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이 장. 몽룡과 학도 둘
“정말 그러셔도 되는 겁니까?”
“무엇이?”
“아가씨.”
“괜찮다.”
향단의 걱정스러운 표정에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향단의 손을 꼭 잡았다.
“우리는 맛있는 거나 해먹자구나.”
“뭐라고 하시지 않을까요?”
“누가?”
춘향의 밝은 목소리에 향단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리 센 여인이 아니었는데.”
“그러니 모른다는 것이지요.”
학도는 짐짓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춘향 저 사람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그대는 모르니 말입니다. 망설이는 일도 없이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은 제대로 하는, 그래서 너무나도 멋있는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그대는 모릅니다.”
“이제라도 알면 되지요.”
몽룡도 물러나지 않고 맞섰다. 괜히 오기 같은 것이 발동했다. 학도에게 밀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 옛날부터 춘향이가 나를 얼마나 좋아했는데. 이제 와서 그렇게 나를 밀어내지 않을 거외다.”
“나 참.”
학도는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런 일을 가지고 공연히 몽룡과 다투는 것도 우스운 노릇이었다.
“춘향의 말처럼 저 사람이 물건이 아닌데 우리 두 사람이 왈가왈부하는 것도 너무 우스운 일이 아니오?”
“우습지요.”
몽룡은 입을 쭉 내밀었다. 불편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부럽습니다.”
“예?”
갑작스러운 학도의 말에 몽룡은 미간을 모았다.
“그게 무슨?”
“춘향 저 사람이 먼저 챙긴 것이 바로 그대이니 말입니다. 이몽룡. 지워낼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저라니.”
몽룡은 침을 꿀꺽 삼키고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대화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너무 불편했다.
“허나 안심은 하지 마십시오.”
“하지 않습니다.”
“그대가 선생으로 그 자리를 제대로 지킨다면, 이 고을의 스승이 된다면 나는 춘향 저 사람을 데리고 떠날 겁니다.”
“뭐라고요?”
몽룡의 얼굴이 곧바로 구겨졌다. 이 사람은 지금 춘향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인가? 이게 무슨 말인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단 말입니까? 춘향이가 그러지 않겠다고 하는데 사또가 무슨 자격으로요?”
“저 사람의 보호자요.”
“보호자요?”
“그렇소.”
학도의 단호한 표정에 몽룡은 침을 꿀꺽 삼켰다. 아마 두 사람 사이에는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으리라.
“그대도 이미 잘 알고 있을 거라고 믿소. 춘향 저 사람이 지금의 위치에 오르게 된 것이 모두 나의 덕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요. 그래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춘향이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저보다 사또가 더 잘 알고 있지 않소이까?”
“알고 있지요. 그래서 더 지키려고 하는 겁니다. 춘향 저 사람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내가 아니 말이오.”
학도는 침을 꿀꺽 삼키고 물끄러미 몽룡을 응시했다. 그리고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정말 춘향을 사모하오?”
“사모라기 보다는. 아무튼 내가 첫 정인이고, 그 사실은 사또가 뭐라고 한들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요.”
학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아팠지만 변하지 않는 진실이었다. 두 사람은 정인이었다.
“한양에 데리고 갈 겁니다.”
“뭐라고요?”
몽룡의 얼굴이 순간 구겨졌다. 한양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한양에서 춘향이 도대체 무얼 한단 말인가?
“거기에서 무슨?”
“글을 가르칠 겁니다.”
“글을 가르친단 말입니까?”
몽룡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한양이 어느 곳인데 그것이 말이 되는가?
“아무리 사또가 좋은 사람이고 개혁을 꿈꾼다고 하나 한양에서 그것을 받아들일 리가 만무합니다.”
“그것이 될 것입니다. 내 오랜 벗이 한양에 있고 그 벗이 나를 위해서 그 정도는 해줄 테니 말입니다.”
“벗이라니. 도대체 어떤 벗이기에.”
“오늘은 밤이 많이 늦은 것 같습니다.”
아직 달이 제대로 뜨지도 않은 시간이건만 학도는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몽룡을 쳐다봤다.
“그럼. 나는 가보겠소.”
“들어가시지요.”
몽룡은 멀어지는 학도를 보며 미간을 모았다.
“도대체 저 자의 정체가 무엇인가?”
“늦으셨습니다.”
“걱정을 했는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무영의 대답에 학도는 빙긋 웃었다.
“이몽룡 그 자와 대화를 좀 나누었네.”
“대화가 되는 이입니까?”
“달라지네.”
학도는 슬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 사람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사람이기를. 그래서 아무런 가치도 없기를 바랐어. 그런데 그렇지 않아.”
“춘향이 골랐으니 그와 걸맞은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사람을 보는 눈이 없는 이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렇지.”
학도는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학도의 변화에 무영은 어색하게 웃을 따름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응? 무엇을?”
“사또.”
“갈 거야.”
다시 한 번 무영이 채근하자 학도는 빙긋 웃었다.
“한양으로 갈 걸세.”
“참말입니까?”
“그럼.”
학도는 자신에게 당부하듯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곳에 있다고 한들 달라질 것은 없었다.
“나는 춘향 그 사람을 위해서 떠나려고 하네. 이곳에서는 그 사람이 재능을 펼치지 못할 것이야.”
“허나 위험합니다.”
“위험은.”
무영의 지적에 학도는 웃음을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내가 갈 걸세. 그리고 무영 그대도 나와 같이 갈 것인데. 도대체 무엇이 위험하다 그리 말을 하는가?”
“지금 한양에서 사또를 어떤 눈으로 보는지는 저보다도 사또께서 더 잘 아시는 것 아니었습니까?”
“그렇지.”
학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을 경계가 가득한 눈으로 보는 것은 이미 아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조심해야지.”
“허나.”
“괜찮아.”
무영에게 손을 들어 말을 멈추게 하며 학도는 미소를 지었다.
“괜찮을 걸세.”
“정말입니까?”
“그럼.”
학도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춘향의 모습을 보면 누구나 같이 생각을 하리라. 그는 달라지지 않으리라.
“나는 좀 쉬겠네.”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고마우이.”
무영은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지은 채로 물러났다. 늘 그의 곁을 지켜주는 소중한 사람이었다. 학도는 그대로 자리에 누웠다.
“달이 밝구나.”
마음이 불편했다. 몽룡과 춘향. 춘향과 몽룡. 두 사람이 자꾸만 신경이 쓰여서 부아가 치밀었다.
“내가 이리도 작은 사람이던가?”
헛헛한 웃음이 나왔다.
“젠장.”
“왜 그러십니까?”
“아니다.”
방자에게 모든 것을 다 말을 하기에는 이 자존심이라는 놈이 허락을 하지 않았다. 몽룡은 곧바로 물을 마셨다.
“저녁은?”
“준비했습니다.”
“그래.”
방으로 들어가는 몽룡을 보며 방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 저러누?”
“정말로?”
“그래.”
방자는 날이 밝아서 향단에게 모든 사실을 듣고 나서야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상한 태도가 모두 이런 일로 연유가 있었던 것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너무나도 우스운 일이었다.
“너는 뭐가 그리 우습니?”
“그럼 너는 안 웃기니?”
“그럼.”
향단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결국 아가씨께서 다시 몽룡 도련님을 잡은 것이니 나는 그것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다.”
“그래도 네가 가지 않는 것 아니냐?”
“응?”
방자는 갑작스러운 자신의 말에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향단도 곧바로 얼굴이 붉어지며 고개를 저었다.
“이게 미쳤나?”
“미안하다.”
방자는 그대로 일어나서 주방을 나갔다. 향단은 그런 방자의 뒤태를 보며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 겁은 많아서.”
향단은 입을 쭉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조금만 더 그런 말을 해주지.”
향단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도련님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 도련님이요?”
방자의 물음에 춘향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왜요?”
“생각이 없으시다면 제가 단념을 시키겠습니다.”
“예?”
“더 이상 폐를 끼치지 않게 하겠습니다.”
방자의 표정은 단호했다.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서 누군가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 그 사실을 도련님은 아셔야 합니다.”
“피해라니요.”
“아니요.”
춘향이 대충 달래려고 했지만 방자는 단호했다.
“그것은 피해입니다.”
“방자.”
“죄송합니다.”
방자는 춘향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부디 도련님을 외면해주세요. 부디 도련님을 버려주세요. 부디 도련님이 아무 사람이 아니게 생각을 해주세요.”
“어찌.”
“그럼.”
방자는 이 말을 남기고 멀어졌다. 춘향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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