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 장. 흔들거리다.
“가면 되는 것이지.”
“도련님.”
몽룡의 간단한 대답에 방자는 한숨을 토해내면서 고개를 저었다. 몽룡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 그였다.
“도대체 왜 그러십니까?”
“무엇이?”
“정녕 춘향 아가씨가 한양으로 가지 않으시는 이유를 모르신단 말씀입니까? 도대체 왜 이리 구십니까?”
“왜 그러는 게냐?”
“다 도련님 탓 아닙니까?”
“응?”
몽룡은 정말 아무 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방자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여태 이런 도련님을 마음에 담고 있어서. 혹여라도 어떤 일이라도 있을까. 그래서 안 가시는 것입니다.”
“설마?”
몽룡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의 연은 이미 끝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도련님.”
“네가 지금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랑 춘향이 사이의 시간은 꽤나 오래 지난 것을 왜 몰라?”
“알고 있습죠. 그래서 더 안타까운 것이 아닙니까? 도련님은 춘향 아가씨를 그리 생각을 하시지 않는데. 더 이상 그리 보지 않으시는데. 춘향 아가씨 홀로 그러시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 마음이 보이지 않습니까?”
“마음?”
몽룡은 침을 꿀꺽 삼켰다. 허나 자신이 어떤 미련을 갖는다고 해도 이미 끝이 난 관계가 아니었던가?
“춘향에게는 사또가 있지 않은가?”
“사또를 거절하는 것이 바로 춘향 아가씨입니다.”
“거절해?”
“참말 모르십니까?”
몽룡은 아랫입술을 꼭 물었다. 답답했다. 자신이 너무나도 답답하고 멍청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춘향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너무나도 긴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내가 뭘 한다고 한들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는 게야? 절대로 그럴 수가 없는 법이다.”
“허나 춘향 아가씨는 여전히 도련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 모든 것을 정녕 모르는 척을 하시는 겁니까?”
“되었다.”
몽룡은 손사래를 쳤다. 이런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았다. 너무 귀찮고, 너무 복잡한 이야기였다.
“네가 뭐라고 한들 내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을 하는 게야? 그런 거라면 너는 잘못 생각한 것이다.”
“도련님.”
“되었어.”
몽룡은 미간을 모으며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런 이야기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그와 관련이 없는 이야기였다.
“이제 춘향이가 무엇을 하건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더냐? 이미 우리 두 사람은 많은 시간이 흘렀어. 이제 각자의 시간이 흐르고 있는데 공연히 거기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하느냐는 말이야?”
“허나 도련님도 아시다시피 춘향 아가씨가 얼마나 도련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지를 아시게 된다면.”
“되었어.”
몽룡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은 더 이상 궁금하지 않아.”
“도련님.”
방자는 아랫입술을 물었다. 춘향이 안타까워서, 그리고 일부러 밀어내려는 몽룡이 또 불쌍해서 더 이상 말을 붙일 수 없었다.
“많은 것을 포기하신 모양이야.”
“포기?”
방자의 대답에 향단은 코웃음을 치면서 고개를 저었다.
“겁쟁이라서 그렇지.”
“뭐?”
“사실이 그렇지 않니? 지금 아가씨에게 감히 다가올 용기를 내지 못해서 그러한 것 아니겠니?”
“그럼 도련님이 도대체 뭘 어떻게 하기를 바라는 게야? 도련님이 뭘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뭐든 할 수 있겠지.”
“뭐라고?”
향단의 간단한 대답에 방자는 미간을 모았다.
“자신이 소중히 여기던 모든 것을 다 잃은 분이야. 그런 분이 어떻게 쉬이 또 다른 것에 욕심을 낼 수가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니? 그것이 말이 아니 된다는 것을 향단이 너는 정말 모르는 게야?”
“모른다. 나는.”
향단은 볼을 부풀리고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몽룡의 입장에 대해서 알고 싶지도 않았고 알 이유도 없었다.
“네가 그 양반을 그리 챙기는 것처럼 나는 그저 내 아가씨만 챙기면 되는데 무슨 말을 하는 거라니?”
“그렇구나.”
방자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방자의 반응에 향단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 마음에 들지 않아.”
“내가 그러니?”
“그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향단을 보며 방자는 그저 미소를 지을 따름이었다. 몽룡이 괜히 안쓰러웠다.
“그래. 잘 가거라.”
아이들을 보내고 몽룡은 춘향도 보지 않고 문을 나섰다. 춘향이 그를 붙잡으려 했지만 이미 휘적휘적 멀어진 후였다.
“저런.”
“아가씨 왜 그러십니까?”
“아니.”
“그러지 마십시오.”
향단의 골이 난 목소리에 춘향은 싱긋 웃었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향단의 손을 내려놓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도대체 왜 그리 구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왜?”
“아니 아가씨가 얼마나 귀한 분이신데 도대체 왜 그렇게 안달복달을 하시는 겁니까? 조금 더 아가씨 스스로를 생각을 하셔도 되는 것 아닙니까? 왜 그렇게 약한 마음을 가지시는 겁니까?”
“내가 그러니?”
“그렇습니다.”
춘향은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그렇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뭐 하나 달라질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자신은 몽룡을 여전히 연모하고 있었으니까.
“이제 들어가자.”
“아가씨.”
“방자는 아직 안에 있는 거 아니니?”
“아.”
향단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춘향은 그런 향단의 어깨를 가볍게 때리고 눈을 한 번 찡긋했다.
“한양에 가시지요.”
“향단이가 그것까지 말을 했습니까?”
“그럼요.”
춘향이 자신을 노려보자 향단은 방자를 노려봤다. 방자는 헛기침을 하면서 그런 향단의 시선을 피했다.
“비단 도련님만 있어서 한양에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니 그런 마음을 가지실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거짓말.”
“향단아.”
“거짓말 아니오?”
춘향의 대답에 향단은 미간을 모으며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왜 그리 생각을 하는 게야?”
“당연한 거 아닙니까? 한양에 가서 글을 가르친다는 것이 여인으로 오를 수 있는 얼마나 높은 위치인지 정말 모르셔서 그러는 것이냐고요. 저도 아는 것을 아가씨가 모를 리가 없지 않습니까?”
“모른다.”
“아가씨!”
향단이 고함을 지르자 춘향은 귀를 막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살짝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소리는.”
“도대체 왜 그러시는 겁니까?”
“무엇이?”
“정녕 몰라서 그러시는 것입니까? 아가씨께서 왜 그리 답이 없는 사랑을 하시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답이 없다.”
춘향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답이 없는 것. 그것이 사실이었다. 속상하지만 부정할 수 없었다.
“그렇지.”
“제 말이 옳지요?”
“그래.”
춘향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방자를 보며 살짝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방자가 오히려 더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련님은 이미 모든 것을 잃은 분입니다. 그리고 춘향 아가씨는 아직 많은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요?”
“그러니까 우리 도련님과 어울리지 않는다고요. 제가 무슨 말을 할 것인지는 아가씨가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아니요.”
춘향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모든 것을 다 잃었다고 해서 몽룡을 떠나야 하는 이유가 될 수 없었다.
“저는 여태 도련님을 마음에 담고 있습니다. 이전의 그 마음을 여전히 갖고 있다는 것. 아시지 않습니까? 그 마음이 없었더라면 제가 부탁을 해도 선생을 하기 위해서 나서지 않았을 겁니다.”
“그건 그렇지만.”
방자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춘향의 이런 간절한 마음과 몽룡의 마음은 다소 다르게 느껴졌다.
“도련님은 그렇게 바른 성정이 아니십니다. 이제 많은 것을 잃었고, 그 만큼 사나워지셨습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아가씨.”
“여인이 마음에 품은 사람입니다. 시간이 지난다고, 그 사람의 상황이 달라졌다고 외면할 것이 아닙니다.”
“허나 외면을 해야지요.”
“향단아.”
“아가씨.”
향단은 입을 삐쭉 내밀며 고개를 저었다.
“도련님이 절대로 아가씨를 보지 않을 거라는 것을 모르시는 겁니까? 사또께서 얼마나 아가씨를 좋아하시는데요.”
“사또가 무슨?”
춘향은 손사래를 쳤다. 혹여나 방자에게 이상한 말이 들려 몽룡에게 전해질까 그것이 걱정이 되었다.
“늦으면 도련님께서 기다리실 겁니다. 그러니 어서 가시고 내일 오세요. 오늘은 이만 가시고요.”
“저 그림도 사또가 주신 것 아닙니까?”
“그림이요?”
“아니.”
그림은 귀한 것이었다. 방자는 향단이 가리키는 것을 보다 입을 가렸다. 월매가 거기에 고스란히 그려져 있었다. 춘향은 한숨을 토해내며 가볍게 향단의 팔을 붙들었다. 향단은 입을 쭉 내밀었다.
“도대체 왜 그러시는 겁니까?”
“너야 말로 왜 이러는 것이야? 네가 이런다고 해서 내가 고마워할 거라고 생각을 하는 게야? 응?”
“아가씨.”
“네가 이럴 것 하나 없어. 사또께 고마운 마음은 내가 알아서 표현을 한다. 그러니 너는 그러지 않아도 돼.”
“허나.”
방자는 고개를 숙였다. 어차피 자신이 여기에 더 있어봐야 춘향의 마음만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살펴 가세요.”
“예. 들어가십시오.”
방자가 문을 나서고 향단은 춘향을 노려봤다.
“너는 왜 그러니?”
“아가씨야 말로 왜 그러십니까?”
“뭐라고?”
춘향이 뭐라고 한 마디 하기 전에 향단은 그대로 방으로 들어갔다.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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