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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소설] 벚꽃 필적에 [사십오 장. 무게]

권정선재 2017. 8. 11. 21:27

사십오 장. 무게

어지 이러십니까?”

놓아라.”

 

방자가 자신을 말리자 몽룡은 그를 거칠게 떠밀었다. 방자가 어구구구구 소리를 하면서 마당으로 넘어졌다.

 

도련님. 술을 그리 자시면.”

내가 술을 마시거나 말거나 네가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더냐? 어디 감히 네 놈이 나에게.”

도련님.”

 

몽룡의 사나운 눈빛에 방자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미 사라졌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 표정이 돌아왔다.

 

어찌 그러시는 겁니까? 아이들을 가르치러 가셔야 하는 분이 그리 술을 많이 드시면 어떻게 하시자는 것입니까?”

가지 않을 것이다.”

?”

 

요 며칠 잠잠하다 싶었다. 방자는 다시 방으로 올라 몽룡의 눈을 보고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안 될 일이었다.

 

도련님 아니 됩니다. 이제야 겨우 사람들과 어울리고 그러시는 법을 아셨는데. 이러시면 아니 됩니다. 다시 사람들이 도련님을 외면하면 그 마음을 돌리기는 곱절로 힘이 들 것입니다.”

남원을 뜰 것이다.”

남원을 뜬다고요?”

 

방자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남원을 떠난다면 향단을 만날 수 없었다.

 

안 됩니다.”

?”

그것이.”

향단이 탓이냐?”

 

정곡을 찌르는 물음에 방자는 입을 다물었다.

 

멍청한 놈.”

 

몽룡은 고개를 흔들고 술을 들이켰다.

 

너를 두고 갈 것이다.”

?”

못 들었느냐? 너를 두고 갈 것이라고.”

 

몽룡의 말에 방자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자신은 몽룡을 떠나지 않을 것이었다.

 

싫습니다.”

싫어?”

.”

왜 싫으냐?”

이제 더 이상 저는 도련님의 종이 아닙니다. 그러니 저 스스로 도련님을 모시기로 결정을 한 것입니다. 절대로 도련님을 두고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럴 이유도 없고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럼 향단이를 두려고?”

아니요.”

둘 다 아니라.”

 

몽룡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말이더냐? 네가 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이 있다고. 네가 뭘 할 수 있다고 그리 잘난 이처럼 말을 하는 것이야? 네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더냐?”

없습니다.”

없어?”

. 없습니다.”

 

방자는 묵묵히 몽룡을 응시했다. 몽룡은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답답하고 또 답답한 일이었다.

 

네 말처럼 춘향이를 밀어냈다.

?”

춘향이에게 파혼을 하자 했어.”

도련님.”

 

몽룡이 자신의 말을 들어주었다는 사실에 방자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어찌 그러셨습니까?”

어찌?”

그러니까 그것이.”

나도 알고 있다.”

 

방자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 내가 너무나도 부족한 이라서 춘향이 곁에 있다가는 모든 것을 다 삼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 그래서 놓아야 하는 것을 그 동안 놓지 못한 것이었지.”

그래서 놓으셨습니까?”

그래.”

그래서 술을 드시는 것이고요?”

그래.”

 

몽룡은 술을 다시 따르려다 술이 나오지 않자 한숨을 토해냈다.

 

술도 없구나.”

더 가져오겠습니다.”

돈이 없어.”

어떻게든 가지고 오겠습니다.”

 

방자의 대답에 몽룡은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리고 이내 씩 웃더니 그런 방자의 뺨을 가볍게 어루만지며 고개를 저었다.

 

멍청한 놈.”

도련님도 지금은 전혀 똑똑해 보이시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도련님이 아니신 것만 같습니다.”

그렇지.”

 

몽룡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도 너무나도 낯선 상황인데 그 오랜 시간 자신을 봐온 방자가 낯설지 않게 볼 리가 없는 일이었다. 몽룡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래. 그런 것이지.”

도련님.”

되었다. 어서 술을 가져오라.”

알겠습니다.”

 

방자는 침을 꿀꺽 삼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기.”

여기는 어쩐 일이니?”

 

문을 열고 들어가기가 무섭게 향단이 나섰다.

 

여기가 어디인 줄 알고.”

그만 두거라.”

 

춘향이 미소를 지은 채 향단을 말렸다. 춘향의 눈에 눈물 흔적이 그대로인 것을 보고 방자는 마음이 아팠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습니다.”

 

춘향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아야 하는데. 어찌 이리 미련한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미련하지 않습니다.”

고맙습니다.”

뭐 하십니까?”

 

향단은 춘향을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적대감이 가득한 눈으로 방자를 보며 미간을 모았다.

 

돌아가.”

향단아.”

어서 돌아가.”

무슨 일로 오셨소?”

 

향단이 더 방자를 밀어내기 전에 춘향이 나섰다.

 

술을 얻으러 왔습니다.”

 

?”

. 도련님이 지금 술을 드셔서.”

술을 먹어?”

 

향단의 목소리가 커졌다. 향단은 소매를 걷고 금방이라도 몽룡에게 갈 것처럼 행동했다. 춘향은 그런 향단의 손을 꼭 잡고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다.

 

도대체 왜 이리 구는 것이야? 네가 이리 굴면 안 된다는 것을 정말로 몰라서 이러는 것이야?”

아가씨는 화가 나시지도 않습니까? 지금 그리 술을 마시고 즐긴다는데 괜찮으신 겁니까? 참말 괜찮으세요?”

속이 뭉개지셔서 그래.”

 

방자의 대답에 향단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방자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는 모를 것이다. 도련님이 얼마나 힘들어 하시는 것인지. 다 내가 말을 해서 그리 하신 것이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춘향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말을 해줘요.”

춘향 아가씨께서 한양으로 가신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그래서 설득했습니다.”

뭐라고요?”

춘향 아가씨를 놓으라고요.”

 

방자의 대답에 춘향은 휘청거렸다. 향단은 비명을 지르며 곧바로 그런 춘향을 부축하며 입을 꾹 다물었다.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춘향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도련님이 내가 미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로 나를 위해서. 그래서 그리 말씀을 하신 것이다?”

그렇습니다.”

그렇구나.”

 

춘향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피어올랐다. 방자는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괜히 나선 일 같았다.

 

절대로 두 분을 아프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두 분 모두 행복하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그러니 도련님의 마음을 받으십시오.”

 

방자의 말에는 힘이 담겼다. 방자가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인지 알기에 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두 분은 같이 계시면 서로를 힘들게 하실 분들입니다. 그 사실 아시는 것이 아니셨습니까?”

그렇지.”

 

춘향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같이 있을 적에 행복하지 않았다. 너무 힘들었다.

 

향단아 술을 드려라.”

아가씨.”

나는 좀 쉬련다.”

 

향단은 방으로 들어가는 춘향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곧바로 방자를 노려보며 입을 내밀었다.

 

모자란 놈.”

무엇이?”

네 놈이 나서지 않더라도 내가 알아서 아가씨를 포기시키려고 했어. 그런데 네 놈이 이리 나서니. 이게 어떤 의미인지 참말 모르는 것이야? 아가씨께서 흔들린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야?”

안다.”

 

방자는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머리로는 이것이 한계였다.

 

허나 두 분 모두 행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 하나 나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니니?”

그래서 네가 한다?”

그래.”

미련하긴.”

 

향단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숨을 몰아쉬고 술독으로 향했다. 방자가 왜 그랬는지 알기에 무작정 뭐라고 할 수 없었다. 방자도 몽룡을 모시는 몸이었다. 마냥 편치 않을 것이었다.

 

술은 얼마나 주련?”

나도 마시고 싶다.”

그래.”

 

향단은 더 이상 뭐라 하지 않고 술을 담았다. 그리고 방자를 보내고 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문을 닫고 하늘을 쳐다봤다.

 

어찌 이러시오.”

 

답답한 노릇이었다.

 

 

 

오늘은 춘향이 오지 않는구나.”

가볼까요?”

아니.”

 

무영의 말에 학도는 고개를 저었다. 공연히 갔다가 이상한 말. 마음이 아픈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겠지.”

사또.”

자네는 한양으로 돌아가고 싶은가?”

 

학도의 물음에 무영은 물끄러미 그를 응시했다.

 

질문의 뜻을 모르겠습니다.”

그저 공허해서 그래.”

사또.”

 

무영은 학도를 가만히 불렀지만 학도는 더 이상 무영을 쳐다보지 않았다. 거기에 학도의 슬픔이 묻어나는 것 같아서 무영은 괜히 마음이 불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