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일 장. 몽룡과 학도 하나
“그림까지?”
“그럼요.”
“나 참.”
몽룡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무릇 양반이라고 함은 그런 일과 관련이 없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일이 얼마나 천한 일인데 한 고을 사또라는 이가 그런 일까지 모두 한단 말이냐?”
“그것이 어찌 천합니까?”
“천하지.”
방자의 항변에 몽룡은 미간을 모으며 고개를 저었다.
“향료를 섞는 일이 얼마나 귀찮은지 아느냐? 그런 일을 할 바에야 글이라도 한 자 더 읽는 것이 무릇 양반이 하는 일이야. 그런 하잘 것 없는 일을 하는 것은 절대로 양반의 일이 아니다.”
“그러는 도련님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것 아닙니까?”
“뭐라고?”
“사실 아닙니까?”
“사실은.”
몽룡은 이렇게 방자의 말을 무시했지만 방자의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다. 학도는 사또였으니.
“아무튼 사또는 그리도 춘향 아가씨를 좋아한다. 그리 말을 하는데 도련님은 어떻게 하려고 그러십니까?”
“무얼?”
“이대로 춘향 아가씨를 보낼 겁니까?”
“보내고 말고 할 것이 있느냐?”
몽룡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화가 나고 그래도 자신이 나설 일은 아니라 생각이 들었다.
“그건 춘향이가 알아서 할 것이다. 자신이 생각이 있는 여인이면 누구에게 와야 하는지 그 정도는 알고 있겠지. 아무리 배운 것이 없다고 한들 몸이 가는 대로 그대로 행동을 하겠는가?”
“그러니 아니 되시는 겁니다.”
“무엇이?”
방자의 말에 몽룡은 미간을 모았다.
“잠깐. 말이 지나치구나.”
“무엇이 지나칩니까?”
“아무리 네가 글을 공부한다고 한들. 감히 네 주인에게 그런 식으로 말을 하면 아니 되는 법이다.”
“예. 예. 알겠습니다.”
방자는 입을 쭉 내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몽룡은 그런 방자를 보며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내가 너에게 글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은 것이야. 네가 그리 건방질 것이 뻔하니 말이다.”
“도련님. 부디 성정을 제대로 가지십시오.”
“뭐라고?”
“춘향 아가씨가 아니었다면 도련님은 남원 고을에 다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하시는 그 선생 노릇. 그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 사실을 잊으시면, 절대로 잊으시면 안 되는 겁니다.”
“뭐라는 게야!”
몽룡이 손에 잡히는 대로 그대로 던지는 순간 방자는 그것을 여유롭게 잡으며 물끄러미 몽룡을 응시했다.
“아직도 저를 그리 대하시는 겝니까?”
“고, 고얀.”
“그럼 쉬십시오.”
“방자 네 이 놈!”
몽룡이 고함을 질렀지만 방자는 다시 방에 들어오지 않았다. 몽룡은 어깨를 들썩이며 숨을 크게 쉬었다.
“도대체 저 고얀 놈이 왜 저리 되었을꼬?”
몽룡은 미간을 모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왜 직접 오셨습니까?”
“종이가 많으니 말이야.”
“그래도.”
학도를 보며 춘향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이것은 제가 따로 사람을 부려서 가면 되는 일입니다. 관아의 일도 바쁘실 텐데 왜 예까지 오셨습니까?”
“오면 안 되는가?”
“그런 게 아니라.”
춘향이 당황한 기색을 보이자 학도는 쿡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제야 학도가 농을 던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춘향은 학도를 노려보면서 살짝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왜 그러시는 겁니까?”
“무엇이 말인가?”
“저를 놀리면 좋으십니까?”
“좋지.”
“사또.”
“재밌어.”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눈을 찡긋했다. 학도는 짧은 한숨을 토해내며 물끄러미 춘향을 보다 입을 열었다.
“한양에 가시게나.”
“허나 저는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 저는 아직 이곳에서 해야 하는 일이 많고 한양과 저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내가 자네를 데리고 갈 걸세.”
“예?”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한 학도의 말에 춘향은 미간을 모았다. 하지만 학도의 태도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단호했다.
“자네가 내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은 알아. 자네가 내 말을 들어야 할 이유도 없다는 것도 아네.”
“그런데 어찌 이러시는 겁니까? 제가 한양에 가서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이야기.”
“예?”
“이야기의 힘일세.”
학도가 눈을 반짝이자 춘향은 침을 꿀꺽 삼켰다. 학도가 다시 또 태도를 바꾸니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의 힘이라는 말입니까? 이야기는 그저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아무 힘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 사실은 저보다 사또께서 오히려 더 잘 알고 계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니. 이야기는 힘을 갖고 있어. 그 무엇보다도 귀한. 그리고 중한 힘을 이야기는 가지고 있다는 말일세.”
“사또.”
“정녕 모르는가? 사람들은 이야기를 듣고 교훈을 알아. 그리고 그대로 생활의 습이 바뀌지. 그것이 아주 어릴 적부터 이어진다면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을 하는가? 이 조선의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가?”
“조선의 변화.”
춘향은 이것을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어떤 힘이 느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이내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도 중한 일이라면 더더욱 자신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 그 누구보다도 사또께서 더 잘 아실 거라 믿습니다.”
“왜 그대가 아무 것도 못하나?”
“여인이니까요.”
“아니.”
학도는 한숨을 토해냈다.
“왜 그러나?”
“그리고 떠날 이유도 없습니다.”
“왜 없어? 내가 가자고 하는 건데.”
“예?”
“같이 가세.”
학도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예의 그 부드러운 미소에 춘향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침을 꿀꺽 삼켰다.
“사또.”
“나를 믿지 못하는 것인가?”
“아니 사또를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또와 제가 같이 가면 사또께서 무슨 말을 들을지 모르시는 겁니까?”
“무슨 말?”
“그러니까.”
“내가 지금 그냥 같이 가자는 것으로 보이는 건가?”
“예?”
이건 또 무슨 말인가? 학도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에게 혼례를 청하는 것이야.”
“그게 무슨?”
춘향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 말씀은?”
“그래.”
학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에게 혼인을 약조하는 것일세. 내가 그대의 곁에 있을 것이라고. 그리 말을 하는 것이야.”
“안 됩니다.”
춘향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자신의 신분 탓에 여태 학도가 놀림을 당하는 통이었다. 더 이상 자신이 학도에게 어떤 짐이 되거나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절대로 아니 될 말씀입니다. 제가 얼마나 더 사또에게 폐를 끼쳐야 속이 시원하시겠습니까?”
“폐라니?”
“모르십니까?”
“폐가 아니야.”
학도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춘향이 자신의 곁에 있는 것은 그 어떤 잘못도 아니었다.
“도대체 왜 그것을 그리 생각을 하는 겐가?”
“허나.”
“부디 그리 생각을 하지 마시게. 내가 한 여인을 좋아해서 같이 가자고 하는 것이 그것이 문제인가?”
“사또.”
“이게 또 무슨 말이야?”
그때 빈정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렸다. 몽룡이 싸늘한 눈으로 두 사람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 이게 무슨 일이냐?”
“도련님.”
“그대는 무슨 일인가?”
학도는 곧바로 경계의 날을 세웠다.
“내가 지금 춘향 이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지 못하는가? 예서 지금 함부로 무얼 하는 게야?”
“남의 정인을 데리고 그런 말을 하는 사또는 제정신이오?”
“정인?”
“그렇소.”
몽룡은 방으로 성큼성큼 들어와서 춘향의 곁에 섰다.
“아무리 내가 모자란 사내라고는 하나 한 번 맺은 그 결심. 아직 끊은 적이 없는데 무슨 말이오?”
“연이라?”
학도는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몽룡을 물끄러미 보며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대가 춘향 저 사람이 힘들 적에 저 곁에 있었나? 도대체 무엇을 했다고 이리 나서는 것인가?”
“사또는 그 순간 잠시 춘향의 곁에 있었다고 모든 것을 다 아신다고 생각을 하오? 참으로 가엾소.”
“무, 무슨.”
학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지금 그대야 말로 무슨 생각을 하는 거요? 그대는 그 오랜 세월 춘향, 이 사람의 곁을 지키지 않았어. 이 사람이 어떤 고초를 겪었는지. 어떤 아픔을 겪었는지 그런 것을 모른다는 말이오.”
“그래서 지금 있으려고 합니다.”
몽룡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학도를 응시했다.
“지금 사또의 말씀처럼 그 오랜 시간을 내가 이 사람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이 사람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알고자 합니다. 내가 이 사람의 곁에 있으니 말입니다.”
“불허하오.”
“뭐라고요?”
“불허한단 말이오.”
“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춘향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가만히 듣고 있지 못하겠습니다.”
“춘향아.”
“도련님 되었소.”
춘향이 학도의 편을 드는 것 같아 몽룡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무슨 물건도 아니고 두 사람이 무슨 말씀을 그리 나누시는 겁니까? 사또. 사또도 그리 보지 않았는데 너무 하십니다.”
“춘향. 내 말은 그것이 아니라.”
“저는 저입니다. 두 분이 저를 주고받고 그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부디 그런 말씀은 거두십시오. 오늘은 밤이 늦었습니다. 두 분은 이제 그만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춘향의 단호한 말에 두 남자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밖으로 나갔다. 춘향은 그들을 문까지 배웅하고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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