.

 

미안해.”

아닙니다.”

미안해.”

 

춘향이 다시 사과를 하자 향단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춘향의 손을 꼭 잡고 애써 미소를 지었다.

 

다 정리했습니다.”

너의 행복을 내가 너무 가져가는 것 같아.”

아니요.”

 

향단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춘향 덕에 여태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이런 것은 힘든 것이 아니었다.

 

그런 말씀 마세요.”

향단아.”

괜찮습니다.”

 

향단은 더욱 씩씩하게 웃었다.

 

 

 

갑자기 왜 마음이 달라졌는가?”

그렇게 되었네.”

나 참.”

 

길동은 낮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여인에 빠져서 자신의 뜻도 꺾다니.”

애초에 여인 때문에 가지 않는다고 한 것이니 그게 그것이네. 그러니 그만 농을 하는 게 어떻겠는가?”

그렇지.”

 

길동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살짝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다행이야.”

무엇이 말인가?”

전하가 어찌나 역정을 내시던지.”

그렇던가?”

 

혼의 역정이라는 말을 듣고 학도는 가만히 웃었다. 오랜 벗이었지만 그렇게 역정이 나면서도 자신을 억지로 끌고 가지 않은 것은 좋은 벗이라는 증거였다. 학도는 한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걱정일세.”

 

학도는 아랫입술을 살짝 물고 고개를 저었다.

 

그 사람은 나를 믿고 한양으로 가는 것이지만 그곳이 그 사람에게 길을 열어줄지 알 수가 없어.”

열어주겠지.”

아니.”

 

길동의 대답에 학도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한양이라는 곳은 그리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내가 왜 남원에 온 줄 아는가?”

이혼 그 사람이 보내서.”

아닐세.”

그럼?”

한양에서는 내가 버틸 방도가 없어서 그랬어.”

뭐라고?”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혼도 말을 해준 적이 없었고 학도도 말해준 적이 없었으니 들을 수가 없었던 말이었다.

 

그럼 애초에 한양에 가서 머물 생각을 했었다는 것인가? 도대체 왜 나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어? 그것을 말을 했더라면 이혼 그 자도. 조금이나마 그대를 이해를 했을 텐데 말이야.”

상대는 임금일세.”

허나.”

안 되었을 거야.”

 

학도는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짧은 한숨을 토해냈다. 가슴이 답답했다.

 

내가 이 고을에 있는 게 싫은 것이지.”

다 그대를 아껴서 그러는 것이 아닐 텐가? 이혼 그 사람은 단 한 번도 나를 한양에 오라 하지 않았어.”

절대 듣지 않을 사람이니까.”

?”

나는 자네와 다르게 충실하게 말을 들을 사람이 아닌가? 아무리 잘났다고 행동을 하더라도 결국 조선의 백성이니, 이혼 그 사람이 다스리는 멍청한 백성. 고작 거기에 지나지 않으니 말이야.”

무슨 말인가?”

 

길동은 학도를 달래고 분위기를 바꾸어보려고 했지만 학도의 태도는 단호했다. 학도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한양이 싫어.”

그럼 가지 않으면.”

그럴 수 없을 걸세.”

?”

분명해.”

 

학도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한양은 가고 싶지 않다고 해서 가지 않을 수 있는 곳이 절대로 아니었다.

 

그대도 알다시피 나는 가야만 하는 사람이야. 내가 아무리 부정하고 피한다고 해도 다를 수 없지.”

이왕 가는 거 좋은 마음으로 가시게. 그래도 벗이 한양으로 부르는데 함부로 행동을 하겠는가?”

나에게는 못 그러겠지.”

 

학도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춘향은.”

그대가 지키면 되지.”

힘이 없을 거야.”

 

학도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손에 있는 힘은 너무나도 작고 보잘 것이 없는 것이었다.

 

춘향 그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는 더 많은 힘이 필요한데 나에게는 아직 그것이 없어서도 가지 않으려고 했던 걸세.”

그럼 가지 않을 것인가?”

가야지.”

 

앞뒤가 맞지 않는 학도의 말에 길동은 미간을 모았다.

 

이혼 그 사람을 그리 믿지 않으면 가지 않는 편이 더 낫지 않겠나? 믿지도 않으면서 왜 간다고 하는 것이야?”

이몽룡.”

?”

이몽룡 그 사람 탓이야.”

이몽룡이라.”

 

길동은 턱을 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학도가 왜 이러는 것인지 이제 어렴풋이 손에 잡히는 기분이었다.

 

그렇구먼.”

비웃는 겐가?”

그럴 리가 있겠는가? 나도 여인을 사랑한 죄로 율도국을 만들었는데 내가 누구를 비웃고 그러겠는가?”

 

길동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물끄러미 학도를 보다 엷은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학도의 선택에 대해서 그 누구도 뭐라 말을 할 수 없기에 동무인 그 역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